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의 질투와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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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 출 34:14
출 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0. 서론
우리는 지속적으로 기도로 하나님을 찾는 것에 대해서 살폈습니다. 저번주는 엘리야의 기도를 알아보면서, 하나님을 찾는 기도 가운데 있어야 할 요소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그의 기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질투로 드리는 기도,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드리는 간절한 기도, 올바른 관계 가운데 드려진느 기도, 의로운 삶의 기도,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살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찾는 기도와 하나님의 질투에 대해서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의 회복이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가 회복되기를 질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질투를 가지고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1. 여호와 질투의 하나님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여호와 샬롬, 여호와 로이, 여호와 삼마 등입니다.
이레는 무슨 뜻일까요? 이레는 공급하시는 하나님,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보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라아’라는 동사의 미래형 형태가 이레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이레가 처음 등장하는 창 22:14의 내용을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보실 것이다.’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무슨 뜻인가요?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승리이십니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여호와 닛시를 직역하면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깃발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명사 ‘네스’에 1인칭 소유격 접미사가 붙어서 닛시가 됐습니다. 당시 깃발은 군대의 정체성, 전투의 기준점, 승리를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깃발이 서 있다는 것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고, 싸울힘이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닛시은 꺾이지 않는 깃발이신 여호와, 나의 승리자이심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라파는 무슨 뜻일까요? 치유의 하나님, 샬롬은 평강의 하나님, 로이는 목자되시는 하나님, 삼마는 그곳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1) 질투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한편 삼마나 로이처럼 여러분에게 낫설게 느껴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여호와 질투입니다. 성경은 명확히 하나님의 이름이 질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출 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율법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십계명을 봐도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있습니다.
출 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위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인격, 성품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어 문화에서 이름은 단순히 호칭이 아닌 인격, 정체성, 성품, 역할, 사명, 본질 등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질투는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입니다.
어떤 분들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질투는 열등감에서 나온 시기하는 마음으로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투는 인간의 질투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질투는 어떤 의미일까요?
2) 하나님의 질투의 의미
성경일 말하는 하나님의 질투는 하나님에게 속한 소중한 것들을 보호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열심을 말합니다. 그래서 개역개정은 질투를 의미하는 단어인 히브리어 칸나를 ‘열심’으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2. 하나님의 질투로 인한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
성경은 하나님께서 질투를 가지시고 회복을 말씀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
먼저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질투를 가지고 그들을 회복시키십니다. 이사야 62:1-5은 이 부분을 잘 보여줍니다.
(1)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질투
사 62:1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하나님은 잠잠하지 않고 쉬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시다겠다고 말하고 있나요? 시온을 위하여,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않고 잠잠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리들 어떻게 되도록 그렇게 하시나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도록 쉬지 않고 잠잠하지 않으며 일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구약 성경에서 시온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는 단어들입니다. 따라서 시온의 의가 빛같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있게 되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회복되는데, 이 일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 일이 명확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있도록, 열방 가운데 하나님 백성들의 소명이 드러나도록 쉬지 않으실 것이니다.
(2) 하나님의 질투로 이루어지는 일들
2-5절은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변화들을 보여줍니다. 어떤 변화가 있는지 한 번 볼까요?
사 62:2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사 62: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사 62:4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사 62: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그들은 버림 받은 자라 불렸습니다. 황무지라 불리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새이름으로 불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불릴 이름은 헵시바와 쁄라입니다. 헵시바는 ‘나는 너를 기뻐한다’라는 뜻입니다. 쁄라는 ‘결혼한 자, 신랑이 있는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 하나님의 신부의 정체성이 회복된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정체성의 회복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넘치는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영광을 열방이 보게 될 것입니다.
(3)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
시편 62편 1-5절은 1차적으로 바벨론 포로 이후 회복될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입니다. 또 이 말씀은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구속 사역에 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더 나아가 신약의 교회를 향한 회복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종말론적으로 성취될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이유는 구약의 여러 예언의 말씀들은 맥락상 1차적 성취와 2차적 성취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는 것,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신약의 교회가 이어 받는 다는 것,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의 교회 모두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은 공동체라는 것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교회인 나를 향한 말씀이 되기도 하고, 중고등부 공동체를 위한 말씀이기도 하며, 포도나무 교회, 한국의 교회, 열방의 모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포도나무 교회 중고등부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질투하십니다. 여러분의 망가진 삶 가운데, 여러분의 부르짖음에, 여러분의 절망에, 반복적인 죄에 넘어지는 것에, 팔짱을 끼고 어떻게 하나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시란 말입니다. 불꽃 같은 눈동자로 여러분을 바라보시고 권능의 팔을 드셔서 여러분의 정체성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여러분의 삶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한국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 된다.
2)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
한편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나타나는 말씀도 있습니다. 에스겔 36장은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는 내용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특히 그들로 인하여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회복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겔 36:20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하나님을 멀리 멀리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했습니다. 포로로 잡혀갔고 열국 중에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조롱을 당했고, 그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 또한 조롱당했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지 못해 그들이 멸망했다고 조롱했습니다. 이 조롱은 하나님이 다른 신들보다 약하다는 의미도 담겨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땅에 떨어진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질투하십니다.
