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9장

게으름과 친숙한 그대에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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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싫증과 육체의 게으름이 만날 때

Proverbs 26:16 NKRV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영혼의 싫증

인간의 육체는 게으름에 떨어지기 쉽고 인간의 영혼은 진리의 말씀에 대한 싫증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저는 얼마 전 게으름에 대하여 3개월가량 매주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셔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였습니다.
우리는 게으른 삶과 스스로 그렇게 게으른 삶을 살면서도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자만과 무지까지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게으름에 대한 말씀들을 계속 보면서 통회하는 마음을 갖게 된 분들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받은 신선한 충격이 흐릿해진 채 게으름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싫증을 느낀 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은 부패한 죄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비만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운동과 다이어트에 관한 책을 읽고 도전을 받는 것은 쉬워도 오래된 자신의 식습관을 고치고 몸소 운동하는 것을 습관화하는 일은 쉽지 않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으름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깨닫고 찔림을 받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삶을 돌이켜 부지런히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육체가 게으른 습관을 버리는 것도 힘들지만 그런 삶을 살도록 내적 동기를 제공해 주는 영혼이 그러한 신앙적인 삶에 쉽게 싫증을 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있었을 때 죄가 아직 들어오기 전에는 대체로 영혼의 싫증이 없었고 육체의 게으름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영혼과 마음의 상태는 올곧게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고, 영혼과 육체의 모든 기능은 그들이 이 세상에 창조된 본래의 목적에 기여하도록 최선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에덴 동산에서의 삶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의무를 인식함에 있어서나 인식한 의무를 실천함에 있어서 어떠한 게으름도 없었습니다. 영혼과 육체 사이에 어떤 갈등도 없이 영혼은 언제나 하나님의 요구에 순응하고 있었고, 육체는 영혼의 선한 요구에 복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왔습니다. 육체는 할 수 있는데, 영혼이 선한 일을 싫어하기도 하고 영혼은 원하는데 육체가 반기를 들기도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게으름이 바로 영혼의 선한 욕구에 대한 육체의 반역입니다. 따라서 게으름이라는 육체의 반역은 영혼의 싫증 속에서 편안하게 번성하고 정욕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이처럼 영혼의 싫증은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모든 신령한 것들에 대해 싫증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영혼의 실증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권태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자 안에 있는 죄의 영향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권태감은 자기의 의무를 실천함에 있어서 마음과 영혼의 열렬함을 앗아갑니다. 그리고 정당한 의무의 이행에서 멀어지게 하는 유혹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킵니다. 이는 결혼한 사람들이 부부관계에 권태감을 느끼는 시기가 서로가 이성적인 유혹에 노출되기 쉬운 시기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고집의 정체

죄는 인간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불경건한 고집도 심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불경건한 고집이 센 사람들은 대부분 무지합니다. 합리적이고 경건한 사람은 고집이 셀 필요가 없습니다. 고집부리지 않아도 논리가 자신을 뒷받침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방법이 고집밖에 없습니다. 즉, 불경건한 고집이라는 것은 논리를 팽개친 불신앙적 의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고집이 있다는 것과 소신이 있다는 것은 다릅니다. 소신은 자신의 총체적인 사상적 얼개 속에서 나오는 확신이고 고집은 자기 자신의 비합리적이고 정욕적인 집착에서 나오는 의지입니다.
신념 있는 사람의 행동에는 통일성이 있지만 고집이 센 사람의 행동에는 통일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집 센 사람들과 함께 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사실 많은 경우 고집 센 사람 본인도 자신의 그런 성향이 좋지 않은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아도 그들은 고치지 않습니다. 그 고집을 완악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연약함이 아닙니다. 몸에 밴 성품이어서 고치기가 쉽지는 않지만 자기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약점은 아닙니다. 그저 자신을 꺾고 다스리지 못하는 악함일 뿐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불경건한 고집을 부리지 못하도록 교육시켜야 합니다. 자신을 꺾을 줄 아는 아이가 하나님 앞에 바른 사람이 됩니다. 불경건한 고집을 꺾는 것이야말로 그 아이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는 첩경입니다.

게으른 자의 특성: 고집

본문 말씀을 기록한 지혜자는 솔로몬 왕입니다. 어느 시대든 왕에게는 옳은 이야기를 간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이스라엘에는 이렇게 나서서 옳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다른 어느 나라 못지않게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혜자는 옳은 말을 조리 있게 하려는 사람들을 만난 경험이 있었을 것이며 그 말을 따르는 것의 유익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눈에 비친 게으른 사람은 일곱 사람이 하는 졸이 있고 이치에 맞는 선한 대답보다 자기 한 사람의 생각을 더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곱은 성경에서 완전수입니다. 한 사람의 선한 대답이라면 개인적인 견해이므로 틀릴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일곱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했다면, 그것은 옳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곱 사람이 한 가지 방향으로 대답해 주어도 게으른 사람은 자기의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들이 엿볼 수 있는 게으른 자의 특성이 있습니다. 게으른 자의 특성의 첫째는 고집이라는 것입니다.

