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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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 사랑

제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미국에 있는 교회에 다니게 되었는데요, 한가지 한국 교회랑 큰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배드리고 나서 점심 식사를 안한다는 것이었어요. 대신 미국 교회에서는 Fellowship이라고 해서, 친교의 시간으로 다과를 나누는 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원해서, 과자나 빵, 커피, 초콜릿 같은 다과를 가져오면 함께 나눠먹으면서 그간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있는거죠. 한가지 기억나는 것은 6.25 전쟁 참전용사 할아버지가 있어서 같이 갔던 한인 학생들과 함께 경례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근데 한국 교회에서는 오전 예배가 끝나면 꼭 밥을 먹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그 어느 한국교회든지 간에 오전 예배 끝나고 밥 먹는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코로나 시기 때 잠깐 중단되었지만, 판데믹이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교회가 다시 바로 점심 애찬을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한국인들에게는 밥 먹는게 제일 중요하죠. 외국에서는 “오늘 하루 어땠어?”라는 식으로 안부를 묻는데, 한국에서는 “밥은 먹었어?” “식사는 하셨나요?”라는 식으로 안부를 묻습니다. 제가 외할머니 댁에 잠깐 신세를 질 때도, 아침 안먹고 나간다는 소리하면 할머니 표정이 어디 다 죽어가는 사람 보는 표정처럼 심각해지시더라구요.
이처럼 한국 사람에게 식사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영양을 섭취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큰 연관이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바로 이처럼 식사라고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이에요. 특히 오늘 함께 읽은 본문말슴에서도 등장하는데,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성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찬의 중요성

그런데 오늘날의 아주 많은 한국교회가, 성찬을 거의 안합니다. 많이 해봐야 1년에 두세번 정도 하는 교회가 대다수에요. 그런데 사실 이것은 아주아주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날의 한국 교회의 예배를 보면 거의 설교가 예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교회의 예배라고 하는 것은 설교가 중심이 아니었어요.
사도행진 20장에 보시면 유두고라고 하는 청년이 바울이 강론할 때에 졸다가 창문밖으로 떨어져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게 되는 말슴이 등장하는데요,
Acts 20:7 NKRV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거기에 보시면, 그 주간의 첫날, 일요일이죠? 그 날에 다른걸 하려고 모인게 아니라 “떡을 떼려고 모였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이게 된 목적이, 바울의 강론을 들으려고 간 것이 아니라 떡을 떼는게 주된 목적이라는 거예요. 다만 바울이 그 다음날에 떠나려고 하니까 가기 전까지 말씀을 더 전해주려고 밤늦게까지 강론을 해준겁니다.
또한 처음 사도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Acts 2:46 NKRV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날마다 모이기를 힘쓰고, 날마다 집집마다 떡을 떼면서 함께 음식을 먹었다는 겁니다. 이걸 정확하게 오늘날에 저희가 알고 있는 성찬의 형식으로 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떡을 떼어 서로 먹고 마시는 성찬의 원형의 모습을 교회가 아주아주 자주 행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씀들입니다.
초대교회의 문헌에서는 좀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저희가 여러번 본 아저씨죠? 순교자 유스티누스가 전한 글에는 주일마다 말씀을 읽고, 가르치고 권고하는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함께 기도하는데, 기도가 끝나면 빵과 포도주와 물을 가져와서 기도와 감사를 드리고, 각 사람에게 분배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교회에 안나온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나누어주기까지 했다고 할 정도로, 매주일마다 성찬을 아주 중요하게 행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 한국교회는 안할까?

근데 한국교회에서는 왜 이렇게 성찬을 잘 안할까요? 여기에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지만 처음 한국교회에 개신교 복음이 들어올 때부터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19세기에 한국에 복음이 들어올때, 미국 감리교회에서는 이미 성찬의 중요성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로 들어왔습니다.
원래 웨슬리는 성찬을 되게 중요시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화면을 보시면, 아예 성찬을 자주해야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설교를 따로 출판했을 정도로 성찬을 중요시 했습니다. 얼마나 자주해야하냐면, 할 수 있는 한 자주해야하고, 최소한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매 주일마다 했던 것처럼 매주 받아야한다고 말했죠.
또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1783년에 독립하고 나서 존 웨슬리가 미국에 있는 감리회 신도들에게 편지를 쓴 것이 있는데요, 거기에도 보시면 미국에 있는 감리회 신도들을 위해 쓴 예식서, 오른쪽에 보이는 사진이 바로 그 예식서인데요, 그것을 동봉해서 보내니, 매 주일마다 장로 목사들이 주님의 만찬을 집례할 것을 권고합니다, 라고 써서 보냅니다.
근데 문제는, 미국에 있는 감리교도들이 이 말을 안들었어요. 여기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일단 미국에는 성찬을 집례할 수 있는 장로 목사, 미국 감리교회는 장로가 평신도가 아니로 목사들입니다. 그 장로 목사의 수가 현저히 적었어요. 그래서 주일마다 목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서 여러 지역에 흩어진 교회를 순방하고 다녀야했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현실적으로 매주 성찬을 한 교회에서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아마 초창기 미국의 감리교회,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도, 분기별로 한번씩 정도만 성찬을 간신히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두번째는 미국 감리교회가 웨슬리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었어요. 미국 감리교회의 초대 감독인 프란시스 애즈버리의 친구이면서 감리교 목사였던 Jesse Lee라고 하는 사람이 1810년에 미국 감리교의 역사에 대해서 책을 쓴 바가 있는데요, 거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웨슬리가 준 예식서, 혹은 기도문이 있어서 그것을 보고 읽는 기도를 했었는데, 즉흥적인 기도에 익숙해진 설교자들이 안쓰기 시작하니까 웨슬리의 예식서를 치워버렸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건 아주 나중에 1932년 쯤이나 되어서야 차츰 복원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미국이 청교도 국가라고 불리는 만큼 감리교나 다른 여타 교단들에도 청교도주의의 운동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간략하게만 말씀드리면, ‘가톨릭’스러운 것을 배제하고, 회개기도, 성경, 설교, 찬양, 성령을 강조하는 흐름이 미국에 가득했다는 것이죠.
이것이 미국으로부터 한국으로 온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던 배경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까 한국도 똑같이 미국의 청교도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어요. 지난번에 저희가 통성기도의 역사를 간략하게 봤던 것처럼, 기도를 막 열심히하고 말씀을 열심히 듣는게 예배의 중심이 된 것입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명령