겔 36: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겔 36: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겔 36: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아끼시고, 그 이름을 다시 거룩하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열방이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하시는 일이 자신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 일입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겔 36: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그들을 다시 모으십니다. 그리고 정결하게 하십니다.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셔서 순종하게 하십니다. 그 결과 그들은 다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회복합니다.
겔 36: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 약속 또한 1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 귀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부분적이었고 불완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메시아를 통한 구속 사역이 성취되며 성령이 오셨습니다. 따라서 이 약속은 교회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리고 예수님 다시 오시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때 최종적으로 완성됩니다.
사랑하는 포도나무 교회 중고등부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두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열심히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이름을 위하여 여러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향한 질투를 기억하며 주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렇다면 이 질투하시는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하며 나아가야 할까요?
3.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는 기도
1)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기도하는 자를 세우시는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며 기도로 주님을 찾아나아가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기도할 자를 세우십니다.
사 62: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사 62: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2) 이사야의 기도
그리고 이사야의 저자인 이사야는 이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기도하였습니다.
(1) 이사야 63장
사 63:15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의 열성이라는 단어가 원어로 질투라는 단어입니다.
이 구절을 찬찬히 살피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의 질투와 하나님의 능력이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사야 62:1-5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며 철저하게 버림 받은 자들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켜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2) 이사야 64장
이사야 64장에서도 이사야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① 이사야의 회개 기도
사 64: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사 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사 64: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 구절에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한 것임을 깨달아 그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더 나아가 모든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7절).
그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께 범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했습니다(5-6절).
그 결과 하나님은 하나님의 임재를 그들에게 거두셨습니다(7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얼굴을 그들에게 숨기셨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임재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두시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심판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멸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그 현실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나갑니다.
②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는 기도
사 64: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사 64:9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이사야는 자신과 이스라엘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되, 거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섭니다. 특히 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구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며 하나님 앞에 섭니다. 8절과 9절에서 우리는 그것을 잘 볼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질투를 가진 자의 기도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할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에 헌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은 하나님의 질투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 중 하나는 하나님의 질투를 사람들 속에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는 정말 우리가 사모해야 할 은혜입니다.
저번주에 살펴던 엘리야 속에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던 것이 좋은 예입니다. 더불어 몇 가지 성경적인 예를 살피게습니다.
(1) 예수님안에 있었던 하나님의 질투
당연히 예수님의 안에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요한복음 2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요 2: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요 2: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요 2: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요 2: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요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예수님 안에 있던 참된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예수님께서 그렇게 행동하신 원동력이었습니다. 추가적으로 우리는 여기서도 하나님의 질투를 열심이라는 단어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7절은 시편 69:9을 인용하고 있는데, 시편에서 “열성”이라는 단어는 질투라는 단어의 파생어입니다.
(2) 바울 안에 있었던 하나님의 질투
바울 안에도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특히 그의 안에는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하나님의 열심히 열심을 낸다”는 말은 원어로 하나님의 질투로 질투한다는 입니다. 즉 바울 속에도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자기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헌신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에 헌신할 뿐 아니라 그 질투를 가지고 그 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2) 하나님의 질투와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의 조화
(1) 모세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모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선 그의 속에는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이 그의 마음에 있던 하나님의 질투와 하나님의 사랑을 잘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만들어 놓고, 그것이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에 대해 진노하시면서 그들을 멸하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분노를 돌이키십니다.
시내산에서 내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고 있던 행태를 보고 분노하여, 받아온 10계명 판들을 던져버립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했던 금송아지를 갈아 물에 타서 마시게 한 뒤 자기와 함께 할 자들은 자기에게로 나오라고 말합니다.
출 32: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레위 자손들이 그에게 나아오자 모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출 32: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출 32: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모세의 명령을 들은 레위 자손들은 그대로 행하여 그 날 삼 천명 가량이 죽임을 당합니다. 그들은 가까운 가족부터 처단했습니다. 그 행동은 그만큼 철저한 구별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 일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한 일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모세 속에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만 가지고는 모세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사건만 보면, 우리 눈에 모세는 어떠한 인정도 없는 싸늘한 원칙주의자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그가 곧 이어서 하나님 앞에 나가서 드린 기도를 보아야 모세를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 32: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출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이것을 보면 우리는 모세 안에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뜨거운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바울
바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속에는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의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이라도 내어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질투와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그의 사랑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좋은 구절 중 하나가 다음의 구절입니다.