감화력이 없는 고집

흔히 고집 센 사람은 강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강함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총과 칼에 의해 정복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창칼이 아무리 밟고 지나가도 정신을 지배하지 못하면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이 우리의 국권을 빼앗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알렉산더가 파죽지세로 아프리카까지 점령한 적이 있습니다. 알렉산더는 더 이상 점령할 곳이 없자 정복할 땅이 없다고 울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케도니아 제국은 알렉산더가 죽은 후 네 나라로 쪼개졌습니다. 그리고 후에 변방에서 일어난 로마에 의해 단숨에 함락되어 로마 제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로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로마는 정치적으로는 마케도니아를 점령하여 제국을 이루었지만 문화적으로는 마케도니아에 정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지배하는 힘은 총과 칼이 아닙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진정한 힘은 감화력입니다. 마음이 온유한 사람들은 감화력으로 세상을 지배합니다. 마태복음 5장 8절 예수님께서는 칼을 들고 설치는 베드로를 말리고 무기력하게 병사들에게 끌려가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2절 그러나 로마가 그 발달한 병기를 가지고도 지배할 수 없었던 헬레니즘 세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배하셨습니다. 오직 거룩한 은혜와 인격적인 감화로써 말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지는 그곳에 그분의 온유하신 모습도 함께 전파되었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의 감화력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아래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고집 센 사람들에게는 감화력이 없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강하게 자기 주장을 내세우고 큰 소리로 외쳐도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무릎 꿇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쁜 고집, 좋은 고집.

그런데 여러분에게 이런 의문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고집이라는 것이 정말 나쁘기만 한 것인가?
고집은 개개의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이 뿌리박은 성품입니다.
그리고 문제가 되는 것은 천성적인 고집스러움이 아니라 거기에 깃들인 죄성입니다. 거룩한 삶에 방해가 되는 것은 천성적으로 부여받은 기질로서의 고집이 아니라 그것이 죄인의 부패한 본성과 결탁하는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온 마음과 삶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집스러운 성품이 은혜에 의하여 거룩해지고, 성령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일들 없이 나타날 때 우리의 삶과 영적 생활에는 반드시 문제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성화의 작용을 통해 그 고집스러움 속에서 죄성이 빠져나가고 하나님의 쓰심에 복종되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유익한 도구가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고집스러움에서 죄성이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바로 은혜가 들어가면 가능해집니다.
도라지를 손질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도라지는 껍질을 벗긴 후 찬물에 한참 담가 놓았다가 요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도라지 안에 있는 쓴 물이 다 빠지기 때문입니다. 통 도라지를 냉수에 그대로 집어넣으면 쓴물이 안 빠집니다. 방망이로 두드리든지 칼로 찢어서 조직을 결결이 해체시킨 후 찬물에 몇 시간 담가두어야 쓴물이 빠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고집도 쓴 물을 머금은 도라지와 같습니다. 통도라지처럼 불경건한 고집이라는 쓴 물을 머금고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두드리고 복음의 비밀로 결결히 해체시켜서 은혜의 물 속에 오래 담가두면 비로소 그 쓴물이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그의 고집스러운 성품은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좋은 고집이 됩니다.

고집, 깨뜨려짐이 없는 자의 교만

무지한 사람일수록 깨뜨려져 본 적이 없고 깨뜨려진 적이 없는 사람일수록 고집이 셉니다. 우물 아래 개구리처럼 지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편협한 틀 속에 살아서는 깨뜨려질 수 없습니다. 자기 깨어짐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견지하고 있는 어떤 신념이나 고정된 생각이 더 심오한 진리의 깨달음으로 인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깨뜨려질수록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깨지면서 이전에 못 보던 새 세계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집은 깨뜨려짐이 없는 사람의 어리석은 교만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의 책에서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젊은 시절 고 서점에서 우연히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집을 손에 넣게 되었는데 그 책을 읽으며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책을 읽으며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사람 앞에서 자신이 티끌 같아지는 것을 경험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청교도들의 신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후일 20세기 설교자들 중에서 복음에 대한 가장 해박한 이해를 가진 영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깨뜨려짐입니다. 하지만 고집스러운 사람은 대부분 지적인 면에 있어서도 폐쇄적이라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은 더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집과 교만의 철갑을 두른 성 안에서 그냥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모금적인 회개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가는 얼마 가지 않아? 성과 함께 완전히 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지식을 마구 받아들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 책이나 마구 읽는 것은 위험합니다. 부지런히 거룩한 지식을 섭취하며 실천적으로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지식 안에서 자기가 접하는 것들을 정당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읽는 게걸스러운 독서는 그를 혼란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어 갑니다.
그러므로, 먼저 올바른 복음 진리들을 충분히 배워가며 그것이 거룩한 지식이 되어 옳고 그른 것을 판별할 수 있게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한 복음 진리에 기초하지 않은 신앙의 내용을 결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모르는 더 넓은 복음진리와 은혜의 세계가 있을 수 있다고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입증된 진리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지혜가 깊으면 겸손도 깊다.

