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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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5편은 감사 예배시로 분류됩니다.
아울러 본 시는 할렐루야 시편 중 하나로 136편과도 한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시편의 구조 중에서 113편에서 118편으로 이어지던 할렐루야 시편이 잠시 중단되고 120편에서 134편까지의 성전 순례시가 이어지다가 다시 할렐루야 시편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시편의 묶음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성전 순례시의 마지막과 연결해 하나님을 예배 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는 순례시와 할렐루야 시의 연결고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135편의 특징은 창작시가 아닌 과거에 행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유대 공동체가 스스로 신앙의 정통성을 이어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 지를 잘 알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의 처음과 끝을 할렐루야로 시작해 끝을 맺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왜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성전순례시와 연결되어 왜 이스라엘 자손이 시온을 찾아야 하며, 여호와께서 왜 이곳에서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 이 시편은 우리의 노래여야 하며 우리를 향한 찬양과 예배의 촉구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본문의 이런 주제들을 생각하시면서 함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절 입니다.
1.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1절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할렐루야 라는 단어의 뜻이 여호와를 찬송하라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세번이나 반복합니다. 이는 하나님만을 찬양해야 함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여호와만을 찬양해야 합니까? 왜 이것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왜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십니까?
이유는 간단하고 단순하지만 너무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이후에 4절에서 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열거합니다.
과거에 행하셨던 수많은 구원의 은혜들을 기억하며 하나님만을 찬양하기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죽음에서 건져내주신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한데 거기에다 우리의 삶을 이렇게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은혜를 입은 자로 하나님만을 예배 해야 합니다. 그 은혜를 깨달은 자마다 한 없는 사랑과 자비를 경험한 자마다 온 마음과 열정을 다해 찬양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찬양의 은혜가 없고 식어져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행하신 구원의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놓으신 주님을 위해 더 온전하고 더 진정한 찬양을 올려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다시 한번 1절을 보겠습니다.
1절 후반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누가 여호와의 종들입니까?
2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그렇습니다. 본문에서 시인이 지칭하는 여호와의 종은 하나님을 예배 하기 위해 모인 모든 순례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일반적으로 구약에서 여호와의 종은 성전에서 성별된 일을 하는 레위인들을 지칭하는데 시인은 여호와 앞에 예배 드리는 모두를 여호와의 종이라고 지칭한다는 점 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전의 거룩한 일들을 하는 선지자나 제사장 들만이 여호와의 종이 아닌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 앞에 서 있는 모두가 여호와의 종임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종이 어떤 존재 입니까?
종은 주인의 소유이며 주인의 모든 영광을 위해 일하는 자들입니다. 종은 자신을 위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을 예수그리스도의 종 된 자라고 고백합니다.
그의 인생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고백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정욕을 치고 모든 것을 주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려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영원토록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주인은 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나의 정욕과 욕망이 주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나의 주인은 오로지 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사랑과 인도하심의 은혜를 먹고 사는 여호와의 종들입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위해 살아야 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 주변의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우리의 완전하신 주님이신 삼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알고 겸손히 그 앞에 엎드리는 여호와의 종들만이 온전히 주님을 예배하며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우리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주 앞에 나아가야 하겠습니까?
3절입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시인은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혹여나 성전의 화려함과 아름다움, 장엄한 제사 집례등을 보기 위해,, 이러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주변의 것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주님께로 집중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순히 교회에 나오는 것에만 의미를 둔다면 예배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자,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는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드리는 자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자로 세워지시기를 소원합니다.
구원의 하나님, 우리의 예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으시고 하나님과의 만남에 집중하시고
예배 가운데 주시는 그 은혜를 깊이 사모하며 묵상하는 예배의 회복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