살전 2: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살전 2: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살전 2:3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살전 2: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살전 2: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살전 2:6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살전 2: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살전 2: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하나님의 질투와 아울러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을 찾아가며 회복을 위해 기도 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매우 중요한 자세이며 요소입니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모든 사역을 감당하신 그 배후에는 “긍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제목: 하나님의 질투와 기도
본문 말씀: 출 34:14
출 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0. 서론
우리는 지속적으로 기도로 하나님을 찾는 것에 대해서 살폈습니다. 저번주는 엘리야의 기도를 알아보면서, 하나님을 찾는 기도 가운데 있어야 할 요소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그의 기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질투로 드리는 기도,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드리는 간절한 기도, 올바른 관계 가운데 드려진느 기도, 의로운 삶의 기도,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살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찾는 기도와 하나님의 질투에 대해서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의 회복이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가 회복되기를 질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질투를 가지고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1. 여호와 질투의 하나님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여호와 샬롬, 여호와 로이, 여호와 삼마 등입니다.
이레는 무슨 뜻일까요? 이레는 공급하시는 하나님,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보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라아’라는 동사의 미래형 형태가 이레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이레가 처음 등장하는 창 22:14의 내용을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보실 것이다.’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무슨 뜻인가요?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승리이십니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여호와 닛시를 직역하면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깃발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명사 ‘네스’에 1인칭 소유격 접미사가 붙어서 닛시가 됐습니다. 당시 깃발은 군대의 정체성, 전투의 기준점, 승리를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깃발이 서 있다는 것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고, 싸울힘이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닛시은 꺾이지 않는 깃발이신 여호와, 나의 승리자이심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라파는 무슨 뜻일까요? 치유의 하나님, 샬롬은 평강의 하나님, 로이는 목자되시는 하나님, 삼마는 그곳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1) 질투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한편 삼마나 로이처럼 여러분에게 낫설게 느껴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여호와 질투입니다. 성경은 명확히 하나님의 이름이 질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출 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율법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십계명을 봐도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있습니다.
출 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위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인격, 성품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어 문화에서 이름은 단순히 호칭이 아닌 인격, 정체성, 성품, 역할, 사명, 본질 등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질투는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입니다.
어떤 분들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질투는 열등감에서 나온 시기하는 마음으로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투는 인간의 질투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질투는 어떤 의미일까요?
2) 하나님의 질투의 의미
성경일 말하는 하나님의 질투는 하나님에게 속한 소중한 것들을 보호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열심을 말합니다. 그래서 개역개정은 질투를 의미하는 단어인 히브리어 칸나를 ‘열심’으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2. 하나님의 질투로 인한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
성경은 하나님께서 질투를 가지시고 회복을 말씀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
먼저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질투를 가지고 그들을 회복시키십니다. 이사야 62:1-5은 이 부분을 잘 보여줍니다.
(1)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질투
사 62:1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하나님은 잠잠하지 않고 쉬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시다겠다고 말하고 있나요? 시온을 위하여,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않고 잠잠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리들 어떻게 되도록 그렇게 하시나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도록 쉬지 않고 잠잠하지 않으며 일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구약 성경에서 시온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는 단어들입니다. 따라서 시온의 의가 빛같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있게 되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회복되는데, 이 일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 일이 명확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있도록, 열방 가운데 하나님 백성들의 소명이 드러나도록 쉬지 않으실 것이니다.
(2) 하나님의 질투로 이루어지는 일들
2-5절은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변화들을 보여줍니다. 어떤 변화가 있는지 한 번 볼까요?
사 62:2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사 62: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사 62:4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사 62: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그들은 버림 받은 자라 불렸습니다. 황무지라 불리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새이름으로 불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불릴 이름은 헵시바와 쁄라입니다. 헵시바는 ‘나는 너를 기뻐한다’라는 뜻입니다. 쁄라는 ‘결혼한 자, 신랑이 있는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 하나님의 신부의 정체성이 회복된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정체성의 회복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넘치는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영광을 열방이 보게 될 것입니다.
(3)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
시편 62편 1-5절은 1차적으로 바벨론 포로 이후 회복될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입니다. 또 이 말씀은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구속 사역에 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더 나아가 신약의 교회를 향한 회복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종말론적으로 성취될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이유는 구약의 여러 예언의 말씀들은 맥락상 1차적 성취와 2차적 성취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는 것,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신약의 교회가 이어 받는 다는 것,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의 교회 모두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은 공동체라는 것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교회인 나를 향한 말씀이 되기도 하고, 중고등부 공동체를 위한 말씀이기도 하며, 포도나무 교회, 한국의 교회, 열방의 모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포도나무 교회 중고등부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질투하십니다. 여러분의 망가진 삶 가운데, 여러분의 부르짖음에, 여러분의 절망에, 반복적인 죄에 넘어지는 것에, 팔짱을 끼고 어떻게 하나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시란 말입니다. 불꽃 같은 눈동자로 여러분을 바라보시고 권능의 팔을 드셔서 여러분의 정체성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여러분의 삶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한국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 된다.
2)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
한편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나타나는 말씀도 있습니다. 에스겔 36장은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는 내용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특히 그들로 인하여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회복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겔 36:20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하나님을 멀리 멀리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했습니다. 포로로 잡혀갔고 열국 중에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조롱을 당했고, 그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 또한 조롱당했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지 못해 그들이 멸망했다고 조롱했습니다. 이 조롱은 하나님이 다른 신들보다 약하다는 의미도 담겨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땅에 떨어진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질투하십니다.
