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말고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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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20:13 NKRV
살인하지 말라
Matthew 5:21–24 NKRV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평형 깨기

샬롬~ 여러분 반가워요. 벌써 12월도 절반이 지나가고 있어요. 요맘때에는 우리가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도 있고, 내년에 대한 기대감, 또 곧 다가올 겨울 방학에 대한 기다감이 점점 커져가는 시기에요.
이런 기대감과 즐거움이 가득한 시기에 오늘은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 같아요.
여러분도 뉴스를 보거나 학교에서 들어서 알고 있을 거예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죽는 이유, 사망 원인 1위가 무엇인지 아나요? 암도 아니고, 교통사고도 아니에요. 10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는 부동의 1위가 바로 ‘자살’이에요.
우리는 친구들의 죽음 소식을 들으면 보통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걔가 멘탈이 너무 약했어.” “성적 때문에 혼자 끙끙 앓더니, 결국 그런 선택을 했구나.”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자(自)'에 '죽일 살(殺)',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해요. 그건 그 친구 개인의 선택이었다고요.
그런데 여러분, 프랑스의 에밀 뒤르켐은 아주 충격적인 진실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자살의 95%는 사회적 타살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그 친구가 스스로 벼랑 끝에서 뛰어내린 게 아니라, 누군가 뒤에서 계속 밀었다는 거예요. 감당할 수 없는 성적 압박이 등을 떠밀고, 가정의 불화가 밀고, 그리고 학교 교실에서의 따돌림과 차가운 무관심이 그 친구를 벼랑 끝으로 밀어버렸다는 거죠.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무서운 질문이 하나 생겨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친구를 죽음으로 내몬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그 죽음의 공범이었던 건 아닐까요?

갈등 심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 무거운 질문에 아주 충격적인 답을 주세요.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 제6계명, “살인하지 말라.” 우리는 이 계명을 보면서 안심해요. “휴, 다행이다. 나는 칼 들고 사람 찌른 적 없으니까. 나는 뉴스에 나오는 범죄자가 아니야.”
그런데 마태복음 5장 21절과 22절을 보세요.
마태복음 5:21–22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예수님은 지금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칼로 찌르는 것만 살인이 아니다. 말로 사람의 인격을 찌르는 것도 살인이다.”
여러분, 솔직히 말해봅시다. 우리 중에 친구에게 “바보”, “멍청이”, “노답” 이런 말 한 번도 안 써본 사람 있나요? 아니면 단톡방이나 학교에서 마음에 안 드는 친구가 말할 때, 다 같이 짠 것처럼 무시하고 투명 인간 취급해 본 적 없나요?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그게 바로 ‘살인’이에요. 우리는 칼만 안 들었지, 혀라는 칼로, 키보드라는 흉기로 친구의 마음에 피를 흘리게 만드는 것이죠. “너 같은 건 필요 없어”라는 눈빛으로, 친구의 영혼을 숨 막혀 죽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 말씀 솔직히 듣기 너무 거북하지 않나요? “전도사님, 욕 좀 했다고, 화좀 냈다고 지옥이라니, 예수님 너무한 거 아니에요?” 맞아요. 이 말씀은 우리에게 ‘복음’이 아니라, 마치 ‘저주’처럼 들려요. 예수님이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모시는 것 같아요. 이 엄격한 기준 앞에 서면, 우리 중 여기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우리는 다 ‘살인자’고,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인 거예요. 우리에겐 한치의 희망도 없는 것이죠.

