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억하는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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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
3 그의 행하시는 일이 존귀하고 엄위하며 그의 의가 영원히 서 있도다
4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
5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찬송가 330장 어둠 밤 쉬 되리니
1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2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3 이스라엘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하들의 자손은 유다 여러 성읍에서 각각 자기 성읍 자기 기업에 거주하였느니라 예루살렘에 거주한 그 지방의 지도자들은 이러하니
4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이라 유다 자손 중에는 베레스 자손 아다야이니 그는 웃시야의 아들이요 스가랴의 손자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스바댜의 현손이요 마할랄렐의 오대 손이며
5 또 마아세야니 그는 바룩의 아들이요 골호세의 손자요 하사야의 증손이요 아다야의 현손이요 요야립의 오대 손이요 스가랴의 육대 실로 사람의 칠대 손이라
6 예루살렘에 거주한 베레스 자손은 모두 사백육십팔 명이니 다 용사였느니라
7 베냐민 자손은 살루이니 그는 므술람의 아들이요 요엣의 손자요 브다야의 증손이요 골라야의 현손이요 마아세야의 오대 손이요 이디엘의 육대 손이요 여사야의 칠대 손이며
8 그 다음은 갑배와 살래 등이니 모두 구백이십팔 명이라
9 시그리의 아들 요엘이 그들의 감독이 되었고 핫스누아의 아들 유다는 버금이 되어 성읍을 다스렸느니라
10 제사장 중에는 요야립의 아들 여다야와 야긴이며
11 또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스라야이니 그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므술람의 손자요 사독의 증손이요 므라욧의 현손이요 아히둡의 오대 손이며
12 또 전에서 일하는 그들의 형제니 모두 팔백이십이 명이요 또 아다야이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블라야의 손자요 암시의 증손이요 스가랴의 현손이요 바스훌의 오대 손이요 말기야의 육대 손이며
13 또 그 형제의 족장된 자이니 모두 이백사십이 명이요 또 아맛새이니 그는 아사렐의 아들이요 아흐새의 손자요 므실레못의 증손이요 임멜의 현손이며
14 또 그들의 형제의 큰 용사들이니 모두 백이십팔 명이라 하그돌림의 아들 삽디엘이 그들의 감독이 되었느니라
15 레위 사람 중에는 스마야이니 그는 핫숩의 아들이요 아스리감의 손자요 하사뱌의 증손이요 분니의 현손이며
16 또 레위 사람의 족장 삽브대와 요사밧이니 그들은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았고
17 또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 미가의 아들 맛다냐이니 그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또 여두둔의 증손 갈랄의 손자 삼무아의 아들 압다니
18 거룩한 성에 레위 사람은 모두 이백팔십사 명이었느니라
19 성 문지기는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이니 모두 백칠십이 명이며
20 그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유다 모든 성읍에 흩어져 각각 자기 기업에 살았고
21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하니 시하와 기스바가 그들의 책임자가 되었느니라
22 노래하는 자들인 아삽 자손 중 미가의 현손 맛다냐의 증손 하사뱌의 손자 바니의 아들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이 되어 하나님의 전 일을 맡아 다스렸으니
23 이는 왕의 명령대로 노래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할 일을 정해 주었기 때문이며
24 유다의 아들 세라의 자손 곧 므세사벨의 아들 브다히야는 왕의 수하에서 백성의 일을 다스렸느니라
25 마을과 들로 말하면 유다 자손의 일부는 기럇 아르바와 그 주변 동네들과 디본과 그 주변 동네들과 여갑스엘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며
26 또 예수아와 몰라다와 벧벨렛과
27 하살수알과 브엘세바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28 또 시글락과 므고나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29 또 에느림몬과 소라와 야르뭇에 거주하며
30 또 사노아와 아둘람과 그 마을들과 라기스와 그 들판과 아세가와 그 주변 동네들에 살았으니 그들은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31 또 베냐민 자손은 게바에서부터 믹마스와 아야와 벧엘과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32 아나돗과 놉과 아나냐와
33 하솔과 라마와 깃다임과
34 하딧과 스보임과 느발랏과
35 로드와 오노와 장인들의 골짜기에 거주하였으며
36 유다에 있던 레위 사람의 일부는 베냐민과 합하였느니라
들어가는 말
오늘은 예루살렘의 성벽 공사가 완성 되고 난 이후에 이스라엘이 어떻게 그 직분과 지파와 가문을 따라 나누어서 살았는지를 기록한 본문 입니다. 마치 출애굽 이후 40년 광야 생활 이후에 가나안 정복 전쟁 이후 12지파가 제비뽑아 땅을 본배한 것과 같이 오늘 본문에서도 백성들이 제비를 뽑아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었지만 그 곳은 오랜 시간 황패하였던 곳이라 여전히 사람들이 살기에는 불편한 면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신도시가 들어서면 그 도시가 자리 잡는데 5-6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상가가 생기고, 필요한 학원과 생필품을 구입하는 곳에서부터 문화 생활 공간등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 자녀들의 학교, 여러가지 상호적인 조건들이 안정화되는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이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획득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포함할 것입니다.
