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기꺼이 묶이는 자유 2025 갈5: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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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atians 5:13–14 NKRV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주제: 율법의 보호 아래서, 자유 의지로 사랑을 선택하는 성숙한 신앙

[서론] "이거 해도 돼요?"의 신앙을 넘어서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반갑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청년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한 번쯤은 궁금해했거나, 혹은 물어봤을 법한 질문들입니다.
"목사님, 그리스도인이 술 마셔도 되나요? 딱 한 잔은 괜찮지 않나요?"
"요즘 유행하는 타로 점, 그냥 재미로 보는 건데 죄인가요?"
"이런 장르의 영화나 음악, 기독교인이 접해도 되나요?"
여러분, 우리가 왜 이런 질문을 할까요? 그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아주 솔직한 심리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지옥에 가지 않을 만큼의 최소한의 신앙은 지키되, 세상이 주는 즐거움은 최대한 누리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커트라인'을 묻습니다. "어디까지가 죄입니까? 딱 거기 직전까지만 가려고요."
이런 관점에서 신앙생활은 마치 '지뢰밭 피하기 게임' 같습니다. 하나님은 자꾸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며 우리의 즐거움을 통제하는 무서운 감시자처럼 느껴집니다. 신앙이 자유가 아니라 억압으로 다가오는 것이죠.
하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13절 앞부분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규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를 주시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우리에게 주어진 이 자유는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율법과 자유, 그리고 사랑의 진짜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 1] 율법: 우리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지켜주는 '가드레일'입니다

먼저, 우리가 그렇게 답답해하는 '율법'과 '계명'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성경, 특히 십계명을 보면 "하라"는 명령보다 "하지 말라"는 명령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약 80%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입니다.
왜 하나님은 자꾸 '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꼰대라서 그러실까요? 아닙니다.
여러분, 해안 절벽을 따라 난 도로를 운전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도로 가장자리에는 튼튼한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운전하면서 "아, 저 가드레일 때문에 내 드라이브가 방해받아! 저것 좀 치워버리고 내 맘대로 달리고 싶어!"라고 화내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드레일은 나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내가 실수했을 때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게 막아주는 생명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율법의 기능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본문 13절은 말합니다.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여기서 말하는 '육체'는 단순히 우리 몸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욕망대로 살다가 결국 파멸로 치닫는 타락한 본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시는 겁니다. 우리가 욕망대로 질주하다가 간음하고, 살인하고, 남의 것을 탐하다 보면 결국 내 영혼도 망가지고 공동체도 박살 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지 마!"라고 소리치시는 겁니다. 그것은 억압이 아닙니다. "제발 거기 넘어가면 죽어! 내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그 선을 넘지 마!"라고 외치시는 아버지의 다급한 보호입니다.(선악과도 마찬가지 맥락)
그러므로 여러분, 율법의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을 답답해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을 가장 안전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본론 2] 자유: 자발적일 때만 진짜 '선(Goodness)'이 됩니다

자, 율법이 우리를 '보호'해 준다면, 이제 '자유'는 어디에 써야 할까요?
오늘 말씀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13절 뒷부분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앞에서는 "자유를 위해 불렀다"고 해놓고, 뒤에서는 "종이 되라"고 합니다. 자유인에게 노예가 되라니, 앞뒤가 안 맞지 않습니까? 이 역설을 이해하려면 '선(善)'의 성격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회사에서 월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법적으로 10%를 강제로 떼어갔습니다. 이건 '세금'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받은 월급에서 자발적으로 10%를 떼어 어려운 이웃을 도왔습니다. 이건 '후원'이고 '선행'입니다.
액수는 똑같습니다. 하지만 그 본질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강제된 것은 '법 준수'일 뿐이지만, 자유 의지로 한 것은 '사랑'이 되고 '선'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로봇처럼 입력된 대로 움직이는 순종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셔서 '거절할 수 있는 자유'까지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거절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우리의 사랑이 진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할 자유가 있으셨습니다. 열두 군단도 더 되는 천사를 불러 세상을 심판하실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자유를 도망치는 데 쓰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자유를,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데, 스스로를 죽이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를 너무 사랑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이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진짜 자유입니다.

