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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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13 NKRV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성경이 말하는 첫번째 성탄의 이야기

성경이 말하는 첫번째 성탄의 이야기는 사가랴이다.
사가랴는 하나님앞에 바르게 살고 사람앞에 존경받았지만 자녀가 없어 괴로워하던 가정입니다.
사가랴는 예배를 인도하던 중 천사를 만나 천사가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개인적인 기도의 응답이 아닌 예배 속에 있는 모두의 기도속에서 사가랴에게 응답이 이뤄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맥락에서 기도를 사용하시는 주님의 역사와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묵상해보게 됩니다.
특별히 성탄을 바라보며 성탄이 주는 세 가지 축복에 대해서 다시한번 떠올리기 원합니다.
성탄의 세가지 축복중 첫번째 성탄의 축복은 완벽한 예배자가 아닌 상처입은 예배자들이 누리는 것이 성탄의 축복입니다.
사가랴는 상처입은 예배자 입니다.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고 탁월해보이지만 그는 나이가 들었고 자녀가 없다는 결핍속에 있었습니다.
이 말은 당시의 상황속에 비춰볼 때에 더이상 힘이 없는 노인, 그리고 후대가 끊김으로 더이상 가능성이 없는 삶의 상황속에 있는 것이 사가랴였습니다.
서울 자가의 김부장이야기 라는 드라마를 예시로 목사님이 들어주시면서 남들이 볼때는 괜찮아보이는 인생이지만 열등감, 가족간의 단절,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는 중년의 모습이 마치 사가랴 같은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사가랴를 사용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완벽하지 않은 상처와 결핍이 있는 우리를 찾으시고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가 완벽하기에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와 결핍이 많은 존재이기에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상처와 결핍을 아시고,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성탄의 축복을 묵상하며 우리가 기도할 첫번째 기도의 주제입니다.
두번째 성탄의 축복은 상처는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빛나는 것임을 알게 해주는 것이 바로 성탄의 축복입니다.
사가랴의 상처를 누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상처를 통해 역사하시고 상처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통 해 상처는 더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간구함이 내게 들렸다고 하신 말씀처럼 사가랴의 상처, 결핍을 아시고 그것을 듣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가랴의 기도가운데 그냥 아이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귀하게 사용되어질 세례 요한을 주신 것처럼
우리의 아픔의 순간 고통의 순간을 지우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으로 해석시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가랴의 자녀없음이라는 깨진 부분은 세례요한이라는 금빛 조각으로 채우십니다.
우리의 상처와 아픔 또한 하나님은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을 다시 발견하고 누리는 것이 우리가 누리는 성탄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에 우리의 상처는 숨기는 것이 아닌 주님께 드러내며 나아가야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속에서 상처를 잊게 하시는 것이 아닌 상처와 결핍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을 보게하실 줄 믿습니다.
세번째 성탄의 축복은 우리의 연약함마저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사가랴가 능력이 출중하기에 그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제사장들 사이에서 제비뽑혀서 선 것입니다.
‘마침’ 이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는 우연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계획속에서 움직이셨습니다.
너의 간구함이 들렸다 이야기를 하며, 늙었음으로 기도를 포기한 사가랴에게 기도를 듣고 계셨음을 알게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조차도 현실 앞에 포기한 기도제목을 하나님은 다시 들고와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믿음으로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신실하심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해야할 마지막 주제가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현실적으로 계산되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실하기에 현실로 인해 기도를 멈추거나 내려놓을 지라도 그 모든 기도는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오늘도 기도하는 이유는 성탄의 축복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떠오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상처입은 예배자로 축복앞에 나아가는 예배자가 되자

말씀을 정리하며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예배자가 아닌 상처입었을지라도 나아오는 예배자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상처는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빛나기 위해 존재합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신실함이 아닌 하나님의 신실함으로 이뤄지는 것이 복음, 성탄의 의미입니다.
예전의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었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올때에 여전히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다시 기도를 올리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곁불이 되었을때 하나님의 역사를 함께 보게 되듯이 오늘 이 시간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성탄은 기다림으로 시작된 것처럼 오늘도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인도해줄 것을 기다리고 기대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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