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으로 나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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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연애
결혼과 연애
제가 아직 총각이던 시절에, 결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이야기하기를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연애와 거의 다르지가 않다. 라고 이야기하더라구요. 여자친구 남자친구랑 같이 데이트도 하고, 놀러도 가고, 스킨십도 있고, 사랑해~ 라고 말하고 등등 연애와 결혼의 차이점을 찾아보려고 하니까 그렇게 큰 차이가 있지 않다고 이야기하는거예요. 근데 딱! 한가지만 다르다고 이야기합니다. 뭐냐면, 재밌게 놀고 연애하고 데이트하고 다 좋은데, 연애 때는 여자친구가 집에 들어갔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집에 안가더라는 거예요. 연애 때처럼 행복하고 사랑하고 놀고 다 좋은데 집에 안들어가는거예요. 왜그렇죠? 결혼하고 나니까 내가 사는게 와이프 사는 곳이고, 내가 사는 곳이 남편사는 곳이 되니까,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가 없는 겁니다.
제가 결혼한지도 벌써 1년하고도 3개월이 지났는데, 지금와서 그 글을 생각하니까 참 맞는말이더라구요. 다 똑같은데, 이주혜 전도사님 집이 내 집이고, 내 집이 이주혜전도사님 집이 된겁니다. 예전에는 게임하면 나혼자 했는데, 이제는 게임하다가 뒤를 돌아보면, “저거 언제 끝나나~”하고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예전에는 그냥 대충 요리해서 먹고 말았다면, 이제는 막 챙겨먹여주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요리를 해줄까 고민하는 제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또 똑같이 내 집에 같이사는 한 식구가 생기면서, 교회에서 아이들 봐줄때는 예배 끝나면 집에 다 돌아갔는데, 이제 그 돌아갈 집이 제 집이되는 아기가 하나 태어날 것입니다.
이처럼 가족, 식구라고 하는 것은 따로 떨어져사는 것이 아니라, 같이 밥먹고 같이 생활하는 사람입니다. 따로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것이 결혼하는 것이고, 가족이 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죠.
예배의 끝?
예배의 끝?
그런데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하나님을 저희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고, 하나님께서 저희를 자녀로 부르셔서 저희를 하나님의 권속, 가족 구성원으로 삼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다들 아멘하셨죠? 이제 큰일났어요. 다 큰일나셨어. 여기에 여러분이 아멘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본인 집으로 안가세요. 예배 때 와서 하나님 만나서, “하나님~ 아들 왔어요~ 딸 왔어요~”라고 왔는데, “이제 저희 집에 갈게요~”하고 간다고 해도 거기도 하나님 집이 되어버린 겁니다. “하나님 이제 그만따라오세요, 저는 제 집에 갈게요” 하는데 소용이 없는거예요. 거기도 하나님의 집이 되는 겁니다.
본문말씀 20절 하반절을 보시면,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 끝날까지 예수님께서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말은 즉슨, 여러분이 어디 있든지 간에 거기는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가정, 하나님의 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저희가 주일예배, 수요예배, 첫날새벽예배 이렇게 구분해서 부르지만, 예배는 과연 끝나는 걸까요? 설교말씀 듣고 봉헌하고 목사님이 축도해주시고, 찬양대가 “주 인도따라 살 동안~”하면 예배가 끝날까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예배는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으로 나아감
세상으로 나아감
저희가 계속해서 새 예배서에 나온 예배 순서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는데요, 처음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는 것, 오르간 전주와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예배로 부르시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를 기원하고, 그 초청에 감사로 찬양하는 것을 처음에 봤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몸을 씻듯이, 죄로 더럽혀진 저희를 씻어주시길 바라면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용서의 말씀을 해주시면, 거기에 감사로 성시교독과 삼위영가로 찬양을 올려드리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먼저는 성경말씀으로 말씀해주시고, 거기에 감사해서 찬양대가 응답하고, 설교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합심해서 기도하고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감사로 봉헌합니다.
봉헌을 마치면, 또 하나님께서 성찬으로 눈에 보이고 만지고 먹고 마실 수 있는 말씀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죠.
그 다음에, 하나님 충분히 만났으니까, 말씀을 충분히 듣고 보고 먹고 마셨으니까 이제 집에 가면 되겠죠? 가긴 어딜가요, 집에 가면 거기도 하나님의 집인데.
오늘 알아볼 예배의 마지막 순서, 세상으로 나아감이라고 하는 순서는, 찬양하고 파송의 말씀을 듣고, 축도하고, 축복송 부르고 후주 하는 모든 순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얘들아 조심히 들어가라~ 근데 너네 집 부동산 명의도 내 명의로 되어있다?”라고 하시는 순서입니다.