겔 36: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겔 36: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겔 36: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아끼시고, 그 이름을 다시 거룩하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열방이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하시는 일이 자신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 일입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겔 36: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그들을 다시 모으십니다. 그리고 정결하게 하십니다.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셔서 순종하게 하십니다. 그 결과 그들은 다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회복합니다.
겔 36: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 약속 또한 1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 귀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부분적이었고 불완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메시아를 통한 구속 사역이 성취되며 성령이 오셨습니다. 따라서 이 약속은 교회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리고 예수님 다시 오시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때 최종적으로 완성됩니다.
사랑하는 포도나무 교회 중고등부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두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열심히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이름을 위하여 여러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향한 질투를 기억하며 주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렇다면 이 질투하시는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하며 나아가야 할까요?
3.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는 기도
1)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기도하는 자를 세우시는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며 기도로 주님을 찾아나아가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기도할 자를 세우십니다.
사 62: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사 62: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2) 이사야의 기도
그리고 이사야의 저자인 이사야는 이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기도하였습니다.
(1) 이사야 63장
사 63:15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의 열성이라는 단어가 원어로 질투라는 단어입니다.
이 구절을 찬찬히 살피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의 질투와 하나님의 능력이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사야 62:1-5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며 철저하게 버림 받은 자들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켜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2) 이사야 64장
이사야 64장에서도 이사야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① 이사야의 회개 기도
사 64: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사 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사 64: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 구절에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한 것임을 깨달아 그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더 나아가 모든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7절).
그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께 범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했습니다(5-6절).
그 결과 하나님은 하나님의 임재를 그들에게 거두셨습니다(7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얼굴을 그들에게 숨기셨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임재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두시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심판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멸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그 현실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나갑니다.
②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는 기도
사 64: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사 64:9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이사야는 자신과 이스라엘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되, 거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섭니다. 특히 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구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며 하나님 앞에 섭니다. 8절과 9절에서 우리는 그것을 잘 볼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질투를 가진 자의 기도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할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에 헌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은 하나님의 질투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 중 하나는 하나님의 질투를 사람들 속에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는 정말 우리가 사모해야 할 은혜입니다.
저번주에 살펴던 엘리야 속에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던 것이 좋은 예입니다. 더불어 몇 가지 성경적인 예를 살피게습니다.
(1) 예수님안에 있었던 하나님의 질투
당연히 예수님의 안에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요한복음 2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요 2: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요 2: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요 2: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요 2: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요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예수님 안에 있던 참된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예수님께서 그렇게 행동하신 원동력이었습니다. 추가적으로 우리는 여기서도 하나님의 질투를 열심이라는 단어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7절은 시편 69:9을 인용하고 있는데, 시편에서 “열성”이라는 단어는 질투라는 단어의 파생어입니다.
(2) 바울 안에 있었던 하나님의 질투
바울 안에도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특히 그의 안에는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하나님의 열심히 열심을 낸다”는 말은 원어로 하나님의 질투로 질투한다는 입니다. 즉 바울 속에도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자기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헌신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에 헌신할 뿐 아니라 그 질투를 가지고 그 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2) 하나님의 질투와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의 조화
(1) 모세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모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선 그의 속에는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이 그의 마음에 있던 하나님의 질투와 하나님의 사랑을 잘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만들어 놓고, 그것이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에 대해 진노하시면서 그들을 멸하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분노를 돌이키십니다.
시내산에서 내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고 있던 행태를 보고 분노하여, 받아온 10계명 판들을 던져버립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했던 금송아지를 갈아 물에 타서 마시게 한 뒤 자기와 함께 할 자들은 자기에게로 나오라고 말합니다.
출 32: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레위 자손들이 그에게 나아오자 모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출 32: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출 32: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모세의 명령을 들은 레위 자손들은 그대로 행하여 그 날 삼 천명 가량이 죽임을 당합니다. 그들은 가까운 가족부터 처단했습니다. 그 행동은 그만큼 철저한 구별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 일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한 일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모세 속에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만 가지고는 모세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사건만 보면, 우리 눈에 모세는 어떠한 인정도 없는 싸늘한 원칙주의자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그가 곧 이어서 하나님 앞에 나가서 드린 기도를 보아야 모세를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 32: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출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이것을 보면 우리는 모세 안에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뜨거운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바울
바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속에는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의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이라도 내어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질투와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그의 사랑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좋은 구절 중 하나가 다음의 구절입니다.