[본론 3] 적용: 사랑은 율법을 완성합니다

이제 우리 삶을 돌아봅시다.
바울은 14절에서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라고 선언합니다.
율법의 '보호'와 자유의 '자발성'이 만나는 곳, 그 교착지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청년 여러분, 우리 공동체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할 때, 리더를 할 때, 찬양팀을 할 때, 혹시 "시켜서", "임원이니까", "눈치 보여서"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억지로 하는 봉사는 노동입니다. 그건 율법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강제'하지 않으십니다.
예배도, 헌금도, 봉사도, 하나님은 강요해서 받아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자유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가지고, 이제는 '사랑하기 때문에' 움직이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분에게 선행을 강제하지 않을 거임. 권면할 거임. 할 때까지… ㅋㅋ 대신 악을 행하는 일, 여러분을 망하게 하는 길에 서는 것에서는 단호할 거임. ‘~말라’라는 메시지가 나가게 될 것임.
"내가 우리 지체를 너무 사랑해서 돕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마음."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내 시간을 드려도 아깝지 않은 자발적 헌신."
바로 이 마음이 우리 안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신앙 단계를 점검해 보십시오.
"지옥 안 가려고 겨우겨우 지키는 신앙(Must)"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을 사랑해서 기꺼이 좁은 길을 가는 신앙(Want)"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진정한 자유인은,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스스로 종이 되는 사람입니다.

[결론 및 결단] 거룩한 몰입을 선택하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악에서 건져내는 '안전한 울타리'입니다. 이 울타리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여러분에게 주어진 자유를 마음껏 사용하십시오.
단, 그 자유를 나의 쾌락과 육체의 욕망을 채우는 데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건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고, 결국 나를 파괴합니다.
여러분의 젊음, 시간, 물질, 재능... 이 소중한 자유를
누군가를 용서하고, 섬기고, 일으켜 세우는 '사랑'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거룩한 몰입을 선택하십시오.
세상은 그것을 '손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것을 '가장 아름다운 자유'라고 부릅니다.
세상은 여러분에게 1분 1초도 낭비하지 말고 스펙을 쌓으라고 몰아세웁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쉴 때조차 죄책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사랑으로 섬기는 시간은 시간을 버리는 게 아니라, '불안에 쫓기는 내 영혼이 숨을 쉬는 시간'입니다.
여러분, 하루 종일 취업 걱정만 한다고 일이 해결되던가요? 오히려 에너지만 닳습니다. 하지만 잠시 내 걱정을 멈추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섬길 때, 신기하게도 우리 뇌와 영혼은 새로운 에너지로 '환기(Refresh)'됩니다. 이것은 낭비가 아닙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거룩한 충전'입니다.
교회에서 주차 봉사를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설거지를 하는 그 시간만큼은 아무도 여러분에게 '토익 점수'를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스펙이 아니라, 땀 흘리는 그 중심을 보며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섬기는 시간은 '내가 상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임'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세상의 평가 기준이 작동하지 않는 이 '안전한 시간'을 누리는 기쁨을 충만히 만끽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재의회복으로 진짜 쉼을 쉬는 곳, 이곳 한빛 청년부. 청년예배가 되길 축복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함께 기도할 때 이렇게 결단합시다.
"하나님, 이제 억지로 끌려가는 신앙생활을 멈추겠습니다. 나에게 주신 자유로, 이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해서, 내 이웃을 사랑해서, 스스로 움직이는 진짜 신앙인이 되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 꼼짝할 수 없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끊어내시고 참된 자유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때로 주님이 주신 말씀과 계명들을 나를 옭아매는 사슬로 오해하며 불평했습니다. "왜 하지 말라고만 하시냐"고 따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음성이 벼랑 끝으로 달려가는 우리를 막아서시는 아버지의 다급한 사랑이었음을 오늘 깨닫습니다. 우리를 보호하시는 주님의 울타리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주님, 이제 우리에게 주신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않게 하옵소서.
내 맘대로 사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선을 선택하고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진짜 능력임을 믿습니다. 억지로 끌려가는 종교 생활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신 주님을 나도 사랑하여 기꺼이 헌신하고, 기꺼이 지체들의 종이 되어주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청년들의 삶이 세상의 쾌락을 좇는 헛된 자유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자유로 채워지기를 소망하며, 우리를 자유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결단찬양>
낮은 곳으로 - Welove <- 배준현
"세상은 우리에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너를 위해 살라고 채찍질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다른 길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나의 자유로 기꺼이 낮아지는 길, 사랑하기 때문에 손해 보는 길입니다. 우리 이 찬양으로 고백합시다. 하나님, 나의 삶이 주님 닮아 더 낮은 곳으로 흐르게 하소서."
<말씀노트>
실천 해보기
미션: 이번 주, 한번 더 연락해봐야 할 친구, 평소에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커피 쿠폰(5,000원) 하나를 보내십시오.
조건: 생일이라서(X), 도움을 받아서(X). 아무 이유 없이(O).
메시지: "그냥, 오늘 갑자기 네 생각이 나서 기도했어. 힘내라고 보낸다!"
의미: 세상의 모든 관계는 'Give & Take(율법)'입니다. 하지만 이유 없는 선물은 '은혜(복음)'입니다. 내 돈(자유)을 낭비하여 누군가를 웃게 하는 기쁨을 맛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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