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05 새벽기도회: 빌립보서 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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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 자리로 인도하시고, 말씀와 기도의 자리를 베푸심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연결되고, 성령님께서 저희를 날마다 거룩하게 만드시니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이 시간도 삼위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어떤 뜻을 품고 계시고 어떤 일을 행하고 계시는지 알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더 알게 됨으로 하나님을 더욱 찬양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저희의 연약함은 감추시고 이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빌립보서 1:12-18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한 주를 잘 마무리하고, 주일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금요일을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내 인생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라고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한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주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차를 몰고 나갔는데, 예상치 못한 사고로 도로가 꽉 막혀버린 것입니다. 중요한 약속이니 마음은 조급하고, 식은땀이 나고, “아, 오늘 하루 정말 왜 이러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그 길을 제시간에 지나갔더라면 더 큰 대형 사고에 휘말릴 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지긋지긋했던 교통 체증이 나를 살린 ‘생명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불평은 감사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장애물들이 찾아옵니다. 실패, 질병, 관계의 깨어짐 같은 것들이 불쑥 찾아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불행’이라고 부르고,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의 사도 바울은 인생 최악의 교통 체증에 걸려 있습니다. 그는 당대 기독교 최고의 전도자였습니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예수님을 전해야 할 사람이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움직이지 못하는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의 열렬한 지지자들, 즉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러실 수 있으십니까? 복음을 전하는 가장 위대한 사도가 감옥에 갇히다니, 이제 땅 끝까지 전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이 끝이 난 것입니까?”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걱정했고, 교회의 앞날을 염려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울은 그들을 위로하고 복음을 전하다가 갇히게 된 자신을 보고 염려보다는 복음 앞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기 위하여 편지를 적기로 하고, 그것이 바로 빌립보서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감옥 안에서 감옥 밖에 있는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놀라운 편지를 보냅니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감옥에 갇힌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 되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요? 어떻게 감옥에 갇힌 것이 잘된 일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바울이 말하는 이 ‘역설적인 기쁨’의 비밀을 함께 깨닫고자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삶을 짓누르는 문제들, 특히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교회가 반드시 견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해 발견하길 바랍니다.
먼저 오늘 본문 12절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아주 독특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바로 ‘진전’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고대 사회에서 아주 역동적인 의미로 쓰였습니다. 군대가 숲을 통과할 때라던지, 선발대가 가서 나무를 베고 바위를 치워 길을 닦는 것을 ‘진전’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혔으니 복음의 길이 ‘막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복음 전도자인 바울이 옴짝달싹 못하게 갇혔으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말합니다. “아닙니다! 내 감옥행은 오히려 복음이 전해지기 위해 거친 숲을 헤치고 길을 닦는 ‘전진’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13절에 그 힌트가 있습니다. 바울의 매임이 누구에게 나타났다고 말합니까?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시위대’는 로마 황제를 지키는 최정예 경호 부대를 의미합니다. 당시 바울은 중범죄자 취급을 받았기에, 이 정예 군인들이 24시간 교대로 바울을 감시하였습니다. 바울의 손목과 군인의 손목을 아마 쇠사슬로 연결하여 바울이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보면 좋겠습니다. 바울은 입만 열면 예수님 이야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꼼짝없이 바울 옆에 묶여 있는 로마 군인은 바울을 감시해야 한다는 일 때문에 듣고 싶지 않아도 계속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는 웃기게도 강제로 바울의 설교를 들어야 했고, 바울이 기도하는 것을 보았고, 바울이 편지 쓰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교대 시간이 되어 다른 군인이 오면, 그 군인도 똑같이 바울에게 당해야 했습니다. 바울은 갇혀 있었지만, 사실은 로마 제국의 가장 핵심부인 황제 정예 경호원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독점적인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바울이 평소처럼 회당에서나 그 외의 다른 곳에서 많은 무리에게 소리치며 설교하였다면 이 군인들은 쳐다보지도 않았겠지만, 지금은 바울의 이야기를 꼼짝없이 들을 수밖에 없는, 오히려 역으로 ‘포로’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바로 이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묶여 있따고 슬퍼하지 마십시오. 나는 로마의 죄수로 묶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죄수’로 이곳에 파송된 것입니다. 내 상황은 인간적으로 보기에 최악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이 상황을 이용하심으로 로마 심장부에 그리스도가 전파될 수 있도록 길을 내고 계십니다.”
