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1)_사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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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하루는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대중교통이 도착하고 퇴근을 기다립니다. 또 식사 시간이나 예배를 기다렸습니다. 교회의 지체들 중에는 만남을 기다리고, 좋은 시험 결과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지체들도 있습니다.
이 모든 기다림을 잘 살펴보면 우리가 본질적으로 무엇을 추구하는 존재인지 말해줍니다. 우리는 늘 어떤 결과를 기다리는데, 보통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무언가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또한 끊임없는 기다림의 역사입니다. 구약을 소개하는 책 중에 “대망(大望)의 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에서는 구원을, 광야에서는 인도하심과 약속을, 사사기와 왕정 시대에는 참된 지도자를, 포로기에는 회복을, 시가서들 속에서는 정의와 공의를 기다리는 백성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기다림은 결국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빛,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을 ‘오실 메시아에 대하여 증거하는 책’이라고도 부릅니다.

본문 문맥 해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이사야의 시대는 왕정시대에서 포로기로 넘어가기 직전의 시대입니다. 이 때 당시의 이스라엘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본문은 이스라엘의 상태를 한 단어로 표현합니다. “흑암.”
성경은 이스라엘이 흑암 중에 이유가 빛이 없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빛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빛’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백성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그들은 왜 빛이 없어 흑암 중에 있게 된 것일까요?
그들은 하나님 외에 또 다른 빛을 쫓았기 때문입니다.
더 편한 길, 더 실용적인 해결책, 더 눈에 보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선택들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통치자였던 아하스 왕은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예언을 듣지 않고 앗수르와 외교적인 동맹을 통해 상황을 타개해보고자 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자신들의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당장 눈에 보이고 자극적인 미신과 주술들, 우상들에 기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만 의지하지는 않는 삶. 이 교묘하게 혼합된 삶이 이스라엘을 스스로 흑암 가운데에 행하게 했다고 이사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9:1-2(적용)

연애를 하던 시절 캠핑을 하고싶다는 생각에 텐트와 몇 가지 도구들만 사들고서 첫 캠핑을 간 적이 있습니다. 기분 좋게 텐트를 치고서 멋들어지게 고기도 굽고 낭만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아무것도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텐트를 접고 철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날은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 텐트를 어떻게 접어야 할 지는 모르겠지, 큰 소리를 내면 옆에서 쉬는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어둠 속에서 두 명이 핸드폰 플래시 라이트만 켜고서 숨을 죽인 악전고투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캠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 1박 2일간 떠났던 두 번째 캠핑에서 저희는 깨달았습니다. 조명의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캠핑용 조명은 메인 조명과, 무드등이 있습니다. 메인 조명은 한 번 충전해 놓으면 1박 2일, 길게는 3일까지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우 밝습니다. 
무드등은 길면 5시간정도 쓸 수 있습니다. 작고 예쁘고 은은한 빛이 납니다. 실내에서 쓰기에 아주 적합합니다.  
메인 조명이 없이 무드등으로만 캠핑을 하게 되면 눈 앞은 조금 보여도 멀리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배터리가 오래 가지 않기에 곧 꺼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 속 이스라엘이 흑암 가운데 행하게 된 것처러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메인 조명”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럴듯한 무드등으로 자신의 앞길을 밝혀보려고 했습니다. 우리 삶 속에도 메인 조명과 무드등이 있습니다. 
안정과 성공, 인정받는 삶, 원만한 인간관계, 풍족한 재정 이것들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활력소가 되고 은은한 빛이 됩니다. 그러나 무드등은 결코 메인 조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은은한 빛으로 나의 삶을 비추려 하다보면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걷다가 얼마 가지 않아 꺼져버리게 됩니다.
무드등만 의지한 삶은 결국 우리를 흑암 속으로 인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 메인 조명, 하나님의 말씀을 켜고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기준이 되고 말씀이 우리의 판단이 기준이 되어 인생길을 걸을 때에 우리가 켜게 되는 안정된 삶, 성공한 삶, 인정받는 삶과 같은 무드등들이 더욱 빛이 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9:3-5

