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받은 자처럼 용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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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본문 해설
I. 본문 해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용서라는 단어
용서하다.의 헬라어 두 가지 의미, 아피에미와 카리조마이
아피에미는 자유롭게 해주다, 풀어주다, 면하게 하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종종 지불이 완전하게 되거나, 청산된 빚의 개념이다,
카리조마이는 값없이 혹은 조건 없이 호의를 베푼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용서받는 것이 합당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을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용서라는 단어의 의미
이 단어들이 나타내듯이 용서는 희생이 많이 따르는 행동이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지면 그것은 빚을 지는 것이고, 누군가가 그것을 갚아야만 한다.
대부분 이 빚은 하나님께 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큰 사랑은 자기 아들을 보내어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그 빚을 갚으셨다.
II.용서 받은 자처럼 용서하라
II.용서 받은 자처럼 용서하라
오늘 하나님께 용서 받은 죄에 대하여 살펴보고 하나님의 용서가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알아 볼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용서를 알고 믿는다면 용서 받은 자처럼 우리가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용서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사랑의 공동체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용서를 실천하고 간구하는 은혜의 사람이 될 것이다.
A. 하나님의 용서
A. 하나님의 용서
1. 용서 받은 죄의 의미
1. 용서 받은 죄의 의미
용서 받는 죄의 의미
인간의 죄가 하나님께 대한 무한한 빚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빚에 대하여 어느 정도 관대하지만 유대인 사회에서의 빚은 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여 노예가 되게 할 수 있다.
심지어 로마 시대에는 자기 매매를 통하여 노예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가족이 진 빚이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다른 사람에게 노예로 파는 것이다.
용서 받는 죄의 크기
우리는 죄를 짓는 행위 자체를 고려하여 죄의 유무와 형벌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죄를 짓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당사자가 누구이냐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이것은 도덕 철학에 있어서 존재의 지위에 따른 판단의 원리이다.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도 그 사람의 지위가 어떠하느냐에 따라 죄의 크기가 달라진다.
친구에게 실수로 물을 쏟는 것과 왕에게 실수로 물을 쏟는 것은 다르다.
하물며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과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은 얼마나 다르겠는가?
모든 죄는 하나님 앞에서 사소하지 않다.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죄는 하나님을 향한 반감이고 대적이기 때문이다.
2. 신자가 받은 용서의 성격
2. 신자가 받은 용서의 성격
신자가 받은 용서의 성격 1-이미 받은 용서(영원한 용서)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음과 함께 영원한 용서를 받았다.
구원의 용서는 영원하기에 과거의 죄뿐만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에 짓게 될 모든 죄까지도 용서를 받는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죄에 대한 용서는 시간과는 상관이 없이 모든 죄를 단번에 영원히 용서하셨다.
우리는 이것을 근거로 죄 용서를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신자가 받은 용서의 성격 2-반복되는 용서(경험적 용서)
그러나 우리는 어떤 신자가 영원한 용서를 과신한 채, 아무렇게나 살면서 죄를 짓는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활용한다면 우리는 어두운 세상의 빛으로 살 수 없을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영원한 용서를 하신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에 묶여 사는 신자들을 향하여 용서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하신다.
이것을 가리켜 경험적 용서라고 한다.
세상은 죄에 속하였고, 신자에게도 여전히 잔존하는 죄가 있다.
그래서 신자라 할지라도 은혜에서 물러나면 죄를 짓는다.
평소에 폭력을 행사하던 사람이 한때 회개하였다고 할지라도, 은혜에서 멀어지면 다시 폭력을 쓰게 된다.
평소에 돈을 사랑하던 사람이 한때 회개하였다고 할지라도, 은혜에서 멀어지면 다시 돈을 가장 사랑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으나, 마치 아직 구원을 이루지 못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는 사람처럼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와 진노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도덕적 동기가 북돋워지는 것이다.
신자가 받은 용서의 성격 3-용서를 통해 사랑을 배움
성경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또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용서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던 사람들이다.
다윗, 베드로, 바울 등이 그렇다.
용서를 경험한 사람이 죄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용서는 우리 영혼을 위한 일용할 양식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물질들을 지체들과 이웃에게 나누어 굶주림을 해결하는 것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용서의 사랑을 나에게 어떠한 잘못을 저지른 모든 사람들을 용서함으로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교회와 인류 사회 안에서 지속되게 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다.
3. 하나님의 절대적 용서
3. 하나님의 절대적 용서
용서의 구분
용서를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람의 용서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본질적으로 같으나 그 완전성과 효과에 있어서는 서로 구분된다.
