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US 은혜의 복음 주예수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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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도입: 불안이 현실처럼 느껴질 때 (5분)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사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평안’보다는 ‘불안’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익숙한 것 같습니다.
최근 통계를 찾아보니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지난 10년 사이, 20대 청년들의 항우울제와 항불안제 처방 건수가 무려 4배 가까이 폭증했다고 합니다. 우울증 환자 비율도 전 연령대 중 20대가 가장 높습니다. 이제는 신경안정제를 먹는 것이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닙니다. 당장 우리 주변만 둘러봐도 불안감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친구들, 불면증에 시달리는 지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얼마 전 회사 워크숍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가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한 청년이 저와 보폭을 맞추며 따라왔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함께 뛰다가 잠시 멈춰 섰을 때, 그 친구가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꺼내놓더군요.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최근에 인생에서 아주 큰 실패를 경험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실패가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때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에 내 미래는 이제 끝났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의 실체입니다. 우리는 실패할 때, 넘어질 때, “아, 이번엔 넘어졌구나. 다시 일어나야지”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나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어. 나는 완전히 망했어.”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 앞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두려움 안에 머무는 것은 ‘선택’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 계속해서 그 두려움에 떨며 주저앉아 있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쉽지않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사고를 마비시켜 버리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시야가 좁아집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보여주는 그 암담한 상황이 마치 ‘변할 수 없는 현실’처럼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나는 끝났어. 이게 내 현실이야.”라고 말이죠. 두려움은 아직 내가 깨닫지 못한 현실의 한 부분, 내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리고 있는 장막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하시며,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단지 지금 내 생각의 한계, 내 감정의 한계 안에서 그것이 느껴지지 않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로마서 5장은 바로 이 두려움과 불안의 장막을 걷어내는 말씀입니다. 내 느낌, 내 한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확고한 진리를 통해 불안을 끝내고 참된 확신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J.E.S.U.S.',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5가지 절대적인 진리를 붙잡고, 두려움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현실을 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II. 본론: J.E.S.U.S. - 확신의 근거 (20분)

1. J: Justification (칭의의 선언) - 당신의 신분은 확정되었습니다 (용납의 선언)

첫 번째 확신, JJustification, 바로 ‘칭의’입니다. 본문 1절을 다 같이 한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칭의란 무엇입니까? 이는 곧 하나님의 ‘용납의 선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신분이 죄인에서 의인으로, 외부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완전히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용납의 선언을 삭개오의 이야기에서 가장 잘 볼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백성에게 손가락질 받던 세리였습니다. 그는 마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돌감람나무처럼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오늘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가 자신의 재산을 팔거나,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이후에 예수님께서 그를 용납하신 것이 아닙니다. 삭개오가 **‘계획을 세웠을 뿐’**이었고, 그가 진정으로 회개하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전에, 예수님은 이미 그를 용납하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선언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누가복음 19:9)
칭의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나 노력, 심지어 우리의 좋은 계획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단회적인 선언 때문에 우리는 이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을 완전히 바꾸는 명령, 곧 죄와 사망의 돌감람나무에서 내려와 참감람나무, 생명의 나무에 접붙이는 부르심이자 선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늘 **‘계약직 사원’**처럼 평가받으며 살아갑니다. “성과를 내야 인정받는다”, “실수하면 끝이다”라는 불안 속에 삽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이 칭의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성경 구절
용납과 신분의 확정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로마서 8장 15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갈라디아서 4장 7절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더 이상 여러분의 실수나 연약함이 여러분을 정죄하도록 허락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능력’을 보지만, 하나님은 ‘신분’을 보십니다. 당신의 신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확정되었습니다. 이 법적인 평화를 누리십시오.

