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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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다니엘 6:10-12(구약 1243쪽)
설교제목: 기도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1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12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왕의 도장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는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니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확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못하는
규례니라 하는지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다니엘은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남유다의 왕족 또는 귀족 출신의 엘리트입니다. 남유다는 고대 이스라엘의 남쪽 왕국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르호보암 왕 이후로 남과 북으로 갈라졌습니다.
북쪽 왕국은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 더 정확히는 기원전 722년에 앗시리아 제국의 침략을 받고 멸망당합니다. 반면 남쪽 왕국은 기원전 586년,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에 바벨론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당합니다.
다니엘은 남쪽 왕국 곧 남유다가 멸망할 무렵에 바벨론 제국에 포로 끌려왔습니다. 다니엘의 가문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왕족 또는 귀족에 속한 높은 신분의 사람임을 성경은 말해줍니다(단 1:3-6).
바벨론 제국에서 다니엘을 비롯한 왕족과 귀족을 포로로 끌고온 까닭은요. 그들을 인질로 잡아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려 했고요. 또 그들을 바벨론 제국에 충성하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한편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곧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는 유능한 사람입니다. 그로 인해 당시 바벨론 제국의 고위 관리로 선발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이 남달랐던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삶에 큰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출세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신앙 문제로 나라의 법을 어기게 됩니다.
그것은 바벨론 제국에서 황제를 상징하는 금신상을 만들어 특정한 때에 절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이것을 거부함으로 그들은 죽을 뻔한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것은 쇠도 녹인다는 풀무불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당시 바벨론의 황제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유능함을 귀히 여겨서 이들을 회유합니다. ‘다시 기회를 줄테니 지금이라도 금신상에 절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단 3:15).’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굳게 지키고 결국 풀무불에 던져집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쇠도 녹여버리는 불에 던져졌으나 아무런 상함이 없이 그곳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이들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이 일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명성은 더 높아졌습니다. 그들은 능력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곧 신의 보호를 받는 존귀한 존재들로 여겨졌습니다.
그 당시 다니엘은 세 친구들과 함께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니엘이 세 친구들과 함께 이 일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는 세 친구들보다 더 직급이 높은 관리여서 다른 곳으로 출장을 갔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세 친구들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 수 있는 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입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다니엘은 약 80대가 되었습니다. 실제 다니엘의 나이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다니엘은 새로운 나라의 왕을 만났습니다. 다니엘을 포로로 끌고온 것은 바벨론 제국이지만, 그가 만난 다리오 왕은 바벨론 제국을 무너트린 메대-바사 훗날 페르시아 제국이라 불리는 나라 사람입니다. 이는 다니엘이 바벨론 제국에 포로로 끌려온지 약 60년의 시간이 지난 이후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80대가 된 다니엘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새로운 나라를 일으키는 다리오 왕은 그를 가장 높은 관리에 임명하였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탁월함은 질투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다니엘의 승승장구에 주변에 있던 신하들은 못마땅해 합니다. 멸망한 작은 나라 곧 남유다 출신이 새롭게 떠오로는 큰 나라의 가장 높은 관리가 되는 것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다니엘을 질투한 일련의 무리들이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짭니다. 다니엘을 넘어트리기 위한 작전입니다. 열심히 그를 뒷조사한 결과로 그는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를 이용하여 다니엘을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나라의 법을 만들어서 30일 동안 다리오 왕 외에는 어떤 신에게도 기도를 해서는 안되는 법입니다. 이를 어길 시에 사자 굴에 던저져 죽게 되는 법입니다. 우리 생각에 이런 유치한 법이 만들어지는 것이 상식밖에 일이지만요. 권력이 때때로 사람의 눈을 멀게 합니다. 당시 나라를 다스리던 다리오 왕도 이것이 썩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신을 그토록 높이는 일이 나라의 통치자로써 싫지 않았습니다.
다니엘도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소에 하던 것처럼 기도합니다. 아니 사실은 더 공개적으로 자신이 다리오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내 보입니다. 하루에 세 번씩 창문을 열고 보란듯이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결국 다니엘의 원수들의 계획처럼 다니엘은 이 일로 체포됩니다.
다니엘은 정말 유능한 신하였습니다. 다리오 왕은 어떻게든 다니엘을 건져내려 합니다. 그러나 왕의 체면에 자기가 만든 법을 스스로 깰 수 없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법에 따라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너무 괴롭습니다.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에 다니엘이 들어간 사자굴로 갑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죽었다고 생각하며 울부짖으려는데, 놀랍게도 다니엘의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습니다. 사자들이 나를 상처내지 못했습니다.’
다리오 왕은 즉시 신하들을 불러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건져냅니다. 또한 이 일로 다리오는 진정으로 하나님은 살아계신 신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다니엘 또한 그의 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 타협이 없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목숨을 내걸고 하나님을 믿었던 것처럼 다니엘 역시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많은 경우에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의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합니다. 사실 저도 이에 관한 설교를 여러 차례 하면서 비슷한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 더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거는 일이 숭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칫 생명을 함부러 대하는 일일수도 있습니다. 가령, 예전에 IS(Islamic State) 곧 이슬람 무장세력에 관한 이야기가 전세계적으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너무나 끔직하게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폭탄테러를 일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슬람교의 신앙에 관한 이유로 이러한 테러를 일삼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이러한 방식의 죽음이 숭고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이들은 이슬람교 전체를 대표하지 않고 매우 극단적인 소수의 왜곡된 신앙관을 가진 집단인 것으로 발혀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순교라는 것에 관해 생각해보면 형식상 이와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신앙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목숨을 내거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신앙을 지키기를 원하실까요? 이것은 좀 극단적으로는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자살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저는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시고 결코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희생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신앙생활의 방식이 무조건적으로 신앙생활에 목숨을 쉽게 내어던져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됨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다니엘의 이야기가 이렇게 읽혀집니다. 신앙생활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때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목숨을 내거는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목숨을 내걸어야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자기 밖에 모르던 사람이 이웃에 관심하고 그들의 삶을 돕고자 하는 것이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신앙생활은 변화에 관한 이야기이고요. 살면서 세워놓은 한계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내가 확장되고 넓어지는 일입니다.
느끼실지 모르지만, 저는 계속 기도에 관해 설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도 기도에 관한 설교입니다. 제가 다니엘의 기도를 통해서 보게되는 것은 이러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더 능력이 많아지거나 부요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더 희생적이고 더 가난해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다니엘이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는 사자굴에 들어갈 일도 없고 아무런 문제 없이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지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기도함으로 그는 오히려 죽음의 위기에 놓이게 되고요. 삶이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보면 기도하지 않는 것이 다니엘에게는 더 유리한 삶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기도함을 통해서 그렇게 안락하고 편안한 자리를 넘어서려고 합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사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음을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따르는 삶임을 말입니다. 또한 그러한 삶을 택할 때,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 서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결코 편안해지거나 안락해지는 삶 또는 세상적으로 성공한 삶과는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세상에서 위협과 문제 앞에 서는 힘겨운 삶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요. 우리는 기도를 통해 이러한 삶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와 같은 변화를 통해 우리는 세상과는 다른 혹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의 기도는 나를 변화시키는 기도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현재의 자리에 머무르고 안주하고 그것에 만족하는 삶에서 벗어나서요. 하나님의 뜻이라는 보다 크고 넓은 세계에 잇대어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에 우리는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세상과 다른 삶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이루기위해 기도하는 우리가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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