251202 새벽기도회
Notes
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220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기도
사랑의 주님 잠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먼저 주님을 찾게 하시고,
눈을 뜨자마자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은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우리의 걸음과 생각과 입술을 주님께 맡깁니다.
바쁜 하루, 수많은 일들 속에서 분주함에 휩쓸리지 않고 무엇을 하든지 먼저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시작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식어진 기도에 불을 붙여 주시며
낙심한 심령에게는 위로를, 지친 영혼에게는 새 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가정과 일터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립니다.
가정마다 예배의 향기가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자녀들의 앞길을 지켜 주시며, 그 마음에 믿음과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의 일터와 사업장을 붙드셔서 정직과 성실로 주님을 드러내게 하시고
어떤 형편에서도 주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잃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정성으로 드리는 일천번제와 감사 헌금을 받아 주옵소서.
드린 손길마다 하늘의 위로와 필요한 은혜를 더하여 주옵시고,
이 예물이 오직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아름답게 쓰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판단을 하며 살아갑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뉴스를 볼 때, 가족들을 대할 때, 또는 일터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심지어 길을 가는 모르는 사람을 보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남을 평가합니다.
"이 사람은 이게 문제고, 저 사람은 저게 문제고 심지어 길을 가는 모르는 사람의 옷차림도 평가를 합니다. 그러면서 나라면 절대로 저렇게 하지 않을거야."라고 스스로 생각을 합니다.
특히 요즘 유튜브나 인터넷을 보면 소위 **'사이다 영상'**이나 **'참교육'**이라는 주제로 영상이 넘쳐납니다.
무례하거나 잘못한 사람을 찾아가서, 내 힘으로 망신을 주고, 응징하는 영상들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영상을 보면서 "속이 뻥 뚫린다! 이게 정의지!" 하며 좋아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누군가가 잘못된 사람을 시원하게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을 '옳은 일'이라고 여기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도 하루에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씩 마음속으로 남들을 점수 매기며, 깍아 내립니다.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너는 틀렸고, 나는 맞아. 그래서 너는 참교육이 필요해." 라며 선을 그어버리며 정죄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야고보서 말씀은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남에 대한 판단과 비난이, 단순히 내 성격이 예민하고 정의가 넘쳐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이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자리를 탐내는 무서운 죄라고 말씀합니다.
마치 내가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남을 내 밑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왜 자꾸 습관적으로 남을 비방하게 되는지 그 진짜 이유를 깨닫고, 우리가 이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1: 농담도 비방이 될 수 있습니다]
[본론 1: 농담도 비방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고하며 시작합니다.
여기서 '비방한다'는 말의 뜻은 **'남을 내 발아래 짓밟아 놓고, 나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함부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많은 사람이 '비방'이라고 하면, 그 사람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욕을 하거나 또는 그 사람 모르게 뒤에서 심각하게 험담하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입술이 짓는 가장 흔하고 교묘한 죄는 바로 '농담' 속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또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누군가의 약점이나 실수를 가지고 장난을 칩니다.
은근히 깎아내리고 비꼬는 말을 던져 놓고는,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면 "농담이야, 웃자고 한 소린데 왜 그래?"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상대방을 깎아내려서 웃음거리를 만드는 농담은, 명백한 '비방'입니다.
성경은 말투가 웃기냐 진지하냐를 보지 않습니다.
그 말의 결과가 형제를 내 발아래로 끌어내리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존귀한 형상을 짓밟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왜 이런 농담까지 해가며 남을 깎아내리고 판단 하는 것입니까?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남을 깎아내리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자존감이 낮고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시소를 타면 한쪽이 내려가야 한쪽이 올라갑니다. 다시말해 한쪽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한쪽이 내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마음이 공허하고 내가 부족한 사람 같으니, 억지로라도 나를 높이기 위해 상대방을 깎아내려서 주저앉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가 상대적으로 저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남을 깎아내려서 얻는 그 우월감은 **'가짜 자존심'**입니다.
그것은 내 인격이 훌륭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을 구덩이에 밀어 넣고 그 위에 서서 얻은 착각일 뿐입니다.
우리가 남을 흉보고 조롱할 때, 우리는 내가 똑똑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지금 마음이 병들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자존감이 바닥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병든 방식으로 자존심을 세우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남을 깎아내리지 않아도, 이미 십자가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본론 2: 법을 지키는 사람인가, 법을 판단하는 사람인가?]