2. E: Eager Hope (영광에 대한 간절한 기대) - 미래 불안을 이기는 소망, 그 본질은 영광 안에서의 만족

두 번째 확신, EEager Hope, ‘간절한 소망’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나아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우리가 1번, 칭의(Justification)를 통해 얻은 새로운 신분은 단지 지옥 면허증을 받은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칭의는 우리를 행위의 족쇄에서 해방시켜, 이제 우리의 모든 열망과 목표가 오직 한 곳,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도록 돌려놓는 혁명적 선언입니다. 만약 당신의 소망의 내용이 그리스도를 믿기 전과 똑같다면, 당신의 신앙은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채 그저 도덕적인 자기 계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재점검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희망은 '자기 성취'라는 우상에 묶여 있습니다. 우리는 소망한 것을 빠르게 이루고, 목표를 세우며, 우리의 열심으로 그것을 하나씩 준비하고 성취해 나가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소망은 결국 우리를 무한한 불안과 소진(Burnout)으로 몰고 갑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룬 모든 성취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한낱 '배설물'과 같으며, 영원히 지속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소망은 다릅니다. 이는 우리의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는 우리의 노력과 성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기다림'으로써 확보되는 영광의 만족입니다. 이 소망의 본질은 곧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과 영원한 만족'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잘 되겠지"하는 막연한 낙관론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원한 기쁨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이 땅의 환난 가운데서도 미리 누리는 기쁨의 선취(Pre-possession)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생활이나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을 보십시오. 이 기간은 개개인의 열심으로 하루빨리 단축시키려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힘과 능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도록 강요받은 '기다림의 학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기다림을 통해 그들의 연약한 소망을 정련시키고, 참된 만족의 대상이 자신들의 눈앞에 보이는 가나안 땅이나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오직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자신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의 간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중학생이었던 14살 여름, 선교지에서 목회자가 되겠다는 소망을 품었고, 그 꿈이 성취되기까지 20년이라는 긴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왜 그렇게 오래 걸렸냐?"고 물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20년은 저의 열심의 증명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 저의 만족의 근원을 빚어 가신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긴 과정 속에서 저는 소망이 퇴색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난과 연단을 통해 인내라는 근육을 얻었고, 그 인내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실 것에 대한 확고한 성품과 소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3-4).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불안한 미래에 눈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흔들리지 않는 이 간절한 소망은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영원히 기뻐하고 만족하는 것입니다. 이 최고의 기쁨을 붙들고, 오늘의 기다림을 승리하십시오. 이 소망이야말로 불안한 시대를 이기는 유일하고, 가장 기쁜 힘입니다.

3. S: Substitution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희생) - 값을 치르지 마십시오

세 번째 확신, SSubstitution, **‘대속’**입니다. 6절을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 무한한 빚이었습니다. 이 빚은 인간의 힘으로는 갚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형벌, 곧 사망이라는 파산 선고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십자가의 사역은, 단순한 희생을 넘어선 **'대위변제(代位辨濟, Subrogation)'**의 확정입니다. 대위변제란 빚을 진 사람(우리)을 대신하여 제삼자(그리스도)가 빚을 완전히 갚아주는 법적 행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위변제는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빚을 대신 갚는 자에게는 다음 두 가지가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첫째, 갚을 수 있는 능력(Ability)이 있어야 합니다.죄의 빚은 무한했기에, 유한한 인간은 그 빚을 대신 갚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만이 그 무한한 죄의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신적인 능력과 자원을 가지셨습니다.
둘째, 갚을 수 있는 자격(Qualification)이 있어야 합니다.죄의 빚을 갚으려면, 빚을 갚는 자는 자신에게 빚이 없어야 합니다. 죄 없는 순결한 자만이 타인의 빚을 갚는 대속자의 자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직 죄를 알지도 못하신 예수 그리스도(고린도후서 5:21)만이 이 자격을 완벽하게 충족시키셨습니다.
그분은 능력과 자격을 갖추신 채 우리의 빚을 십자가에서 완불(Paid in Full)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 빚이 청산되었다)"고 선언하셨을 때, 이 법적인 거래는 완벽하게 완료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소식을 들은 여러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한순간에 커다란 빚 하나가 사라졌다는 소식은 세상의 논리로는 **'말도 안 되는 사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어떤 친구는 갑자기 자신의 엄청난 빚이 갚아졌다는 연락을 받고, "이게 말이 되냐? 사기 아니냐?"며 믿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무언가 노력하거나, 열심히 기도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가장 절망적인 순간,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죄의 빚이 청산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 대위변제를 받은 자는 비로소 참된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이 결코 갚을 수 없었던 빚이,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자의 희생으로 사라졌음을 깨닫는 순간, 죄책감과 불안의 쇠사슬이 끊어집니다. 이 은혜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빚을 갚기 위해", "벌 받지 않기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분을 위해" 살게 됩니다. 더 이상 죄책감에 스스로 값을 치르려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대속을 믿고, 그 은혜 안에서 자유하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십시오.

4. U: Unconditional Love (무조건적인 사랑의 확증) - 참된 자존감의 근거

네 번째 확신, UUnconditional Love,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세상의 사랑은 **‘조건적’**입니다. “네가 성공하면”, “네가 예쁘면”, “네가 능력이 있으면” 사랑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아요’ 개수와 팔로워 수로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씁니다. 자존감이 늘 외부에 달려 있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추하고, 연약하고,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가치는 스펙이나 인기, 심지어 여러분의 영적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여러분의 닻을 내리십시오. 그것만이 진정한 안정감입니다.