실마리 제시

그런데 여러분, 이번주가 무슨 주간인지 알아요? 바로 대림절 3주차예요. 대림절 3주차의 주제는 놀랍게도 ‘기쁨’이라는 거예요.
말이 되나요? 우리는 방금 우리가 ‘살인자’라는 걸 확인했고, 지금도 친구들은 죽어가고 있고, 우리 교실은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지옥 같은데… 도대체 어디서 기쁨을 찾으라는 걸까요?
그런데 여러분, 빛은 환한 대낮에는 필요하지 않아요. 촛불이 가장 아름답고 간절하게 필요할 때는, 바로 사방이 캄캄한 어둠일 때예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건, 이 세상이 그만큼 캄캄한 ‘죽음의 세상’이었다는 증거예요.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 욕하고, 죽이고, 무시하는 이 참혹한 현장 한가운데로 찾아오신 거예요.
예수님은 왜 그런 어두운 세상에 오셔서, 안그래도 율법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너희들 욕하면 다 지옥이야”라는 더 지킬 수 없는 율법을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 말은 예수님이 우리를 지옥에 보내겠다는 말씀이 아닌 것이죠. 율법은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지를 보여주는 거울이에요. 이 거울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외치시는 거예요.
“얘들아, 봐라. 너희가 가장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도 이 율법 앞에서는 죄인이다. 너희 힘으로는 절대 서로 사랑할 수 없어. 너희 안에는 상처 주고 죽이려는 본성만 가득한 거야. 그러니 너희에겐 구원자가 필요해! 너희에겐 내가 필요해!”

복음 발견

그래서 예수님은 이러한 가르침을 다 하신 후에 어떻게 하셨나요? 우리가 받아야 할 그 ‘지옥 불’의 심판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러 십자가로 가신 거예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진짜 죽임을 당하셨어요. 사람들이 예수님께 침을 뱉었어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내려와 봐!” 조롱하고 비웃었어요. 온갖 언어 폭력과 멸시, 육체적 고통을 다 받으신 거예요.
원래 그 모욕과 저주는, 남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우리가 받아야 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심판하는 대신, 자신이 그 모든 칼날을 온몸으로 받아내신 거예요.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다 씻어내셨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얘들아, 너희가 뱉은 그 더러운 욕설, 친구를 찌른 그 미움의 칼, 내가 다 맞았다. 내가 대신 죽었으니, 너희는 이제 살아라. 너희는 더 이상 살인자가 아니라, 내 생명을 나눠 가진 내 자녀다.”
이것이 복음이에요.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벌을 받으신 거예요. 그걸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거예요.

결과 기대

사랑하는 여러분, 그 사실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주 구체적인 부탁을 하나 하시는 거예요. 오늘 본문 23절과 24절을 봅시다.
마태복음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세요. “너가 왕따시킨 그 친구가 울고 있는데, 나에게 와서 예배만 드리지 말아라. 나는 네가 먼저 가서 그 친구를 살려내기를 원한다.”
진짜 예배는 여기서 드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아요. 죽어가는 그 친구를 찾아가 살려내는 것, 그게 바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예요.
우리가 정말 예수님의 생명을 받았다면, 지금 떠오르는 친구가 있을 거예요. “아, 그때 내가 말이 너무 심했나?” “걔가 나 때문에 단톡방 나간 건가?” 그 생각이 났다면, 그게 바로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이에요.
저는 우리 모두가 사람을 죽이는 자들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소망해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먼저 가서”, “살리는 말 하기”예요. 1. 24절에 “먼저 가서”라고 하셨죠? 친구가 사과하러 오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해보는 거예요. “그때 내 말이 좀 심했지? 미안해.”
2. 죽이는 말 대신 살리는 말을 합시다. “밥 먹었어?”, “오늘 좀 힘들어 보인다. 무슨 일 있어?”
우리의 그 사과 한마디, 따뜻한 관심 하나가 친구를 벼랑 끝에서 구해내는 생명줄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그 현장에 우리를 살리신 예수님이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친구들에게 상처 주고, 무관심했던 우리의 아픈 모습을 마주했습니다. 우리는 친구를 떠났고, 때로는 하나님을 떠나 내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 찬양의 가사처럼, 우리가 등을 돌려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랑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다시 부르십니다.
이제 그 사랑 앞으로 돌아갑시다. 내 힘으로는 친구를 사랑할 수 없지만,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힘입어 다시 시작합시다. 우리의 마음을 담아 함께 찬양하며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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