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45 “소비하는 자아에서 섬기는 자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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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3주차 설교는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본성인 '이기심'과 '욕망'을 다루는 시간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너를 위해 소비하라"고 부추기지만, 성경은 "남을 위해 섬기라"고 말합니다. 이 역설적인 진리가 어떻게 우리 삶의 참된 기쁨이 되는지, 송태근 목사님의 날카로운 통찰과 이찬수 목사님의 따뜻한 호소로 풀어냈습니다.
특히 여수의 중장년 성도님들이 교회와 가정에서 '어른'으로서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지를 강조하며 자존감을 세워드리는 방향으로 잡았습니다.
2026년 1월 3주 주일예배 설교
2026년 1월 3주 주일예배 설교
제목: 내면의 변화 - 소비하는 자아에서 섬기는 자아로
제목: 내면의 변화 - 소비하는 자아에서 섬기는 자아로
본문: 마가복음 10:45, 시편 131:1-2
[서론: 쇼핑으로 채워지지 않는 구멍]
[서론: 쇼핑으로 채워지지 않는 구멍]
(차분하고 묵상적인 어조로) 사랑하는 여수 성도 여러분,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벌써 1월의 세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인생의 나침반을 하나님께 맞추고, 기도의 숨을 쉬자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오늘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혹시 마음이 허전하고 스트레스 받을 때 무엇을 하십니까?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행동 중 하나가 바로 '소비'입니다. 젊은 친구들은 '시발비용'이라는 말도 쓰더군요. 스트레스 받아서 홧김에 돈을 쓴다는 뜻입니다.
백화점에 가서 좋은 옷을 사고, 홈쇼핑에서 물건을 주문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닙니다. 택배 상자가 문 앞에 도착했을 때의 그 설렘, 다들 아시죠? 그런데 여러분, 그 상자를 뜯고 물건을 손에 쥐었을 때의 기쁨이 며칠이나 가던가요?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면 그 물건은 구석에 처박혀 있고, 마음은 다시 공허해집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자꾸만 외부의 무언가를 내 안으로 가져와서 채우려고 합니다. 이것을 **'소비하는 자아(Consuming Self)'**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는 것,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 놀랍게도 그 길에 참된 만족이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3주차 설교의 제목은 **"소비하는 자아에서 섬기는 자아로"**입니다. 2026년, 우리의 내면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진짜 행복을 누릴 수 있는지 말씀을 통해 답을 찾길 원합니다.
[본론 1: 진단 - 젖 뗀 아이의 비밀 (자위 vs 타위)]
[본론 1: 진단 - 젖 뗀 아이의 비밀 (자위 vs 타위)]
(송태근 목사님 스타일: 본문의 깊은 해석과 대조)
먼저 구약의 본문 시편 131편을 보십시오. 다윗의 시입니다. 2절을 다 같이 읽어볼까요?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젖 뗀 아이'**입니다. 여러분, 젖을 떼지 못한 아이와 젖을 뗀 아이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젖 먹는 아이'는 엄마를 원하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엄마가 주는 '젖(Milk)'을 원합니다. 배고프면 울고, 젖을 주면 그치고, 젖이 안 나오면 엄마를 깨물기도 합니다. 이 아이의 관심은 오직 내 배를 채우는 '욕망'에 있습니다.
반면 '젖 뗀 아이'는 다릅니다. 이제 더 이상 젖이 나오지 않지만,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엄마의 소유(젖)가 아니라, 엄마의 존재(품)를 사랑하는 단계로 성숙한 것입니다.
이충만 교수님은 이것을 **'자위(自慰, Self-comfort)'와 '타위(他慰, Comfort from God)'**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거대한 '젖 먹는 아이'와 같습니다. 내 힘으로 돈을 벌고, 명품을 사고, 쾌락을 소비해서 스스로를 위로하려 합니다(자위).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고백했듯, 그 모든 수고는 결국 헛됩니다.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갈증만 더할 뿐입니다.
하지만 성숙한 신앙인은 '타위'를 누립니다. 내가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상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26년 여러분의 신앙은 어느 단계입니까? 아직도 "하나님,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 하며 젖병을 내놓으라고 보채는 신앙입니까, 아니면 "주님, 주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라며 그 품에 안기는 젖 뗀 아이의 평안입니까?
내 욕망을 채우는 '소비자'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영원히 배고플 수밖에 없습니다.
[본론 2: 전환 - 섬김의 역설 (Starbucks & Jesus)]
[본론 2: 전환 - 섬김의 역설 (Starbucks & Jesus)]
(송태근 목사님 스타일: 현대적 예화와 논리적 연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미성숙한 '소비하는 자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그 답을 주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가장 극상의 '소비'를 누릴 자격이 있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대속물', 즉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한 몸값으로 자신을 주셨습니다. 소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소비시켜(희생하여) 남을 살리러 오셨습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성공해서 남 부리며 살아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성공해서 남 섬기며 살아라."
