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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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가 384장 435장
민수기 마지막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가 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요즘 제가 많이 듣는 인사가 있습니다.
“어우, 임신 너무 축하해! 그런데 딸이야? 아들이야?”
제가 “딸이에요”라고 대답하면, 이상하게도 아들을 둔 친구들이 더 부러워합니다.
제 부모님 세대만 해도 “그래도 집안에는 아들이 있어야지” 하시면서,
아들을 낳을 때까지 애쓰셨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딸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도 느껴집니다.
같은 ‘딸’이라는 말인데, 시대에 따라 그 의미와 무게가 많이 달라진 것이죠.
오늘 본문은 민수기 마지막 장입니다.
보통 한 권의 마지막이라면 축복의 말씀이나, 전체를 정리하는 장엄한 결론으로 끝날 것 같은데, 민수기는 조금 다르게 끝납니다.
앞에서 우리가 보았던 슬로브핫의 딸들 이야기에 이어서, 시집 간 딸들의 유산 문제,
즉 딸들이 받은 땅이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례로 민수기가 마무리됩니다.
말하자면, 민수기의 마지막 장은 “딸들의 유산 이야기”로 끝나는 셈입니다.
성경이 한 권의 끝부분을 이렇게까지 자세한 법 이야기로 채워 놓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결코 사소하게 여기지 않으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시대에 ‘딸’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과, 민수기 시대에 ‘딸’이 갖고 있던 의미는 분명히 다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할 때, 왜 하나님께서 민수기의 마지막을 딸들의 이야기로 마무리하셨는지, 또 오늘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들려주시는지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성경 속에서 ‘딸’이 어떤 자리였는지, 그리고 그 딸들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언약의 기업을 지키시는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1. 구약에서의 딸 – 연약하지만, 기업을 지키는 주체
1. 구약에서의 딸 – 연약하지만, 기업을 지키는 주체
먼저 성경에서 말하는 “딸”이 어떤 자리인지부터 잠깐 짚고 가면 좋겠습니다.
히브리어로 딸은 바트입니다. 말 그대로 “아버지 집에 속한 여자아이”라는 뜻이에요.
고대 이스라엘에서 딸은
아버지 집에 있다가
결혼하면 다른 남자의 집으로 옮겨가는 사람
이렇게 이해됐습니다. 그래서 늘 “언젠가 나갈 사람”처럼 여겨지기 쉬웠죠.
그래서 성경을 읽다 보면 딸이 굉장히 취약한 자리에 서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현실 속에서 딸들을 위해 법이라는 울타리를 세워 주십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민수기 27장과 36장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 앞에 나와서 말합니다.
“우리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아들이 없다고 해서, 어찌 아버지의 이름과 기업이 사라져야 합니까? 우리에게 기업을 주십시오.”
이건 단지 “우리도 돈 주세요”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기업과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해달라”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죠? “슬로브핫의 딸들의 말이 옳으니라.”
그리고 그 한 집안의 사건을 계기로 아들이 없으면 딸에게, 딸도 없으면 형제에게…
이스라엘 전체의 상속 질서를 다시 정리해 주십니다.
민수기 36장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을 이은 딸은 자기 지파 안에서 결혼해라. 그래서 땅이 지파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해라.”고 하시죠.
여기서 딸은 더 이상 그냥 보호받아야 하는 약자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기업을 지키는 주체로 서게 됩니다.
연약하지만, 연약한 자를 통해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십니다.
2. 시와 예언서 속의 딸 – 기쁨과 공동체의 이름
2. 시와 예언서 속의 딸 – 기쁨과 공동체의 이름
또 시편과 예언서를 보면, “딸”이 굉장히 아름답게도 쓰입니다.
시편 144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
딸을 집안을 세우는 모퉁이 돌,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 영광으로 보는 그림입니다.
예언서에서는 “시온의 딸”, “딸 예루살렘” 같은 표현이 자주 나오죠.
이건 한 도시, 한 민족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딸 시온아 크게 기뻐하라”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한다”
여기서 “딸”은 연약하지만 사랑받는 존재, 때로는 죄로 상하지만 끝까지 포기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슬로브핫의 딸들”도 그냥 다섯 명의 여성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모든 ‘시온의 딸들’의 얼굴이 겹쳐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신약에서의 딸 – 믿음으로 부르신 딸, 함께 유업을 받는 딸
3. 신약에서의 딸 – 믿음으로 부르신 딸, 함께 유업을 받는 딸
신약으로 가면, 예수님이 “딸”이라는 단어를 아주 따뜻하게 쓰십니다.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율법상 부정해서 사람들 곁에 설 수 없던 여인을 예수님은 “부정한 여자야”가 아니라 “딸아”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 집에 속한 사람, 언약 안에 있는 사람으로 불러 주시는 겁니다.