5. S: Special Life 특별한 삶

SSpecial Life, **‘특별한 삶’**입니다. 7-8절은 의인을 위해 죽는 것도 어려운데, 하나님은 죄인을 위해 아들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 최고의 희생(Supreme Sacrifice)을 통해 우리에게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삶이 주어집니다.
우리가 세 번째 확신(Substitution)을 통해 빚이 청산되었다면, 이 다섯 번째 확신은 그 **"다시 살아가는 삶"**이 이전과 완전히 다른 **'특별한 삶(Special Life)'**이 됨을 선언합니다.
일본에 **킨츠키(Kintsugi, 금 이음)**라는 예술 기법이 있습니다. 깨진 도자기를 버리는 대신, 그 깨진 조각들을 이어 붙이고, 그 금이 간 자리에 금가루를 섞은 옻칠을 해서 수리하는 방식입니다. 이 킨츠키 도자기는 완벽했던 원래의 도자기보다 훨씬 더 독특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깨어진 죄의 흔적을 덮어 가리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우리의 모든 파산과 실패의 틈새를 은혜의 금가루로 채우셨습니다. 우리의 약함과 실패가 금으로 빛나는 흠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과거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받는다는 선언을 넘어, 우리의 깨짐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새로운 아름다움과 가치를 창출하는 특별한 삶의 재료가 된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은 이 사랑을 논리적으로 확증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가장 귀한 아들을 주신 분이, 여러분의 깨어진 삶을 가장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빚어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은혜로 금이 입혀진 삶, 곧 특별한 삶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III. 결론: 불안을 잠재우는 예수의 이름 (5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이 소망을 붙들고 기도하고, 소망을 붙들고 공동체 안에 머물며, 소망을 붙들고 날마다 살아내십시오.
최근에 만난 한 교수님의 이야기가 이 소망의 능력을 증언합니다. 그분은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했던 부모님 밑에서 20살 때까지 맞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그분의 미소에는 어딘가 모를 그림자가 있었는데, 십대 시절에는 '20살만 되면 부모를 죽이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속에 복음이 들어왔고, 그 복음 가운데 새로운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내가 좀 더 크면 북한 새터민들을 위해 살겠다'는 소망이었습니다. 그 소망이 그분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이전에는 아버지의 학대나 친구들의 괴롭힘이 전부였지만, 그 이후로는 그 모든 고통 속에서도 '나는 새터민들을 위해 살 사람이다'라는 소망을 붙들고 굳건히 살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 5장이 말하는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우리를 죽음과 절망으로 몰아넣는 환경의 힘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복음이 주는 새로운 정체성과 사명, 영광에 대한 간절한 기대가 우리를 살아내게 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불안은 마치 현실처럼 우리를 압도하려 합니다. “너는 실패했어, 너는 끝났어”라고 속삭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깨닫지 못한 현실의 한 조각일 뿐, 하나님의 큰 그림인 ‘진짜 현실’이 아닙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5가지 확신, **J.E.S.U.S.**를 주셨습니다.
J (Justification): 당신의 신분은 실패하지 않는 자녀로 확정되었습니다.
E (Eager Hope): 당신의 미래는 영광스러운 소망으로 결론 나 있습니다.
S (Substitution): 당신의 모든 실패와 죄의 빚은 예수님이 갚으셨습니다.
U (Unconditional Love): 조건 없는 사랑이 당신의 진짜 가치입니다.
S (Supreme Sacrifice): 가장 귀한 것을 주신 하나님이 당신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새벽에 만난 그 청년처럼, 혹시 실패의 두려움 속에 떨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 선택하십시오. 불안 속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눈을 들어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것인가.
복음은 우리의 신분을 바꿨고, 미래를 보장했으며, 가치를 확정 지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의 압박과 불안에 무릎 꿇지 마십시오. 당신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사랑받는 아들딸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모든 불안과 압박감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내려놓고, 우리를 위해 완성하신 그 복음의 능력을 신뢰하며 담대하게 나아갑시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실패가 두려워 밤잠을 설치고,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우리 눈을 가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두려움은 현실이 아니라, 아직 깨닫지 못한 과정임을 알게 하옵소서. J.E.S.U.S.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이 5가지 확신을 우리 마음에 새깁니다. 우리의 신분과 소망, 대속과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희생을 기억하며, 세상이 주는 불안을 이기고 담대히 일어설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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