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시고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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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새벽설교>
시편139:1-12
“나를 아시고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2025. 12. 9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나를 아시고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고백한 노래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다윗이 놀랍도록 정확하게 하나님을 이해하고 있어요. 이때 당시에 신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어떻게 이토록이나 정확하게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는데요. 1절부터 6절까지는 하나님의 전지성에 대한 고백입니다. 전지,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이죠. 그리고 7절부터 12절까지는 하나님의 편재성에 대한 고백이에요. 편재. 두루 편, 있을 재. 온우주에 두루 계신다. 모든 곳에 계신다. 이것이 편잽니다.
종합해보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곳에 계신다는 말이에요. 이것을 다윗이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처럼 하나님을 잘 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지식은 누가 가르쳐줘서 알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이 지식은 체험적으로 얻은 지식이었을 거예요. 어려서부터 목동으로서 양을 지키기 위해 사자와 싸우고 곰과 싸우던 그 시절에, 다윗은 나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만났고, 이미 그때부터 하나님에 대하여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도 다윗처럼, 그리고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다가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뵙는다는 욥의 고백처럼, 날마다 살아계신 주님을 보고, 그분과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서 찬찬히 살펴보겠는데요. 오늘 본문 1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절 시작,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아멘.
다윗은 주님이 나를 아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아시느냐? 나를 살펴 보셨기 때문에, 나를 아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전지하시기 때문에 사실 굳이 살펴 보지 않으셔도 다 아시죠. 그런데 다윗은요, 하나님이 굳이 나를 살펴 보셨다는 거예요. 이 ‘살펴 보다’ 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학카르’ 라는 말인데요. 이 말은 ‘샅샅이 조사하다, 철저히 분석하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다윗을 샅샅이 조사하고, 아주 그냥 현미경으로 관찰하듯이 철저히 보신다는 겁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다윗을 철저히 살펴보실까요? 사랑하니까.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애정을 가지고 면밀히 살펴 보는 것이죠. 새벽에 둘째 하겸이가 울면, 아내가 일어나서 하겸이를 달랩니다. 저는 잠귀가 어두워서 자고 있고, 아내가 일어나서 하겸이를 살펴 봐요. 왜 울까? 기저귀도 갈아줘 보고, 분유도 줘 보고, 혹시 땀이 났나? 이마도 만져보고. 울음을 그칠 때까지 면밀히 살펴 봅니다.
하나님도 다윗에게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어디 다치지는 않았을까? 불편한 것은 없을까? 기분이 어떨까? 사랑으로 관심을 갖고 보시는 겁니다.
저희 아내는 피곤하고 힘들면 하겸이가 우는 것을 늦게 알아채기도 합니다. 빽빽 울어도 모르고 있어요. 저야 뭐 말할 것도 없죠.
그러나 하나님은 일분 일초로 놓치지 않으십니다. 모든 순간에, 다윗을 보고 계셔요. 그래서 다윗이 앉아도 아시고 일어서도 아시고, 멀리서도 아시고, 다윗의 길도 아시고 눕는 것도 아시고, 그의 모든 행위 하나하나를 다 아십니다. 그게 2절 3절의 내용이에요. 전지,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런데 특별히 다윗은, 이미 다 아시면서도 살펴 보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이죠. 알면서도 더 알고 싶고, 보고 있으면서도 더 보고 싶어요. 제가 애들을 끌어안고 있으면, 어떨 때는 너무 사랑스러워서 이미 끌어안고 있는데도 더 끌어안고 싶어요. 그러면 애는 깝깝하다고 발버둥을 치는데, 놔주고 싶지가 않아요. 더 끌어안아요.
오늘 자녀들을 그렇게 끌어안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자녀들이 독립해서 집에 없으면, 아쉬운대로 배우자를 끌어안아 보세요. 기겁을 하고 발버둥을 쳐도 꼭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이미 사랑하고 있는데도 더 사랑하게 될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미 우리를 아시는데 더 알고 싶어하시고, 우리를 더 끌어안아주고 싶어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인생을 함께하시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아주십니다.
나의 고통과 나의 희생과 헌신을 세상은 몰라줘도, 하나님은 아셔요. 나를 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얻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어서 7절부터는 하나님의 편재성에 대한 고백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다. 특별히 내가 있는 바로 그곳에 하나님이 항상 함께 계십니다. 나는 하나님을 떠나서 먼 곳으로 갈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나를 쫓아오셔요.
과거에 요나가 하나님을 떠나 배를 타고 도망쳤죠. 하지만 그곳까지도 하나님은 쫓아오셨어요. 그리고 바다에 던져져서 저 깊은 바다 골짜기까지 가라앉았을 때도, 그곳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스올 밑바닥에 있을지라도, 우리가 가는 모든 곳에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그 고백이 오늘 본문 8절부터 10절이에요. 8절부터 10절을 다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아멘.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그곳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서든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성경의 인물들 중에 가장 많은 위험에 노출되었던 다윗은, 위기 때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붙드심을 경험했습니다. 광야에서나 동굴에서나 골짜기에서나, 그 모든 현장에서 안전할 수 있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감히 그 누가 나를 해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11절 12절에 보면, 흑암이 나를 덮어 밤과 같이 되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 밤이 낮과 같이 된다고 고백합니다. 그 어떤 흑암의 권세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면, 나를 해치지 못합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모든 문제와 어둠은 주님 앞에서 해결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나를 아시고, 더욱 나를 알기 위해 나를 살펴 보시는 하나님, 어느 곳이든지 나와 동행하시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아까 함께 찬송했잖아요?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님과 동행하는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삶이 천국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붙드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하루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