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설교 251206 토 [여호수아 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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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251206 토 [여호수아 14:1-15]

찬송가 215

기도

우리로 하여금 한 주를 안전하게 마무리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와 자비를 찬양합니다. 하루하루 특별할 일 없이 지나가는 것 같아 때로는 무료함을 느끼고, 일상의 타성에 젖어들어 게을러지기도 하는 것이 연약한 우리의 모습이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신 하나의 증거임을 고백합니다. 우리 삶의 무탈함이 하나님의 특별한 돌봄 위에 이루어진 일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가 지난 겨울을 생각하기에 더욱 그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개개인의 탐욕과 불의 아래에 무너질 수 있었기에 더욱 그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 어두웠던 밤에, 혹독한 겨울의 날들에 거리를 지켰던 우리의 이웃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주어진 이 평범하고 평안한 일상들을 우리로 하여금 귀히 여기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고,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안식을 위협하는 이 땅의 불의와 탐욕을 향하여 우리가 예리한 검처럼 설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대림의 절기를 지나가며 어둠 가운데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묵상할 때 더욱 그리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의 선언처럼 빛이 세상에 비추었기에 어둠 속으로 더욱 숨어들어가는 어떤 사람들과 같지 않고, 오히려 그 빛 아래서 등불을 들고 세상을 밝히는 이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땅의 교회가 그렇게 주님의 사랑과 자비의 등불을 들고, 정의와 공의를 밝히며 불의와 무자비함과, 타자의 생명을 보잘것 없이 여기는 탐욕에 맞서 빛을 비추이게 하옵소서. 우리가 우리 영혼에 그 빛을 품으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한 주를 마무리하고 맞이하는 주일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을 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의 크고 작은 일, 보이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 그 모든 일을 위하여 수고하는 손길들을 복되게 하옵소서. 형제와 자매의 한끼를 위해 봉사하는 주방에서도, 모든 예배가 어려움 없이 진행되도록 돕는 방송실에서도, 차가운 길거리에서 성도들을 돕는 주차위원들 중에도 주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그 모든 수고와 섬김이 주님의 손이 되는 은혜 있게 하옵소서.
이제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아멘으로 응답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 여호수아 14:1-15

