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라 살기

사도행전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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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을 따라 살기

본문: 사도행전 17장 1-9절

찬송: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말씀의 문을 열며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를 떠나 164킬로미터나 되는 먼 길을 걸어 데살로니가에 도착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도 바울은 자기의 관례대로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세 안식일 동안 성경을 가지고 강론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을 3절이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바울은 인간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시기 위해 반드시 죽으셔야만 했고,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 죽은 자 가운데서 반드시 다시 사셔야만 했던 이 예수님만이 그리스도, 곧 메시아인 구원자라고 선포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4절입니다. "그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뿐 아니라, 바울과 실라를 따랐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따른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오늘 우리는 이 질문을 통해 "예수님을 따라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살펴보려 합니다.

바울과 실라를 따른다는 것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을 보면 "반드시"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여기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원어를 보면 이것이 "꼭 그래야만 한다"는 강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 그럴 것이다"가 아닙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고 다시 사신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계획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반드시 그 길을 가셔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구원이었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신 이 복음을 바울과 실라가 전했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4절)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뿐 아니라, 바울과 실라를 따랐습니다.
4절 끝을 보면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권함을 받고"라는 말을 원어로 보면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스스로 믿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따르나"로 번역된 원어도 수동태입니다. 직역하면 "함께 배속되었다", "합류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좋아서 따라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실라의 삶에 자신들의 삶을 일치시킨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의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은 빌립보에서 고난당한 바울과 실라의 초라한 행색을 보았습니다.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164킬로미터를 걸어온 그들의 힘든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따랐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그들이 따른 것은 사실 바울과 실라가 아니라, 바울과 실라가 따르던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좇는 바울과 실라의 삶에 자신들의 삶을 합류시켰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받아들이는 바울과 실라의 삶을 자신들도 기꺼이 선택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산다는 것의 실제

바울과 실라, 그리고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이 선택한 예수님을 따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고후 1:18-19)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멘" 합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확신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 신실하심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 작은 약속이라도 지키려고 애쓰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려면 우리 삶이 바뀌어야 합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삶에서 말씀을 따르는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내 편한 대로 사는 삶에서 정직하고 신실하게 사는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내 이익만 추구하는 삶에서 공익을 지키며 이웃을 섬기는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꺼이 손해를 보고 불편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 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신 것을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노아 자신이 홍수의 심판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면 망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노아 자신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하나님께는 아무 손해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공동묘지에서 한 줌의 흙으로 영원히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참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반드시 고난을 받으셔야만 했습니다. 3절의 말씀처럼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죽음의 고통을 받으시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산다는 것은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의 뜻을 위해 우리가 받아야 할 손해와 불편이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살려면 당장은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때로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이웃을 섬기려면 내 시간과 물질을 내놓아야 합니다. 교회 일을 하려면 내 편안함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살 때 사람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오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본받아 산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 기꺼이 손해를 보고 불편을 받아들이는 삶은 결코 손해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자유를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기꺼이 손해를 보고 불편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거꾸로 자기만 생각하는 마음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내 유익만 추구하던 사람은 늘 불안합니다. "더 잃으면 어떡하지" 염려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손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미 자기 욕심의 감옥에서 벗어난 자유인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신뢰 관계 속에서 누리는 자유를 얻습니다. 거짓말로 얽힌 관계는 늘 불안하지만, 신실함으로 맺어진 관계는 자유롭습니다.
정직하게 살면 당장은 손해를 봅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살 때 우리는 양심의 자유를 얻습니다. 밤에 잠을 편히 잘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떳떳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있을 때만 우리는 모든 형태의 자기 욕심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갈라디아서 5장 13절 을 통해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서로 사랑하기 위해 기꺼이 손해를 보고 불편을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넘쳐흐릅니다. 그 생명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자기만 생각하는 마음의 노예가 되지 않고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게 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닮아가는 것이며, 기끼어 손해를 보고 불편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를 행할 때 우리는 오히려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한 귀인이요, 귀부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비록 보잘것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생명을 힘입어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이 시대의 귀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시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반드시 고난받고 죽으셔야만 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죽은 자 가운데서 반드시 다시 사셔야만 했던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우리가 예수님을 머리로만 알고 주일에 교회만 나오는 종교인으로 만족하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옵소서. 이제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라 사는 참된 신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닮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게 하옵소서. 작은 약속이라도 신실하게 지키게 하옵소서. 정직하게, 신실하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기꺼이 손해를 보고 불편을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 참되게 사는 길임을 믿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자기만 생각하는 마음, 자기 욕심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차고 넘치는 주님의 생명을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와 참 생명을 날마다 누리게 하옵소서.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보잘것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귀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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