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유하는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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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하는예배, 길위의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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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享有)하는 예배: 여운이 남는 거룩한 울림

본문: 누가복음 24:30–32, 시편 34:8
시편 34:8 NKSV
8 너희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깨달아라.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큰 복을 받는다.
누가복음 24:30–32 NKSV
30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려고 앉으셨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31 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한순간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도입: '소비'하는 시대, '향유'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합창단 여러분, 반갑습니다.
우리는 참 빠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유튜브는 '쇼츠'로 짧게 보고 넘기고, 음악은 1분 미리듣기로 판단하고, 커피는 카페인을 충전하기 위해 급하게 들이킵니다. 무언가를 진득하게 맛보고 누리는 것보다, 빠르게 '소비'하고 '처리'하는 것이 익숙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조금 다른 삶을 선택한 분들입니다.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요양원의 좁은 복도, 병원의 병실, 누군가의 작은 방으로 찾아가 노래하는 사람들. 노래를 '소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를 그 공간에 채우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향유하는 예배"**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예배를 해치우는(Doing) 것이 아니라, 맛보고 누리는(Savoring) 예배. 그 거룩한 여운이 우리의 일상과 사역 현장에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말씀을 통해 나누겠습니다.

1. 향유(享有): 가졌다면, 누려야 합니다

먼저 '향유'라는 단어를 다시 봅니다. 누릴 향(享)에 있을 유(有). 단순히 소유하는 것을 넘어, 내게 있는 것을 기뻐하고 누린다는 뜻입니다.
현대적인 언어로 바꾸면 이것은 **'거룩한 애프터테이스트(Aftertaste, 여운)'**입니다.
정말 좋은 영화는 극장을 나와서도 며칠간 그 장면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정말 맛있는 커피는 다 마신 후에도 입안에 향긋함이 감돌죠. 예배도 그렇습니다. 주일 한 시간 드리고 "아, 끝났다" 하고 잊어버리는 예배는 '소비'된 예배입니다. 하지만 월요일 출근길에도, 화요일 학교 가는 길에도 문득 찬양의 가사가 떠오르고 마음이 뜨거워진다면, 그것은 '향유'된 예배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맛본다"**고 표현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Taste) 알지어다." (시 34:8)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벧전 2:3)
여기서 '맛보다'에 쓰인 헬라어 *'게우오마이(γεύομαι)'*는 단순히 혀끝을 대보는 시식이 아닙니다. 온 몸으로 경험하고, 그 맛을 기억하여 다시 갈망하게 되는 전인적인 체험을 뜻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도 이 감각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존 칼빈(John Calvin)**은 이 세상을 **"하나님의 영광이 펼쳐지는 극장(Theater of God's glory)"**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관객으로서 그 영광을 보고 감탄하고 즐기도록 초대받았다는 것이죠.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영혼의 감수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화음을 맞추며 전율을 느끼는 것, 그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심어주신 거룩한 능력입니다.
현대 신학자 **N.T. 라이트(N.T. Wright)**는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우리는 기쁨을 위해 지음 받았지만, 너무 쉽게 값싼 쾌락으로 만족해버린다."
우리는 쾌락을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유하는 존재로 부름 받았습니다.

2. 엠마오로 가는 길: 이동이 곧 예배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24장을 보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나 화려한 회당에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길 위'**로 찾아오셨습니다.
실패감에 젖어 터벅터벅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의 길. 그곳에는 강대상도, 찬양대도, 조명도 없습니다. 흙먼지 날리는 길바닥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길 위에서 제자들과 보폭을 맞추시고 대화를 시작하십니다.
합창단 여러분, 여러분의 사역이 바로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악보를 챙겨 들고 요양원으로 향하는 승합차 안, 병원 복도를 걷는 그 순간, 좁은 엘리베이터 안. 그곳이 바로 엠마오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도착해서 노래할 때"만 역사하시는 게 아니라, "가고 있는 그 길 위에서" 이미 여러분과 함께 걷고 계십니다.