또 누가복음에 안식일에 허리가 구부러져 있던 여인을 고치시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이 여인은 단지 병든 여인이 아니라, 언약의 조상 아브라함과 연결된 ‘언약의 딸’입니다.
성령 강림 이후에는 이 흐름이 더 또렷해집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여기에서 자녀들이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너희 아들들과 딸들이 예언할 것이요…”라고 나와있어요.
성령이 임하시면,
아들들만이 아니라 딸들도 예언하고,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 사역의 주체가 됩니다.
이제 신약에서 “딸”은
더 이상 누군가의 집에서 다른 집으로 옮겨 가는 부속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속한 자녀,
성령 안에서 함께 유업을 받는 상속자입니다.
4. 민수기 36장과 오늘 우리 – 주변에서 중심으로
4. 민수기 36장과 오늘 우리 – 주변에서 중심으로
이제 이 흐름을 가지고 민수기 36장을 다시 보면,
왜 하나님이 “딸들 이야기”로 마무리하셨는지 보입니다.
구약의 가부장제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은 슬로브핫의 딸들을 통해 “딸도 기업을 받는다”는 문을 여십니다.
예언서에서는 “시온의 딸”이라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부르시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연약한 여인들을 “딸아”라고 부르시며,
성령 안에서 아들들과 딸들이 함께 예언하는 공동체를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딸들을 통해서도,
약한 자들의 목소리를 통해서도
나의 언약과 기업을 지켜 가는 하나님이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그냥 도움받은 피해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붙잡고 일어난 신앙의 주체들입니다.
오늘 교회 안에도 여전히 “딸들”이 있습니다.
여성들, 약자들, 주변부에 서 있다고 느끼는 이들.
하나님은 그 딸들을 통해, 그리고 우리 각자의 연약한 자리, 그 “딸과 같은 자리”를 통해 지금도 당신의 기업과 하나님 나라를 지켜 가십니다.
5. 기업을 지키시는 하나님 – “지파 안에서 결혼하라”
5. 기업을 지키시는 하나님 – “지파 안에서 결혼하라”
이제 오늘 본문 안으로 다시 들어가 보겠습니다.
1) 정당한 염려: “우리 지파의 땅이 줄어듭니다”
1) 정당한 염려: “우리 지파의 땅이 줄어듭니다”
3–4절을 보면, 므낫세 수령들의 걱정하는 부분이 등장합니다.
그들이 만일 이스라엘 자손의 다른 지파들의 남자들의 아내가 되면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의 기업에서 떨어져 나가고 그들이 속할 그 지파의 기업에 첨가되리니 그러면 우리가 제비 뽑은 기업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의 희년을 당하여 그 기업이 그가 속한 지파에 첨가될 것이라 그런즉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 지파의 기업에서 아주 삭감되리이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기업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다른 지파 남자와 결혼하면 그 땅이 남편 지파로 넘어간다.
희년이 되면 팔린 땅은 돌아오지만,
혼인으로 지파가 바뀐 경우에는 그 지파에 영구 귀속된다.
그래서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우리의 기업이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여기에는 단순한 욕심뿐 아니라,
하나님이 지파별로 나눠 주신 기업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땅은 재산을 넘어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눈에 보이게 확인시켜 주는 표지였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대답: “말이 옳다… 그러나 길을 내겠다”
2) 하나님의 대답: “말이 옳다… 그러나 길을 내겠다”
모세가 하나님께 다시 묻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요셉 자손 지파의 말이 옳도다
라고 하세요.
27장에서는 슬로브핫의 딸들의 말이 옳다고 하셨고,
36장에서는 지파 지도자들의 말도 옳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쪽만 편들지 않으십니다.
억울한 개인의 목소리도,
공동체 전체를 지키려는 염려도 동시에 귀하게 들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 방법을 주시는데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대한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슬로브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시집가려니와 오직 그 조상 지파의 종족에게로만 시집갈지니
딸들의 결혼은 여전히 인격적 선택으로 존중하시되,
“그 조상 지파 안에서”라는 제한을 두심으로 지파의 기업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십니다(7–9절).
