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는 다윗처럼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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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무엘하 12:15-23(구약 480쪽)
설교제목: 12월에는 다윗처럼 기도하십시오.
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18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
19 다윗이 그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다윗이 깨닫고
그의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2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실 때, 성경에 나오는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아마도 많은 분들은 다윗을 좋은 사람으로 훌륭한 신앙인으로 여길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도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다윗에게도 큰 오점이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때입니다. 그의 장수들은 전쟁에 나갔습니다. 전쟁이 유리한 국면이라 다윗은 직접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궁에 남아 있으면서 죄를 범합니다. 충직한 신하의 아내 곧 밧세바는 다윗에게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그 일로 밧세바는 임신합니다.
다윗의 만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전쟁에 나가있던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궁으로 불러들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우리아가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나 충직한 신하였던 우리아는 전장에 나간 전우들을 생각하며 집으로 가지 않습니다.
이에 다윗은 군대장관 요압을 통해 우리아를 죽게 합니다. 우리아를 다시 전장으로 돌려보내면서 요압에게 편지를 전하게 했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아를 가장 치열한 전장에 보내어 죽게하라’ 충직한 신하였던 우리아는 그렇게 불행한 죽음을 당합니다.
다윗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 마냥 그를 좋은 사람으로 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악인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라고 성경이 평가한 것은 왜 일까요? 저는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알기로 다윗은 성경에 가장 많은 기도문을 남긴 인물입니다. 시편은 찬양과 노래이기도 하지만 기도이기도 합니다. 알려지기로 시편 150편 중에 거의 절반을 다윗이 기록하였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기도에 열심인 인물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밧세바에게 행한 자신의 범죄마져도 기도문으로 남겼습니다. 그것이 시편 51편입니다.
결국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요. 그가 완전하고 훌륭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오히려 그는 악하다 여길 정도의 죄를 저지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솔직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다윗 좋게 평가하는 이유라 여겨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크게 두 가지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그가 양을 치는 목자였기 때문입니다. 목자로 사는 것은 고독함을 견디는 삶입니다. 다윗이 살던 지역에서 양을 치려면 계속 이동해야 했습니다. 비가 적고 건조한 땅이어서 목자는 양에게 먹일 풀과 물을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밖에서 홀로 밤을 보내며 맹수들로부터 양을 보호하기 위한 시간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한편 고독의 시간은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어떤 것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어쩌면 그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다윗은 그렇게도 많은 시편을 쓰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는지도 모릅니다. 대표적으로 시편 23편은 다윗의 목자로써의 경험을 반영한 시이기도 합니다.
이렇게보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고독해져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나 분주해서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기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을 가르켜 ‘초연결 사회’라고 부릅니다. 가령 예전에는 휴대전화로 전화하고 문자하던 것이 다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집이나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하던 일을 휴대전화가 있는 곳 어디서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화장실 갈때도 휴대전화를 가지고 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나 세상과 연결되어 있고 홀로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우리는 하나님과 멀어지는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목자였던 다윗이 고독 중에 하나님을 깊이 만난 것처럼요. 우리도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 위해 고독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가령, 이와 같은 새벽의 시간이 될 수도 있고요. 누군가에게 밤의 시간일 수도 있고요. 또 누군가에는 오전이나 오후의 어떤 특정한 시간일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고독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더욱 깊어져 갈 수 있을 겁니다.