살전 2: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살전 2: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살전 2:3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살전 2: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살전 2: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살전 2:6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살전 2: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살전 2: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하나님의 질투와 아울러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을 찾아가며 회복을 위해 기도 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매우 중요한 자세이며 요소입니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모든 사역을 감당하신 그 배후에는 “긍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제목: 하나님의 질투와 기도
본문 말씀: 출 34:14
출 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0. 서론
우리는 지속적으로 기도로 하나님을 찾는 것에 대해서 살폈습니다. 저번주는 엘리야의 기도를 알아보면서, 하나님을 찾는 기도 가운데 있어야 할 요소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그의 기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질투로 드리는 기도,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드리는 간절한 기도, 올바른 관계 가운데 드려진느 기도, 의로운 삶의 기도,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살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찾는 기도와 하나님의 질투에 대해서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의 회복이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가 회복되기를 질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질투를 가지고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1. 여호와 질투의 하나님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여호와 샬롬, 여호와 로이, 여호와 삼마 등입니다.
이레는 무슨 뜻일까요? 이레는 공급하시는 하나님,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보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라아’라는 동사의 미래형 형태가 이레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이레가 처음 등장하는 창 22:14의 내용을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보실 것이다.’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무슨 뜻인가요?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승리이십니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여호와 닛시를 직역하면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깃발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명사 ‘네스’에 1인칭 소유격 접미사가 붙어서 닛시가 됐습니다. 당시 깃발은 군대의 정체성, 전투의 기준점, 승리를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깃발이 서 있다는 것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고, 싸울힘이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닛시은 꺾이지 않는 깃발이신 여호와, 나의 승리자이심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라파는 무슨 뜻일까요? 치유의 하나님, 샬롬은 평강의 하나님, 로이는 목자되시는 하나님, 삼마는 그곳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1) 질투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한편 삼마나 로이처럼 여러분에게 낫설게 느껴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여호와 질투입니다. 성경은 명확히 하나님의 이름이 질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출 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율법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십계명을 봐도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있습니다.
출 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위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인격, 성품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어 문화에서 이름은 단순히 호칭이 아닌 인격, 정체성, 성품, 역할, 사명, 본질 등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질투는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입니다.
어떤 분들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질투는 열등감에서 나온 시기하는 마음으로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투는 인간의 질투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질투는 어떤 의미일까요?
2) 하나님의 질투의 의미
성경일 말하는 하나님의 질투는 하나님에게 속한 소중한 것들을 보호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열심을 말합니다. 그래서 개역개정은 질투를 의미하는 단어인 히브리어 칸나를 ‘열심’으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2. 하나님의 질투로 인한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
성경은 하나님께서 질투를 가지시고 회복을 말씀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
먼저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질투를 가지고 그들을 회복시키십니다. 이사야 62:1-5은 이 부분을 잘 보여줍니다.
(1)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질투
사 62:1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하나님은 잠잠하지 않고 쉬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시다겠다고 말하고 있나요? 시온을 위하여,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않고 잠잠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리들 어떻게 되도록 그렇게 하시나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도록 쉬지 않고 잠잠하지 않으며 일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구약 성경에서 시온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는 단어들입니다. 따라서 시온의 의가 빛같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있게 되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회복되는데, 이 일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 일이 명확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있도록, 열방 가운데 하나님 백성들의 소명이 드러나도록 쉬지 않으실 것이니다.
(2) 하나님의 질투로 이루어지는 일들
2-5절은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변화들을 보여줍니다. 어떤 변화가 있는지 한 번 볼까요?
사 62:2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사 62: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사 62:4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사 62: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그들은 버림 받은 자라 불렸습니다. 황무지라 불리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새이름으로 불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불릴 이름은 헵시바와 쁄라입니다. 헵시바는 ‘나는 너를 기뻐한다’라는 뜻입니다. 쁄라는 ‘결혼한 자, 신랑이 있는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 하나님의 신부의 정체성이 회복된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정체성의 회복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넘치는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영광을 열방이 보게 될 것입니다.
(3)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
시편 62편 1-5절은 1차적으로 바벨론 포로 이후 회복될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입니다. 또 이 말씀은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구속 사역에 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더 나아가 신약의 교회를 향한 회복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종말론적으로 성취될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이유는 구약의 여러 예언의 말씀들은 맥락상 1차적 성취와 2차적 성취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는 것,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신약의 교회가 이어 받는 다는 것,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의 교회 모두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은 공동체라는 것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교회인 나를 향한 말씀이 되기도 하고, 중고등부 공동체를 위한 말씀이기도 하며, 포도나무 교회, 한국의 교회, 열방의 모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포도나무 교회 중고등부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질투하십니다. 여러분의 망가진 삶 가운데, 여러분의 부르짖음에, 여러분의 절망에, 반복적인 죄에 넘어지는 것에, 팔짱을 끼고 어떻게 하나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시란 말입니다. 불꽃 같은 눈동자로 여러분을 바라보시고 권능의 팔을 드셔서 여러분의 정체성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여러분의 삶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한국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 된다.
2)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
한편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나타나는 말씀도 있습니다. 에스겔 36장은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는 내용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특히 그들로 인하여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회복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겔 36:20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하나님을 멀리 멀리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했습니다. 포로로 잡혀갔고 열국 중에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조롱을 당했고, 그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 또한 조롱당했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지 못해 그들이 멸망했다고 조롱했습니다. 이 조롱은 하나님이 다른 신들보다 약하다는 의미도 담겨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땅에 떨어진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질투하십니다.
