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을 드리는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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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안전지대를 사수하라
레위기17:1-7
영적 안전지대를 사수하라
레위기17:1-7
축복하기
할렐루야! 오늘도 거룩한 주일,
하나님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우리 이렇게 축복합시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더욱 사랑스러워지시기를 축복합니다.”(눅 2:52)
도입
여러분은 어릴 때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잔소리가 무엇입니까? 저는 ‘게임 좀 그만해라’입니다. 뭐 만하면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일거라 생각합니다. "하지 마라", "거긴 가지 마라", "이것만 먹어라" 같은 말들일 것입니다. 그때 미운 네 살, 혹은 초딩이었던 입장에서는 이 말이 참 듣기 싫습니다. 내 마음대로 놀고 싶고, 하고 싶고, 아무거나 집어 먹고 싶은데 부모님은 자꾸 규칙을 정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른이 되고 보니 알게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 모든 '잔소리'와 '규칙'은 나를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라, 어린 나를 위험에서 지키기 위한 '사랑의 울타리'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레위기 17장의 말씀도 얼핏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까다로운 잔소리를 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본문은 짐승을 잡을 때, 즉 고기를 먹으려고 할 때 아무 데서나 잡지 말고 반드시 '회막 문', 즉 성막 앞으로 끌고 와서 잡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아무데서나 잡지말고 하나님 앞에 와서 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냥 배가 고파서 밥을 먹으려는 것뿐인데, 굳이 그 무거운 짐승을 끌고 성막까지 와야 한다니 얼마나 번거롭나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것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영적 죽음'에서 보호하고 유익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거에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정된 장소'를 고집하셨는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할 영적 안전 규칙은 무엇인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이중생활을 청산하라
1) 이중생활을 청산하라
하나님께서 짐승을 반드시 회막 앞에서 잡으라고 하신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상 숭배를 원천 봉쇄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본문 7절을 보면, "그들은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라"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여기서 '숫염소'란 애굽 사람들이 섬기던, 들판을 관장한다고 믿었던 '판(Pan)'이라는 신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서 400년을 살면서, 그 가축을 잡을 때 그 피를 판이라는 숫염소 신에게 먼저 바치고 섬기는 악한 습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광야에 나와서도 몰래 들판에서 짐승을 잡으며 "혹시 모르니 그 들판의 신에게도 잘 보여야지"라는 마음으로 우상을 숭배했던 것입니다.
어느 교회 장로님이 있었는데, 주일에 교회에서는 경건한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며 헌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 회사에 가면 동료들에게 잔소리를 퍼부으며 사장님 앞에서는 지나치게 아부를 하곤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두 얼굴을 가진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이중 생활의 고수'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사냥꾼]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단편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냥꾼이 숲에서 두 마리의 토끼를 발견했습니다. 욕심이 생긴 사냥꾼은 두 마리를 다 잡겠다고 양손을 뻗어 이리저리 뛰기 시작했습니다. 결과가 어땠을까요?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기진맥진하여 빈손으로 집에 돌아갔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의 방식도 따르려는 '양다리 신앙'은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딱 이랬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도 드리지만, 들판에서는 옛 습관대로 우상에게 절하며 자신의 안위를 빌었습니다. 이중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음란한 행위'였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예 짐승을 잡는 장소를 '회막 앞'으로 딱 정해주셔서, 딴 짓을 하지 못하게 막으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교회를 다니면서도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모습이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까? "사업이 잘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 뒤로는 점을 보러 가거나 사주팔자를 보고, 이사 날짜를 받을 때 '손 없는 날'을 따지는 모습들 말입니다.
요즘 유튜브에서 ‘무당’을 키워드로 하면 관련 채널이 1364개나 되고 사주는 673개 타로는 1614개에 달합니다. 공식적인 무속인 수도 80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는 교회 목회자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많은 숫자입니다. 또한 기독교인 역시 무속에 대한 수용도가 비교적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인중에도 10명중 2명이 무속을 수용한다고 합니다. 더욱이 기독교인 성도 절반 이상이 풍수지리, 손(악귀) 없는 날 택일, 점/운세/사주 등 무속에 대해서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재미로 본다며 타로점을 보고, '오늘의 운세'에 기분을 맡기거나, MBTI가 사람을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인 양 맹신하지는 않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진리라고 착각하며 무속 신앙처럼 맹신하게 됩니다. 아닌 것처럼 말해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우리 안에 무속 신앙을 가지는 위험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런 행위는 "다른 예물을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아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 다른 불을 드렸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셈을 다 알고 계십니다. 야고보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서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자로다”
야고보서 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마음에 정하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갈팡질팡하고, 두 마음을 품어 혼합된 탁하고 더러운 색깔로 물드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불안함 때문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셔야 합니다. 이중생활을 청산해야 합니다. 털어버리시고 하나님께로만 시선을 고정하십시다. 부디 여러분의 모든 삶의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올 때, 두 마음이 아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며 기도의 자리로 가지고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일상을 예배로 만들라
2) 일상을 예배로 만들라
하나님께서 짐승을 회막에서 잡으라고 하신 두 번째 이유는, 우리의 모든 일상이 하나님 중심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레위기 17장의 규례는 제사 드릴 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식용'으로 고기를 먹을 때도 적용되는 말씀이었습니다. 밥을 먹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조차 하나님 앞에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밥먹을 때 기도하십니까? 다들 대충합니다. 어쩔 때는 잊어버립니다. 점점 우리의 생활의 중심이 사라져갑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예화: 코람 데오(Coram Deo)의 구두 수선공]
