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자가에대기업다니는김부장이야기_너희가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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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하신 한 마디 말씀이 제 가슴을 쿵, 하고 내리쳤습니다.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 5:47)
예수님은 묻고 계십니다. “너희는 도대체 뭐가 다른 사람들이냐?” “똑같이 사랑하고, 똑같이 미워하고, 똑같이 자기 사람만 챙기면서, 그게 어떻게 ‘하늘 아버지의 자녀’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이 질문이 제 안에서 오래 울렸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넷플릭스에서 본 한 드라마 속 김부장 이야기가 이 말씀과 겹쳐지면서, 저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어떤 질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1. 서울 자가 김부장 – 우리 시대의 ‘성공한 가장’행복한가정을위하여

[천천히, 차분하게]
드라마 속 주인공은 서울에 아파트 한 채 가진, 대기업에 다니는 부장입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이미지입니다.
치열한 입시와 취업 전쟁을 뚫고
대기업에 들어가
대출을 껴서 서울에 집을 사고
아내와 자녀를 위해 버티듯 살아가는 사람.
그는 “성공한 가장”의 전형처럼 보입니다. 퇴근길, 전철 창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힘들어도… 이게 다 가족을 위한 거야. 어떻게든 버티기만 하면 돼.”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지방 공장으로 좌천됩니다. 상징적입니다. ‘본사’에서 ‘지방 공장’으로. 중심에서 변두리로 밀려난 인생.
거기서 그는 또 한 번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희망퇴직을 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붙들고 버틸 것인가.
그런데 극적으로 한 번 더 기회가 찾아옵니다. 본사에 복귀하고, 더 나아가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는 찬스. 단,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지방 공장에서 20명 이상을 희망퇴직시키십시오.”
공장 전체 인원이 100명 정도입니다. 그 중 20명 이상을 내보내야 합니다. 열 명 중 두 명 꼴입니다. 숫자로는 간단합니다. 하지만, 그 숫자 안에는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남편과 아내,
학원비와 월세를 간신히 감당하는 가장 이 들어 있습니다.

2. 숫자에서 ‘얼굴’로 – 형제에게만 문안하는 사랑을 넘어서

김부장은 대충 하지 않습니다. 최대한 “공정하게” 선발하기 위해 엑셀 표를 만들고, 경력, 실적, 나이, 상황을 꼼꼼히 체크합니다.
그런데…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만둘 만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립니다.
어떤 직원은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가장이고,
어떤 직원은 부모님의 병원비를 책임지고 있고,
어떤 직원은 이 공장 일이 아니면 다른 선택지가 거의 없습니다.
처음에는 **‘사원 번호’**만 보이던 사람들이, 이제는 **‘얼굴’**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언제 시작됩니까? 사람을 숫자와 조건으로만 보던 눈이 그 사람의 얼굴과 이름, 사연을 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사랑이 움직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식으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내 사람, 내 편, 내 가족, 내 교회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만으로 ‘하늘 아버지의 자녀’라 말할 수 있겠느냐?”
김부장은 자기 가족만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승진해야 우리 집이 산다. 아이들 학원 끊기면 안 된다. 서울 아파트 지켜야 한다.”
이 계산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형제에게 문안하는 정도’의 사랑입니다. 세상 누구나 하는 수준의 사랑입니다.
하지만, 그 사랑을 넘어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3. 불이 난 공장, 그리고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완벽한 핑계

인원 선발 마감 기한이 다가오는데도 결정을 못 내리는 김부장. 그때 공장에 사고가 납니다.
노후된 장비 때문에 공장에 이 난 것입니다. 그리고 회사는 결정합니다.
“노후 장비 근처에서 근무하던 직원들 20명에게 책임을 묻고 퇴직 처리하자.”
인사 담당자는 말합니다.
“부장님, 오히려 잘 된 거 아닙니까? 자연스럽게 20명 정리할 수 있게 됐잖아요. 회사도, 본사도 이 방법을 원할 겁니다.”
이제 모든 것이 깔끔해졌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인사팀 입장에서도,
김부장 입장에서도 “자연스럽게 처리하면 될 문제”가 되었습니다.
책임을 져야 할 진짜 대상은 노후 장비를 교체하지 않은 경영진인데, 현실에서는 힘 없는 20명에게 책임을 돌리는 구조.
여러분, 우리는 이런 구조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뉴스에서도, 직장에서도,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이때 김부장은 형제에게만 문안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도 있었고, 남보다 더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4. “나는 내려가겠습니다” – 남보다 더하는 선택