하나님의 용서는 절대적이지만 사람의 용서는 상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용서와 사람의 용서는 매우 밀접하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인간 공동체를 생각해 보면 분명해진다.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 안에 있는 사랑의 교통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시고, 또 그러한 사랑의 교통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충만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파괴된 사랑의 교통이 용서를 통해 재개되기를 바라셨다.
하나님의 절대적 용서
하나님은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를 용서하신다.
사랑이란 형이상학적으로 정의하면 “끊임없이 타자와 관계를 맺고자 하는 마음의 성향”이다.
관계가 없던 대상과는 관계를 맺고자 하고, 이미 관계를 맺고 있던 대상과는 관계를 심화하고자 하는 성향이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지만,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
하나님께서도 세 위격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이신 것이다.
상처라는 말 속에 담긴 세속적 자기 사랑
요즘 우리가 자주 쓰는 말에 ‘상처’라는 말이 있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집중해 있을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둔다.
상처에 대한 집착은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마음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상처’라는 말은 사랑의 공동체로 부름을 받은 교회에서 가능하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은 자신의 아픔과 고통에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마음의 관심사는 상처나 아픔이 아니라 지속되어야 할 관계이다.
하나님께서 반역하고 창조세계를 더럽힌 인간들을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면서까지 용서하신 것은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지속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시킨 일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한하고 영원하시기 때문에 인간들을 용서하고 구원하심으로써 관계를 맺고 싶어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어느 사형수의 노래와 사랑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극을 벌인 사람이 붙잡혀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는 교도소에 있으면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모든 장기를 기증하고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그는 교도소에서 평소 즐겨 부르던 찬송가가 있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하나님께서는 한때 인간이기를 포기했던 죄인들조차 사랑하시어 찾아오셔서 관계를 맺으신다.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이 사랑의 나타남이다.
Bridge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하시는 사랑의 옷을 입은 사람은 어떻게 용서하며 살아야 할까?
B. 우리의 용서
B. 우리의 용서
1. 기독교적 용서의 용어 재정의
1. 기독교적 용서의 용어 재정의
용서에 대한 재정의
용서는 보통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악을 행하여 손해를 입혔을 때, 그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법적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용서는 그 이상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용서는 계속 사랑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용서 이후에 더 이상의 관계를 지속하지 않겠다는 것은 복수하지 않겠다는 의미이지, 진정으로 용서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 사람이 기독교 신앙을 갖고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의 문을 통과했다는 의미다.
세상에는 아직 용서받지 못한 죄인들과 이미 용서받은 죄인들 뿐이다.
2. 인간의 상대적 용서
2. 인간의 상대적 용서
상대적 용서:인간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하여 인간이 자신에게 죄를 지은 사람드에게 베푸는 용서가 상대적 용서다.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은 그 죄를 기억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한 번 용서하고 난 후에도 사랑이 식어지면 다시 미워하고 복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이다.
인간의 용서는 소극적인 면에서 자기에게 지은 죄에 대한 다른 사람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희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용서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 그것을 배상받거나 상대방에게 책임을 물을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폭행을 가한 자에게 정당하게 법적 책임을 물어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거나, 경제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다.
법적인 호소가 어렵다면 개인적으로 보복할 수 있고, 그것도 불가능하면 죽는 날까지 치열하게 미워할 수도 있다.
용서의 적극적 측면
그런데 용서는 이 모든 행위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용서는 적극적인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지속하고자 하는 사랑이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신다.
용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용서를 받은 자이다.
12절에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받은 죄인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행한 모든 선한 일들을 잊어버리고 오직 십자가의 사랑으로 자기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만을 기억해야 한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용서에 사랑을 더함으로써 관계가 온전해진다는 것이다.
앞선 12절 말씀에서 용서를 실천하며 살 수 있는 근거를 말했다.
용서하는 삶은 아무나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악을 행한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힘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용서를 경험할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갈 때 용서 받은 경험으로 살 때 가능하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등 성령의 성품을 자기의 인격 속에서 열매로 맺으며 살아가고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용서를 끊임없이 실천하면서 분노와 복수, 상처 입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살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흔들리지 않는 평강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평화와 감사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베푸신 용서는 우리를 새로운 사랑의 관계로 불러 주시는 용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과 새로운 영적인 관계를 맺게 해 주셨고 그 안에서 이 세상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매어 주셨다.
이것이 용서의 적극적인 면이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용서의 완성은 사랑이다.
가깝게는 그리스도안에서 지체된 성도들과 가족들 그리고 멀리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서로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궁극적인 사랑의 공동체다.
