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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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선행으로 하나님을 기억나게 합니다.
주제: 선행으로 하나님을 기억나게 합니다.
명제: 작은 선행으로 큰 뜻을 기억하게 하는 하나님.
명제: 작은 선행으로 큰 뜻을 기억하게 하는 하나님.
사도신경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본문
본문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인사
인사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십니다. 아멘!
대림절을 맞이하여 초를 밝혔습니다. 대림절은 성탄절 전 4주간을 의미하는 교회력의 중요한 절기 입니다. 교회력은 단순한 교회의 연례 행사를 위한 시간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를 매년 새롭게 기념하고 경험하는 중요한 영적 기준입니다.
믿는 우리는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가야합니다.
대림절은 교회력의 시작이자 주님과의 동행을 새롭게 시작하는 거룩한 소망의 절기입니다.
대림절의 기다림은 다차원적입니다. 주님의 오심은 미래적, 과거적, 현재적 차원을 지니며, 장차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이미 오셨던 주님을 기다리며, 지금도 오고 계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이미 오신 것을 기억하고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다는 것을 대림절을 맞이하며 느끼게 합니다.
기다림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소망스러운 시간이자 주님을 간절히 구하는 시간입니다. 사실 기다림은 기독교의 본질적인 핵심이며, 기독교인이라면 끝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많은 말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말씀들입니다. 우리가 섣부르게 행동하고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신앙인이 되길 바랍니다.
대림절에는 예수님이 빛으로 오신 분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첫 주일부터 네 번에 걸쳐 초를 나누어 켭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어둠에도 빛으로 찾아와 밝혀주시는 예수님을 소망하는 대림절 기간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게 되는 장면 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신비로움입니다. 나사렛이란 동네는 정말 시골 동네입니다. 지금 우리 수지 정도도 아니고 더 지방의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인구 200~400명 정도의 작은 촌락으로 구성된 곳이 바로 나사렛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큰 도시, 멋진 왕궁, 왕족으로 이 땅에 오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낮은 곳, 작은 변두리 마을에 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나사렛이란 촌 동네로 오셨을까요? 부자 동네 왕의 아들로 왕으로, 그냥 왕으로 신으로 현현 하셨으면 안되나? 왜 인간으로 오셨을까요? 인간의 모습이 아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모습이지만 참 인간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의 죄악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처녀인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참 인간이면서 동시에 참 신이신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신 희생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상태였지만 아직 처녀인 마리아가 아기를 가질 것이라는 천사의 말이 무서웠지만 천사의 위로 덕분에 두려움은 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잉태할 예수라는 아기가 어떤 아기일지 마리아는 실감했을까요? 31절부터 33절까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구약에 메시야로 오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설명을 해주는데도 마리아는 34절을 보면 천사에게 물어보는 말이 나는 남자를 모르는 처녀인데 어떻게 임신을 할 수 있습니까? 하고 자신에게 벌어질 일만 걱정하는 마리아입니다.
제가 이번주에 안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차를 주차해놨는데 이웃 주민이 차를 빼다가 제 차를 긁은 거에요.
긁혔죠. 제 마음도 긁혔죠. 아침에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모르는 번호가 전화가 와서 아, 차 빼달라고 하나보다 하고 ‘차 뺄 께요’ 전화 건너 편에서 아니요 제가 차를 빼다가 차를 긁은거 같아서 확인해 보셔야 될꺼같아서 연락드려요. 라는거에요. 그래서 아침부터 기분이 매우 안좋았죠.
내려가서 확인해보니까 차 뒤에 범퍼가 긁혔더라고요. 일단 아침이고 출근 중이신거 같으니까 확인하고 연락드린다고 하고 보내 드렸죠. 전 긁힌 곳을 바라보고 있었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심하게 망가진것도 아니고 하니 그냥 넘어가야겠다하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사실 그 마음 속에는 선의는 돌아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우리가 좋은일을 남에게 배풀면 그 일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말이 있잖아요?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고,
그리고 정말 진심으로 생각난 마음이 그 돌아왔으면 하는 좋은 일이 저의 아이에게 돌아왔으면 좋겠다하고 넘긴거에요. 우리 가정에게 좋은일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하고 우리 가정의 이익을 바라고 배푼 알량한 마음이죠.
그런데 2일 후였나? 저녁에 강아지 산책하고 있었는데, 그 이웃 주민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제주도에 출장을 다녀왔는데 너무 감사해서 귤을 드리고싶다고요’ 그래서 귤을 받고 알고 보니 저희 윗집에 옥금이 친구네 집이더라고요. 그렇게 감사히 귤을 받았는데 역시 제주도 귤이여서 하나도 안시도 달달하니 맛있었습니다. 그렇죠? 진미샘? 태형샘?
제가 두 선생님께 여쭤보는 건 귤을 드셔보셨기 때문입니다. 주중에 크리스마스 준비때문에 모였는데 귤을 드렸었거든요. 진미샘네 이든이 이삭이가 아주 맛잇게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여러분 저는 알량하게 제 아이만, 저희 가정의 이익만 바라고 배풀었던 선한 일이 선생님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흘러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의 이익을 바라고 배풀었던 선한 일을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에게 흘러가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마리아도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이 두렵고 떨리는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입혀 주셨다’말씀의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우리가 각자 하나님 말씀에 완벽하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본문의 마리아와 저처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하는 마음과 순종하려고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으려는 노력을 오늘 본문 30절의 말씀처럼 ‘무서워하지 말라’ 하고 우리의 마음을 알아 주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믿고 순종할 뿐입니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도우실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우리의 이익을 바라고 베푸는 선행 속에도 그 선한 일들이 공동체에 흘러가게 하심이 감사합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고 예수님의 행동을 닮아가는 우리가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헌금기도
헌금기도
결단찬양
결단찬양
주기도문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