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그 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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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지난 주에 안디옥에 있던 성도들이 어떻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기 시작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배웠고, 배운 말씀대로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바나바를 착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에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착하다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했지요.
이렇게 그들이 말씀을 배우고, 말씀대로 삶을 정리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내려왔습니다. 예언자들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 아가보라는 한 사람이 성령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아가보에게 흉년이 들 것을 예언하게 하신 것은 참 이례적입니다. 구약에서 어떤 재앙에 대한 예언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불순종의 죄를 범하였을 때에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시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아가보를 통해 하신 예언은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과거나 현재의 일에 대한 책망이라기 보다는 미래에 그리스도인들이 행할 바를 미리 준비하라는 격려였을 것입니다. 천하에 흉년이 들 것이다. 이것을 아는 너희들은 흉년이 들어도 놀라지 말라, 그리고, 그 흉년의 시간동안 주를 믿는 믿음으로 무엇을 할 지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으로의 초대였을 것입니다.
아가보는 나중에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사렘으로 향할 때에 한 번 더 등장합니다. 가이사랴에 빌립 집사의 집에 머물던 바울을 만나러 예루살렘에서 내려와서 그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붙잡히리라고 예언합니다. 그 때에 다른 지체들이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을 만류하지만, 바울은 알았습니다. 그 예언은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로의 초대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사역으로 초대받은 안디옥 교회는 실제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습니다.
그들은 아가보의 예언을 들으면서부터 준비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 흉년의 날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글라우디오 황제 때는 주후 41-54년까지 인데 실제로 그때에 여러 번 흉년이 들었다고 합니다. 특히 45-48년에 걸쳐 그 흉년은 어느 한 지역에만 들은 것이 아니라, 천하에 라고 표현함으로써 로마 제국 전역에 흉년이 들었던 것입니다.
이 때에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던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보여준 태도를 통해서 오늘 날 그리스도인, 즉 작은 예수, 예수를 닮은 자라고 불리우는 우리가 보여주어야 할 태도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때에 이방인들로 구성된 안디옥 교회가 유대인들이 주를 이루는 예루살렘 교회에 부조를 보내기로 합니다. 원래 유대인과 이방인은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무시하는 사람들입니다. 둘 사이에는 누군가 잘못되는 것이 기쁨을 주는 관계입니다.
부조를 보내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영적인 문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육신의 문제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의 어려움을 보면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도움의 손을 내미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입니다.
특히나, 그들이 풍족한 중에 보낸 것이 아니라, 그들도 힘겨운 시간에 자기의 것을 나누어 주었던 것입니다.
부조의 헬라어는 “디아코이아”입니다. 그것은 원래 섬김, 봉사, 사역, 섬기는 일을 의미하는 단어이고, 오늘처럼 부조로 쓰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로 생각해보면, 단지 재물에만 이것을 적용할 것은 아닙니다. 그 보다 그 마음과 태도를 좀 더 확장해 보아야 합니다.
나도 힘들지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수고하고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아는 어떤 부부가 싸울 때에 이렇게 다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내가 정말 힘들다고 했더니, 남편이 나도 힘들어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단지 잠시 위로를 바랬을 뿐인데, 남편은 그 아내를 이해해 주려는 마음보다는 그것도 못견디느냐는 듯이 핀잔을 준 것이지요. 아내도 서운한 마음이 들어 둘이 부부싸움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가 각자의 삶에 힘든 부분들이 있습니다. 겉으로 모두 평온해 보여도, 한 두가지 씩 문제들을 모두가 갖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기아대책에 있을 때에 만났던 사람들 중에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분은 수학 교사를 했던 분인데, 기회만 나면 시간을 내어서 구호현장을 다니시던 분이었습니다.
한 부류는 나중에 자신의 형편이 나아지면 그 때 크게 돕겠다는 사람들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형편이 나아져서 도울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실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직까지 형편이 나아져서 돕겠다고 나선 분들을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형편이 나아지는 것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그 형편은 계속 기준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고난 앞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그렇게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자신들도 힘든 상황인데 각각 그 힘대로 부조를 준비해서 보낼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바로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 때에 따라 돕는 은혜를 구하고 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공급자요 도움이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16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렇게 즉각적인 도움을 줄 때에 기억해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각각 그 힘대로,
첫 번째로는 일정한 금액을 정해두지 않고, 각자의 형편에 따라서 도울 수 있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는 일정한 금액을 정해두지 않고, 각자의 형편에 따라서 도울 수 있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지난 창립기념 주일을 준비하면서 교회는 40일 릴레이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3끼를 다 먹고 누릴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하여 한 끼를 금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절제의 훈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끼에 해당하는 금액을 선교헌금으로 내어서 선교사님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각자의 형편대로 한다는 의미아니겠습니까?
이것도 재물에 한정 하지 않고 좀 더 확장하여 적용해 보아야 합니다.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 대로라고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에게 똑같은 은사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나처럼 이런 사역을 해라. 이렇게 해라. 이만큼 해라 그렇게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나아가서 작은 섬김에도 인정해주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더 크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그런 사역을 감당하는 이들에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교회의 여러 사역으로 올해 섬기고 애쓰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기 원합니다. 그것밖에 못했냐고 하기보다는 그렇게 섬겨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떻게 보면, 올해 우리는 모두가 모두를 섬기는 한 해를 보냈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특정 부분에서 다른 지체를 섬기는 일을 감당해오셨기 때문입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표현하기 원합니다.
두 번째로는 풍성하게 섬겼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풍성하게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풍성하게 섬겼다는 것이 너무 지나치게 과도하게 섬겼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조금 더 너그러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수입은 정해져 있는데, 다른 사람을 돕겠다고 수입의 절반 이상을 내겠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에 주시는 것에 조금만 더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한 번 소개해드렸던 것인데, 다시 한 번 리마인드 해보면 좋겠습니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베풀까 말까 할 때는 베풀어라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마라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마라
좋은 일에는 조금 더 힘을 내고, 좋지 않은 일에는 한 발짝만큼 물러서는 지혜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한 가지 덧붙이고 싶습니다.
섬길까 말까 할 때는 섬겨라
직분을 받을까 말까 할 때는 받아라
어떤 분들은 한 번의 지원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비관적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도움이라도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전에 기아대책에서 일할 때에 한 선배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후원금을 모금할 때 들어가는 비용과 모금되는 금액을 비교해 보고, 너무 효율이 떨어져서 그 일을 해야 하는 가라는 판단이 설 때, 그 분은 100원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당신은 그 일을 하겠다라고 했습니다.
평가하고 효율성을 분석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느라,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의 손을 내미는 일을 주저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작은 손길, 섬김이 누군가에게는 구세주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삶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건지신 영원하며 완전하며 유일하신 진짜 구세주를 소개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섬기기를 싫어하는 세대, 섬기더라도 비용과 효율을 앞서는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각각 힘대로 섬기고 나눔으로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는 복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미 그렇게 그리스도인으로 잘 섬기고 베푸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계속해서 그 일을 해나아가시라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갈라디아서 6:9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리고, 혹시라도 자신의 섬김과 나눔이 부족하다고 생각이 드시는 분들이시라면, 조금만 용기를 내셔서 섬김과 나눔의 자리로 한 걸음 나아오시기를 축복합니다.
베드로전서 4:10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