이것은 단순히 윤리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내면의 만족을 위한 원리입니다. 스티븐 코비는 **"내면 깊은 곳에서 불타는 'Yes(비전/사명)'가 있을 때, 쓸데없는 유혹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재미있는 예화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커피 기업 스타벅스의 직원 교육 이야기입니다. 스타벅스는 직원들에게 진상 고객을 만났을 때 참는 법(의지력)을 가르치지 않고, **'습관'**을 가르쳤습니다. 고객이 불평하면(신호), 웃으며 듣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라테(LATTE)의 법칙'으로 대응하고(행동), 고객이 만족할 때 직업적 자부심을 느낀다(보상)는 것입니다. 직원들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면(소비자 마인드), 진상 고객은 지옥입니다. 하지만 "나는 고객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다"라는 사명(섬기는 자아)을 가지면, 고난을 이길 힘이 생깁니다.
하물며 커피 파는 일도 이런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내 인생의 목적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소비)"에 있으면, 조금만 어려워도 불평이 나옵니다. "왜 하나님은 나한테 복을 안 주셔?" 하지만 내 목적이 "누군가를 섬기고 살리는 것(사명)"으로 바뀌면, 고난조차도 섬김의 재료가 됩니다. "하나님, 이 어려움을 통해 누군가를 위로할 힘을 주시옵소서."
방향이 바뀌면, 불평이 사명으로 바뀝니다. 이것이 내면의 혁명입니다.
[본론 3: 적용 - 5070, 어른의 품격]
[본론 3: 적용 - 5070, 어른의 품격]
(이찬수 목사님 스타일: 폐부를 찌르는 공감과 도전)
사랑하는 여수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봅시다. 특히 우리 교회의 허리이자 기둥이신 50대, 60대, 70대 성도님들께 간곡히, 그리고 사랑을 담아 도전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단순히 늙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서 공급자로' 바뀌는 것입니다. 아기 때는 받기만 합니다. 똥 기저귀 갈아주고, 밥 떠먹여 줘야 합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나이 칠십 먹은 어른이 "왜 나 안 챙겨줘? 왜 밥이 맛없어? 왜 목사님이 나한테 인사 안 해?" 이러고 있다면, 그것은 몸은 어른인데 영혼은 젖 먹는 아이인 것입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진짜 어른은 '주는 사람'입니다. 우리 여수 교회의 어른들이 이런 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식당에서 "김치가 짜네, 싱겁네" 평가하는 미식가가 아니라, 묵묵히 설거지하는 청년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수고했다, 고맙다" 말해주는 공급자가 되십시오.
젊은 세대들은 돈 많은 어른을 존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지갑을 열어 밥을 사주고,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 길을 열어주는 **'섬기는 어른'**을 존경합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애, 이제 무엇을 더 소비하며 사시겠습니까? 더 좋은 차, 더 큰 집... 그거 갈 때 다 놓고 갑니다. 대신 **'사명'**을 남기십시오. "나는 우리 가정의 기도의 기둥이다." "나는 우리 교회 다음 세대를 위한 후원자다." 이 사명감이 여러분의 노년을 초라하지 않게, 누구보다 위대하고 풍성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3040 청년들, 사회생활 힘들지요? 직장을 돈 버는 곳(소비 수단)으로만 생각하면 지옥입니다. 그곳을 여러분의 선교지로 삼으십시오. "나는 월급 받는 소비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는 선교사다." 그렇게 섬김의 자세로 일할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다니엘처럼 높이실 것입니다.
[결론: 함께라면 갈 수 있다]
[결론: 함께라면 갈 수 있다]
(감동적이고 힘 있게) 말씀을 맺겠습니다. 인간은 참 이상한 존재입니다. 움켜쥐면 빠져나가고, 내어주면 채워집니다. 나를 위해 쓰면 공허하고, 남을 위해 쓰면 기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즉 **'사랑하는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2026년, 여수 앞바다를 보십시오. 바다는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지만 썩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쉼 없이 파도치고, 또 증발하여 구름이 되어 비를 내리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주기 때문에 바다는 푸른 생명을 유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인 물은 썩습니다. 소비만 하는 영혼은 병듭니다. 이제 흐르는 물이 되십시오. 섬기는 자가 되십시오. 가정에서 "여보 물 좀 떠와" 시키는 남편이 아니라, 먼저 물 한 잔 떠다 주는 남편이 되십시오. 교회에서 대접받으려 하는 성도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을 살피는 성도가 되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처럼 섬김의 앞치마를 두를 때, 우리 교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소비하는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섬기는 자아로 다시 태어나는 2026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Prayer)]
[기도 (Prayer)]
사랑의 하나님, 우리는 늘 목이 마릅니다.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 하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대접받으려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려 했습니다. 젖 떼지 못한 아이와 같은 우리의 미성숙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오늘 그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 안에 부어 주시옵소서. 받으려 하기보다 주려 하고, 소비하려 하기보다 섬기려 할 때 주어지는 하늘의 신비한 기쁨을 맛보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서로 종이 되어 섬기는 천국 같은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섬김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