Bridge
여기에서 우리가 품어야 할 의문이 있다면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용서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랑의 성향이 있는가?이다.
용서의 요건과 오류
인간이 이웃에 대하여 어떤 악을 행하였을 때, 그가 손해를 입힌 일차적인 대상은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잘못에 대하여 직접 심판하실 권리가 있다.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으신다.
이것은 신자이든 아니든 모두의 마음에 심겨진 율법, 곧 양심이 어떤 행위에 대하여 정죄하고 송사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손해를 입은 당사자 역시, 이차적인 대상이기에 용서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권한이다.
하나님께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개인적으로 복수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시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노아 언약을 통하여 그 권한을 정부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신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에 상호간의 두려움과 사랑 속에서 서로 존중해야 한다.
그래서 가해자에게는 책임을, 피해자에게는 적절한 배상이나 용서할 권한을 주셨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용서에 대하여 강조하시고 강제하신다.
교회 안에서 이 일을 실행하고 사회적 법정 소송을 금지하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스스로 자정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물론 교회 밖의 일에 있어서 세상 법정을 이용하는 것은 성경적이다.
중요한 것은 세상 법정에 호소하든지 교회법에 호소하든지 동기가 관련된 사람을 미워하여 그들을 벌받게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용서에 대한 오류의 예화
밀양이라는 영화를 볼 때, 어린 아이를 유괴하여 죽이고 가정을 망가뜨린 자가 교도소에서 하나님께 용서 받았다고 그 책임을 면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복음적인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회개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 손해를 입은 이웃에게도 동일하게 책임을 지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에게도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에게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다는 오만한 태도는 진정으로 회개한 태도가 아니다.
진정으로 회개한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한때 미워했던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C. 용서에 대한 경륜.
C. 용서에 대한 경륜.
하나님의 경륜, 용서
삼위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삼위 하나님처럼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였다.
죄의 커다란 능력은 바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의 관계를 단절시킨 것이다.이사야 59장 2절,
이것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보다도 자신을 더 가치있게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비참한 상태에 있는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돌아갈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먼저 용서해 주셨다.
이것이 바로 값없이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 용서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시작으로,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 땅에 참된 사랑의 왕국,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이다.
아가페를 경험한 까리따스
소수의 사람들이 자기만을 사랑하며 사랑하는 것이 결코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참된 사랑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 바 된 사람은 아가페를 경험한다.
아가페를 경험한 사람은 자신 안에 부은바 된 하나님의 사랑을 마치 자신의 사랑인 양 그의 의지를 움직이는 사랑이 생겨난다.
이러한 사랑을 가리켜 까리따스의 사랑이라고 한다.
우리는 까리따스의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용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용서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이웃에게 흘러갈 수 없다.
용서는 관계의 물꼬를 트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용서를 위한 주기도
예수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올리도록 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날마다 용서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존재들임을 상기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 받은 자임을 한순간도 잊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나아가 용서라는 힘겨운 의무를 수행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생각하게 하기 위함이다.
용서의 당위성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용서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으면 하나님께로부터 부은 바 된 사랑도 사라진다.
여기에는 용서의 삶을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숨어 있다.
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기도하고 은혜 생활을 잘 했다고 할지라도
오늘은 다른 사람을 향해 악학고 미운 감정을 품고 복수를 꿈꾸기 시작한다면 기도할 수 없고 예배할 수 없다.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은 경험했더라도 현재적 사랑은 사랑하는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용서를 하지 않는 사람의 가장 큰 피해자는 자기 자신이다.
용서의 열매
용서는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준다.
참된 자유를 원하는데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관계를 점검하라.
우리가 우리에게 용서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죄도 용서하지 말아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용서할 힘을 주신다.
우리가 용서할 때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되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표다.
용서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 경험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 희생하는 것이 어려울 때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마음을 가지라.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곧 육체의 양식과 영혼의 양식 용서의 사랑을 구하자.
III. 결론 및 적용
III. 결론 및 적용
렘 31:34, 사 43:25, 시 103:12, 시 130:3-4, 고전 13:5
용서에 대한 잘못된 4가지 생각을 버리라.
용서는 감정도, 잊음도, 변명도, 다 아니다.
잘못된 생각1. 누군가를 정말로 용서하기 위해서는 용서하고 싶은 느낌이 들어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가 기분을 상하게 할 때, 되갚아주고 싶어 한다. 용서가 느낌에 달려 있다면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잘못된 생각2. 용서란 상대방이 한 일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용서가 단순히 잊어버리는 것이라면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일도 생기게 된다.
