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드: 회복의 길을 가는 사랑의 여정
Notes
Transcript
성경 구절: 에스라 3:1–13
성경 구절: 에스라 3:1–13
찬송가: 9장
도입
세상은 교회의 위기를 말하는 소리가 많습니다. 지도자의 낮은 도덕성, 성도들의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신앙생활, 공동체적 책임을 회피하는 성도들, 기독교라는 종교의 신뢰저하, 기독교는 합리적 지성을 상실했다 등 원인은 아주 다양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교회가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말들을 하는 시대이지만, 우리는 주님의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헤세드입니다.
요약
에스라 3장은 이스라엘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성전 재건을 위한 공동체의 결속과 의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헤세드, 즉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이 어떻게 역사적 고난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묘사합니다. 공동체가 하나님께 의지하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필요한 교훈을 줍니다.
본문내용
본국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뒤 한동안은 정착생활을 적응해야 했습니다. 돌아오자 마자 성전을 건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돌아온 그 해일곱째 달 드디어 온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결심을 한 대제사장 예수아와 유다총독 세스바살과 동료들은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의 제단을 다시 만들어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사실 돌아오자 마자 주변의 시선은 달갑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주변에 사는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짓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적대적인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귀환민들이 제단을 쌓고 자신들의 신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 땅에서 주인으로 정착하며 살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행위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텅 비어 있었던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 주변 지역의 민족들은 주인행세를 했었습니다. 그러니 이를 빼앗긴 그들은 달가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고레스 대왕의 명령이기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두려운 상황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본국에 귀환한 해 일곱째 달 15일부터 일주일 동안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초막절은 유월절 오순절과 함께 반드시 지켜야할 3대 절기로 모세 율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성격인 초막절을 지키며 하나님께 자원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기꺼이 즐겁게 예물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성전건축은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또 지나서 5개월이 지난 그 다음해 2월에 마침내 백성들은 힘을 합쳐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귀환민들은 고레스 대왕이 주었던 제물과 함께하지 못한 히브리인들이 주었던 것들로 삯을 주어 석수와 목수들을 고용하고 시돈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 등을 제공합니다. 건축 자재용으로 쓰일 레바논의 백향목까지 뱃길을 통해 욥바까지 운송해오게 합니다.
그리고 유다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를 비롯한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과 일반백성들 모두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을 함께 재건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원래 같으면 25세 이상된 레위사람들이 성전 봉사에 참여할 수 있는데, 여기에온 레위사람들이 적기 때문에 20세 이상 된 레위 사람들이 작업하는 일꾼들을 감독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제사장 예수아와 그 아들들, 호다위야의 자손들인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헤나닷의 아들들과 손자들과 그의 친척 제사장들은 다 함께 성전 짓는 일꾼들을 감독하였습니다. 모두 합심하여 서로 섬기고 도왔기에 성전 건축은 차질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이제 성전의 기초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공사를 마치자 모두가 기쁨과 감격의 환호성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축하하여 성대한 잔치를 벌입니다. 제사장들은 깨끗한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었으며, 아삽의 자손들인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다윗 왕이 규정해놓은 지침서대로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 모두 제자리를 잡았습니다.
다윗은 일찍이 거룩한 의식을 집행할 때 악기를 사용하여 주님을 찬송하도록 적합한 여러 지침들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지침을 따라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11절에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그렇게 하나님을 모두 찬양하며 기쁨과 환호를 지릅니다. 어떤 이들은 통곡하며 웁니다. 이전보다 초라해진 성전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모두 주님의 헤세드를 찬양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적용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히브리어로 헤세드 라고 합니다. 헤세드는 “약한 자가 곤궁에 처해 있을 때 강한 자가 그럴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보이는 언약적 충성”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상위자가 하위자에게 보이는 자발적인 사랑과 헌신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을 지탱하고 인도하고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헤세드 때문에 두려움 속에서도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고향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삶의 터전을 회복하였습니다.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성전 터를 건축하였습니다. 비록 초라하고 작은 성전 터였지만, 그들은 점차 점차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을 경헙합니다. 그들을 신앙공동체로 세우려는 하나님의 헤세드를 충분히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이 본문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 있는지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헤세드를 베푸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헤세드를 완벽하게 나타내는 분이십니다. 그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인류를 위한 궁극적인 사랑의 메시지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지탱해 준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시며, 그 사랑은 여전히 우리의 신앙공동체에서 실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교회가 위기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교회 공동체 안에는 주님의 그 사랑이 하나님의 헤세드가 흐르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교회는 어렵고 힘들 때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외롭고 힘들 때 함께 해주는 친구들은 모두 교회의 친구들이었습니다. 헌신과 섬김을 배우는 것도 교회 공동체를 통해 배웠습니다. 선교와 나눔 봉사를 통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 것도 함께 했던 교회 공동체 한사람 한사람을 통해서였습니다. 진실된 사랑을 나누게 되는 것도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 헤세드는 지금도 교회 안에서 예수를 믿는 한사람 한사람을 통해 연약한 지체들에게 흐르고 있습니다.
교훈
헤세드는 단순히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바탕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힘과 격려를 얻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의 실천은 공동체를 회복하고 서로를 지탱할 수 있는 귀한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랑은 나의 삶에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성전이 재건되는 순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루어진 것을 목격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헤세드이기 때문입니다. 성전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기쁨의 환호 소리를 외칠 때, 우리도 이 사랑 속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나의 삶에서는 헤세드가 어떻게 구현되고 있습니까? 지금,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행복한 교회 공동체를 강화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