[여기서 잠시 멈추고, 낮은 목소리로]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 회사가 그렇게 돌아가는데. 나 하나로 뭐가 바뀌어?”
그런데 드라마는 뜻밖의 장면으로 흘러갑니다.
김부장은 본사로 올라가 임원 승진의 길을 눈앞에 둔 자리에서 조용히 이렇게 선택합니다.
“제가… 희망퇴직하겠습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내보내는 대신, 자기가 나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화면을 보다가 제 안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제 입에서 이런 고백이 나왔습니다.
“이 사람은… 나보다 낫다.”
나는 목사이고, 그는 대기업 부장에 불과한데, 이 순간만큼은 그가 나보다 훨씬 예수님을 닮아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말로 “정의”를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을 강의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냥 자기 자리에서, 아무도 박수 쳐주지 않는 그 자리에서 자기가 져야 할 몫이 아닌 책임을, 자기 몫으로 받아들였습니다.

5. 십자가의 그림자 – 남의 책임을 내가 짊어지는 사랑

여러분, 이 장면이 왜 이렇게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을까요?
그것은 이 선택이, 어렴풋하게나마 예수님의 십자가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벌어진 일도 이와 비슷합니다.
책임은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죄의 결과는 우리가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책임을 대신 지셨습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그건 예수님이니까 가능하지,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그런데 어느 드라마 속 한 부장이, 성령의 감동인지, 양심의 소리인지, 아니면 그냥 인간적인 결단인지 모르지만, 자기 삶을 걸어 그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마 5:46–47)
여기서 “남보다 더하는 것”은
훌륭한 업적,
대단한 사역,
눈부신 성공이 아닙니다.
‘남의 짐을 내 짐으로 받아들이는 사랑’, ‘내가 지지 않아도 되는 손해를, 내 몫으로 끌어안는 선택’, 그것이 바로 하늘 아버지의 자녀답게 사는 길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6. 설교자인 나에게 던져진 질문 – 그리고 우리에게

[진솔하게, 고백하듯이]
저는 목회자입니다. 복음의 정의를 설교하고, 십자가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다가 저는 하나님 앞에서 이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이 대기업 부장의 선택이 제 설교보다 더 설득력 있게 ‘예수님의 길’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과연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 교회 재정을 위해,
우리 가정을 위해,
내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서 누군가를 숫자로만 대하고 내보내지는 않았을까요?
여러분, 우리는 너무 자주, 너무 쉽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며
“상황이 그랬다”고 말하며 남의 고통을 구조 탓으로만 돌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너희 사람에게만 잘해주고, 너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에게만 친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7. 우리의 자리에서 ‘남보다 더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 질문을 우리에게 돌려봅니다.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남보다 더하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직장에서, 숫자와 실적 뒤에 숨은 사람의 얼굴을 끝까지 보려는 선택,
가족 안에서, 늘 상처 주고받던 관계 속에 한 번 더 용서하고 손 내미는 선택,
교회 안에서, 내 취향과 내 사람만 챙기던 태도에서 벗어나 새로 온 사람, 낯선 사람, 어색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요즘 어떠세요?” 하고 진심으로 묻는 선택,
돈과 시간, 에너지를 쓸 때 내 유익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존과 회복을 위해 기꺼이 손해 보는 선택.
이 모든 작은 선택들 속에서 예수님의 그림자가 드러납니다.
김부장은 역사 책에 이름이 남지도 않을 것입니다. 회사도, 사회도, 그의 선택을 금방 잊어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남보다 더하는 사랑”을 선택한 한 사람의 결단을 하늘의 책에 기록해 두셨을 것입니다.

8. 맺으며 – 우리가 걷도록 초대받은 길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대단한 영웅”**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이 말을 우리 삶의 중심에 새기라고 하십니다.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오늘,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내 사람만 사랑하는 삶에서,
내 계산만 따지는 삶에서, 조금은 어리석어 보이고, 조금은 손해 보는 길 같지만,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닮은 선택을 하도록.
어쩌면 우리 곁에도, 아무 말 없이 홀로 결단하고 있는 수많은 “김부장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는 어디까지 사랑하겠느냐? 너는 누구의 짐을 대신 져 줄 수 있겠느냐? 너는 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남보다 ‘더하는’ 길을 택할 수 있겠느냐?”
이 질문 앞에서 저와 여러분이 솔직하게 떨리면서도, 조금은 두려워하면서도, 그래도 조용히 대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제 자리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남보다 더하는 사랑을 선택하겠습니다.”
그 결단 위에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능력이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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