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더럽히는 쓴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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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우리는 ‘행복한 가정’이라는 주제로 함께 예배합니다.
우리가 교회라는 공동체로 모였을 때, 이것은 믿음으로 하나됨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또 목회자를 통하여 주신 ‘메시지’로 인해 우리는 변화되고 세워집니다.
이 시대에 교회와 신앙이 더욱 필요합니다. 사실 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너무 강압적인 것에 거부감 또한 강한 세대이기에 조심스럽게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일’, 너무 많은 ‘볼거리’, 너무 많은 ‘소리’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조금 과격한 말로 설명하자면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그러하고, 우리의 자녀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매우 중요하고, 이 메시지와 기도는 더욱 더 중요합니다.
가능한 유튜브와 미디어 시청을 줄이시고,
산책이나 사색하는 시간을 늘리세요.
그래야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쓴뿌리가 가정을 무너뜨린다
보이지 않는 쓴뿌리가 가정을 무너뜨린다
본문의 말씀과 같이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으면 교회에 다녀도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화평함과 거룩함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미치지 못하도록 우리를 가로막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쓴뿌리’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는 것을 가로 막으며,
우리가 화평하고 거룩할 수 있는 통로를 막고있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괴롭게 하여 우리의 삶을 더럽힙니다.
야곱의 가정
야곱의 가정
야곱은 가정을 떠나 자신의 삼촌집에 거주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보수로 7년을 일하고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첫날밤에 자고 일어나보니 자신의 옆에 있는 여자가 ‘라헬’의 언니 ‘레아’인 것을 보고 기절할 뻔 합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삼촌에게 물으니 삼촌이 언니가 먼저 결혼을 하는 것이 자신들의 전통이라며, 자신이 사랑하는 라헬도 줄테니 걱정말라고 야곱을 달랩니다.
대신에 야곱은 생각지도 못했던 레아와의 결혼비용까지 지불하기 위해 7년을 더 일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욕심으로 인해 레아는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야곱도 사랑하지 않는 아내를 얻게 되었습니다. 레아는 자신의 동생만을 사랑하는 남편을 보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남편의 자녀를 낳아주면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레아에게 자녀가 생겼지만 기쁨도 잠시, 야곱은 여전히 라헬만을 사랑했습니다.
그렇게 레아는 야곱의 아들을 6명이나 낳아줬지만 야곱을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슬픔과 아픔은 그대로 자녀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이후에 라헬도 오랜 불임 끝에 자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요셉입니다.
야곱은 12명이나 되는 자녀가 있었지만 요셉만을 자신의 장자로 생각하고 예뻐했습니다.
요셉이 청소년이 되었을 때 너무나 해맑게 형들이 일하면서 잘못한 것을 아버지에게 일렀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순수하게 한 행동인데 형들의 눈에는 안그래도 미운 동생이 하는 행동이 죽이고 싶도록 꼴보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야곱은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는 사실을 눈치 챈 것인지 요셉에게 형들이 먹을 도시락을 전해주라는 부탁을 합니다. 도시락을 가지고 형들을 찾아간 요셉을 보고 형들은 가슴 속에 쌓였던 분노가 터져서 그를 죽이려 하다가 큰 구덩이에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그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에 마침 지나가던 애굽의 노예상들에게 동생을 팔아버립니다.
가정의 행복을 가로막는 쓴뿌리
가정의 행복을 가로막는 쓴뿌리
이것은 매우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쓴뿌리로 인하여 가정의 행복이 차단되는 경우는 너무나 많습니다. 심할 경우에 이렇게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하거나 가정이 파괴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일상에 흔히 보이는 쓴뿌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말하지 않아 쌓이는 서운함
반복되는 무시와 조롱
공평하지 않은 집안의 역할 분담
대화 부족
인정받지 못할 때 노력의 상처
비교에서 생기는 아픔
경제적 스트레스
배우자 가족 문제
신앙의 불균형
결혼전부터 있었던 마음의 상처
양육 방식의 차이 등등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쓴뿌리들이 천국과 같던 가정의 분위기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오는 통로를 차단해버리기도 합니다.
한두번 아내나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을 하는 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 가운데 흘러오지 못하고 있었다면 믿어지십니까??
내 일이 안풀리고 삶이 공허한 이유가 남편이나 아내에게 농담처럼 던졌던 무시와 조롱의 말투때문이었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고, 성경은 이것을 쓴뿌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려면 ‘화평’하고 ‘거룩’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자란 나의 쓴뿌리가 많은 사람들을 더럽게 해요. 더럽힙니다. 더럽다는 것은 거룩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말로 귀와 생각과 마음을 더렵히죠. 표정과 몸짓으로 눈과 마음을 더렵힙니다.
서로의 모습을 통해 그것을 바라보는 자녀들의 마음도 더렵혀집니다.
야곱의 가정에 쓴뿌리를 제거하시는 하나님
야곱의 가정에 쓴뿌리를 제거하시는 하나님
이제 하나님이 야곱의 가정을 화평하고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쓴뿌리를 제거하십니다.
그 과정이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형들이 정말 나쁜 것 같지만 그 행동에는 여러 사람들의 쓴뿌리가 깊게 엉켜있음을 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만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모두 고쳐야 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먼저 배우자와 형제들을 편애했던 야곱은 엄청난 고난과 생명의 위협 그리고 자녀를 잃는 아픔과 고통을 겪고 환도뼈가 부러지는 일로 인하여 장애를 갖게 됩니다.
형제들 중에 대표적으로 유다는 아들을 셋 낳았는데 하나님이 그의 첫째와 둘째 아들을 죽게 하십니다. 이제 아들이 하나 남아서 며느리에게 보낼 수 없었던 유다는 며느리를 속이게 됩니다. 그러다 유다가 며느리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야곱을 비롯한 자녀들은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겉보기에는 잘못이 없는 것 같았지만 철없고 형제들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했던 요셉 또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엄청난 고난을 당합니다.
17살 쯤에 형들에게 속아서 애굽의 노예가 되었던 요셉이 30살에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10년이 넘도록 노예와 죄수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10년쯤 되는 시간 동안에 야곱과 그의 아들들의 쓴뿌리를 다 제거하신 하나님이 이제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하십니다.
흉년을 통해서 만나게 하시는데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있었고, 형들은 그 애굽에 식량을 얻으러 가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당연히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형제들이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만약 쓴뿌리가 그대로 남은 형제들이었다면, 요셉은 분노로 가득차서 형제들을 보자마자 가장 잔인하게 형제들에게 복수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그럴수 있는 권한과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이것이 쓴뿌리가 제거 된 가정의 모습입니다.
분노와 시기 질투는 사라지고,
형제가 성공하여 부모와 형제들을 봉양합니다.
화평과 거룩함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가정으로 흘러오는 장면을 보세요.
오늘 말씀을 함께 나누는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변화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쓴뿌리는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있고, 또 뽑아버린 것 같은데 어느 새 또 자라고
또 자라는 것이 쓴뿌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기도함으로 예수님께 구해야 합니다.
“나와 우리 가정의 쓴뿌리를 제거해주세요.”
그렇게 했을 때에 하나님의 큰 구원과 은혜를 맛보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