이처럼 저희가 성찬을 교회에서 자주 안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그런데 여러분, 성찬은 가급적 매일, 매일이 힘들면 매 주일마다, 그것도 힘들면 매달마다라도 자주 행하는게 맞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말씀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성찬은 예수님께서 “해라!”라고 명령하신 것이에요.
본문말씀 24-2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 Corinthians 11:24–25 NKRV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해도 된다, 가 아닙니다. 이것을 해라,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나를 기억해라, 라고 하시는 명령입니다. 성찬은 다른 것 때문에 하는게 아닙니다. 먼저는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해라”라고 말씀하신 것 중에 이것만큼 쉬운 걸 본적이 없어요. 떡을 먹고 잔을 마시며 예수님을 기억하는게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사랑하라는 말씀이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보다 얼마나 쉬워요? 근데 오늘날의 교회들은 제일 쉬운 명령인데 제일 안지키고 있습니다.
특히 26절 말씀을 보시면,
1 Corinthians 11:26 NKRV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먹고 마실 때마다, 예수님게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성찬이 또한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사도행전 1장 8절,
Acts 1:8 NKRV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아서 땅 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말씀 또한 지키는 것이라는 겁니다. 전도를 매주하는 교회는 많아요, 근데 성찬을 매주하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기도를 매일하고 말씀을 매일 읽고, 심지어 새벽기도에 나오셔서 설교말씀을 매일 듣는 그리스도인은 많은데, 예수님께서 직접 ‘하라’라고 말씀하신 성찬을 매일같이 하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성찬은 가톨릭스러운 것이 아니라, 어떤 주술적이고 마술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예수님께서 ‘하라’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행하여 예수님을 기념하는 것이 교회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는 여러분과 제가, 예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신 성찬을 자주 지킬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찬은 1년에 한두번 하는 특별한 행사 같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명령하셨기에 할 수 있는 만큼 해야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읽는 만큼이나 이 성찬을 함께 지켜나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성찬은 말씀이신 예수님을 먹는 것

