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설교(3) 마리아와 대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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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대림절
마리아의 대림절
마리아의 대림절
1)마리아의 믿음
(눅1:26-27)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인간의 불가능 위에 하나님은 성육신을 세우십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κεχαριτωμένη, kecharitōmenē)여…”
이 말은 단순히 “은혜를 받았다”가 아니라,
**“이미 은혜로 가득 채워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믿음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은혜를 채워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을 찾으신 것이 아니라,
불가능 속에서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눅1:28-30)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하나님이 먼저 다가 오신 것이다
항상 먼저 다가 오신 종교,,, 먼저 다가 오신 것을 은혜라고 표현 합니다
마리아는 하나님만 의지
나이 어린 소녀
가난한 촌락의 무명인
결혼을 앞둔 평범한 처녀
사회적으로 가장 연약한 위치의 사람
(눅1:31-32)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 **성육신(Incarnation)**이라는 영원한 신비를 심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 가장 큰 비밀을 감추신다.
“믿음”피스티스(πίστις)
“말하니라”(εἶπεν, eipen)는 단순 전달이 아니라 권위 있는 하나님의 계시 선포이며,
“믿다”의 핵심 개념은 피스티스(πίστις):
단순 동의가 아니라
전인격적 신뢰, 관계적 헌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자신을 맡김을 포함합니다.
마리아는 아직 모든 사실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분의 신실하심을 믿은 것입니다.
눅 1: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의로 여기셨다”
히 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절대 믿음은 절대 상황속에서 드러납니다
마리아는 믿음을 갖기 어려운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처녀
가난하고 무명한 갈릴리의 소녀
사회적 보호가 거의 없는 신분
해명할 수도 없는 초자연적 잉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 고백은 단순한 믿음이 아닙니다.
**“절대 믿음(absolute trust)”**입니다.
이 믿음은 이성이나 감정이나 상황 분석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36-37)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인간적 계산으로는 절대 불가능.
그때 천사가 말합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οὐκ ἀδυνατήσει, ouk adynatēsei – 어떤 말씀도 무능하지 않다)
절대 믿음은
현실 → 불가능
말씀 → 가능
(하나님이 먼저 다가오심을 믿은 믿음
*현실보다 말씀을 더 신뢰하는 믿음
(눅1:38)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이런 인사를 듣고 놀라… 이 말이 어떤 뜻인가 생각하매”
30–33절:
두려움 속에 있는 마리아에게, 천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아들을 잉태하여 예수를 낳을 것
그분은 큰 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 다윗의 왕위, 영원한 나라
34절: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여기까지는 믿음의 갈등 지점입니다.
상황은 불가능, 말씀은 가능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믿음은 이 긴장 속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먼저 다가오신 은혜 위에 세워진 믿음
(28절) “은혜를 받은 자여” → “믿을 만해서 은혜를 준 것”이 아니라,
은혜를 주심으로 믿음을 이끌어 내신 것.
상황이 아니라 말씀을 기준으로 한 믿음
34절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마리아는 현실을 모르는 여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을 모르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현실을 아는 가운데 말씀을 더 신뢰한 것이 믿음입니다.
말씀의 내용보다 말씀하시는 분의 신실하심을 신뢰한 믿음
임마누엘, 다윗의 왕위, 영원한 나라…
마리아는 이 모든 신학을 다 이해한 것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1: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줄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히 11:11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롬 4:20–21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약속하신 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였음이라”
신학생:
믿음은 ‘내가 이해한 만큼’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만큼’ 서는 것이다.
장년 성도(50대):
현실을 모르는 순진함이 믿음이 아니라
현실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다.
적용)
나는 과연 합리적 이성적 믿음인가?
절대불가능을 믿는 말씀의 믿음인가?
2)마리아의 순종
누가복음 1:38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의 유명한 고백: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순종” (ὑπακοή, hypakoē)
**ὑπό(hypo: 아래) + ἀκούω(akouō: 듣다)**에서 나왔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자신을 둔다는 의미입니다.
마리아의 순종은 단순 복종이 아니라 ‘관계적 순종’,
하나님의 의도와 마음에 자신을 맡기는 태도였습니다.
순종은 자기계쇡을 내려놓는 영적 케노시스(비움)이다
“주의 여종”(δούλη, doulē)
→ 자신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하나님 뜻 아래 존재를 두는 정체성.
창 22:1–3
삼상 3:10
사 6:8
빌 2:7–8 그리스도의 비움
요 2:5 마리아의 순종의 권면
선교사가 말하기를 “하나님은 문을 열라고 하셨지, 그 문을 지나가라고 먼저 말씀하지 않으셨다.”
→ 순종은 결과를 요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자리를 내드리는 행위.
삼상 3:10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창 22:1–3 아브라함이 즉시 순종함
요 2:5 “무엇이든지 너희에게 말하는 대로 하라”(마리아의 또 다른 순종의 권면)
히 5:8 “그가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워서”
빌 2:8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순종은 자기 평가를 포기하는 믿음의 결단이다
마리아는 “나는 주의 여종”이라 고백하며,
자신의 능력·연령·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사실이 자기 정체성이 되었다.