로마가 제국을 형성하고 유럽을 비롯하여 북아프리카, 그리고 중동에 이르기까지 유래가 없을 정도의 위대한 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로마의 포장도로가 있었습니다. 군대에 보급 물자를 빠른 시일 내에 전달할 수 있었고, 상업 같은 경제 활동에 있어서도 굉장한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로마 아래에 많은 국가가 복속된 이 상황이 바울에게는 오히려 복음을 더 잘 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촉매제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어떤 상황이던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파할 수 있을까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이 말을 통해 빌립보 교회에게 주는 위로가 무엇입니까? 교회의 상황, 혹은 복음을 전하다 붙잡힌 바울의 상황을 보게 될 때 꽉 막힌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데, 복음 전파에 유리한 상황이 아니라 불리한 상황과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바울은 우리의 시선에서는 어려움이지만,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그 막힘조차도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의 눈에는 실패일지라도, 하나님에게는 실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매임이 복음의 확장이 되었듯, 빌립보 교회가 이것을 통하여 위로를 얻고 어려움 앞에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담대함을 얻으며 빌립보 교회에게 찾아온 고난과 어려움도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는 복음의 ‘진전’이 될 수 있음을 알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힘들게 하는 것은 감옥이라는 ‘환경’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더 큰 역경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바로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15절을 보면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빌립보 교회 안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 것인데요. 한 부류는 16절에 나오는 사람들로 바울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 선생님이 감옥에 계시니 우리가 더 열심을 내어 복음을 전하자”라며 착한 뜻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다른 한 부류입니다. 15절과 17절에 나오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투기와 분쟁’, ‘이기적인 야망’으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17절 끝을 보면 더 충격적입니다.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열심을 냈던 자들입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교회 안에 바울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경쟁자들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감옥에 가자 “쌤통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이 어떤 가르침을 전했는지 목사님께서 빌립보서 설교할 때 말씀하셨지만, 오늘은 다루지 않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들은 바울이 없는 틈을 타서 자신의 인기를 높이려고 더 열정적으로 설교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감옥에 간 거야. 진짜 리더는 나야!”라며 바울을 더 힘들게 만들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상황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더 힘들겠습니까? 교회가 항상 일치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것에 힘써야 하는데, 교회 안에서 투기와 분쟁을 가진 자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다른 목적으로 인해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려는 사람들 앞에서 바울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화를 내거나 변명을 했을까요?
18절에서 바울은 위대한 선언을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바울의 대답은 예상을 뛰어넘는 대답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즉 “그게 무슨 상관이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저들이 나를 괴롭히려고 설교하든, 나를 사랑해서 설교하든, 그들의 동기가 불순하든 순수하든, 그들이 나와 다른 가르침을 전하든 사실은 하나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면 나는 충분하다. 나는 그것 때문에 기뻐하고 또 기뻐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 내에서 다른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을 배격하고 그들에게서 진리가 승리하든,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든 어느 상황이던지 오로지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진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보여주는 진정한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며 우리 교회가 갖추어야 할 모습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인생의 목적은 ‘자신의 명예’나 ‘자신의 편암함’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목적은 예수님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었습니다.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에게서 승리하여 진리가 전파되던지, 자신을 향한 투기와 분쟁을 가진 자들이 있더라도 바울은 오로지 그리스도가 전파된다면 “내 자존심 따위는 짓밟혀도 상관없다. 예수님만 흥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감옥 밖의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진짜 위로이자 도전입니다. “빌립보 교인 여러분,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저를 괴롭히는 사람들 때문에 분노하지도 마십시오. 우리가 교회로 모인 목적이 무엇입니가? 우리끼리 싸우고, 누가 잘났나 경쟁하고, 내 감정을 위로받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교회의 가장 주된 목적은 어떻게서든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라고 빌립보 교회를 향해,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 교회를 향해 바울이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면서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내 뜻대로 안 되는 감옥 같은 상황에 갇히기도 합니다. 또는 우리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우리가 입은 상처나 자존심이 아니라 오늘 말씀에서 나타난 바울처럼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 고난을 통해 예수님께서 드러나실 수만 있다면”, “이 아픔을 통해 누군가가 하나님을 알게 된다면, “비록 내 상황은 묶여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면”
이러한 마음을 품을 때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고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의 능력이자 신비입니다. 바울은 거짓 복음이 전파될 때 진리가 승리하게 된 것도,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이 비록 있을지라도, 그 모든 상황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는 것에 기뻐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에서 베드로가 말한 것과 같이 이러한 삶을 살 때 세상은 반드시 우리를 향해 “너희는 어떻게 고난과 여러움 속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느냐”라고 질문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라고 대답하며 세상에 복음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시며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존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되든 예수님만 전파하면 됩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교회, 그래서 어떤 고난이 찾아와도, 어떤 상황이나 사람이 우리를 흔들어도 결코 그것에 묶이지 않고 오히려 자유하며 나를 묶은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역설적인 기적을 경험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에게 말씀을 주시고 특별히 빌립보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교회 내에 있는 거짓 복음을 승리하는 것도,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이 있을지라도, 자신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자들이 있는 것에도, 그의 마음의 중심에는 항상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기뻐하였고, 자신을 묶고 있는 시위대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을 쉬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저희 교회와 모든 성도가 복음 전파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는 교회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강단에서 복음 설교가 선포되고, 그리스도가 주되심을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내는 복된 저희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한 주를 마무리하는 오늘도 그러한 삶을 살게 하시고 오늘 하루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