이처럼 지식의 폭이 좁으면 깨뜨려짐이 없어서 교만하여지고 고집스러워집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에게 여행을 많이 다니며 세상을 배우라고 말합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다양한 문화와 역사와 사람들을 접하며 생각을 넓히면 교만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배우면 배울수록 겸손해집니다. 진정으로 학문의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본 사람은 교만해질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지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지적 헌신 속에서 이루어진 큰 바다와 같은 인류의 지성사 앞에서 나 한 사람의 지적 용량은 겨우 한 바가지의 물만큼일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해집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라고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가장 가슴 아프게 하는 기도 제목은 진리에 대한 저의 무지함입니다. 우리에게 진리의 빛을 많이 주셨지만 아직도 진리에 대한 지적 어두움이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두움은 우리의 게으름 속에서 장막을 칩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러한 무지와 고집이 게으른 사람에게서 발견된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칠명이 옳다고 이야기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를 훨씬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자신만 느껴 느끼지 못할 뿐 무지하기 그지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지혜와 늘 짝을 이루면서 성경에 등장하는 단어는 충성입니다. 그리고 이것과 상치되어 나오는 것이 게으름과 악입니다. 즉, 지혜는 열심을 품고 부지런하게 산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세상적으로도 어느 한 가지를 정말로 잘 해냈겠다는 열정과 부지런함이 있을 때 그 일에 대해 유능해지고,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들을 터득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복음의 비밀과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에게 은혜 속에서 사려는 진지하고 부지런한 구도의 몸부림이 있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은혜를 구하고 그것을 따라 사려는 지속적인 부지런함이 하나님의 광활한 복음 세계의 이치들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은 단지 일회적인 구원의 경험 하나만으로 저절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으로는 여전히 남아 있는 부패한 본성과 싸우고 밖으로는 유혹과 시험을 대항하여 이김으로써만 성취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가 그러한 삶을 사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복음의 비밀을 아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복음 안에 담겨진 복음 교류의 비밀들을 아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사람이 되어 가게 하고 거룩한 삶으로 세상을 이기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소중한 복음 교리를 아는 지식은 게으른 삶을 통해서는 결코 획득될 수 없습니다. 그가 비록 성경 내용에 통달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것은 오직 진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와 자신을 향한 거룩한 부르심에 신명을 바쳐 응답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바쳐진 마음속에 새겨지는 진주와 같은 보석입니다. 살을 찢는 통증 속에서 아파하던 병든 조가비 안에 진주가 영글어 맺히듯이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온 마음을 바쳐 치열하게 살아온 신자의 마음에 복음의 비밀들이 깨달아집니다. 그리고 그 보석 같은 복음의 교리의 비밀들을 를 통하여 획득할 수 있는 거룩한 인격과 삶의 가치는 게으름의 유혹을 뿌리치고 살아온 고통에 비교될 수 없으리만치 탁월한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최고의 예물

게으름은 우리에게 어리석음을 가져다 줍니다. 무지와 교만으로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합니다. 하지만 부지런함은 우리를 지혜롭게 하고 겸손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우리는 게으르고자 하는 자신의 육체와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영혼의 싫증과 더불어 다투고 육체의 게으름과 싸워야 합니다. 스스로를 강하게 붙들어 게으름에 빠작한 고집만 남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우리 자신을 다그쳐야 합니다.
우리가 땀을 흘리다 가야지만 예수님께서 정말 수고했구나.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내가 다 봤다. 하시며 우리의 땀을 닦아 주실 것 아닙니까?
주님을 위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가며 흘린 눈물이 있어야만 주님께서 우리 눈에서 그 눈물을 씻어주실 것 아닙니까? 요한계시록 21장 4절
그분이 원하시는 자리에서 그분의 뜻을 좇아 부지런히 사는 것보다 더 귀한 예물은 없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불경과는 고집을 버리고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기에...
제시해주신 설교문을 바탕으로 PPT 슬라이드 형식으로 요약 및 정리해 드립니다. 설교의 논리적 흐름에 따라 **[도입 - 전개 - 적용 - 결론]**의 구조로 구성하였습니다.