겔 36: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겔 36: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겔 36: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아끼시고, 그 이름을 다시 거룩하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열방이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하시는 일이 자신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 일입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겔 36: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그들을 다시 모으십니다. 그리고 정결하게 하십니다.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셔서 순종하게 하십니다. 그 결과 그들은 다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회복합니다.
겔 36: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 약속 또한 1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 귀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부분적이었고 불완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메시아를 통한 구속 사역이 성취되며 성령이 오셨습니다. 따라서 이 약속은 교회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리고 예수님 다시 오시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때 최종적으로 완성됩니다.
사랑하는 포도나무 교회 중고등부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두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열심히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이름을 위하여 여러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향한 질투를 기억하며 주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렇다면 이 질투하시는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하며 나아가야 할까요?
3.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는 기도
1)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기도하는 자를 세우시는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며 기도로 주님을 찾아나아가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기도할 자를 세우십니다.
사 62: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사 62: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2) 이사야의 기도
그리고 이사야의 저자인 이사야는 이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기도하였습니다.
(1) 이사야 63장
사 63:15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의 열성이라는 단어가 원어로 질투라는 단어입니다.
이 구절을 찬찬히 살피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의 질투와 하나님의 능력이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사야 62:1-5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며 철저하게 버림 받은 자들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켜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2) 이사야 64장
이사야 64장에서도 이사야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① 이사야의 회개 기도
사 64: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사 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사 64: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 구절에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한 것임을 깨달아 그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더 나아가 모든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7절).
그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께 범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했습니다(5-6절).
그 결과 하나님은 하나님의 임재를 그들에게 거두셨습니다(7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얼굴을 그들에게 숨기셨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임재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두시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심판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멸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그 현실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나갑니다.
②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는 기도
사 64: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사 64:9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이사야는 자신과 이스라엘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되, 거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섭니다. 특히 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구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며 하나님 앞에 섭니다. 8절과 9절에서 우리는 그것을 잘 볼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질투를 가진 자의 기도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할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에 헌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은 하나님의 질투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 중 하나는 하나님의 질투를 사람들 속에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는 정말 우리가 사모해야 할 은혜입니다.
저번주에 살펴던 엘리야 속에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던 것이 좋은 예입니다. 더불어 몇 가지 성경적인 예를 살피게습니다.
(1) 예수님안에 있었던 하나님의 질투
당연히 예수님의 안에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요한복음 2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요 2: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요 2: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요 2: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요 2: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요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예수님 안에 있던 참된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예수님께서 그렇게 행동하신 원동력이었습니다. 추가적으로 우리는 여기서도 하나님의 질투를 열심이라는 단어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7절은 시편 69:9을 인용하고 있는데, 시편에서 “열성”이라는 단어는 질투라는 단어의 파생어입니다.
(2) 바울 안에 있었던 하나님의 질투
바울 안에도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특히 그의 안에는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하나님의 열심히 열심을 낸다”는 말은 원어로 하나님의 질투로 질투한다는 입니다. 즉 바울 속에도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자기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헌신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에 헌신할 뿐 아니라 그 질투를 가지고 그 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2) 하나님의 질투와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의 조화
(1) 모세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모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선 그의 속에는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이 그의 마음에 있던 하나님의 질투와 하나님의 사랑을 잘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만들어 놓고, 그것이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에 대해 진노하시면서 그들을 멸하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분노를 돌이키십니다.
시내산에서 내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고 있던 행태를 보고 분노하여, 받아온 10계명 판들을 던져버립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했던 금송아지를 갈아 물에 타서 마시게 한 뒤 자기와 함께 할 자들은 자기에게로 나오라고 말합니다.
출 32: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레위 자손들이 그에게 나아오자 모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출 32: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출 32: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모세의 명령을 들은 레위 자손들은 그대로 행하여 그 날 삼 천명 가량이 죽임을 당합니다. 그들은 가까운 가족부터 처단했습니다. 그 행동은 그만큼 철저한 구별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 일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한 일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모세 속에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만 가지고는 모세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사건만 보면, 우리 눈에 모세는 어떠한 인정도 없는 싸늘한 원칙주의자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그가 곧 이어서 하나님 앞에 나가서 드린 기도를 보아야 모세를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 32: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출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이것을 보면 우리는 모세 안에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뜨거운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바울
바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속에는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의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이라도 내어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질투와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그의 사랑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좋은 구절 중 하나가 다음의 구절입니다.