고전 1:26–29
행 9:15 바울의 선택
삿 6:15–16 기드온
렘 1:6–7
눅 5:5 시몬의 순종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순종이 흘러나온 영적비밀이다
순종은 자기의지 아니라 가기 포기의 은혜에서 나온 고백이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눅 1:38)
이 짧은 고백에는 세 가지 영적 포기가 숨어 있습니다.
자기 계획을 포기하는 순종 무얼까요??
마리아는 이미 요셉과 약혼했고,
인생의 계획이 어느 정도 정해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습니다.
순종은 내 계획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자기 평가를 포기 하는 순종 뭘까요?
마리아는 스스로를 “주의 여종(δούλη, doulē)”이라 칭합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종’이 아니라
**“주인의 의지가 나의 존재 이유가 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녀의 정체성은
능력에 있지 않고
상황에 있지 않고
주변 시선에 있지 않고
단 주께 속한 자라는 사실 하나에 집중되었습니다.
이 정체성에서 순종이 흘러나왔습니다.
*순봉은 자기통제를 포기하는 순종 ,,하나님의 주권에 맡긴 것이 순종이다
마리아는 잉태 이후 일어날 사회적·가정적·정서적 고난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말합니다.
“말씀대로(the word according to His rhema) 이루어지이다.”
순종은 결과를 예측하며 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을 드리는 행위입니다.
삼상 3:10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사 6:8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요 2:5 “무엇이든지 그가 말하는 대로 하라”(마리아의 순종 교훈)
빌 2:7–8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케노시스)
로마서 12:1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
자기 자리를 내려놓은 나는 주의 종
누가복음 1:38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의 첫 선언은 자기 소개가 아니라 자기 포기(self-denial)의 신앙 고백이다.
δούλη(doulē)
노예, 종이 아니라
“주인의 뜻이 나의 존재 이유가 되는 자”
순종은 요구가 아니라 **정체성(identity)**에서 나온다.
마리아는 먼저 능력을 말하지 않았다.
자격도 말하지 않았다.
조건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우선 **“나는 주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했다.
삼상 3:10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시 123:2 “종의 눈이 주인을 바라봄 같이”
*절대순종은 이해보다 계산 보다,말씀우선하는 순종이다
마리아는 상황을 알고 있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습니까?”
그러나 천사는 말한다.
“하나님께는 말씀마다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절대 순종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순종이 아니라
말씀하시니 따르는 순종이다.
▣ 유사 성경구절 5개
▣ 유사 성경구절 5개
창 22:1–3 아브라함의 즉시 순종
벧전 1:14 “순종하는 자녀”
요 2:5 “그가 무엇을 말하든지 그대로 하라”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순종
시 119:105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절대 순종은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순종이다
마리아는 결과를 몰랐다.
요셉이 어떻게 반응할지
부모가 어떻게 생각할지
마을의 비난
사회적 위험
장래의 불확실성
그러나 그녀는 고백한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genoito moi kata to rhema sou)
여기서 “이루어지이다”(γένοιτό)라는 말은
단순 허락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라는 의미다.
ῥῆμα(rhēma):
일반 계시(λόγος)가 아니라 지금 나에게 주어진 구체적 말씀
“kata”는 ‘~을 따라, ~에 의하여’
→ “주님의 그 구체적인 말씀을 기준으로, 그 말씀의 방향대로”
마리아는 자기 생각/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방금 주신 말씀을 인생의 기준으로 삼는 순종을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순종 – 이해보다 말씀을 우선한 순종
“나는 주의 여종입니다”라는 정체성의 순종,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는 맡김의 순종
적용)
계산적인 순종과 절대 순종의 차이점을 말씀해 주세요
3)마리아와 성령
(누가복음 1:35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한 때는 착한 요셉도 마리아를 오해하고 갈라서려 했습니다. 다행히 유대사회에 약혼하면 함께 지낼 수 있는 법이 있었고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 중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배가 불러서 남들은 두 사람 아이로 알아 다행입니다. 간통했다고 돌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암만 성령으로 잉태되었지만 믿어줄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요셉에게 미안하고 무섭고… 하나님의 아기를 잉태했다는 경외심의 감정! 보통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영국 왕실의 왕비라고 상상해 보세요! 내 속에 왕실 혈통의 3대독자가 있어요. 아들일까, 딸일까? 왕실 기대와 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이 있어요! 내 행보가 편할까요? 여성들이 아기를 임신하면 그 날로 담배 끊고 술 끊고 커피도 마시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무서운 광경은 채널을 돌려버립니다. 태(胎) 안의 아기를 생각해서 최상의 자세,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여성들! 이런 조신으로 아기를 열 명씩 낳는다면 요조숙녀들이 될까요?
