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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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움

시편 8:1–9 NKRV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친구에게 감동을 받거나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는가? 뭔가 할 때 나도 꼭 끼워주려고 할 때, 내 고민이나 문제에 아주 진지하게 생각해줄 때, 나의 배려나 친절을 당연시하지 않고 고마워할 때, 말하지 않아도 사소하게 챙겨줄 때, 별일 아니여도 나를 특별하게 말해줄 때, 매년 생일마다 잊지 않고 먼저 연락해줄 때, 힘들다고 말하면 ‘어디야?’라고 대답해줄 때 등등 여러 가지로 큰 일이 아니라 사소한 일에서 많이 감동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은 일상에서 친구로부터 소소하게 행복을 느낄 때,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게 된다.
성경에서도 작은 일상 속에서 사랑을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오늘 읽은 시편을 기록한 사람이 누구인가? 다윗이다.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1절과 마지막 9절에서 동일하게 여호와 우리 주여,라고 외치며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이 시편 8편의 전체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어마어마하게 위대하심을 나타내기 위해 이렇게 강력한 말로 선포하는 고백인 것이다. 다윗은 왕이다. 왕에게 주인이라는 개념이 있을까?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의 참 주인이심과 동시에 자신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의 백성들 또한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고백인 것이다. 그러한 이스라엘 나라의 주인이자, 자신의 삶의 주인이신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이름과 명령이 그 위대하심이 세상 곳곳에서 너무나 멋지게 드러나고 있고, 엄청나게 아름답고 화려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다고 한다. 세상 어디에도 하늘이 없는 곳이 없지 않은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영광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느낌이냐면, 여러분이 만약에 세계적인 엄청나게 큰 미술관에 갔는데 빈센트 반고흐의 작품으로 가득한 곳에 온 것이다. 작품이 수 천가지가 있는데, 한 작품 당 100억원 이상의 가치를 가졌다고 하면 어떨 것 같은가? 당연히 반응은 ‘와.. 이게 도대체 이렇게 비싼 작품이 몇 개나 되는거야?’라며 엄청나게 놀라면서 다닐 것이다. 그러면 그곳의 미술관은 반고흐가 만든 작품으로 가득하기에 그의 명성과 영광이 가득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지으셨다. 소나무 한 그루에 얼마인 줄 아는가? 보통 평균적으로 3000만원이다. 많으면 억대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소나무 뿐만 아니라 다른 나무도 한국에만 몇 그루일까? 셀 수 없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땅을 1,000평 정도 2m 정도의 흙을 메우려면 5,4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공기는 어떠한가? 10분에 2리터에서 3리터의 산소를 소비한다. 인터넷에 의료용 산소를 검색해보니까 쿠팡에서 5리터 당280,000원의 가격이다. 여러분이 1시간 산소를 사용하면 1,680,000원을 사용한 것이다. 여기에 하루 24시간를 곱하면 하루에 사용하는 가격은 40,320,000원의 공기를 사용한 것이다. 여기에 365를 곱하면 14조 6억이 나온다. 그것도 쿠팡 가격으로 말이다. 여기에 여러분의 나이를 곱하면 지금까지 하나님이 쏟아부으신 은혜에 감사를 안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부어주시는지 느껴지는가?
그러면서 하나님은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는게 무엇으로 잠잠하게 하시는지 아는가?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잠잠하게 만드신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과 젖먹고 있는 아기는 무슨 힘이 있겠는가? 더군다나 그 작은 아이들의 입으로 뭘 하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하나님께 붙들리면 그 작은 애기들이 대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누구로부터 오는가? 하나님으로부터 권능, 파워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500kg의 무거운 것도 번쩍드는 사람과 다니는게 안전한가, 아니면 무거운 것도 들어본 적도 없는 힘이 쎄지도 않은데 허세가 가득한 사람과 다니는게 안전한가? 누가봐도 500kg의 무게를 가볍게 드는 사람이 든든할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어린 아이가 붙어있으면, 더군다나 그 사람의 자식이면 그 아이를 함부로 건들일 수 있겠는가? 털끝하나도 건들일 수 없다. 주님께 날마다 기도하는 사람이 그래서 어느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왜? 능력과 파워가 어마어마하신 분에게 붙어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다음 3-4절을 보자.시편 8:3-4
시편 8:3–4 NKRV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여기서 주님의 손가락으로 무엇을 만드셨는가? 하늘과 달과 별이다. 당시 고대 사람들은 하늘에서 빛나는 모든 것들을 어마어마하게 신적 존재로 생각했고, 그것들을 신으로 숭배했던 문화가 만연해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그저 하나님이 가볍게 만드신 것을 표현한 것이다. 3절에 주의 손가락이란 딱히 특별할 것이 없는 것이라는 구약의 은유적인 표현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들을 신으로 섬기고 살아가지만, 우리를 위해 가볍게 지으셨지만, 아름답게 만드신 하나님을 다윗은 하늘을 보면서 감탄하며 느꼈다는 것이다. 그렇게나 위대하신 하나님을 보면서 마치 대자연에서 조그만한 자신을 느끼는 그 벅찬 감동으로 사람이 무엇이 자랑할게 있다고 주께서 인간을 그렇게까지 생각해주시고, 인간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사람을 돌보시냐는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쥐꼬리만 한 인간을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벅찬 감동으로 다윗은 노래하며 고백하는 것이다.