[본론 2: 법을 지키는 사람인가, 법을 판단하는 사람인가?]
그리고 본문 11절에서 "형제를 비방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자라"라고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형제를 깎아내리는 말이 왜 하나님의 법을 욕하는 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은 "내 백성이라면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법을 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형제를 무시하고 깎아내리면, 우리는 행동으로 이렇게 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이 법은 틀렸습니다, 잘못됬습니다. 저 사람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저런 사람까지 존중하라는 법은 말도 안 됩니다. 그래서 나는 이 법을 따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판단하겠습니다.”
우리가 운전할 때 빨간 불이 켜지면 멈춰야 합니다. 그게 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신호등은 잘못됐어. 난 그냥 갈 거야" 하고 지나가 버리면 그 순간 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법 위에 서있는 사람” 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사랑의 법'을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자리인 '순종의 자리'를 떠나, 심판자의 자리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본론 3: 진짜 재판관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본론 3: 진짜 재판관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2절은 우리에게 아주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법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 한 분이시고, 그 법대로 심판하실 분도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실 수 있는 진짜 권한, 진짜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판단하고 있는 그 사람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아시고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분 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12절 끝에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누구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이 말씀은 우리의 정체가 뭐냐고 묻는게 아닙니다.
이 말씀은 “네가 언제부터 하나님이 되었느냐?” 라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불안한 마음에 남을 깎아내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권한을 가로채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속으로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자리인 재판석의 자리에 하나님을 밀어내고 내가 앉아 있는 것 입니다.
우리는 단지 흙으로 지어진 피조물일 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이 만드신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내가 하려고 드는 것은 바로 우리가 반드시 회개해야 할 교만이고 죄 입니다.
[본론 4: 다윗의 이야기 -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다]
[본론 4: 다윗의 이야기 -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또는 정말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봤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에 다윗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그 답을 줍니다.
사무엘상을 보면 다윗은 아무 잘못도 없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녔습니다. 억울하게 죽을 위기를 수없이 넘겼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는데 다윗이 숨어 있는 동굴에 사울 왕이 무방비 상태로 제발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의 부하들은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라며, 당장 사울왕을 쳐서 원수를 갚자고 다윗을 부추깁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이건 누가보더라도 사울은 가해자이고, 다윗은 피해자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이 사울왕을 심판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살짝 베고도 마음 아파합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24:12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12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다윗의 고백은 사울왕이 명백히 잘 못했습니다. 하지만 심판은 내 몫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칼을 휘두르는 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장 공의롭게 처리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자리인 재판관의 자리에 앉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 드렸습니다. 이것이 진짜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내가 남을 깎아내려 나를 증명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에,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다” 라고 믿고 가장 공의로운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결론 및 적용: 오늘 하루, 명찰을 확인하세요]
[결론 및 적용: 오늘 하루, 명찰을 확인하세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우리 가슴에 달린 **'명찰'**을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 가슴에는 **'재판관'**이라는 명찰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명찰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대신 우리 가슴에는 '사랑하는 사람',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명찰이 달려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혹은 웃으면서라도 누군가를 깎아내리고 싶은 농담을 하고 싶을 때, 우리는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일 때 '내가 지금 마음이 허전하구나. 내가 지금 가짜 자존심을 세우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시고, 그 그 마음을 기도로 바꾸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저 사람을 판단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대신 저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려 주시고, 저 영혼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가 남을 심판하는 대신 축복하고 기도할 때, 진짜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내가 하나님 노릇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만 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주님, 우리가 얼마나 쉽게 형제를 판단하고, 가볍게 농담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했는지 돌아봅니다.
내가 옳다고 여기며 남을 낮추었던 교만한 마음에서 조용히 돌이키는 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하나님만이 입법자이시며 재판관이심을 잊지 않게 하셔서, 우리는 사랑하고 순종하는 자리에서 머물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주에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질 때마다 한 번 더 멈추게 하시고,
정죄의 말 대신 축복과 중보의 기도로 바꾸는 믿음의 선택을 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재판하듯 바라보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형제자매로 보게 하셔서 오늘 하루 우리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까지도 주님 앞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주님의 핏값으로 세우신 우리 공항교회가 ‘서로를 판단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를 세워 주고 감싸 주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언제나 하나님의 자리를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겸손한 교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