이사야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 회복을 선언합니다. 가장 어두운 곳으로 대표되는 스불론과 납달리 땅에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고 말입니다.
이 땅은 이방의 갈릴리라고 불릴 정도로 여러 인종들과 문화가 섞여있었기에 이스라엘 내에서도 좋은 인식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곳에, 예루살렘과 같은 멋진 곳이 아닌 가장 어둡고 낮은 이방의 갈릴리에 빛을 비추십니다. 
그리고 이 빛은 그 땅을 너머 나라로 퍼지게 됩니다. 빛이 비추자 백성들은 기쁨을 누립니다.
본문은 빛이 비추고 나라를 창성케하고 즐거움을 더하게 하자 이스라엘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기를, 풍성한 추수를 거두듯이, 승리 후 전리품을 나누듯이 기뻐했다고 표현합니다.  이들이 압제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주어를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주가’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디안의 날은, 이스라엘에게 기드온과 300용사를 통해 전쟁을 승리케하신 역사를 떠올리게 했을 것입니다. 
이 전쟁은 인간적인 수와 힘, 전략, 지혜가 아닌 하나님께서 행하신 승리였습니다. 
이 말씀을 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흑암 중에, 포로기 생활 가운데에서 빛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텐데, 그 구원은 자신들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만든 그럴싸해보이는 빛은 오히려 스스로를 흑암 가운데 더 깊이 밀어넣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어주시는 참 빛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빛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 흑암은 우리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더 나은 상황으로 더 나은 관계로 가기 위해서 우리의 힘과 우리의 지혜를 의지해서 가다보면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가짜빛마저 꺼져버리면, 우리는 오갈 데가 없는 상황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그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빛’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냥 빛이 아니라 환한 빛, 우리를 목적지까지 안전히 데려다 줄 수 있는 꺼지지 않는, 참 빛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빛이 무엇인지 압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빛’,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삶의 길을 온전히, 환하게, 꺼지지 않고 비출 수 있습니다.  

9:6-7

계속해서 본문은 이 빛이 어떻게 주어지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어떠한 대상을 이기기 위해서는 더 큰 힘, 더 강한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우리의 상식과 생각을 뛰어 넘으십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흑암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엄청난 능력, 이를테면 하늘의 군사들과 천사들, 천재지변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아기의 모습으로 보내어 주셨습니다.
아기는 힘이나 강함을 상징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작고 연약한 존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작은 존재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셔야 했던 신학적인 이유들은 많지만, 그 중에 오늘은 하나님께서 ‘빛’으로 오셨다는 사실에 집중하여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통쾌한 심판과 공의의 재판이 아니었습니다. 적당한 양의 빛은 어두움을 밝히지만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빛은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번쩍이는 빛으로 오셨더라면 아무도 앞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승리는 사랑과 희생이었습니다. 져야만 승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연약한 육신을 입고 흑암 중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시고 끝까지 희생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방법인 것입니다. 무력으로 어둠을 찢으신 것이 아니라 어둠 가운데 빛을 비추심으로 자연스레 어둠이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아기의 이름은 ‘참 빛’이신 그분의 정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의 본체를 드러냅니다.
그 아기의 이름은 기묘자요 모사입니다. → 어둠은 우리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만이 걷어낼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 어둠은 우리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만이 걷어낼 수 있습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 → 어둠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평강의 왕입니다.
→ 어둠이 주는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관계의 단절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회복되고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흑암 중에 자신의 아들을, 한 아기로 주실 것이라는 이 말씀에 보증을 걸어주십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하나님 그분의 열심으로 이루리라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라는 보증이 구약이 대망의 책이 될 수 있는 이유요, 우리가 소망중에 기다림을 가지게 되는 이유입니다. 
나의 노력과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열심으로 보내신 빛이 우리의 어두움을 밝히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심’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기다렸던 빛에 대한 하나님의 열심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이방의 갈릴리였던 스불론과 납달리의 땅, 가버나움에서 사역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됩니다.
그리고 이 열심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빛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어둠의 압제로부터 승리하였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오셔서 계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앞을 비추셔서 어둠 가운데 길을 잃지 않고 구원의 여정을 걷게 하십니다.
나를 향한 하님의 열심이 내 안에 그 빛을 품게 하셨습니다. 그 열심이 천국을, 구원을 기대하게 하셨습니다.
참된 빛,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일에 예수의 지혜로, 예수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보호하심을 의지함으로, 예수님의 평강으로 살아가는 복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 가장 깊은 이유는 참된 빛 대신 다른 빛을 붙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다른 빛을 붙드는 이유는 결국,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나눈 복음은 정반대의 선언을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사 9:7)
이스라엘의 구원은 그들의 열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이루어진 구원이었습니다.
가짜 빛을 진짜 빛이라 우기는 흑암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라는 메인 조명을 붙잡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수많은 무드등들이 내가 진짜라고 우리를 흔들 때마다 변함없는 하나님의 열심이 저와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우리가 참 빛을 붙들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힘, 우리의 결단, 우리의 의지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열심, 우리를 위해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사랑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열심이 반드시 우리를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인간이 되어 오셨고, 그 열심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 열심이 부활하셨고, 그 열심이 지금도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삶이 빛을 대망하며 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구약의 백성들이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렸다면 우리는 오신 예수님을 누리고 또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나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열심을 힘입어, 우리 안에 이미 임한 빛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삶,
그 빛이 주는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는 삶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어둠을 이길 수 없음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에게 빛을 보내어 주셨음
가짜 빛에 흔들리지 말고, 참 빛을 가진 자로서 살아가길
그 빛이 주는 지혜와 능력과 보호하심을 경험하고 평강을 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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