잘못된 생각3. 용서란 어떤 사람의 죄를 없었던 것처럼 대하는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죄를 저지르게 될 것이고, 책임을 회피하게 될 것이다.
잘못된 생각4. 용서란 어떤 사람이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데 있다.
-우리는 반복되는 잘못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죄인이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그 누구도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해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용서에 대한 올바른 약속 4가지
당신은 용서를 혼자서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자.
용서는 결단(의지의 행동)이다.
-부채를 받든지, 당신이 지불하든지 선택해야 한다.
결단1. 나는 이 문제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 것이다(좋은 생각-어린이용).
-널 용서할께. 그리고 널 좋게 생각하기로 약속할께.
결단2. 나는 이 문제를 다시 들추어 당신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상처주지 않기-어린이용).
-다시는 너의 잘못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께.
결단3.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험담 그만-어린이용).
-너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께.
결단4. 나는 이 문제가 우리 사이를 가로막거나, 우리의 관계를 방해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영원한 친구-어린이용).
-우린 여전히 좋은 관계라는 약속할께.
-하나님이 당신을 절대적 사랑으로 용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용서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에 대한 빚을 대신 갚으신 복음을 기억합시다.
-상대방이 저지른 잘못이 작은 것이라면 간과합시다.
-간과하기 어려운 잘못일 경우 두 단계 절차로 용서를 다루라.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개인적)과 용서를 선언하는 것(상대방의 회개 후에 하는 관계적인 것)이다.
- 하나님의 경우 우리에게 그러셨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용서의 마음을 갖는 것).
-오순절 베드로 설교 후 찔림을 받고 회개하자 용서가 선포되어 하나님과의 화해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것이 모범이다. 엡 4:32
-상대방의 잘못을 다시 언급할 수 있나? 네 가지 결단의 약속들은 하나님의 용서의 주요 요소들을 요약해 본 것이다.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배상에 대한 논의 부록 C
(배상은 중요한 성경적 개념이다. 민 5:5-7, 삭개오 의 예, 배상의 유익, 원상복귀, 사회에 유익, 개선의 기회, 소망을 실현할 기회, 출 21:18-23, 고의 손상과 단순 손상에 대한 배상의 원리, 배상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태도, 배상은 잘못한 자에게 유익)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을 이겨내기
성경은 인격적인 용서에 대한 실제적인 지침들과 본보기를 제공한다.
성령님께서 용서할 능력과 의지를 주신다.
믿음의 형제들이 도울 수 있다.
-상대방의 뉘우침에 대한 당신의 마음을 표현하라.
어설픈 회개와 고백에 대해 말하라. 고백의 7’A
-죄악된 마음의 태도와 기대를 버리라.
죄로 가득한 마음의 태도와 기대로 인해서 지연(보류)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와 기대는 하나님의 용서와 완전히 모순된다.
-당신의 들보를 찾으라.
자기 혼자 옳다고 하는 마음의 태도를 점검하라.
-하나님은 선을 위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라.
이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특별한 기회인가?
-하나님의 용서를 기억하라.
일만달란트 빚진 자, 팻 모리슨과 미주 참조하자.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라.
참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코리 텐 붐 예화
화해와 대체의 원리
마5:24, 고전 7:11, 고후 5:18-20
용서는 하나의 사건이며 또한 과정이다.
용서의 네 가지 약속은 벽을 허무는 시간이다.
장애물을 무너뜨리고, 잔해를 청소하고, 수리 작업을 하는 과정을 화해라고 한다.
화해를 통해 관계의 개선을 낳는다. (적개심과 분리하고 화평과 우애한다.)
화해는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거기에서 다시 출발한다.
회개하는 자에게 신뢰를 회복할 기회를 주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관계 회복을 위한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세 가지 측면에서 화해를 위한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생각으로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떠오를 때, 빌 4:4-8 을 기억하고 기도하라.
이것은 대체의 원리를 적용하는 한 방법이다. 부정적인 생각들과 기억들을 긍정적인 것들로 대체해야만 한다. 이것은 용서의 첫번째 약속을 지키려 할 때 도움이 된다.
-둘째, 말로
눅 6:27-28, 친절한 말은 특히 상대가 죄책감이나 당황스러움으로 곤란에 처해 있을 때 중요하다.
고후 2:7
-셋째, 행동으로
어떤 사람을 사랑하듯이 행동하면 당신은 곧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C.S.루이스
사랑하는 행동은 당신의 감정을 바꿔주는 일 외에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에디슨 예화, 팀 내에서 실수한 자에게 다시 책임 있는 일을 맡겨 기회를 줌으로 팀에 회복시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