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외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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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겸손의 외양간
제목: 겸손의 외양간
본문: 사도행전 17장 1-9절
본문: 사도행전 17장 1-9절
찬송: 411장 아 내 맘속에
찬송: 411장 아 내 맘속에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나라 속담 중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분들에게 소가 얼마나 귀한 재산인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집안의 기둥이요,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보물입니다. 그런 귀한 소를 도둑맞거나 잃어버리고 난 뒤에야 무너진 외양간을 고쳐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평소에 외양간을 단단히 고치고 문단속을 잘해야 소를 지킬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행전 17장을 통해, 정말 귀한 '소'를 눈앞에 두고도 자신의 무너진 마음의 외양간 때문에 그 소를 잃어버린 어리석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반면에, 튼튼한 믿음의 외양간을 준비하여 그 귀한 생명을 자기 삶으로 맞아들인 지혜로운 사람들도 만납니다. 여기서 '소'보다 더 귀한 분, 우리 영혼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외양간'은 주님을 모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이 계절, 우리도 마음의 외양간을 정성껏 관리해야 합니다. 소중한 주님을 잃어버릴 만큼 허술하게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을 점검하고, 주님이 편히 거하실 겸손의 외양간을 짓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기는 생명을 잃게 한다
시기는 생명을 잃게 한다
바울 사도는 2차 전도 여행 중 데살로니가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방의 수도로 매우 번화한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늘 하던 대로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 3주 동안 안식일마다 성경을 강론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단순하고 명확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 고난을 받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 곧 그리스도시다." 이 생명의 복음이 선포되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은혜로운 현장에서, 정작 하나님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던 유대인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본문 5절은 그들의 마음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성경은 그들이 복음을 거부한 이유가 교리적 논쟁 때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지배한 것은 바로 '시기'였습니다. 헬라어로 '시기(Zelos)'는 자기중심적인 열심을 뜻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회당의 주인이고 영적 지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굴러온 돌 같은 바울이 나타나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교세가 커지자 배가 아팠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속 외양간은 '시기'라는 흰개미 떼에 의해 기둥뿌리부터 갉아 먹혀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시기는 우리 마음의 외양간을 무너뜨리는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시기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판단력이 무너집니다. 유대인들을 보면 그들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라는 천하보다 귀한 보배가 선포되고 있는데도, 그것을 볼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오직 바울을 깎아내리고 쫓아내는 데만 혈안이 되었습니다. 시기에 사로잡히면 은혜가 은혜로 보이지 않습니다. 남이 잘되는 것이 괴롭고, 형제가 칭찬받는 것이 견딜 수 없어집니다. 결국 유대인은 깡패들까지 동원하여 난동을 부리는 '불량한 자'들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시기는 결국 가장 소중한 예수님을 내쫓게 만듭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쫓아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자기들 발로 예수님을 걷어찬 것입니다. 그들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기회조차 스스로 박탈해 버렸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에도 혹시 이런 시기의 틈이 있지는 않은지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누군가 나보다 더 인정받을 때, 누군가의 의견이 내 의견보다 더 환영받을 때, 우리 마음이 불편해진다면 그것은 경고 신호입니다. 시기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쏟아버리게 만드는 깨진 독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시기의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시기로 무너진 외양간에는 주님이 거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주님을 모신다
겸손은 주님을 모신다
유대인들과 달리, 본문 4절에 나오는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은 바울의 말을 듣고 "권함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권함을 받았다'는 말은 '설득되었다', 즉 자신의 고집을 꺾고 말씀 앞에 굴복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당시 헬라인들은 지적으로 매우 교만한 사람들이었고, 귀부인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행색이 초라한 떠돌이 전도자 바울의 말이 그들의 귀에 쉽게 들어올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지식과 지위를 내려놓고, 말씀이 들려올 때 마음을 열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진리 앞에 고개를 숙이는 태도, 이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그들은 겸손했기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가장 귀한 '소'를, 영원한 생명을 자신의 인생으로 맞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겸손은 주님이 머무시는 튼튼한 외양간을 짓는 재료입니다. 겸손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내 생각과 달라도 상대방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본문에서 유대인들에 의해 피해를 당한 야손에게도 지키고 싶은 재산이 있었고, 누리고 싶은 평안한 삶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내 집의 안락함보다 복음의 가치를 더 높게 두었습니다. 내 곳간의 재물보다 생명을 살리는 사명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대문을 활짝 열어 위험에 처한 형제들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유익을 포기하고 타인의 생명을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그 넉넉한 마음이, 바로 주님이 거하시는 가장 안전하고 튼튼한 외양간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야손과 같아야 합니다. 내 자존심, 내 이익, 내 편안함만 챙기는 좁은 마음에는 주님이 들어가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야손처럼 나를 비우고 희생하여 형제를 품을 때, 그곳에 주님의 평강이 임합니다. 시기심에 눈이 멀어 소중한 손님을 내쫓은 유대인들의 무너진 외양간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형제를 맞아들인 야손의 튼튼한 외양간을 본받아야 합니다.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내가 조금 억울하더라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그리고 형제를 위해 기꺼이 문을 열어주는 그 마음에 주님은 주인으로 좌정하십니다.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 마음 문밖에서 두드리십니다. 우리가 시기와 질투, 내 고집과 자존심이라는 낡은 기둥을 뽑아내고, 그 자리에 희생과 섬김, 그리고 이웃을 향한 환대라는 튼튼한 새 기둥을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의 외양간을 겸손으로 단장할 때, 우리 중앙교회는 예수님의 생명으로 가득 찬 따뜻한 보금자리가 될 것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시기심 때문에 자기들을 찾아오신 생명의 주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헬라인들과 야손은 겸손함으로 주님을 영접하여 영원한 복을 누렸습니다.
우리는 가을 추수가 끝나면 겨울을 지낼 채비를 합니다. 이제 우리 영혼의 채비를 할 때입니다. 내 마음에 시기라는 찬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겸손으로 문틈을 메우십시오. 교만이라는 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기도로 울타리를 치십시오.
우리 중앙교회가 서로를 향한 겸손과 사랑의 눈길을 보내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의 심령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주님께서 가장 편안하게 머무시는 따뜻하고 튼튼한 '겸손의 외양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수요 기도의 자리에 우리를 불러 주시고,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때로 어리석어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칠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내 자존심 때문에, 내 욕심과 시기심 때문에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지체들을 아프게 하고, 결국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던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거울삼아 우리 마음을 비추어 봅니다. 유대인들처럼 시기로 가득 차 흉기가 되어버린 마음이 아니라, 야손처럼 주님을 모시는 겸손의 외양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특별히 우리 중앙교회를 사랑하시는 주님, 이제 우리 교회 안에 회복의 바람을 불어넣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적으로 깨어나는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집사님들의 기도가 이 제단에 쌓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더 겸손해지겠습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서로의 다름을 용납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지혜로운 건축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이 지역 사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생명의 외양간이 되게 하시고, 세상에서 상처 입고 지친 영혼들이 찾아와 쉼을 얻는 따뜻한 품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대림절을 보내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사,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거룩한 신부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