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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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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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나온 모든 친구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위로를 받아본 적이 있는가? 위로는 보통 언제 받는가? 내가 지치거나 힘들 때, 좌절되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 좋아하는 이성 친구에게 고백했는데 차여서 속상할 때, 잘하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을 때 등등 우리는 좋은 일이 아니라 힘들 때 위로를 많이 받는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보통 누구에게 위로를 받는가? 좋아하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친형제 자매에게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면 반대로 여러분은 나를 힘들게 했거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해줄 수 있는가? 정말하기 싫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왜? 굳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또 “지가 알아서 하겠지, 내가 뭔 상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 나를 싫어했고, 미워한 사람을 챙겨주고 싶지 않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 자신을 싫어했고 미워한 사람을 위로의 말을 건네준 사람이 있다. 누구인가? 그렇다. 요셉이다.
우리가 요셉의 삶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생각해보자. 요셉은 야곱의 몇 째 아들이었는가? 11번째 아들이었고, 요셉의 친엄마는 야곱이 제일 사랑했던 라헬의 첫째 아들이었다. 그러니 가장 사랑했던 아내의 아들이면 얼마나 끔찍하게 예뻐하고 사랑했겠는가? 그래서 요셉에게 어떤 특별 대우를 해주는가? 다른 형제들에게는 주지 않았던 채색옷을 입혔다. 쉬운 성경에는 채색옷을 이렇게 표현했다. “소매가 긴 좋은 옷”이라고 한다. 소매가 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런 옷을 귀족들이 입었을까 평민들이 입었을까? 그렇다. 왕이나 귀족들의 옷의 특징을 보면 소매를 손을 완전히 덮을만큼 소매가 넓고 길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귀족과 평민 중에 누구만 일을 할까? 그렇다. 소매가 긴 옷이라는 것은 요셉은 일을 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추측할 수 있다. 그렇게 항상 꿀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당연히 형들은 누구에게 질투의 화살을 쏘았겠는가? 아버지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요셉이 너무나도 꼴보기 싫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셉이 어느 날 꿈을 꾼다. 두 가지 꿈을 꾸는데, 어떤 꿈을 꾸는가? 첫 번째로 곡식 단에 대한 꿈을 말한다. 자기랑 형들이 같이 들에 나가서 곡식단을 묶고 있는데 자기 곡식단이 일어나니까 형들이 묶었던 곡식단이 자기 곡식단 곁으로 몰려들더니 자기 곡식단 앞에서 절을 했다고 한다. 형들은 “네가 우리의 왕이라도 될 줄 알았냐? 네가 정말로 우리를 다스리게 될 줄 아냐?”라고 말한다.
이미 미움을 사고 있었던 요셉은 한번은 실수로 말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또 자기가 꾼 꿈을 신나게 형들에게 두 번째 꿈을 말해버린다. 어떤 꿈이었는가?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자신에게 절했다고 말한다. 해와 별이라고 하는 것은 아빠와 엄마를 상징하는 것임을 야곱이 적당히를 모르는 요셉을 혼내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형들에게만 선을 넘은게 아니라 부모님께도 신나게 눈치없이 행동하는 요셉을 보고 형들은 더욱 질투하게 되었다. 그래서 형들은 이렇게나 꼴보기 싫은 요셉을 어떻게 처리하기로 하는가?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빠뜨려서 죽일까 말까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맏형인 르우벤이 요셉이 안쓰러웠는지 다치게 하거나 죽이지는 말고 그냥 던져 넣어버리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요셉이 오자 형들은 요셉의 채색옷을 벗기고 바로 구덩이로 던져 넣었다. 그때 옆에 이스마엘 사람들이 낙타에 향료와 유약과 몰약을 싣고 이집트로 여행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것을 보고 유다는 형제들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우리가 굳이 요셉을 죽이고 그 사실 숨긴다고 무슨 좋은 일이 있겠나? 차라리 요셉을 저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 버리면 동생을 죽이는 죄도 짓지 않게 되니까 어떄? 그래도 혈육이고 친동생이잖아”라고 말하니까 다른 형들도 모두 유다 말에 동의했다. 그렇게 요셉을 웅덩이에서 꺼내서 은 이십 세겔에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았다. 그래서 이집트로 가게 되었고,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게 된다.