살전 2: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살전 2: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살전 2:3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살전 2: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살전 2: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살전 2:6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살전 2: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살전 2: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하나님의 질투와 아울러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을 찾아가며 회복을 위해 기도 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매우 중요한 자세이며 요소입니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모든 사역을 감당하신 그 배후에는 “긍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제목: 하나님의 질투와 기도
본문 말씀: 출 34:14
출 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0. 서론
우리는 지속적으로 기도로 하나님을 찾는 것에 대해서 살폈습니다. 저번주는 엘리야의 기도를 알아보면서, 하나님을 찾는 기도 가운데 있어야 할 요소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그의 기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질투로 드리는 기도,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드리는 간절한 기도, 올바른 관계 가운데 드려진느 기도, 의로운 삶의 기도,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살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찾는 기도와 하나님의 질투에 대해서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의 회복이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가 회복되기를 질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질투를 가지고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1. 여호와 질투의 하나님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여호와 샬롬, 여호와 로이, 여호와 삼마 등입니다.
이레는 무슨 뜻일까요? 이레는 공급하시는 하나님,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보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라아’라는 동사의 미래형 형태가 이레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이레가 처음 등장하는 창 22:14의 내용을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보실 것이다.’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무슨 뜻인가요?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승리이십니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여호와 닛시를 직역하면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깃발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명사 ‘네스’에 1인칭 소유격 접미사가 붙어서 닛시가 됐습니다. 당시 깃발은 군대의 정체성, 전투의 기준점, 승리를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깃발이 서 있다는 것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고, 싸울힘이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닛시은 꺾이지 않는 깃발이신 여호와, 나의 승리자이심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라파는 무슨 뜻일까요? 치유의 하나님, 샬롬은 평강의 하나님, 로이는 목자되시는 하나님, 삼마는 그곳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1) 질투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한편 삼마나 로이처럼 여러분에게 낫설게 느껴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여호와 질투입니다. 성경은 명확히 하나님의 이름이 질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출 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율법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십계명을 봐도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있습니다.
출 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위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인격, 성품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어 문화에서 이름은 단순히 호칭이 아닌 인격, 정체성, 성품, 역할, 사명, 본질 등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질투는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입니다.
어떤 분들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질투는 열등감에서 나온 시기하는 마음으로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투는 인간의 질투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질투는 어떤 의미일까요?
2) 하나님의 질투의 의미
성경일 말하는 하나님의 질투는 하나님에게 속한 소중한 것들을 보호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열심을 말합니다. 그래서 개역개정은 질투를 의미하는 단어인 히브리어 칸나를 ‘열심’으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2. 하나님의 질투로 인한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
성경은 하나님께서 질투를 가지시고 회복을 말씀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
먼저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질투를 가지고 그들을 회복시키십니다. 이사야 62:1-5은 이 부분을 잘 보여줍니다.
(1)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질투
사 62:1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하나님은 잠잠하지 않고 쉬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시다겠다고 말하고 있나요? 시온을 위하여,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않고 잠잠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리들 어떻게 되도록 그렇게 하시나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도록 쉬지 않고 잠잠하지 않으며 일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구약 성경에서 시온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는 단어들입니다. 따라서 시온의 의가 빛같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있게 되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회복되는데, 이 일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 일이 명확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있도록, 열방 가운데 하나님 백성들의 소명이 드러나도록 쉬지 않으실 것이니다.
(2) 하나님의 질투로 이루어지는 일들
2-5절은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변화들을 보여줍니다. 어떤 변화가 있는지 한 번 볼까요?
사 62:2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사 62: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사 62:4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사 62: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그들은 버림 받은 자라 불렸습니다. 황무지라 불리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새이름으로 불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불릴 이름은 헵시바와 쁄라입니다. 헵시바는 ‘나는 너를 기뻐한다’라는 뜻입니다. 쁄라는 ‘결혼한 자, 신랑이 있는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 하나님의 신부의 정체성이 회복된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정체성의 회복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넘치는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영광을 열방이 보게 될 것입니다.
(3)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
시편 62편 1-5절은 1차적으로 바벨론 포로 이후 회복될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입니다. 또 이 말씀은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구속 사역에 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더 나아가 신약의 교회를 향한 회복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종말론적으로 성취될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이유는 구약의 여러 예언의 말씀들은 맥락상 1차적 성취와 2차적 성취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는 것,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신약의 교회가 이어 받는 다는 것,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의 교회 모두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은 공동체라는 것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교회인 나를 향한 말씀이 되기도 하고, 중고등부 공동체를 위한 말씀이기도 하며, 포도나무 교회, 한국의 교회, 열방의 모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포도나무 교회 중고등부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질투하십니다. 여러분의 망가진 삶 가운데, 여러분의 부르짖음에, 여러분의 절망에, 반복적인 죄에 넘어지는 것에, 팔짱을 끼고 어떻게 하나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시란 말입니다. 불꽃 같은 눈동자로 여러분을 바라보시고 권능의 팔을 드셔서 여러분의 정체성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여러분의 삶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한국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 된다.
2)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
한편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나타나는 말씀도 있습니다. 에스겔 36장은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는 내용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특히 그들로 인하여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회복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겔 36:20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하나님을 멀리 멀리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했습니다. 포로로 잡혀갔고 열국 중에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조롱을 당했고, 그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 또한 조롱당했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지 못해 그들이 멸망했다고 조롱했습니다. 이 조롱은 하나님이 다른 신들보다 약하다는 의미도 담겨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땅에 떨어진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질투하십니다.
