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설교 04 - 장막에 찾아오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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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기 9장 20-27절
우리의 인생에는 부끄러운 장막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실패와 연약함으로 얼룩진 자리입니다. 오늘 말씀은 인류의 두 번째 조상이라 불리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 노아, 바로 그의 부끄러운 장막에서 시작됩니다.
홍수 심판 속에서 방주를 짓고 순종했던 그 위대한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은 채 자신의 장막에 누워있습니다. 의인이자 완전한 자라 칭찬받던 그의 위엄은 온데간데없고, 통제력을 잃은 한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만 남아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아들들이 장막으로 들어옵니다.
한 아들, 함은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조롱거리로 삼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수치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밖으로 나가 형제들에게 떠벌리며 폭로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두 아들, 셈과 야벳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옷을 가져다가, 아버지의 수치를 보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 쳐 들어가 조용히 그 부끄러움을 덮어주었습니다.
이 한 가정의 비극적인 사건은, 단순히 술 취하지 말라거나 부모를 공경하라는 윤리적 교훈을 넘어섭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인간 역사 전체를 향한 그분의 놀라운 구원 계획, 즉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부끄러운 장막으로 찾아오시는지에 대한 위대한 계시를 보여주십니다.
술에서 깬 노아는 저주와 축복을 선포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수치를 폭로한 함의 계보, 가나안을 저주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덮어준 셈을 향해서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26절 말씀을 보십시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셈은 복을 받을 것이다”가 아니라, “셈의 하나님 여호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셈의 하나님’으로 특정하여 불러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셈의 계보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시겠다는 언약의 첫 불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축복은 27절에서 그 절정을 이룹니다. 우리 성경은 야벳이 셈의 장막에 거하는 것처럼 번역했지만, 이 구절의 주어가 하나님이라고 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야벳을 창대하게 하시고, 그리고 그분(하나님)께서 셈의 장막에 거하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설교의 심장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약속이 이 짧은 구절에 담겨 있습니다. 영광과 거룩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죄 많고 연약한 인간인 ‘셈의 장막들’ 안에 친히 거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장막에 거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잠시 방문했다 떠나는 손님이 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함께 살며, 먹고, 자고, 대화하는 가족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멀리 하늘 보좌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오셔서 우리의 이웃이 되고, 보호자가 되시겠다는 가장 친밀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며 흐르기 시작합니다. 셈의 후손 아브라함의 장막에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의 후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헤맬 때, 하나님은 그들 한가운데 성막(Tabernacle), 즉 하나님의 거룩한 장막을 치라고 명령하시며 그들과 함께 행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스라엘 땅에 정착했을 때, 그들 가운데 성전을 지으시고 그곳에 임재하시며 이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셈의 장막’에 계속해서 거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림자였습니다. 수천 년이 흐른 어느 날, 이 약속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성취됩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여기서 ‘거하신다’는 헬라어 단어는 ‘장막을 치다(tabernacled)’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자신의 장막을 치셨다”는 것입니다.
셈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 바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움직이는 성전이요, 살아있는 장막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셈의 장막에 거하시겠다’는 창세기의 희미한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 안에서 완전하고도 영광스럽게 성취된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이 바로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부끄러운 장막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함처럼 우리의 죄와 수치를 들추어내고 조롱하며 폭로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셈과 야벳처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위대한 방식으로, 십자가에서 자신의 거룩한 몸을 찢으시고 보혈의 옷으로 우리의 모든 죄와 부끄러움을 영원히 덮어주셨습니다. 우리의 벌거벗음을 가리기 위해, 주님 자신이 벌거벗겨지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창세기 9장의 약속은 이제 우리에게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수치를 덮어주신 주님은, 이제 성령을 통해 바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장막으로,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으셨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막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때로 노아의 장막처럼 무너지고 부끄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까? 괜찮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곳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부끄러움의 한가운데 장막을 치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수치를 덮으시고, 우리를 위로하시며, 우리 안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숨지 마십시오. 세상의 화려한 장막을 부러워하지도 마십시오. 가장 위대한 복은 내 안에, 우리 공동체 안에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 놀라운 은혜와 위로가 한 주간 여러분의 삶을 가득 채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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