은 20세겔은 60돈 즉 228g이다. 요즘 시세로 이게 얼마나 되는가 보았는데, 16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동생을 완전 헐값에 팔아 넘긴 것이다. 만약 내가 요셉이라면 이 가격을 들었을 때 진짜 충격이었을 것 같다. 귀한 집 아들로 예쁨 받으며 살았는데 고작 16만원? 피가 거꾸로 솟았을 것 같다. 그러나 성경기자는 요셉이 어떤 감정이었는지 나타나있지 않다. 그렇게 보디발 집에 가서 최선을 다해 집안일을 도맡아 보디발의 총애를 받으며 가정총무로 살았는데, 왠 아줌마가 요셉을 유혹하는데 싫다고 거절하니까 요셉의 옷을 붙잡고 안놔줬는지 힘이 얼마나 쎘으면 그냥 홀라당 벗어버리고 도망쳤다. 정직하게 유혹도 뿌리쳤지만,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고소하여 감옥에 들어가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거기서 열심히 간수들의 총애를 받으며 일을 도와주었고,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었다. 진짜 꿈을 해몽한대로 이루어지자 술맡은 관원장이 석방하고 복직하면서 요셉은 자기 억울하게 감옥에 왔으니 꼭 파라오에게 잘 말해서 풀어달라고 간청했지만, 나가자마자 까먹어버렸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파라오가 꿈을 꾸는데 그때 술맡은 관원장이 감옥시절 요셉이 떠올라 그를 불러 왕의 꿈을 해석하도록 한다. 요셉이 아주 명쾌하게 꿈을 해석하자 그 결과 요셉은 어떻게 되는가? 당대 전세계의 최고의 제국인 이집트에서 파라오 다음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총리가 된다.
그때 당시 어떤 꿈이었냐면, 파라오가 자신이 나일 강가에 서 있는데 때깔 좋은 아름다운 소 7마리를 보았고 그들이 강에서 나와 풀을 뜯어 먹었다고 한다. 근데 갑자기 또 강에서 다른 소 7마리가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소들은 삐쩍 마르고 못생겼다고 한다. 자기가 살면서 본 소 중에서 제일 못생겼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 못생긴 소들이 아까 아름다운 소 7마리를 잡아먹었는데 여전히 못생겼다고 한다. 그러고 잠을 깼고, 다음 꿈으로는 어떤 한 가지에 잘 자라고 토실토실한 이삭 7개가 나 있는 것을 봤는데, 그런 다음에 다른 일곱 이삭이 또 솟아 나왔는데, 그 이삭들은 야위고 말랐다고 한다. 그 이삭들은 동쪽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 때문에 바싹 말라 있었다고 한다. 근데 야윈 이삭들이 토실토실한 이삭들을 잡아먹었다. 뭔가 개꿈을 꾼 것 같지만, 이 꿈들에는 뭔가 공통점들이 있다. 그런데 요셉은 꿈을 명쾌하게 해석한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파라오에게 보여주신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소 7마리와 좋은 이삭 7개는 7년을 뜻한다. 마르고 못생긴 7마리 소와 바짝 마른 일곱 이삭도 7년을 말하는데 7년동안 가뭄이 전세계적으로 뒤덮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요셉이 해몽한대로 실제로 7년 동안 풍년이 왔고, 열심히 곡식을 창고에 모아서 저장해두었다. 그리고 후에 7년 동안 가뭄이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전세계적으로 곡식을 받으러 이집트에 모이게 되는데 그때 누구도 이집트에 오게 되는가? 형들과 동생 베냐민이 곡식을 얻으러 이집트에 내려온 것이다.
뭔가 나 같으면 “이야 못된 형들 나를 노예로 팔아 넘기더니 잘 됐다. 이젠 내 노예로 써먹야지”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요셉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형들은 처음에는 몰랐지만, 요셉이 이집트에 총리가 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감히 상상도 안 된다. 그래서 이젠 진짜 죽을 목숨이겠구나 생각하여 그렇게 요셉을 미워했던 형들이 “우리에게 복수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두려워떨었던 내용이 우리가 처음에 읽은 본문이 시작된다. 형들은 아빠 야곱이 죽기 전에 이집트의 총리가 요셉이라는 것을 듣고 유언의 말을 전달하며 용서해달라고 간청하게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는 몹쓸 짓을 했다. 너희는 요셉에게 죄를 지었다. 요셉에게 말해서 형들을 용서해 달라고 말하여라’라고 말을 전달하며 “요셉이여 제발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는 아우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입니다.”라고 싹싹 비는 것이다. 형들이 얼마나 싹싹 빌었는지, 요셉이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지만 요셉은 이 말을 듣고 울었다. 그러면서 형들은 요셉 앞에 찾아가 요셉에게 절을 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우님의 종입니다.”