먼저 예루살렘은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여 거주 합니다. 행정수도 이전의 문제를 보면 국회와 대통령실이 내려가지 않고 행정부처만 내려갑니다. 행안부도 안 내려가고 대법원과 법무부도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반쪽자리 수도 이전이 되는 것을 보듯이 사실 지도자가 내려가야 백성들이 진정성을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본문 1절을 보면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 하였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을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하고, 이말은 백성들은 능력이나 소유나 출신이나 연령이나 배경을 따지지 않고 무작위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주요한 의사 결정 수단으로 제비뽑기가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구약에서는 지파별 땅 분배에서도 그렇고, 신약에서는 12사도의 위치를 정하는 일에도 제비를 뽑아 맛디야를 뽑는 것을 봅니다. 사도행전 1:26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이는 기도후에 하나님이 결정해 주신 대로 순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 일을 보면 우리가 섬기는 교회의 일은 생각보다 우리의 능력이나 재주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를 기준으로 교회에서 섬겨야 한다고 설명 하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성경적이지 않다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대로 열심을 내서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성도들은 자신의 마음을 드려야 하는 것은 분명 성경적입니다. 그렇지만 교회와 하나님 나라는 효율을 따라 움직이는 세상과는 다릅니다. 오직 그 기준은 양심과 그 마음의 중심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행위의 결과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드려지는 행동의 동기를 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에서 어떤 일도 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일을 할수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이제 25년이 마무리 되고 26년이 시작됩니다. 교회에서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고 섬김이 필요합니다. 이 새벽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려서 섬길 수 있는곳이 어는 곳인지 꼭 기도 하시고 응답 받으셔서 담임 목사님에게 말씀들 하시기 바랍니다. ^^
중심되는 말
이후 3절 이하에서 36절까지의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과 그 인근에 거주한 사람들과 그 역할과 이름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성경에서 명단을 기록한 부분은 매우 드라이 합니다. 역대기, 에스라, 느혜미야 모두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기억 하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이렇게 신자들을 기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의 이름을 위하여 이웃을 성실하게 섬기고 자신의 재물과 시간을 아끼지 않은 누구~~~누구~~, 다툼이 있는곳에 가서 자신의 희생 하여 화평을 이룬 누구~~누구, 나의 이름을 위하여 아내를 ,남편을, 자녀의 부당한 대우에도 인내하고 온유하게 대한 누구~누구~ , 나의 이름을 위하여 헐벗은 이웃에게 옷을 벗어 주고 자신의 양식을 허물어 도움을 베푼 누구~누구!, 나의 이름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 조차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은 누구~~누구!, 나의 이름을 위하여 교회의 쓰레기를 줍는 누구~누구!, 나의 이름을 위하여 찬양하는 누구~누구! 나의 이름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누구,누구! 끝도 없이 쓸수 있지만 그 명단의 핵심은 이것 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영광)을 위하여 마음 중심으로 행한 믿음의 용사들”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을 너무 강조 하다 보니 때로는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주시는 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통해 구원을 베푸시지 않으시고 당신의 예정하심과 주권에 따라 섭리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십니다. 그게 복음 입니다만 이것은 단지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우리는 이제 복음으로 살아갈 때 주시는 상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매일 매일 후히 되어 흔들어 넘치는 상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기복 신앙이 아닙니다. 기복 신앙은 우리가 복 받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흥정을 하고 (그것이 아무리 영적인 행동인 기도라고 해도) 그 댓가를 바라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신자가 존재론적으로 그분이 창조주이시고 구속주이시고 온 우주의 통치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결코 세상에서 허투루 살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날마다 관계를 맺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존재로서 받는 사귐이 있게되면 아버지가 늘 우리에게 상주시는 이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것을 바라고 그분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욕구를 체우기 위해서 우상에게 요구하는 것들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마무리 하는 말
저와 여러분이 이런 것을 바라고 오늘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실재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그 분의 자녀와 상속자라는 관계속에 사랑으로 사귐을 가지게 됩니다. 복음은 관계의 회복 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와 사망의 권세로 갈라졌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영원한 생명의 관계로 회복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호흡하는 모든 순간과 시간들이 하나님의 상주심으로 충만해 진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로마서 8:17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고백한 편지가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