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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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편은 1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 처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사람들의 비통하고 애절한 슬픔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37편 7절에서 9절까지의 내용에서 나라가 멸망할 때 자신들을 비웃었던 애돔과 학살을 즐기며 예루살렘을 유린한 바벨론의 멸망을 하나님의 공의에 호소 하고 있기에 저주 시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특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던 시온을 회상하기 때문에 바벨론에서 부르는 시온의 노래 로 시의 주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 시대적 배경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주전 722년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서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이후 주전 586년에 남유다도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게 됩니다. 
그 상황은 너무나도 비참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은 대부분 바벨론 군인들의 칼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성전은 불에 타서 없어졌습니다. 
그 전에 포로로 바벨론에 잡혀 왔던 자들은 조국의 멸망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더이상 하나님의 영광이 없고 하나님이 주셨던 땅을 빼앗겼습니다. 
그제서야 이들은 자신의 선조들과 자신들이 저질렀던 우상숭배의 죄를, 수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경고하셨던 그 말씀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런 멸망의 상황을 보며 수많은 대적들이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비웃었습니다. 이들은 열국에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중 에돔은 형제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바벨론과 합세하여 예루살렘을 학살하고 약탈하는 데 동참하며 그들을 비웃었습니다. 
이런 수치와 치욕이 가득한 모습을 보면서 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시온을 기억하며 통곡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 하던 그 기억과 대비 되면서 비참한 지금의 현실에 애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 하고 경배 할 수 있는 성전이 있다는 것, 보호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던 나라가 있다는 것, 
그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의 손길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이 모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빼앗기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신앙의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리며 생명 받쳐 지켜낸 신앙의 빛나는 유산을 우리 또한 잘 물려받고 유지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축복된 환경, 너무나도 자유로운 상황 가운데서 너무나도 초라하고 비참한 신앙을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주신 신앙의 자유와 예배의 은혜가 얼마나 큰 축복이며 은혜인지를 깨닫고 온 정성을 다해 주님을 예배 하시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감사를 놓치지 아니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시는 겸손함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앞서 서론에서 말씀 드린 것 처럼 본 시는 저주시로 분류되어 집니다. 
7절입니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앞서 말씀드린 것 처럼 에돔은 예루살렘이 멸망 할 때 군대를 보내 남겨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약탈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도주하는 자나 저항하는 자들을 모두 살륙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또한 남유다의 남은 땅을 빼앗고 여호와를 비웃었습니다. 
8절에서 나오는 바벨론은 어떻습니까? 
비록 하나님께서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셨지만 이들은 교만하였고 성전을 짓밟고 약탈하였습니다. 또한 성전의 기물을 약탈해 갔습니다. 
이후에 벨사살 왕은 왕궁 잔치에서 약탈한 성전의 기물을 사용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이들에게 그 행한대로 갚아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해 두 가지를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악한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에돔은 이스라엘과 형제의 나라 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의 형제 에서의 후예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라엘을 적대시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누군가에 대해 악한 말과 행동을 한다면 우리 또한 하나님의 공의와 행한대로 갚으신다는 심판의 원리 앞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합니다. 비록 시인이 자신의 힘으로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공의에 기대며 그들의 죄를 갚아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 세계지도에서 에돔과 바벨론을 찾을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항상 말과 행동을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조심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를 소원합니다. 
두번째 알 수 있는 것은 심판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한은 하나님이 갚으십니다. 
요즘 세상은 너무 감정적이고 쉽게 분노하며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시대 입니다. 
그래서 뉴스에서 너무나도 쉽게 폭력이 난무하고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사건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무조건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물론 주님은 사랑이시며 그 사랑을 배워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삶에서 당하는 부당한 상황에 대해서 무조건 참으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를 맡겨야 합니다. 
어떻게 복수하고,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보다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며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의 저주시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정한 하나님의 지혜 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원한과 저주는 하나님으로, 신앙으로 정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을 기도하며 기다려야 하며 그 가운데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바라보며 미래를 바라보며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실패는 우리를 아프게 하며 수 많은 것들을 빼앗게 하기도 합니다. 비록 그 것이 우리의 죄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만 반드시 하나님은 그 전능하신 손길로 회복함을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감이 오히려 새로운 회복의 시작이었던 것 처럼 지금의 손가락질과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주님의 공의 가운데 거하며 하나님의 회복하심을 확신하는 겸손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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