설교

오늘 새벽에도 함께 말씀을 나누는 모든 분들께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에게 분배한 것이니라.’(수 14:1) ‘이것은’. 그러니까 여기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전체적으로 13-21장에서 땅 분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14-19장은 그 중에서도 요단 서쪽의 땅이 어떻게 분배되었는지를 전합니다. 그러니 ‘이것은’하고 13장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은 내용을 따라서 1-5절의 앞부분, 그리고 6-15절의 뒷부분,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뒷부분은 다시 6-12절과 13-15절로 구분해볼 수 있겠지요. 먼저 앞부분을 살펴보면 이 책은 요단 서편의 지파들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그 땅의 경계가 어떻게 되는지 이야기하는데 1-5절은 그 시작입니다. 14-19장으로 이어지는 작은 단락의 서문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다보니 이 서문엔 ‘설명’을 곁들여집니다. 2절에서 왜 ‘아홉지파와 반 지파’에게 땅을 나누어주게 되었느냐,이야기하고 3절에서 그 설명을 전합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말이 있지요.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 하나님이 아주 오래 전에 명령하신대로. 모세가 별세하여 지금 리더인 여호수아에게 지도력이 넘어가기전에 하신 명령대로. 요단강 건너 가나안에서 전쟁하기도 전에 하셨던 말씀대로. 그 말씀대로 사람들이 따랐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요? 곧이어 이렇게 씁니다.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제비뽑기의 추억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친구들과 내기하시며 사다리타기 해보신 적 있으시지요? 그런데 친구들이랑 제비뽑기나 사다리타기를 하다보면 꼭 이런 일이 생기던 기억이 납니다. ‘불공평하다’고, 누가 속임수 쓴 것 같다고, 잔뜩 열이 올라서 화를 내는 친구 말이지요.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 마음은 ‘내가 부당하게 피해를 입었다’는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재미로 하는 게임’에 지나지 않는데, ‘이기고 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요. 상황을 조금 바꾸어서 ‘금전적인 내기’가 걸린 것이라면 어떨까요? 교역자실에서 제비를 뽑을 때마다 제가 걸리게 되어서, 매일 아침마다 목사님들 커피를 사야 한다면, 일주일 내내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저도 점점 얼굴이 굳어지지 않을까요? 통장이 텅장이 되어가면서, 금전적인 손해라고 느끼면서 ‘어딘가 속임수가 있었다’하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제비뽑기, 사다리타기, 일종의 개개인의 능력이나 의지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일, 한편으론 운에 맡기면서, 믿음 안에서는 하나님께 맡기면서 수행하는 이 일에 ‘손해’가 일어나면 불편하게 됩니다. 그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겠지요. 이스라엘 백성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어떤 지파들은 큰 땅을 받고, 어떤 지파들은 작은 땅을 받습니다. ‘제비’를 뽑아서 말이지요. 분명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서 ‘우리가 저들보다 더 수고했다’ ‘우리가 더 많은 공적을 세웠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우리가 더 큰 땅, 더 비옥한 땅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상상해보건대 성경이 그 이야기들을 다루지 않지만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뽑아’ 5절에서도 결론 지으면서 이렇게 쓰고 있지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이 행하여’ 2절과 5절이 같은 이야기 같으나, 실은 다릅니다. 2절은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따라 일을 진행하였다는 사실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5절은 더 나아가지요.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렇게 나뉜 땅을 받아들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불만을 말하는 사람들, 정당함을 따지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믿음의 공동체는 그 결과를 하나님의 것으로 끌어 안았다는 것이지요.
땅을 나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대를 이어서 전해질 ‘기업’으로 받는 일이라 생각하면 둘도 없이 중요한 일이지요. 어쩌면 평생에 가장 중요한 일일지 모릅니다. 내 아들, 그 아들의 아들, 또 그 아들의 아들에게까지 이 땅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면 가장 중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지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일을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방법, 각 지파의 공적을 따져서 등수를 매기는 방식이 아니라 그 중요한 일을 ‘제비’를 뽑아 결정합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믿음의 공동체’에 중요한 일입니다. 이 이루어진 일의 결과, 심지어는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 순전히 운에 맡기는 것처럼 보이는 제비뽑기라는 행위 자체가 우리 생각하는 기준이나 합당함에 전혀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다하여서 끌어안는 것, 성경은 이를 ‘순종’이라 합니다.
교우 여러분, 다 공감하실 것 같다 생각합니다. 실은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우리 마음에 꼭 들진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비를 뽑은 땅은 실망스럽게도 덜 기름진 땅일 수 있고, 부당하다고 생각될 만큼 적은 토지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다 우리의 마음에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믿음의 공동체는 그것을 끌어안고 갑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여호수아 13:14은 비록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우리를 때로 실망스럽게 하더라도 그것을 끌어안을 수 있는 믿음의 이유를 이렇게 떠올립니다. ‘레위지파에게는 기업으로 준 것 없었으니,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었음이라.’