또한 성찬은 성경 봉독과 설교만큼이나 예배의 중요한 핵심인데요, 그 이유가 성경 봉독이 말씀을 말로 읽는 것이고, 설교가 말씀을 듣는 것이면, 성찬은 말씀을 눈으로 직접 보고 먹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한번 본문말씀 24-25절을 보시면요,
1 Corinthians 11:24–25 NKRV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떡은 예수님의 몸이고, 잔은 예수님의 피로 세운 언약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성찬을 하게 되면 그건 단순히 빵과 와인을 먹고 마시는게 아니라,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먹고 마시는 행위가 된다는 것이에요.
다만 이것은 가톨릭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이, 진짜로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화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본문말슴에서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라고 말씀하시지, 떡과 포도주가 진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는 뉘앙스로 말씀하신게 아닙니다.
히브리서 말씀을 보시면,
Hebrews 9:28 NKRV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예수님께서는 단번에 자기를 제물로 드리셨다,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매번 다른 제물들을 바치는 것과 같은 반복적인 희생제사가 아니라 단번의 제사로 믿는 사람의 죄를 담당하신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성찬이 진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는 거면, 그건 예수님을 두번 세번 희생제사로 드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잖아요? 그런 것이 아니라 단번에 우리 죄를 위하여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것이 바로 성찬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기념만 하는것, 머리로 ‘예수님이 그러셨지, 우리를 구원하셨지’하고 기억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1 Corinthians 10:16 NKRV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저희가 성찬을 할때에 마시는 잔과 떼는 떡은 예수님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웨슬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은총의 수단’이라고 설명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만약에 이것이 그냥 기념물일 뿐이라면, 그냥 상징일 뿐이라면 저희가 아무렇게나 해도 될 테지만,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본문말씀 이후에 나오는 구절에,
1 Corinthians 11:27 NKRV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합당하지 않게 떡이나 잔을 먹고 마시면 죄를 짓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진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라고 하는 그 구원사역에 동참하는 것으로서 이 성찬을 행해야한다고 강조하는 것이죠.
요한복음 1: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John 1:14 NKRV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결국에 성찬은 육신이 되어서 이 땅가운데 찾아오신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하고 예수님의 그 구원사역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다른말로하면, 성경봉독과 설교가 말하고 듣는 말씀이라면, 성찬은 보고 먹고 마시는 말씀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 성찬을 자주해야할까요? 아니면 자주 해야할까요? 네 자주 하는 것이 은혜의 수단을 간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제가 바로 그렇게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말씀, 예수님의 구원사역에 떡과 포도주로 함께 참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성찬은 공동체가 한몸이 되는 것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말씀 앞에 등장하는 말씀을 보시면요, 고린도교회에 어떤 분쟁이 있었다, 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1 Corinthians 1:12 NKRV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특히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등으로 나뉘어서 서로 분쟁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요,
오늘 본문말슴은 사실 바로 이 분열된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분열된 교회가 성찬을 먹을 수 없다, 라고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1 Corinthians 11:19–20 NKSV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서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환히 드러나려면, 여러분 가운데 파당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분열되어 있으니, 여러분이 한 자리에 모여서 먹어도, 그것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새번역으로 11장 19-20절 말씀을 보시면,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환히 드러나려면, 파당도 어느정도 있을 수는 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문제는 고린도교회는 그냥 파당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분열되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분열된 교회에서 한자리에 모여서 먹어도, 그건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죠.
사실 고린도교회는 굉장히 부유한 사람들의 집에서 모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일인데요,
Acts 18:7–8 NKRV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디도 유스도라고 하는 사람의 집, 회당 옆에서 사는 사람이고, 또한 회당장 그리스보라고 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디도 유스도라고 하는 이름이 전형적인 로마 시민의 이름입니다. 로마 시민권자가 가지고 있었던 당시의 막대한 권한을 생각해보면 꽤나 잘 사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리고 그리스보라는 사람도 회당장을 맡을 만큼 회당 예배를 책임지는 지위와 재산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모든 고린도 사람들이 다 부유하지는 못했겠죠. 가난한 고린도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교회 안에서도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으로 다양한 계층이 존재했을 겁니다. 그래서 21-22절을 보시면,
1 Corinthians 11:21–22 NKRV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가져다 먹으니 어떤 사람은 배고프고 어떤 사람은 이미 하도 먹고 마셔서 술에 취해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말은 무슨 말씀이냐면, 부유한 사람들, 삶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먼저 와서 먹을 수가 있는데, 하루종일 일해야 먹고 살수 있는 사람들은 나중에 오니까 먹을 것이 떨어져서 배가고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22절에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느냐라고 혼내고 있는 것입니다.
1 Corinthians 11:33 NKRV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그래서 바울은 일하고 돌아오는 노동자 계층의 가난한 사람들도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서로 충분히 기다리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가운데 있는 말씀이 바로 본문말씀인 성찬의 말씀입니다. 성찬은 그냥 나만 은혜받자고 먹는 것이 아니라, 나랑 친한 사람들끼리만 먹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다함께 떡과 포도주를 나누면서 함께 예수님의 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7절 말슴을 함께 읽겠습니다.
1 Corinthians 10:17 NKRV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교회에서 점심 애찬할 때는 꼭 같이 먹는 사람들끼리 자주 먹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 애찬으로 점심 먹을 때는 그렇게 앉아서 먹어도 됩니다. 그런데 성찬은 다 같이 한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찬을 하는 모든 이들은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아까 보여드린 초대교회의 문헌에서는 나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직접 가져다 주기까지 할 정도로 함께 하는 것에 애썼습니다.
그래서 성찬을 지금보다 더 자주해야할까요? 아니면 더더더 자주해야할까요? 저희가 다 함께 그리스도의 한 몸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자주 해야합니다.
그래서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제가 그리스도의 한 몸된 교회로서, 한 떡이고 한 포도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함께 성찬으로 참여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성찬은 예수님께서 제정하시고 명하신 것으로 할 수 있는 만큼 해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 중에 제일 쉬운 것입니다. 저희가 기도하고 말씀읽고 찬양하는 만큼이나 성찬 또한 예수님께서 명하신 것으로서 자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합니다.
둘째, 성찬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성경봉독과 설교 말씀만 말씀이 아니라 성찬 역시 보고 먹고 마시는 말씀으로서, 말씀 중심인 예배에서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저 상징인 것이 아니라 혹은 진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로서,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고자 더욱 힘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찬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서 성도들이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누구 한명 빠져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예배에 나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직접 가져다줄 정도로 함께 하는 것에 애쓴 것처럼, 모두가 함께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이 성찬을 하기에 애쓰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신 말씀에 순종해서,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한 몸된 교회로서 함께 성찬을 행하기에 힘쓰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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