시편 8:5–6 NKRV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하나님이 왜 이렇게까지 인간을 돌보시는지에 대해 5절에 이렇게 답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셨다고 한다. 이것은 사람이 절대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원어적으로 보면 천사들과 같이 하늘에 존재들보다 분명하게 인간이 조금 낮게 지어졌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닮았다는 것, 형상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손과 발과 눈과 코, 입과 같이 육체의 모습이 닮았다는 것인가? 아니다. 성경에 나온 하나님이 인간처럼 묘사된 표현들은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인간에 빗대어 알려주신 것이지,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인간의 생김새를 닮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닮았다는 것, 형상은 마치 자식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모습이 또는 그 모양이 마치 부모와 같다라는 것과 같다. 사람과 동물의 큰 차이점이 무엇인가? 동물은 무리를 지어서 생활하거나 자기 동족을 다스리는 것 외에는 다스리는 모습이 없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자연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동물과 식물을 키울 수 있는 것, 동물과 자연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것 등등 이 모습이 누구를 닮은 것인가? 만물을 아름답게 가꾸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닮은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 왕의 이미지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러한 위엄과 왕의 자녀라는 가치를 부여하신 것은 인간 스스로 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인간들을 위해 행하신 것이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 외부에서 우리에게로 온다. 우리가 받은 지위의 핵심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것이지 우리 안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형상은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과 소통하며 인간만이 지, 정, 의(지성, 감정, 의지)로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알 수 없으신 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시고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에는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었고,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허나, 인간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길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하여 친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 친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셨다. 그게 지금 현재 무엇으로 주어졌는가? 바로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수준에 맞춰주셔서 마치 부모가 어린 아기에게 말을 가르쳐주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하나님의 일부분이지, 전부를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영원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주님의 영광과 위엄 앞에 엎드리지 않을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두렵지 않다면, 하나님에 대해 모른다는 증거이다. 그러니 성경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알 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뜻과 마음을 알 수 있고 그 뜻대로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내 영혼의 만족과 기쁨을 누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다.
시편 8:7–8 NKRV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와 양과 같은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가축뿐만 아니라 야생동물, 하늘의 새, 바다의 물고기, 바닷길에 다니는 것까지 우리에게 다스릴 영역을 주신 것이다. 바닷길에 다니는 것은 심해 깊은 곳에 사는 물고기들을 말한다. 우리가 잘 모르는 야생 동물들, 심해의 물고기들까지 우리의 관리 아래에 두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세계 안에서 인간에게 책임 있는 왕처럼 다스릴 수 있도록 할만큼 저와 여러분을 너무나 귀하고 가치 있게 만들었음을 기억하기를 소망한다. 이러한 세상을 폭군처럼 마음대로 부수면서 함부로 대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를 돌보고 보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 왕의 자녀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며) 하늘로부터 그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왕의 자녀로서의 역할과 (수평으로 팔을 휘두르며) 이 땅에 모든 세상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누구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처럼이다.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두를 사랑하셨다. 더군다나 의인이 아니라 죄인에게 시선이 있으셨다. 세상의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고 손가락질하는 세리와 창녀, 술꾼들, 죄인들의 친구셨다. 우리는 사람들의 어떠한 행동으로 급을 나누려고 하는 모습들이 있다. 교회에서 모범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거나, 교도소에서 흉악범을 보고 ‘저 사람은 극악무도하니까 사형선고 받아도 마땅해’라는 생각을 하며 혐오하는 모습들이 여러분에게도 있지 않는가 돌아보자. 우리와 교도소에 있는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성경에 대해서 잘못 오해한 것이다. 이 세상에 어떠한 인간도 선한 사람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선하시다. 왜냐하면 우리는 조금이라도 말씀을 읽는 것, 기도 생활하는 것, 교회에서 훈련하거나 섬기는 것을 많이 힘들어하고 꺼려한다. 이 육체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범죄한 이후로 가지고 있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 본능이 살아서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것을 훈련까지 해가면서 힘들어하는 것이 이러한 이유이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악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하는가? 먼저 나부터 내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누가 필요한가?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예수님이 자신의 삶에서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교만의 시작이요. 곧 죄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아담 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이 필요하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뉴스에 흉악범을 볼 때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볼 때, 하나님과 끊어진 죄의 관계가 아니었어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났으면 좋겠다는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봐야한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슬픔과 좌절의 삶에서 기쁨과 감사로 변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곧 원수같은 사람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게 만드는 죄를 미워하라는 것이지, 아름답게 창조하신 그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곧 사랑의 마음이다. 주님은 그 눈으로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하나님이 먼저 그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소망한다.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여러분의 삶에 참된 평안이 가득할 것이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마음에 평안이 있겠는가? 늘 잠이 안오고 스트레스만 가득한 삶이 될 것이다. 오늘 함께 기도할 때 그 십자가의 사람으로 원수같은 우리를 사랑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 왕의 자녀로 불러주신 그 사랑에 감사하기 원한다. 나도 예수님처럼 원수같은 그 사람이 하루 속히 주님을 만나 변화되기를 원하는 그 사랑의 마음을 부어달라고 고백하기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하여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왕같은 자녀된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 안에서 터져나오는 고백은 무엇인가?
시편 8:9 NK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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