17세기 프랑스에 '가스통'이라는 구두 수선공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허름한 가게에서 일했지만, 늘 콧노래를 부르며 정성스럽게 구두를 고쳤습니다. 한 손님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냄새나고 더러운 구두를 만지면서 뭐가 그리 즐겁습니까?” 그러자 가스통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손님, 저는 지금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고친 구두를 신고 걸어갈 사람들의 발걸음을 하나님이 지켜주시길 기도하며 일하니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오늘 말씀에서 말하는 '회막 중심의 삶'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드리는 시간만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업무를 처리할 때, 학교에서 공부할 때, 가정에서 설거지를 할 때,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 그 모든 순간이 하나님 앞(Coram Deo)에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이 시대의 많은 청년들이, 교회 안과 밖의 모습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교회에서는 신실한 청년이고, 대표 기도도 하고, 찬양도 인도하고, 순모임도 이끕니다. 그러나 일상에서의 말과 행동, 관계에서는 신실함과는 거리가 멀게 행동합니다. 불평과 원망은 기본이고, 시기와 교만으로 상대방을 대합니다. 또한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과 동떨진 삶을 삽니다. 혼자 있다고 게으르고, 음란한 생활을 하며, 시간을 허비합니다. 교회에서는 거룩한 청년, 리더인데, 세상에 나가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편법을 쓰고, 욕심을 부리고, 함부로 말한다면 그것은 회막을 떠난 삶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이 바로 제물을 드리는 '회막 문 앞'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항상 바라보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는요 한 주간 일상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 위해 드리는 결단의 시간입니다. 일상을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의 신앙생활로 살아가시기를 결단합니다. 여러분의 직장이, 학교가, 가정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의 처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지정된 장소, 교회에 뿌리내리라
3) 지정된 장소, 교회에 뿌리내리라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지정된 장소'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드리라"고 하십니다. 아무 데서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하나님께서 핏 값으로 사신 주님의 몸 된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목사님 교회 중심의 삶이라뇨? 어렵습니다! 주일에 나오기도 벅찬데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아갑니까? 저는 못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오실 겁니다. 차라리 유튜브 예배 드릴게요. 교회 나가는 것보다 그게 더 편해요. 좋은 설교 말씀이 유튜브에 더 많아요. 라고 합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노마드(Nomad, 유목민)' 시대라고 합니다. 많은 청년들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닙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설교, 내 기호에 맞는 찬양을 찾아 이 교회 저 교회 기웃거리거나, 온라인으로 설교만 소비하는 '영적 쇼핑'을 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오늘 분명히 말합니다. "자신의 이득이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신앙"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왜 단절될까요? 설교도 많이 듣고 찬양도 듣고 그러는데요? 하나님과의 관계는 교회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어떤 조직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당신입니다!
[예화: 뿌리 깊은 나무]
식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나무를 너무 자주 옮겨 심으면 잔뿌리가 상해서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결국 잎이 마르고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나무가 크게 자라려면 한곳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렇게 비바람을 견디고 열매를 맺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섬기는 교회'가 있습니다. 때로는 내 마음에 다 차지 않을 수도 있고, 관계의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이 하나님이 지정해주신 나의 '회막'이라면, 그곳에 헌신하고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께서도 언제나 성전에서 강론하셨습니다. 어렸을 적 요셉과 마리아는 어린 예수님과 함께 유월절을 지내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절기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다시 찾았을 때는 성전에서 유대인들과 말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죠. 눅 2:49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있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게 성경은 예수님께서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지셨다고 기록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와 예물을 기뻐하십니다. 나의 편의나 이익을 따지지 말고, 하나님이 세워주신 이 제단에서 예배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많은 섬김보다, 드리는 헌금의 액수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먼저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나를 드려 헌신할 때, 하나님은 그곳을 통해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은혜와 복을 흘려보내 주실 것입니다
5. 결론 및 결단
말씀을 맺겠습니다. 레위기 17장의 규례는 우리를 옭아매는 족쇄가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안전벨트'입니다.
1) 이중생활을 버리십시오.
하나님과 세상(우상, 점, 미신)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십시오.
2) 일상을 예배로 만드십시오.
먹고 마시는 것, 일하고 공부하는 모든 순간이 하나님 앞에서의 예배가 되게 하십시오.
3) 교회에 뿌리내리십시오.
기웃거리는 신앙이 아니라, 지정된 자리에서 충성하는 거목과 같은 신앙인이 되십시오.
(반주) 행복한 청년 여려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는 말씀처럼,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말씀 중심으로 살아갈 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과 평안의 복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위에 넘치도록 임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단 찬양 – 입례(예배하는 자 되어) 멘트 - F 2번 -> G 2번
멘트 - 거룩한 산 제물로 살아가는 자는 모든 삶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일상을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립니다. 우리 모두 예배하는 자로 살기를 소망하며 찬양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다르고 번거롭게 느껴질 때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살리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이제 내 안에 있는 숨겨진 우상들을 버리게 하옵소서. 나의 일상이 거룩한 예배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 깊이 뿌리내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