겔 36: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겔 36: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겔 36: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아끼시고, 그 이름을 다시 거룩하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열방이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하시는 일이 자신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 일입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겔 36: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그들을 다시 모으십니다. 그리고 정결하게 하십니다.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셔서 순종하게 하십니다. 그 결과 그들은 다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회복합니다.
겔 36: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 약속 또한 1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 귀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부분적이었고 불완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메시아를 통한 구속 사역이 성취되며 성령이 오셨습니다. 따라서 이 약속은 교회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리고 예수님 다시 오시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때 최종적으로 완성됩니다.
사랑하는 포도나무 교회 중고등부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두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열심히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이름을 위하여 여러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향한 질투를 기억하며 주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렇다면 이 질투하시는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하며 나아가야 할까요?
3.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는 기도
1)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기도하는 자를 세우시는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며 기도로 주님을 찾아나아가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기도할 자를 세우십니다.
사 62: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사 62: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2) 이사야의 기도
그리고 이사야의 저자인 이사야는 이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기도하였습니다.
(1) 이사야 63장
사 63:15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의 열성이라는 단어가 원어로 질투라는 단어입니다.
이 구절을 찬찬히 살피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의 질투와 하나님의 능력이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사야 62:1-5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며 철저하게 버림 받은 자들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켜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2) 이사야 64장
이사야 64장에서도 이사야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① 이사야의 회개 기도
사 64: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사 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사 64: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 구절에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한 것임을 깨달아 그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더 나아가 모든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7절).
그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께 범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했습니다(5-6절).
그 결과 하나님은 하나님의 임재를 그들에게 거두셨습니다(7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얼굴을 그들에게 숨기셨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임재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두시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심판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멸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그 현실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나갑니다.
②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는 기도
사 64: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사 64:9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이사야는 자신과 이스라엘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되, 거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섭니다. 특히 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구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며 하나님 앞에 섭니다. 8절과 9절에서 우리는 그것을 잘 볼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질투를 가진 자의 기도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할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질투에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에 헌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은 하나님의 질투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 중 하나는 하나님의 질투를 사람들 속에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는 정말 우리가 사모해야 할 은혜입니다.
저번주에 살펴던 엘리야 속에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던 것이 좋은 예입니다. 더불어 몇 가지 성경적인 예를 살피게습니다.
(1) 예수님안에 있었던 하나님의 질투
당연히 예수님의 안에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요한복음 2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요 2: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요 2: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요 2: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요 2: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요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예수님 안에 있던 참된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예수님께서 그렇게 행동하신 원동력이었습니다. 추가적으로 우리는 여기서도 하나님의 질투를 열심이라는 단어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7절은 시편 69:9을 인용하고 있는데, 시편에서 “열성”이라는 단어는 질투라는 단어의 파생어입니다.
(2) 바울 안에 있었던 하나님의 질투
바울 안에도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특히 그의 안에는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하나님의 열심히 열심을 낸다”는 말은 원어로 하나님의 질투로 질투한다는 입니다. 즉 바울 속에도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자기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헌신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에 헌신할 뿐 아니라 그 질투를 가지고 그 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2) 하나님의 질투와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의 조화
(1) 모세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모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선 그의 속에는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이 그의 마음에 있던 하나님의 질투와 하나님의 사랑을 잘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만들어 놓고, 그것이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에 대해 진노하시면서 그들을 멸하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분노를 돌이키십니다.
시내산에서 내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고 있던 행태를 보고 분노하여, 받아온 10계명 판들을 던져버립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했던 금송아지를 갈아 물에 타서 마시게 한 뒤 자기와 함께 할 자들은 자기에게로 나오라고 말합니다.
출 32: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레위 자손들이 그에게 나아오자 모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출 32: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출 32: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모세의 명령을 들은 레위 자손들은 그대로 행하여 그 날 삼 천명 가량이 죽임을 당합니다. 그들은 가까운 가족부터 처단했습니다. 그 행동은 그만큼 철저한 구별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 일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한 일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모세 속에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만 가지고는 모세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사건만 보면, 우리 눈에 모세는 어떠한 인정도 없는 싸늘한 원칙주의자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그가 곧 이어서 하나님 앞에 나가서 드린 기도를 보아야 모세를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 32: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출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이것을 보면 우리는 모세 안에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뜨거운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바울
바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속에는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의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이라도 내어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질투와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그의 사랑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좋은 구절 중 하나가 다음의 구절입니다.
살전 2: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살전 2: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살전 2:3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살전 2: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살전 2: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살전 2:6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살전 2: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살전 2: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하나님의 질투와 아울러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을 찾아가며 회복을 위해 기도 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매우 중요한 자세이며 요소입니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모든 사역을 감당하신 그 배후에는 “긍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