PPT 슬라이드 구성안

Slide 1: 타이틀

제목: 영혼의 싫증과 육체의 게으름이 만날 때 본문: 잠언 26:16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Slide 2: 도입 - 영혼의 싫증과 육체의 게으름

1. 인간의 부패한 죄성
육체는 게으름에 빠지기 쉽고, 영혼은 진리에 대해 싫증을 느끼기 쉬움.
게으름에 대한 회개 후에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무뎌지는 연약함.
2. 죄의 유입과 내적 갈등
에덴 동산(타락 전): 영혼과 육체의 조화. 영혼의 요구에 육체가 기꺼이 순종함.
타락 후: 영혼의 선한 욕구에 육체가 반역함.
게으름의 정의: 영혼의 싫증 속에서 육체의 반역이 번성하는 상태.
하나님께 대한 권태감 → 의무 이행의 열렬함 상실 → 유혹에 취약해짐.

Slide 3: 전개 1 - 게으른 자의 특성: 고집

1. 고집의 정체
불경건한 고집은 논리를 팽개친 불신앙적 의지이자 무지의 소산.
소신 vs 고집:
소신: 사상적 얼개에서 나오는 확신 (행동의 통일성).
고집: 비합리적이고 정욕적인 집착 (자기 통제 불능의 악함).
2. 잠언 26:16의 교훈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는 일곱 사람의 조언보다 자기 생각을 더 신뢰함.
게으른 자의 핵심 특성 = 고집 (자만과 무지).

Slide 4: 전개 2 - 감화력이 없는 고집

1. 진정한 강함이란 무엇인가?
고집은 강해 보이나 실상은 무기력함.
세상을 지배하는 힘은 '무력(총, 칼)'이 아닌 '감화력(인격)'.
예시: 로마는 마케도니아를 무력으로 정복했으나, 문화적으로는 정복당함.
2.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
무력이 아닌 십자가의 사랑과 온유함으로 세상을 정복하심.
고집 센 사람은 타인을 진심으로 무릎 꿇게 할 수 없음(감화력 부재).

Slide 5: 전환 - 고집의 성화(聖化)

1. 고집은 나쁘기만 한 것인가?
문제는 기질 자체가 아니라 기질에 깃든 '죄성'.
성화를 통해 죄성이 빠지면, 고집은 '거룩한 뚝심'으로 쓰임 받을 수 있음.
2. 쓴 물을 빼는 과정 (도라지 비유)
통도라지의 쓴 물을 빼려면 조직을 해체하여 찬물에 담가야 함.
영적 적용: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아를 두드리고 해체함.
은혜의 물속에 오래 담가둠.
결과: 불경건한 고집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변화됨.

Slide 6: 전개 3 - 깨뜨려짐과 지혜

1. 깨뜨려짐이 없는 자의 교만
고집은 깨뜨려짐(자기 부정)이 없는 사람의 어리석은 교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신념이 더 큰 진리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경험함.
예시: 로이드 존스 목사가 조나단 에드워즈의 글을 읽고 티끌 같은 자신을 발견함.
2. 지식과 겸손의 상관관계
지식의 폭이 넓어질수록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고 겸손해짐.
진리에 대한 부지런한 탐구가 없으면(게으름), 편협한 고집 속에 갇히게 됨.

Slide 7: 적용 - 복음의 비밀과 부지런함

1. 지혜는 부지런함의 열매
성경적 원리: 지혜 ↔ 충성(부지런함), 어리석음 ↔ 게으름.
복음의 깊은 비밀은 게으른 삶으로 절대 획득할 수 없음.
2. 진주가 형성되는 과정
조가비가 살을 찢는 통증을 견디며 진주를 만들어 내듯,
치열하게 죄와 싸우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 사람만이 **'거룩한 인격'**과 **'진리의 비밀'**을 얻음.

Slide 8: 결론 - 주님을 향한 최고의 예물

1. 영적 싸움에 대한 권면
영혼의 싫증과 육체의 게으름에 맞서 싸워야 함.
무지와 고집을 버리고, 지혜롭고 겸손한 삶을 추구해야 함.
2. 최고의 예물
"우리가 흘린 땀과 눈물을 주님께서 닦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부지런히 사는 삶이야말로 주님께 드릴 가장 귀한 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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