마리아가 예수를 태(胎)에 가졌어요. 그 아기는 35절, 성령이 임해서 성령으로 잉태한 아기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합니다(1:18). 사도신경고백에서 성령으로 잉태하사… 라고 고백합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여호와의 은혜, 구세주 탄생에 집중하다보니 태중에 아이가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그 아기가 얼마나 성령이 충만했는지… 먼 친척 엘리사벳이 그 때에 세례요한을 임신 중이었는데 두 여인이 서로 만나자 뱃속의 세례요한이 팔짝팔짝 뛰는 것입니다.
44절,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얼마나 예수의 영이 마리아의 태속에서 강렬했으며 또 다른 태중의 아이가 그 영적 에너지를 받고 팔짝팔짝 뛰겠어요? 태아가 이렇게 성령 충만해서 남에게 강력한 에너지를 발생하게 한다면 누가 성령 충만한 것입니까? 어머니 마리아가 성령 충만하니 태안의 아이가 성령 충만하고 태중의 아이가 성령 충만하니 엄마가 성령 충만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대림절을 보냅니다. 아기탄생이 될수록 더 기쁘고 행복하고 더 거룩해지고 강해졌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아이를 출산한 적은 없기에 얼마나 불안해요? 그러나 성령 충만하니까 뒤에서 애를 뱄다 수군거려도 평안한 대림절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대림절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내 안에 아기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도 성모(聖母)라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이거 신학적으로 해석하지 마세요! 잘못 오해하면 이단입니다. 상징으로 들으세요!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아계십니다. 내 안의 아이가 성령 충만하도록 우리가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내 안의 예수로 내가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쁜 성탄절을 보낼 수 있습니다.
제3대지. “성령께서 이루시는 은혜” — 잉태의 비밀 (눅 1:35)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ἐπελεύσεται epeleusetai: 덮다, 임하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ἐπισκιάσει episkiazei: 쉼터처럼 감싸다).”
이 사건의 핵심은 마리아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주권적 역사입니다.
누가복음 1:35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누가복음 1:41 “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누가복음 1:67 “67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누가복음 2:25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누가복음 2:26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누가복음 2:27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누가복음 3:22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4:1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출애굽기 40:35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창 1:2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욜 2:28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행 1:8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롬 8:26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갈 4:6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사…”
겔 37장 성령이 마른 뼈를 살리심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영으로 난 사람도 그러하니라”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증거하시나니”
고후 3:18 “주 영으로 말미암아 영광에서 영광으로”
성령께서 “임하시고(ἐπελεύσεται)”
하나님의 능력이 “덮으시리니(ἐπισκιάσει)”라고 하셨습니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
성막 위로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덮을 때 사용된 표현입니다(출 40:35 LXX).
즉, 마리아의 몸이
**새로운 성막(New Tabernacle)**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심”(요 1:14)의 첫 시작입니다.
마리아는 잉태의 과정을 증명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생명의 움직임을 느꼈습니다.
영적 진리:
성령의 역사는 “설명”이 아니라 “내적 증언(Internal Witness)”이다.
하나님은
밖에서 명령하는 분이 아니라
안에서 생명을 잉태시키는 분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은밀하고 그러나 실제적이다
성령의 잉태는 은밀한 방식으로 일어났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했고, 오직 마리아만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일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모르는 은밀한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기도방, 눈물의 자리, 새벽의 골방,
말씀을 붙든 조용한 순간.
그곳에서 성령의 잉태가 일어납니다.
(감동예화)
나무는 봄에 꽃을 피우지만
그 꽃은 겨울 동안 뿌리에서 일어난 은밀한 생명의 역사의 결과입니다.
겨울의 어둠 속에서
아무도 보지 못하는 땅 깊은 곳에서
생명의 잉태가 시작됩니다.
마리아의 성령 잉태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조용한 곳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시작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설명할 수 없는 은밀한 역사였다.
마리아는 이것을 증명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성령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ἐπελεύσεται (epeleusetai)
가까이 오다, 관계적으로 접근하다
→ 성령은 능력을 강제로 주시는 분이 아니라 다가오시는 하나님
● ἐπισκιάσει (episkiazō)
성막을 덮던 영광(출 40:35 LXX)
→ 성령의 임재는 보호·덮음·창조의 의미
마리아와 성령 – 가까이 오시는 성령, 자신을 맡기는 마리아
성령은 능력보다 먼저 임재로 다가오시고,
우리를 새로운 성막으로 세우시며,
그 성령께 자신을 맡길 때,
그리스도는 오늘도 우리를 통해 세상 가운데 나타나신다.
지금 내 삶에서 “도저히 안 된다”고 여기는 영역은 어디인가?
그 자리에서 나는 현실보다 말씀을 더 신뢰하고 있는가?
하나님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아직 고백하지 못한 부분은 무엇인가?
나는 성령님을 능력으로만 알고 있는가, 인격으로 알고 있는가?
이번 대림절에, 마리아처럼 하나님께 드릴 실제적인 순종 한 가지는 무엇인가?
적용)
성령의 음성에 나는 얼마나 민감한 반응을 하는가?
신념과 신앙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마리아의 대림절
1)마리아의 믿음
2)마리아의 순종
3)마리아와 성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