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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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18–22 NKRV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도입 (서론: 잔치 속의 불편한 질문)

바로 앞 구절에서 예수님은 세리 마태(레위)를 부르시고, 그 집에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이곳은 기쁨과 해방이 넘치는 축제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외부에 있던 두 그룹,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질문을 던집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18절)
그들의 질문 속에는 "왜 당신들은 우리처럼 경건하게 행동하지 않습니까?",
"왜 당신들은 우리의 전통과 형식을 무시합니까?"라는 비판과 정죄가 담겨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 세 가지 비유로 답하십니다.
세가지 비유를 살펴보기 이전에 이들에게 금식이란 어떤 의미였고, 우리에겐 이 본문 말씀의 금식은 어떤 것들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징검다리

바리새인들은 금식이라는 ‘수단’을 ‘목적’으로 둔갑시켰습니다.
금식의 본래 목적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과 회개였으나,
그들에게는 자신의 의를 자랑하고 남을 정죄하는 외적인 껍데기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위한 수단이 금식이 되어야 하는데,
금식을 위한 금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금식하지 않는 자들을 정죄하고
금식하는 자신들을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입니다.
너무나 좋은 전통이고, 금식이라는 귀한 수단이지만
이제는 그 전통을 지키기 위한 삶을 살고 있을 뿐,
그 전통이 왜 생겼고, 무엇을 위한 전통인지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종교개혁의 역사 속에서도 발견합니다.
16세기,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황의 권위, 면죄부 판매 등
전통과 사람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었습니다.
신앙의 본질인 ‘구원의 은혜’는 사라지고, 인간의 행위와 제도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바로 이때, 마틴 루터 같은 개혁자들은 이 전통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들의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라는 다섯가지 오직이라는 것을 중심으로
사람이 만든 전통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라는 본질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고,
지금의 개신교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21세기 현재 한국교회 또한 마찬가지 인것 같습니다.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보다 위에
사람의 전통과 종교 행위와 형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내가 왜 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예배 순서들과 교회의 여러가지 법들 속에서
그저 지금까지 지켜온 전통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새로운 것들을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랫동안 유지해온 전통이라고 해서 다 옳은 것도 아니고,
새로운 방식이라고 해서 모두 틀린 것도 아닐것입니다.
오래된 관습이라고 해서 모두 잘못된 것도 아니고
새로운 것이 모두 좋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것은 바로 본질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예배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을 더 잘 믿게되고, 더 친밀하게 만날 수 있는 형식과 방식들이 있다면
그것이 전통이든 새로운 방식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르간과 찬송가로 드리는 예배가 더 하나님을 경험하기 쉬운 예배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화려한 조명과 여러가지 악기가 동원되는 현대적인 예배가 조금 더 하나님을 경험하기 쉬운 예배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어떤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느냐가 아닙니다.
그 예배 안에 중심이 무엇을 향해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드리는 시간이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예배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 없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화려하고 멋있는 찬양을 할 수 있을지,
혹은 어떻게 하면 조금더 거룩해보이고 전통적인 예배를 드릴 수 있을지
이런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더나아가서 어떻게 하면 내가 지켜오던 전통적인 방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것인지
어떻게 하면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서
모든 예배가 진행이 된다면,
그것은 예배 형식이 예배의 본질을 잡아먹은 것입니다.
예배 형식 뿐만 아니라
교회의 형태, 신앙생활의 방식,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본질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본질을 잃는 순간 우리는 정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오늘 본문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 처럼
본질을 보지 못하고, 단순히 행위와 보여지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형식의 껍데기에 머무르지 않고
본질인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신앙의 본질에 집중하는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I. 본질 집중 방법 1: 기쁨을 점검하기 (19-20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이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19절)
예수님은 금식 논쟁에 대해 **'신랑의 임재'**라는 답을 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금식은 경건의 행위였지만,
예수님께는 그 행위 이면에 있는 **관계에서 오는 정서(기쁨)**가 중요했습니다.
신랑(예수님)이 임재하신 지금은 잔치입니다.
잔치에 와서 슬퍼하고 금식하는 것은 관계의 본질을 놓친 행동입니다.
신앙의 본질에 집중하는 첫 번째 방법은 우리의 기쁨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예배합니까? 왜 봉사합니까? 그저 종교적인 의무와 습관 때문입니까,
아니면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기쁨과 감사 때문입니까?
신앙은 의무의 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누리는 최고의 특권입니다.
우리의 모든 종교 행위의 중심에 기쁨이 없다면, 우리는 이미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II. 본질 집중 방법 2: 온전한 변화를 구하기 (21절)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이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1절)
예수님의 두 번째 비유는 신앙을 땜질로 여기는 태도를 경고합니다.
낡은 옷에 새 옷감을 땜질하고 덧대는 순간
새 옷감이 결국 줄어들고 낡아지면서 그 옷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비유를 통해서
‘금식’이라는 낡고 경직된 전통(낡은 옷) 위에 복음이라는 새 옷감을 덧대어 타협하는 순간,
그 낡은 전통은 더 크게 파국을 맞이할 뿐 아니라
복음을 덧대려던 우리의 시도와 노력까지도 결국 허사가 되고 말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신앙의 본질을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은
금식이라는 행위가 아니라 복음에 순종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타협을 멈춰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삶을 일부분만 더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낡은 옷에 새 옷감 조금 덧대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옛사람을 전부를 버리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남아있는 낡은 옷의 습관과 고집을 멈추고,
복음의 능력으로 전인격적인 변화를 이루어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이전의 습관들, 옛사람의 쓴뿌리들을 버리지 않고
그 위에 복음을 덧대며 눈속임하려 한다면
결국 우리는 신앙의 본질을 잃게 될 것입니다.

III. 본질 집중 방법 3: 유연성을 확보하기 (22절)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하느니라.” (22절)
마지막 비유는 그릇의 문제를 다룹니다.
**새 포도주(성령의 역사)**는 폭발적인 생명력으로 팽창하는데, **낡은 부대(경직된 마음, 전통)**는 그 팽창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립니다.
신앙의 본질에 집중하는 세 번째 방법은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딱딱한 부대는 **‘내 생각’과 ‘내 방식’**에 갇혀 새로운 것을 거부합니다. 마치 징검다리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늘 이렇게 해왔다"**는 전통이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제한하고 방해하는 낡은 부대가 될 수 있습니다.
유연한 새 부대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 앞에서 기꺼이 나의 틀을 내려놓고 확장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살아 있고 역동적입니다. 우리는 그 역동적인 생명을 담기 위해 날마다 나의 고집과 전통을 부수고, 말씀 앞에 순종하며 변화를 수용하는 **'새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 (도전과 결단)

오늘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신앙의 본질에 집중하는 세 가지 방법을 배웠습니다.
기쁨을 점검하십시오: 나의 예배와 행위에 의무가 아닌 신랑의 임재가 있습니까?
온전한 변화를 구하십시오: 복음의 능력을 나의 옛 자아에 덧붙이는 타협을 멈추었습니까?
유연성을 확보하십시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 앞에 나의 굳어진 틀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마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처럼, 낡은 형식과 관습이라는 부대에 갇혀 복음의 생명력을 놓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 세 가지 방법을 통해 본질에 집중할 때, 성령의 충만한 새 포도주는 우리를 통해 흘러넘쳐 이 세상에 기쁨과 생명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이 오직 본질에 집중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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