그렇게 요셉은 이렇게 대답한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내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면서 성경 전체를 요약한 중요한 이야기를 형들에게 전한다. 어떻게 요셉이 원수 같은 형들을 위로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위대한 고백을 한다. 함께 읽어보기 원한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그러면서 요셉은 어떤 제안까지 형들에게 말하는가?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그들을 살려주는 것도 모자라 형들과 형들의 자녀들을 자기가 책임지고 키우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요셉은 형들에게 용서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용서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내가 어떻게 하겠냐”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원수같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우리는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자신도 용서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과 동시에 복수도 누구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인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용서도 복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작품의 제목을 보면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영화와 책이 있다. 이것은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인 생각에서 나타난 이야기다. 하나님은 복수에 대해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신다.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
우리는 왜 복수할 권한이 없는가? 생각해보라. 우리가 만약 한국에서 법을 어긴 사람은 누구에게 넘겨야 하는 것인가? 경찰에 신고하여 검사와 판사가 그 잘못한 사람을 재판하고 판단하여 그들이 공권력으로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릴 것이기에 잘못한 사람은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사법부를 못믿겠다고 자신이 직접 그 사람을 폭행하거나 자기가 생각할 때 이만큼은 벌받아야 한다고 직접 처리하면 그것은 잘못한 사람과 별개로 내 방법대로 처리한 내가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를 먹은 것이 왜 문제인가? 모든 재판과 판단은 온 세상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데, 인간이 스스로 자신이 판단하고 하나님께서 재판하고 심판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 자신의 생각대로 결정하겠다는 악한 생각이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구분하는 선을 지우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요셉은 그 선을 넘기를 거부한다. 요셉은 그저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이고, 자신의 용서와 보복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에 형들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전도사님이 핵심이라고 이야기했던 구절이 무엇었는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고백한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 주변의 적대국이나 원수들이 자신을 망하게 하려고 힘들게 하는 것 같지만, 그 모든 순간도 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결국 요셉은 억까와 같은 상황이 계속해서 일어났지만, 그를 이집트로 하나님께서는 이끌어가셔서 그를 총리로 세워 훗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장 강력한 제국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를 점점 키우시고, 작은 족장의 가족에서 국가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인큐베이터로 이집트를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굶어가는 야곱의 가족을 구한 것이 곧 이스라엘을 구한 것이고 결국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가는 통로 쓰임받은 것이다. 성경 역사 중에 악을 선으로 바꾼 클라이막스가 무엇인가? 바로 십자가 사건이다. 예수님을 팔아넘겼던 가룟 유다가 계획하여 예수님이 체포 당하시고,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인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쳐서 결국에 사탄의 계획대로 십자가에 죽임 당하면 이제 자신의 승리가 왔을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아이언맨도 죽으면 더 이상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닌 부활하시어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되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사탄이 최고의 계략으로 십자가에서 이긴 게임 같고, 하나님은 최악의 수를 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최악의 수가 아니라 신의 한수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예수를 따르는 우리에게도 어마어마한 위로가 되는 말씀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받는 최고의 복이 무엇인지 아는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든지 우리를 망하게 하려고 어떤 최고의 수를 쓰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악한 생각과 악한 계획을 세워 덫에 빠지게 하려고 완벽한 계획을 세워도 그것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특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나 높으시고 깊으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없기에 나의 모든 삶을 주님께 다 맡기면 내 영혼은 평안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2000년 동안 교회는 어떤 강력한 국가가 없애려고 핍박하고 죽이고 무슨 악한 짓을 하더라도 교회는 더욱 강해졌고, 지금까지도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강력하다고 말하던 국가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우리는 예수 안에 있을 때 망하지 않는다! 예수님께 믿음으로 모든 것을 맡길 때, 그러면서 잠잠히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심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든 꾀를 쓰고 망하게 하려고 하더라도 우리를 끝까지 보호하시고 선으로 이루어가시는 주님을 경험하는 꿈사땅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축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