그 결과,
슬로브핫 집안의 기업도,
므낫세 지파 전체의 기업도,
이스라엘 모든 “기업을 이은 딸들”의 자리도 함께 지켜집니다(8절).
개인의 권리와 공동체의 질서가
하나님 안에서 함께 보존되는 장면입니다.
우리 삶에도 비슷한 상황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너무 억울하다” 하고,
다른 쪽은 “그러면 공동체가 무너진다”고 말할 때,
우리는 한쪽만 붙들고 다른 쪽을 쉽게 잘라 버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다. 그러니 내가 여는 길을 보라”고 하십니다.
교회 안에서도,
개인의 상처를 공동체 이름으로 덮어버리지도 말고,
공동체의 건강을 개인 자유라는 이름으로 무시하지도 말고,
그 긴장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길을 함께 찾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6. 순종으로 끝나는 민수기 – 광야 세대와의 대조
6. 순종으로 끝나는 민수기 – 광야 세대와의 대조
36장의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슬로브핫의 딸 말라와 디르사와 호글라와 밀가와 노아가 다 그들의 숙부의 아들들의 아내가 되니라
그들이 요셉의 아들 므낫세 자손의 종족 사람의 아내가 되었으므로 그들의 종족 지파에 그들의 기업이 남아 있었더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끝납니다.
민수기를 잠깐 돌아보면 불평과 반역, 불순종의 이야기로 가득한 이야기가 민수기였어요.
광야에서의 끊임없는 원망,
가데스 바네아의 정탐 사건,
고라의 반역,
심지어 모세의 실수까지…
그런데 이 책이 마지막에는
몇 명의 젊은 딸들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광야에서 쓰러졌던 세대와 달리,
이 새 세대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로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규례니라
결국 주인공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마지막에 한번 더 강조해줍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끄시고,
하나님이 기업을 주시고,
하나님이 법을 보완해 가시고,
하나님이 끝까지 그들의 기업을 지켜주시는 분임을 들어냅니다.
7. 민수기 전체를 묶는 결론 – “우리의 기업은 누구의 손에 있는가?”
7. 민수기 전체를 묶는 결론 – “우리의 기업은 누구의 손에 있는가?”
그래서 민수기 전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언약 백성을 훈련시키셔서,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준비를 시키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초반은 진군 준비,
중반은 광야의 반역과 징계,
후반은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규례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규례가
바로 여성 상속과 기업을 지키는 법으로 끝납니다.
이스라엘 안에서는
아들이 없으면 딸은 기업에서 밀려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빈틈을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 딸들이 기업을 받는 길을 여시고,
지파의 염려까지 품으시며 규례를 완성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기업에서 밀려날 위기에 있던 딸들을
다시 중심으로 불러 세우셨듯이,
교회는 흘러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주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또 동시에 공동체의 기업도 소중히 지켜야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땅이 언약의 표지였듯이,
오늘 우리에게 맡기신 복음과 교회,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내 기분대로, 내 입장대로 휘둘러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지키고, 함께 책임지는 공동체의 기업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로 끝나는 민수기처럼,
우리 교회도 약한 자의 자리가 회복되고,
모든 이가 하나님이 주신 기업 안에 서 있는 공동체로
세워져 가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 하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추운 날씨 가운데서도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수기의 마지막이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로 끝난 것처럼,
저희의 삶이 내 고집대로가 아니라
“주님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며 살았다”라는 고백으로
마무리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일어서는 사람들을 통해 세워지게 하시고,
연약해 보이는 자들을 통해서도
교회를 지키시고,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일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은혜의 주님, 이번 주에 당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당회를 통해서 서로를 향한 존중과 경청하는 마음을 주시고,
무엇보다 “주님 보시기에 옳은가”를 먼저 물으며 나아가오니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따라 지혜롭게 결정하는 당회가 되게 하옵소서.
추운 겨울 동안 성도들의 건강도 지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연로하신 어르신들, 몸이 약한 성도들,
또 치료 중에 있는 지체들을 주님 기억해 주시고
감기와 여러 질병에서 보호해 주시옵소서.
특별히 새벽기도회에 오는 발걸음을 지켜 주시고,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주님 안에서 따뜻함을 누리는 시간되게 하옵소서.
하루를 살아가며
오늘 들은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시고,
우리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주님이 맡기신 “기업”을 소중히 여기며
순종으로 살아가는 귀한 하루로 이끌어 주옵소서.
늘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