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5장

이주혜
새벽기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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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가 200, 435장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여기”의 언약, 거룩하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서 계신 중보자(1,4–5, 24–27)

함께 읽은 신명기 5장의 말씀을 통해 은혜받고 가는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신앙생활을 같이 했던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보면 가끔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은~~ 그런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해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도 부정하지 않더라구요. 다만 “우리 할아버지/할머니, 우리 부모님이 믿던 그 하나님”은 분명한데, 내가 “믿는 하나님”은 아직 분명하게 느껴지지 않는 거죠.
오늘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듣고, 기억하는 새로운 세대만 남았습니다.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야기해주고, 부모님이 알려주었고, 지도자들을 통해서 배운 하나님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새로운 세대를 향한 말씀을 전하고 있는 부분이 5장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1절에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로 시작합니다.
물론 실제로 그 많은 사람들을 한 자리에 다 모으기는 쉽지 않았을 거예요. 모세는 아마 먼저 장로들과 대표들을 불러 말했고, 그 장로들이 다시 온 백성에게 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온 이스라엘을 불러…”
하나님의 마음은 오늘 말씀에서 분명하게 들어납니다. “이 말씀은 몇몇 지도자들만 듣는 말씀이 아니라, 온 백성이 함께 들어야 할 언약의 말씀이다.”
그래서 1절에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1절 요지)라고 말씀합니다.
듣고–배우고–행하라. 이게 신명기의 흐름이고, 오늘 새벽에 우리에게 주시는 부르심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직접 말씀을 하시는데, 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Deuteronomy 5:4 NKRV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호렙 산에 임한 불은 그냥 산불이 아니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떨기나무를 감싸고 있었던 그 불, 하나님의 현현, 하나님의 거룩을 눈에 보이게 보여주는 불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이 가까이 오시면 좋겠다, 가까이 느껴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실제로 하나님이 거룩한 모습으로 임하시니까, 이스라엘은 기쁘기보다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25–2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Deuteronomy 5:25–27 NKRV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킬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육신을 가진 자로서 우리처럼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불 가운데에서 발함을 듣고 생존한 자가 누구니이까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여기서 자기들 스스로를 뭐라고 부르죠? “육신을 가진 자로서 우리처럼…” 죄로 타락한 인간, 육신을 가진 존재에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기쁨만이 아니라, 죽음과도 같은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는 반드시 중재자가 필요했습니다.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모세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Deuteronomy 5:5 NKRV
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여기 장면을 잘 보면, 모세가 어떤 사람인지 선명해집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고,
죄 많은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
이 모습 때문에, 우리는 구약의 모세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물론 모세가 예수님과 같은 분은 아닙니다. 모세는 여전히 죄인이었고, 제한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를 세워 잠시 “중보자의 자리”를 맡기신 것이고, 예수님은 그 모든 중보를 완전하고 영원하게 이루신 분입니다..
그래서 신약은 이 “중보자” 자리를 딱 한 분에게 집중시킵니다.
1 Timothy 2:5 NKRV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모세도, 제사장도, 목회자도, 믿음 좋은 누구도 결국은 다 도구일 뿐이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온전히 이어 주시는 분은 예수님 한 분뿐이라는 고백입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음성을 더 들으면 죽겠으니까 누가 우리를 대신해서 들어 알려주세요.라고 말하는 시대라면
우리는, 그 중보자가 이미 세워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그래서 오늘 새벽 기도할 때, 우리의 중보자 되신 예수님을 의지해서 오늘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새벽기도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십계명은 사랑의 언약,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길(6–21)

이제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주셨는지를 크게 두 방향으로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1–4계명은 하나님 사랑, 5–10계명은 이웃 사랑입니다.

1) 먼저 은혜, 그 다음 계명 (5:6)

6절은 십계명의 머리말인 부분인데
Deuteronomy 5:6 NKRV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이 말씀은 “너희가 이 계명들을 잘 지키면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줄께”라고 말씀하시는게
아니라 이미 인도해 내신 다음에
“나는 너를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해 낸 여호와다. 그러므로 이제 이렇게 살아라.” 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에요.
먼저 구원이 있고, 그 다음에 계명이 있습니다. 먼저 은혜가 있고, 그 다음에 순종이 있는 겁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습니다.
“이렇게 살면 구원 받을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예수님 안에서 구원받았으니 이제 이렇게 살아라.”라고 말씀해주시는 거예요.
십계명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 주시는 삶의 길입니다.