3.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향유의 핵심

예수님이 떡을 떼어 주실 때 제자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예수님은 곧 사라지셨지만, 그들에게는 강렬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눅 24:32)
이것이 '향유하는 예배'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예수님은 눈앞에서 사라지셨지만, 가슴에는 **'뜨거움'**이 남았습니다. 팩트(정보)만 남은 게 아니라, 임재의 온기(정서)가 남은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전해야 할 사역의 본질입니다.
여러분의 노래는 길어야 5분, 10분이면 끝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떠난 뒤, 차가운 병실에 남겨진 환우분들의 마음에 무엇이 남아야 할까요? "노래 잘하네"라는 평가가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뜨거움', '거룩한 여운'**이 남아야 합니다.
뇌과학과 음악 치료 연구들은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줍니다.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어르신들도, 익숙한 찬양과 멜로디를 들을 때 뇌의 안쪽 깊은 곳, 감정과 정서를 담당하는 영역이 깨어난다고 합니다. 말이 끊긴 곳에서 노래가 기억을 연결하고, 존엄성을 회복시킵니다.
여러분의 찬양은 단순한 위로 공연이 아닙니다. 희미해져 가는 영혼의 감수성을 깨워, 그분들이 다시 한번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게 하는" 거룩한 식탁입니다.

4. 적용: 우리가 먼저 '맛본 자'가 되기 위하여

그렇다면, 이 향유하는 예배를 어떻게 흘려보낼 수 있을까요?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내가 맛보지 못한 맛을 남에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배에 감격하지 않으면서 남을 감동시킬 수는 없습니다. 자칫하면 우리는 '예배자'는 사라지고 기계적인 '기능인'만 남을 수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 팀에게 **세 가지 구체적인 '향유의 습관'**을 제안합니다.
① 이동 시간을 '엠마오 워크(Emmaus Walk)'로 만드십시오.
사역지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핸드폰만 보지 말고 옆 사람과 짧게 나누십시오. "오늘 부를 곡 가사 중에 내 마음에 와닿은 구절은 어디야?" 이 짧은 질문이 이동 시간을 예배의 준비 시간으로 바꿉니다.
② 연습을 '영적 시식(Tasting)' 시간으로 삼으십시오.
음정과 박자만 맞추는 건 기술입니다. 연습 중간에 1분만이라도 멈추고 기도합시다. "주님, 이 가사의 고백을 제가 먼저 맛보길 원합니다. 제 마음이 먼저 뜨거워지게 하소서." 내가 먼저 울림이 있어야, 소리에 생명이 실립니다.
③ 사역 후 '여운(Aftertaste) 나누기'를 하십시오.
사역이 끝나고 "수고했어, 밥 먹으러 가자"로 끝내지 마십시오. 아주 잠깐이라도 좋습니다. "오늘 만난 분들 중 누구의 눈빛이 기억에 남나요?"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어떤 위로를 주신 것 같나요?"
이 나눔은 현장의 은혜를 증발시키지 않고, 우리 영혼에 깊이 새기는(저장하는) 작업입니다.

[맺는말]

사랑하는 여러분,
베드로는 외쳤습니다. "너희는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다!"
이미 맛본 사람은 그 맛을 압니다. 그래서 다시 찾습니다. 그리고 그 맛을 모르는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여러분의 목소리가, 여러분의 표정이, 그리고 여러분이 내미는 따뜻한 손길이 누군가에게는 생애 처음 맛보는 '하나님의 따뜻함'일 수 있습니다. 혹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시 한번 맛보는 '천국의 맛'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이 예배를 깊이 향유합시다.
그래서 우리가 지나간 모든 자리, 모든 병실, 모든 골목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짙은 여운으로 남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종종 사역이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처리'할 때가 많았습니다.
엠마오 길 위에서 제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셨던 주님, 오늘 우리에게도 찾아와 주십시오.
우리가 먼저 주님의 선하심을 깊이 맛보고 누리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노래하는 곳마다, 메마른 영혼들이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며 살아나는 '향유의 기적'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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