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4장 1-12절
Notes
Transcript
제목: 신앙의 역설
제목: 신앙의 역설
본문: 고린도후서 4장 1-12절
본문: 고린도후서 4장 1-12절
찬송: 369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찬송: 369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오늘은 고린도후서 4장 1-12절 말씀을 가지고 "신앙의 역설"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하려 한다.
역설이란 겉으로 보기엔 모순 같지만 그 안에 깊은 진리가 담긴 것을 말한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질그릇 같은 우리를 사용하셔서 보배로운 그리스도를 드러내신다는 놀라운 진리를 보여준다.
1-6절은 '복음의 영광의 빛'을 말한다.
1-6절은 '복음의 영광의 빛'을 말한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6절). 바울은 창조 때 "빛이 있으라" 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 마음 속 어두움에 복음의 빛을 비추신다고 고백한다.
이 세상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4절) 하지만, 하나님은 더 강력한 빛으로 우리를 찾아오신다. 그 빛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이 빛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안에 비추신 선물이다. 빛은 스스로 빛날 수 없는 어두움을 밝히는 것이기에, 우리의 무능력이 오히려 하나님의 빛을 받아들이는 조건이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은 우리의 지혜나 열심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셨기 때문이다. 새벽마다 이 자리에 나오는 우리는 그 빛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빛이 우리를 사로잡았다는 증거다.
7-9절은 '질그릇과 보배의 대조'를 말한다.
7-9절은 '질그릇과 보배의 대조'를 말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7절). 바울은 놀라운 대조를 제시한다. 보배와 질그릇이다.
보배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요,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질그릇은 쉽게 깨지고 금이 가는 우리의 연약한 몸과 삶이다. 하나님은 왜 이 귀한 보배를 튼튼한 금그릇이 아닌 질그릇에 담으셨는가.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다.
그래서 바울은 네 가지 역설을 고백한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8-9절). 질그릇은 눌리고 답답하고 넘어지지만, 그 안의 보배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 "욱여쌈을 당하되 싸이지 않는다"는 것은 사방에서 압박이 오지만 숨통은 막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지탱하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는 자신이 질그릇임을 더 절실히 깨닫는다. 기억력도 떨어지고 체력도 약해진다. 그러나 바로 그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통로가 된다. 질그릇의 금 간 곳으로 안의 빛이 새어나오듯, 우리의 약함을 통해 그리스도의 능력이 드러난다. 만약 우리가 금그릇처럼 완전했다면, 사람들은 그릇만 보고 그 안의 보배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질그릇이기에 깨어지고 금이 가고, 그 틈으로 안의 영광이 흘러나온다. 우리의 연약함은 결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담아내는 그릇의 특성이다.
10-12절은 '예수의 죽음과 생명'을 말한다.
10-12절은 '예수의 죽음과 생명'을 말한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10절). 신앙의 가장 큰 역설은 여기 있다. 죽음을 통해 생명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서 겪는 고난과 희생을 의미한다. 우리는 날마다 자아의 죽음, 욕심의 죽음, 교만의 죽음을 경험한다. 그런데 이 죽음의 과정이 헛되지 않다.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11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고난을 참으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할 때, 그 자리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라난다는 약속이다.
바울은 결론을 내린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12절). 사도의 죽음 같은 희생이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전한다. 이것이 복음의 원리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우리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때, 그 죽음을 통해 생명이 흘러나간다. 내가 작아질 때 그리스도가 커지고, 내가 낮아질 때 그분이 높아지신다.
질그릇 같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보배로운 그리스도를 드러내신다. 이것이 신앙의 역설이다.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해진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연약함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그 연약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질그릇임을 기억하자. 질그릇 같은 우리를 귀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날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드러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아침 질그릇 같은 우리를 통해 보배로운 그리스도를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통로임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우리 안에 비추신 복음의 빛을 기억하며 한 주간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는 일이 있어도 싸이지 않게 하시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가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질 때, 예수의 생명이 우리를 통해 흘러나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이 교회를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우리 모두가 질그릇이지만, 한 보배 되신 그리스도를 담은 귀한 그릇들입니다. 서로의 금 간 틈으로 흘러나오는 그리스도의 빛을 발견하게 하시고, 각자의 연약함 너머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한 분 성령으로 채워진 지체들이 서로를 세우고 격려하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날로 아름답게 자라가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이곳에 거하시며 주의 임재로 우리를 감싸주옵소서.
이 한 주간 우리의 손이 필요한 곳에 우리를 보내주옵소서. 내가 작아질 때 그리스도가 커지고, 내가 낮아질 때 그분이 높아지심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받은 것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게 하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을 만지시고 위로하시며 세워주옵소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제자들 되게 하옵소서.
한 주간 일터에서, 가정에서, 이웃 가운데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저와 성도들 되게 하옵소서. 건강을 지켜주시고, 범사에 형통하게 하시며,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를 따르게 하옵소서.
각자의 자리에서 드리는 중보기도와 간구에 응답하여 주옵소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성도들을 고쳐주시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가정들을 돌보아주옵소서.
이 모든 기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