찬양과 파송의 말씀
찬양과 파송의 말씀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인데요, 마태복음의 완전히 끝부분의 말씀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는 장면입니다. 먼저 16절 말씀을 보시면,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먼저 제자들이 갈릴리에 가서 예수님 앞에 다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보시면,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예수님을 뵈올 때, 만났을 때, 경배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경배해야합니다. 저희가 지난 시간에 보았던 순서가 성찬이었죠. 말씀이신 예수님을 저희가 보고 만지고 먹고 마시는 것이 성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말씀이신 예수님을 그렇게 만났으니까, 경배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는 거죠.
그래서 성찬 뒤에, 이제 세상으로 나아갈 때는 찬양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찬양으로 경배하면, 이제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는 순서가 되어야하는데, 그것을 새 예배서에서는 파송의 말씀이라고 나타나는 겁니다.
이 파송의 말씀이라고 하는 순서가 조금 낯설 수도 있을텐데요, 파송의 말씀은 말 그대로 이제 말씀을 듣고 받은 저희 모두가 세상 가운데로 파송받는 말씀인겁니다.
아주 짧은 영상을 하나 보여드릴건데요, 제가 있었던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했던 파송의 말씀 순서가 어떤 모습인지 함께 보시죠.
[영상]
이처럼 파송의 말씀은 오늘 받은 말씀을 가지고 세상 가운데에 한명한명이 파송받은 선교사로서 나아가는 겁니다.
본문말씀 19절-20절 상반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바로 이것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파송의 말씀이었죠. 먼저 “가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라”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 받은 말씀을 가서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하십시오! 라고 하는 것이 바로 파송의 말씀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가운데 품고, 세상 가운데 파송을 받아서, 그 말씀을 세상 가운데 널리 전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축도, 축복송
축도, 축복송
그렇게 파송의 말씀이 있는 다음에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축도의 시간이 있는데요, 축도의 기원은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저희가 보통 알고 있는 축도가 바로 이 성경구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저도 하도 어렸을 때부터 이 축도를 많이 들었어서 제가 아직 유치원 다니고 있을 때 저희 부모님 앞에서 목사님을 따라한다고 손을 번쩍 들고,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면서 따라했던게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보통 이 축도라고 하는 것이요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사도 헌장, 이라고 하는 기원후 4세기의 문서를 보시면, 성찬을 집례하고 나서, 하나님께 감사인사를 올려드린뒤에, 감독들이 예배 마지막에 축복을 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보시면, 성찬을 하고 나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 후에, 이렇게 축복을 합니다.
집사[부제]는 이렇게 말하시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절하고, 축복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감독[주교]은 이에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 당신의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지키시며, 덮어주시고, 도와주시며, 모든 대적으로부터 구하시옵고, 그들의 출입을 지켜주옵소서. (하나님) 당신께, 우리 주, 우리 하나님, 우리 왕이신 당신의 아들 예수, 당신의 그리스께, 또한 성령님께,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영광과 찬양과 위엄과 예배와 경배가 있사옵나이다. 아멘.” 그리고 집사[부제]는 “이제 평안히 가십시오”라고 말하시오.
오늘날의 축도와는 사뭇 다르죠? 원래 이것보다 좀더 긴데, 아무튼 이 축복의 핵심은 예배에서 성찬을 행한 이후에, 예배 드리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다음에 “이제 평안히 가십시오”라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형태 였습니다.
이것이 6-7세기의 로마 교회에서는 똑같이 성찬 이후에 선언하는 것으로 나오는데요, 대신 그 내용이 Ite, missa est, 한국어로 “가라, 해산되었다.”라고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것, 해산하는 내용으로 어떻게 보면 조금 권위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들려요.
그리고 이런 형태가 조금씩 변하기는 했지만 거의 천 년 가까이 이렇게 “가라, 해산되었다”라고 말하면서 성찬을 받은 회중들을 보내는 선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16세기에 종교개혁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반응으로 트리덴트 공의회라고 하는 회의가 열리게 되었는데요, 그 시기에 정리된 미사 순서에서도 “가라, 해산되었다”라고 하는 형태로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사제의 선언이 남아있게 됩니다.
그렇지만 종교 개혁 이후의 개신교, 그리고 영국 국교회의 경우는 가톨릭 교회와 조금 다른 형태의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요, 1549년에 쓰여진 영국 국교회의 공동기도서에서는 성찬 이후에 이렇게 축복하면서 사람들을 돌려보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과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과 사랑 안에서 함께 하시기를.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님의 복이 여러분 가운데, 또한 언제나 함께 하기를.”
