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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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5장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찬송가:407장 구주와 함꼐 나 죽었으니
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17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8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19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20 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나이다
2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22 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24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전형상화 (말씀)
시편 139편은 다윗이 시 입니다. 어제 우리가 살펴본 말씀도 그렇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도 그 안에 넚고도 깊은 신학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담겨 있습니다.
13-16절은 창조의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를 지을실때를 노래 합니다. 기독교의 시작은 창세기 1:1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입니다. 물론 유대교와 이슬람도 모두 하나님을 창조의 하나님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는 우리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의 소유가 아니며,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조작되고 성형되는 것이 이나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과 제가 믿듯이 하나님이 창조주 시라면 그분은 그분이 창조한 모든것을 소유하시고 책임 지십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 1절 말씀을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모태에서 부터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기묘하고 신묘막측하다고 고백 합니다. 심지어 16절을 보면 형질이 이루어 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고 태어나기 전에 나의 모든 것들이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다고까지 말합니다. 실로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아니 우리가 어머니 자궁속에 착상하기도 전에 우리 존재와 그 모든것들이 하나님에게 보였고 기억된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15절, 은밀한 데서= 히브리어 ‘나크하드’ 인데 숨기다,덥다는 원뜻으로 문학적인 표현입니다. 모태를 말합니다.
16절 형질 (고렘) 은 원뜻은 ‘감싸다’ 입니다. 태아 몸의 형체란 뜻으로 여기서는 아직 형성되지 않은 태아의 신체를 말합니다.
17-18절은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생각(사랑)을 노래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 하시는지 헤아릴 수가 있습니까? 바다의 모래 알을 능히 셀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셀수가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그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식 합니다. 그것도 이해를 못합니다. 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독생자가 죽으셔야 했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밖에는 더 이상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에 따라 이해 합니다.
19-22절은 다윗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들에 대한 미움을 말합니다. 자신의 대적들에 대한 미움이 아닙니다. 거룩한 분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알고 그 은혜속에 거할때만이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들에 대하여 분노를 표현합니다. 참지 못합니다. 사랑하는자의 이름이 멸시당하고 버려지는것을 담담하게 바라보지 못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분노가 있습니까? 광장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히는 자들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일어나 분노할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싯딤 -모압여인과 간음, -비느하스 .민수기 25:11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23-24절 다윗은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꼐 의탁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해 달라고 신원 합니다.
형상화( 현실분석/ 해석)
오늘날 현대인들은 창조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스스로를 우연한 결과에 의한 진화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실존에 대하여 답을 찾지 못하고 어둠 가운데 헤매이다가 결국은 스스로 목숨을 끓기도 합니다.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하니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고 존재의 이유가 없으니 존재를 소멸시키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의 실존주의와 인본주의 사상의 결국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제일 먼저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가 되신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태에서 조성되지 전에도, 우리의 형질이 생기기 전에도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의 뜻가운데 있었고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가운데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이유가 있고 살아야 할 목적이 있고 회복 해야 할 목표가 있는 존재입니다. 바로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빛도 없고 소망도 없는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빛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성삼위하나님이 그분의 인격 가운데 누리시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조화의 사랑으로 우리를 초대 하셨습니다.
요한1서 4:7–8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1서 4:16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한1서 4:18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재형상화 (적용/대안제시)
사랑하는 여러분! 시편 139편의 다윗의 시를 저희가 이틀동안 묵상 하시면서 어떤 은혜를 받으셨는가요? 너무도 아름다운 숨막힐 것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나요?
하나님이 나를 아시는 것도 그리고 관심있게 살피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가시는 것도, 어디를 가든지 영원히 함꼐 하시는것도, 우리가 힘든 고난속에 있더라도 넘어질까 노심초사 하시고 우리가 그 섭리 가운데 계획된 유익을 얻자마자 바로 우리를 건지시는 것도, 모태에서 나의 장부를 조직 하시고 세상에 우리를 보내신 것도 모두 하나님의 사랑속에서 해석 되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우리의 모든 것이 빛 비추어지고 해석 되어 져야 합니다. 그 사랑을 우리가 발견하고 그 사랑에 붙잡혀서 우리의 남은 삶의 시간을 채워가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노래하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의 시편 139편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그 사랑이 우리를 강권 하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무화과 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 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