사실 이 말씀은 모든 지파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온 이스라엘에게 해당하는 말이지요. 유대인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이를 빌려 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이들의 기업이 되시기에 땅을 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가 이것을 잘 나타내고 있지요.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 그 땅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 그래서 하나님이 일년 내내, 연초부터 연말까지 살피시는 땅. 말하자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았다는 것은, 일년 내내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 실피심 속에 사는 삶을 선물 받았다는 것입니다. 땅은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시고 살피시는 기업 되심을 눈으로 보여주는 표지인 것이지요.
때문에 이스라엘은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 레위지파를 보면서, 땅을 기업으로 받은 은혜를 생각합니다. 그 땅에서 거둔 작물로 레위인들의 기업이 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 되셨음을 기억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우리에게 실망스럽고, 우리의 마음에 다 합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불만이 되고 불평이 되고, 때로 피해로 돌아와 하나님께 원망하는 마음이 들더라도 믿음은 우리가 그것을 끌어안고 가기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바로 그 결단을 우리에게 요구할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향하여 말씀하시고, 약속하시고, 이끌어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6절 이하에 이어지는 갈렙의 이야기에 우리는 다시 귀 기울이게 됩니다. 땅의 분배를 이야기하는 여호수아 13-21장 사이에서 갈렙의 이야기는 아주 독특합니다. 전체의 흐름과 잘 맞지 않아보이지요. 마치 동그란 검은 돌이 알알이 가득한 바둑판 위에 흐름을 끊어내는 둥근 하얀 돌 하나 있는 것 같은 인상입니다. 개인의 자랑, 개인의 고백, 개인의 이야기로 보이는 갈렙 이야기는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책을 통해서 갈렙 이야기를 그저 두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언뜻 보기에 이 본문은 갈렙의 자랑같기도 하고, 자신의 공적에 대한 값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각 지파의 기여에 따라서 땅을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제비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기로 하였던 앞의 이야기와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지요. 만일 이 이야기가 갈렙의 용기와 순종을 이야기하려고 했다면, 우리에게 갈렙처럼 담대하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선 제비뽑기 이야기와 반대되는 메시지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갈렙이 이야기하는 것을 우리가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12절 말씀입니다.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대로,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비록 성들이 크고 견고하고, 아낙사람들은 거인처럼 강대하여도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시겠다 말씀하셨다면, 그 땅을 얻는 것이 꿈만은 아닐 것입니다. 내가 그들을 쫓아낼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갈렙의 선언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공적을 치하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금 확증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 하나님이 말씀을 이루시겠다고 하신다면 어떤 큰 성벽도 거치는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믿음의 고백이지요.
그런 점에서 갈렙은 하나의 모델입니다. 여호수아 14:1-5에서 믿음이 요구하는 삶, 여호수아서 전체를 통하여 믿음이 요구하는 삶의 모델이지요. 하나님은 이 책의 처음과 끝에서 이렇게 요구하십니다. ‘너희는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수 1:7 ; 24:17)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그 말씀을 의지하여서, 비록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우리에게 기쁨이나 즐거움, 복락이 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때로 그 길 위에서 원망과 불평이 함께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뿌리 내려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라. 갈렙은 두려움과 불확실함으로 가득한 삶의 현장 안에서 그 믿음의 모델이 되어 오늘 본문에 전해지고 있는 것이지요.
교우 여러분, 믿음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힘껏 붙들며 살아가는 교우 여러분, 그 말씀과 우리 사이에 다리놓는 믿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그 믿음은 어쩌면 우리의 상식을 내려놓고 어리석어지기를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대대손손 이어질 땅을 두고 제비뽑기를 하는 어리석음처럼 말이지요. 그 믿음은 어쩌면 우리의 합리성과 이해타산을 따지는 계산을 내려놓고 용기있는 행동을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거인과 같은 아낙 자손들이 쌓아올린 두터운 성벽을 향해 걸음을 옮겼던 여든 다섯의 갈렙처럼 말입니다. 혹 믿음은 우리에게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 내려놓고 기꺼이 희생하기를 요구할지도 모르지요.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첫 열매가 되신 그리스도처럼 말입니다. 교우 여러분,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의 주어진 삶과 영혼 가운데, 또 가정과 일터와 교회 가운데 믿음의 부름, 그 요청에 응답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일이 우리에게 의심을 자아낼 때에도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순종의 걸음을 걸어나가실 수 있기를,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우리를 앞서 이끌어가는 삶이 되시길, 그리하여 그 말씀 속에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는 삶이 되시길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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