조금더 모인 회중들에게 축복하면서 돌려보내는 형식으로 종교 개혁 이후의 개혁교회와 영국 국교회에서 자리잡았습니다.
그런데 저 영국국교회 공동기도서가 나중에는 매일 오전 오후에 드리는 기도회의 형식을 제시하는데요, 그걸 웨슬리는 매일 하는게 아니라 주일에만 하는 것으로 살짝 바꿔서, 미국에 있는 감리교인들을 위한 예배서를 작성을 합니다.
바로 여기서 저희가 익히 알고 있는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말씀으로 축복하면서 기도 순서를 마치는 형태가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말씀으로 예배를 마치게되는 전통이 선교사들의 복음을 통해서 한국에 들어오게 되고, 오늘날 저희가 알고 있는 축도의 모습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라고 하는 형태로 자리잡게 된 것이죠.
이렇게 저희가 축도의 역사를 짦막하게 살펴봤는데요, 축도라고 하는 것은 예배가 ‘끝’났다 라고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배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교회 밖으로, 세상으로 “가”는 것, “평안히 가십시오.” 혹은 “가라, 해산되었다”라는 말로 사람들을 보내는 것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릴때만 그리스도인이고, 교회 나가면 딴 사람이 되면 그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배 말미에 오늘 받은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서, 세상 가운데 나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본문말씀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오늘 함께 예배드리시는 여러분과 제가, 축도로 세상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세상에 나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후주
후주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리면서 예배는 안 끝나는 것이다, 라는 뉘앙스로 말씀드리긴 했는데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저희의 삶을 통해서 끊임없이 하나님과 소통하는 삶의 예배는 안끝나지만, 적어도 주일 오전 예배는 끝나기는 합니다. 일단 밥도 먹어야 사람이 살고, 교회 안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일 오전 예배 순서자체는 끝이 나기는 하는데요,
그럼 이 주일 오전 예배 순서는 대체 언제 끝날까요? 목사님이 축도하고, 성가대가 “주 인도따라 살 동안~”하고 찬양하면 끝나는 걸까요?
제가 이 새 예배서 시리즈를 처음 시작하면서 예배의 시작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르간 전주와 함께 “하나님 아버지, 저 왔습니다”하고 인사하는 것으로 예배를 시작한다고 말씀드렸죠? 예배의 마지막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르간 후주를 들으면서, 오늘 들은 말씀을 기억하면서 예배당을 ‘나가는 것’ 까지가 주일 오전 예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오르간 후주를 들으면서 예배당을 나가실 때,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아가야합니다. “오늘 점심이 뭘까?” 이거 생각하면서 나가면 축도 받는게 아무런 소용이 없어져요. 저희가 “이제는 우리 4조 점심 당번의 요리의 은혜와, 누구누구 권사님의 떡 제공의 사랑과, 여선교회가 담근 배추김치의 교통하심이 오늘 예배 끝나고 점심먹는 만안교회 위장에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라고 축도 안들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만약에 여러분이 오전 예배가 끝나고 속회 예배를 드리시면, 가급적 후주가 끝날때 까지는 기다렸다가 해주시는게 좋습니다. 안그러면 예배 두개를 겹쳐서 하는 거예요. 또 오르간 후주를 연주하고 있으면 예배가 아직 안 끝난건데, 벌써 다음 무언가를 준비하려고 하실 때도 있어요.
이를테면 이제 이번 돌아오는 주일 오전 예배 마치고 당회가 있을 건데, 오르간 후주가 나오는 동안 막 당회 준비하고, 광고하고, 안내 방송하는 건 예수님을 품고 세상에 안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받았으면 그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세상에 나아가는 것이 필요한데, 말씀은 나 혼자만 홀랑 받아먹고, 전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죠. 본문말씀에서도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세례를 베풀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잖아요?
다음 순서가 있어서, 당회나 속회 예배 같은게 있어서 예배당에 남으셔야 하면 잠깐 말씀을 묵상하면서 세상에 이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하고 다짐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본문말씀 19-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후주를 들으면서 예배당을 나가는 것은 바로 세상 끝날까지 저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서, 세상의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러 나아가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 초반에 예배 후에 세상에 나아가는 것이 집에 가도 거기 역시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 집 역시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씀을 선포하러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시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함께 계심을 믿고, 말씀을 세상 가운데 전하기 위해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