2) 하나님 사랑 –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십계명에 대한 이야기가 쭉 등장하는데 첫번째부터 보면
Deuteronomy 5:7 NKRV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이걸 직역하면 “나와 대립해서, 나와 병립해서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인생의 가장 깊은 자리에 하나님과 다른 것을 같이 올려 놓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우상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돈, 건강, 자녀들, 나 자신까지 우상이 될 수 있는데
이것들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놓이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우상을 “형상”으로 만드는 것을 금합니다. “보이는 것”으로 안심하려는 우리의 종교적 습관을 깨뜨리십니다.
Deuteronomy 5:9 NKRV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라고 이야기하세요.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셨다면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기대지 말라고 하세요.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무엇을 붙잡고 안심하는 신앙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 한 분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세번째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가볍게” 부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름을 가볍게 다루는 것은 그 사람, 그 분을 가볍게 여기는 것과 같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세요.
네번째, 안식일에 대한 계명은 신명기에서 특별히 귀하게 다뤄집니다.
Deuteronomy 5:15 NKRV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의 “창조”를 근거로 안식일을 말씀하시지만, 신명기에서는 “구원과 애굽에서의 해방”을 근거로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은 단지 “쉬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종살이에서 건져 내셨다는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나만 쉬는 것이 아니라 남종, 여종, 나그네, 짐승까지 함께 쉬게 하라고 하십니다.
오늘로 말하면, “내 예배만 잘 드리면 된다”가 아니라, 내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 함께 사는 가족들도 쉴 수 있도록 배려하고,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은, 내가 더 이상 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는 날로 지켜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3) 이웃 사랑 – 관계를 지키는 계명들

5–10계명은 이웃과의 관계를 지키는 계명들인데
부모를 “공경하라” – “공경하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카베드(kābēd)**입니다. 원래 뜻이 뭐냐 하면 **“무겁다, 무게가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이렇게 풀 수 있습니다.
“네 부모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무게 있게, 진지하게, 중요하게 대하라.”
단순히 “부모 말이면 무조건 들어라”가 아니라, 부모의 존재 자체를 하나님이 내 인생에 두신 무게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 미움과 분노까지도 다루라.
간음하지 말라 –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언약을 지키라.
도둑질하지 말라 – 물건뿐 아니라 이웃의 권리도 훔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 이웃을 해치는 거짓말을 멀리하라.
탐내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특히 10번째 계명에서 신명기는 “이웃의 아내”를 먼저 말하고, 그 다음에 이웃의 집, 밭, 종들, 소나 나귀와 같은 짐승, 이웃의 모든 것을 나열합니다.
출애굽기에는 없던 “밭”이 추가되어 있는데 이제 이스라엘이 실제로 땅을 가지고, 밭을 가진 세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걸 보면 소유가 늘어날수록, 탐심의 유혹도 더 강해진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탐심은 마음속에서 계속 “더, 더”를 외치는 상태입니다. 그 상태는 결국 구체적인 죄의 행동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은 마지막 계명을 “행동”이 아니라 “마음”에 그 근거 두고 끝납니다.
앞의 계명들을 보면 거의 다 눈에 보이는 행동이에요. 살인,간음,도둑질,거짓 증거는 이건 다 누가 봐도 “했다 / 안 했다”가 드러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탐낸다는 것은 이건 아직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마음속에서 계속 붙잡고 있는 욕심”까지 계명으로 다루십니다.
따라서 십계명은 “밖으로 드러나는 나쁜 행동만 하지 마라”에서 멈추지 않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 거기까지 나와 함께 보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 십계명의 이야기가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언약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하신 언약임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저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율법은 사슬이 아니라 사랑의 울타리(29, 32–33)

마지막으로 29절을 보면
Deuteronomy 5:29 NKRV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여기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내가 오늘 이 말씀, 이 율법을 준 것은 너희를 옭아매고 불편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해서 준 것이다.”라는 말씀이에요.
다시 말해서, 율법은 우리를 붙잡아 묶어 두는 쇠사슬이 아니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끌어 올리시는 사랑의 밧줄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때로 답답하고, 제한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우리를 살려 내기 위한 보호 장치인 것입니다.
그래서 32–33절에서 이렇게 이어집니다.
Deuteronomy 5:32–33 NKRV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여기 “삼가 행하여”라는 말의 원래 느낌은 “둘레에 가시 울타리를 치다” 하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의 둘레에 울타리를 잘 둘러 세워라.”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숨 막히게 가두는 울타리가 아니라,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게 지켜 주는 사랑의 울타리라는 것을 한번 더 강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법을 지키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누리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 십계명이 옛날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와 맺으신 언약”으로 우리 가슴에 다시 새겨지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 하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이 새벽에 저희를 깨우시고, 말씀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언약을 들려주셨던 그 하나님께서,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에게도 같은 말씀으로 찾아와 주심을 믿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라” 하신 주님, 우리가 계명을 지켜야 구원받는 인생이 아니라, 이미 구원하셨기에 새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마음 가장 깊은 자리에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올려놓지 않게 하시고, 보이는 것에 기대어 안심하려는 습관에서 돌이켜,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 한 분을 신뢰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저희의 행동뿐 아니라 마음까지 주 앞에 바로 서게 하시고, 안식일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셔서, 우리가 더이상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하며 한주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하옵소서.
은혜의 주님, 특별히 다가오는 당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당회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혜와 분별을 주시고, 사람의 생각보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하셔서 모든 결정이 주님의 영광과 믿음에 도움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 말씀으로 우리 삶 둘레에 울타리를 쳐 주셔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지켜 주시고, 율법을 옭아매는 짐이 아니라 죄의 늪에서 끌어 올리시는 사랑의 밧줄로 붙들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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