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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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대할렐루야 시로 불리기도 하며 이스라엘을 향해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예배 하는 감사 예배시 이기도 합니다.
본문의 구조는 7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절에서 3절은 여호와께 감사하라
4절에서 9절은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라
10절에서 12절은 이집트에서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13절에서 15절은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
16절에서 20절은 광야에서 인도하신 여호와께 감사하라
21절에서 25절은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마지막 26절은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라고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에 따라서는 본 시를 역사 시편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본 시는 과거의 역사를 감사 예배의 노래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모든 역사 하나하나는 그 자체가 주의 인자하심의 선포 입니다. 이 노래가 예배 분위기 속에서 장엄하게 선포될 때 이 노래를 경청하는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을 붙들어 주고 계심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본 시의 또 다른 특징은 동일한 문구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1절 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대표적으로 1절을 통해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예배를 인도하는 제사장이 선창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러면 회중들이 대제사장의 선창에 이렇게 화답합니다.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런 식으로 제사장과 회중이 함께 상호 교감을 하며 하나님을 예배 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의 예배가 이런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본 시에서 알 수 있는 것 처럼 예배는 어느 특정한 직분과 사람만이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에 순서를 맡았다거나 할 때만 특별하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예배의 자리에 나온 자들 입니다.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 형식은 청중과 설교자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청중들은 잠시 시간을 내어 듣거나 때로는 구경하는 예배 구경꾼으로 전략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예배에 대한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본 시에서는 처음 부터 마지막 까지 제사장과 회중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교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도 마찬가지 입니다.
비록 순서가 나눠져 있고 청중과 설교자로 구분되어 있지만 모두가 함께 말씀 가운데 찬양과 기도 가운데 함께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도로 예배를 준비 해야 하며 설교자와 청중이 동일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간구하며 모두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예배의 은혜가 매주 마다 차고 흘러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다시 1절 말씀입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본 시는 감사 예배시 입니다.
그래서 시는 항상 여호와께 감사하라 는 말이 가장 앞서 언급 됩니다. 그리고 한글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원문에서는 ‘키’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원문에 따라 1절을 다시 보면 이렇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왜냐하면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왜냐하면 이 바로 히브리어에 ‘키’ 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26절 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감사해야 할 이유들을 반복해서 화답하게 하고 있습니까?
결국 하나님을 향한 감사도 훈련과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청중은 어린아이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반복하는 이유는 분명히 기억하고 각인 시키기 위함입니다.
신앙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는 자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의 삶에 대해 한숨을 쉬거나 부정적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의 말, 위로의 말 등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부지런히 가르치고 기억하고 기록하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단지 습득하고 익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과 생각과 행동에서 스며들고 묻어 나올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운동선수들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 위해 수많은 훈련과 땀을 흘립니다. 그냥 가만히 있다가 우승하고 메달을 거는 것이 아닙니다.
피나는 노력과 훈련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감사함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자하심과 선하심과 영원하심이 우리의 삶에 각인되어 있지 않다면 언제든지 우리는 불평과 원망의 길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아직도 우리의 말과 행동에 감사가 없고 원망과 불평이 있지 않습니까?
아직도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하시며 인자하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하나님은 다른 우상들과 같이 아무런 능력도 힘도 없는 생명이 없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찾는 모든 헛된 신들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자들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깨어지지 않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되 죽기 까지 사랑하신다는 이 약속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부터라도 우리의 모든 삶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믿음, 찬양과 말씀으로 가득차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감사를 훈련하며 감사가 우리의 삶에 각인될 때 우리의 삶이 살아나고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무슨 감사의 거리를 찾을 수 있습니까?
참으로 감사 할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감사는 내가 아닌 하나님으로 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도저히 감사하지 않고는, 찬양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삶을 회복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