한편 다윗이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요. 그가 도망자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쓰러트린 일로 다윗의 인기는 높아졌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에게 이것은 왕권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졌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사울에 의해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가지만 그것은 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습니다. 언제 빠질지 모르는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사울에게 언제 붙잡힐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더욱이 언젠가 다윗은 자신이 쓰러트린 골리앗의 나라인 블레셋으로까지 도망을 간적이 있습니다. 그곳 사람들이 그가 골리앗을 쓰러트린 다윗임을 알아보았습니다. 다윗은 기지를 발휘해 침을 흘리며 미친체하고 위기를 벗어납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얼마나 수치스러웠을까요? 또한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 이러한 비참한 신세가 된 것이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났을까요? 아마도 다윗은 이 고달픈 시간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견뎌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시편 56편이 블레셋에서 일어난 사건 속에서 쓰인 시입니다. 그외에도 시편 18편, 52편, 142편 등 다수의 시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달아나던 상황에서 쓰였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환경이 다윗으로 하여금 기도의 사람이 되게 했던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를 통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어려움이나 고난이 주어지는 것은 마냥 불행한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물론 고난은 괴롭고 힘든 일임에 틀림없지만요.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마치 다윗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여도 우리에게 때때로 고난이 찾아오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히시거나 하나님이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고요. 우리가 그 과정을 통해 더욱더 성숙해지기를 하나님이 원하시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저의 바람은 우리가 너무 괴롭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다윗처럼 기도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처럼 기도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말씀을 통해 이것을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데로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므로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언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나단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이는 다윗이 밧세바를 범해 얻게 된 아이가 죽을 거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즉시 왕좌에서 내려왔습니다. 신하들에게 명하여서 굵은 베옷을 가져오라 하였습니다. 다윗은 왕복을 벗고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밤낮 금식하며 다윗은 기도에 매달립니다. 이러다 몸이 상할까 걱정된 신하들은 다윗을 보호하려 합니다. 그를 일으켜 세우고 음식을 권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꿈쩍하지 않습니다. 신하들도 다윗의 완고함에 더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다윗이 금식하며 기도한지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불행히도 아이는 나단 예언자의 말처럼 죽었습니다. 신하들은 다윗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무척 두렵습니다. 다윗은 아이를 위해서 계속 금식하며 기도하였는데,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쓰러지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신하들이 이에 관해 수근거리를 소리를 듣습니다. 신하를 불러서 묻습니다. ‘아이가 죽었느냐’ 그러자 신하는 답합니다. ‘예, 죽었습니다.’
신하들의 걱정과 달리 다윗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다시 의관을 정제합니다. 씻고 기름을 바르고 왕복을 차려입습니다. 성막으로 가서 주님께 예배하고 궁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식사하였습니다.
신하들은 왕의 이런 모습에 다소 당황하며 묻습니다. ‘왕이시여 아이가 살아 있을 때도 금식하며 우셨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죽었는데 어찌하여 일어나서 식사를 하신 겁니까?’ 그러자 다윗이 대답합니다. 사무엘하 12장 22~23절을 같이 읽습니다.
사무엘하 12:22-23(구약 480쪽)
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방금 읽은 성경구절을 통해 우리는 다윗이 어떤 마음으로 기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나단 예언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미 들었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죽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켜 주실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를 한 것은 아닙니다. 그랬기에 다윗은 자신의 기대와는 다른 결과가 나왔어도 그것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행하신 겟세마네 기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잡히시던 날 밤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는 다가올 십자가의 사역에 관한 예수님의 원함이 있었지만 그것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고통스럽지만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다르겠다고 기도하십니다. 다윗도 이와 같은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지만, 내 바람보다 하나님 뜻을 따르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이가 죽었어도 그것으로 인해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고요.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경배하며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떠십니까? 다윗처럼 기도하실 수 있으십니까? 내게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이것이 내 바람대로 해결되지 않아도 그것을 받아들겠다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가령, 다윗과 유사하게 사랑하는 이가 생명이 위태로운데 하나님께서 살려주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보통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에 응답해 주시라고 하는 것일텐데요. 그것과 다른 결과에 관해서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법이죠. 오히려 쉽게 받아들인다면 그 기도가 참으로 간절했던 것인지 진실한 것인지조차 의심이 됩니다.
그래서 또 한편으론 다윗의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기도 합니다. 다윗이 진정으로 아들이 죽지 않기를 바랬다면, 어떻게 아들의 죽음 앞에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써는 어쩔 수 없지 체념한다고 치더라도요. 다윗의 행동은 신하들조차 놀랄 정도로 180도 태도를 싹 바꾼 것이어서요. 다윗의 진정성에 의심마져 듭니다. 하다 못해 경기를 하다가 져도 속상한 법인데, 살기를 바란 아들이 죽었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이로부터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는 것은요. 어제 했던 이야기에 반복인데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내 생각과 기대와 다를지라도요. 언제나 하나님이 옳으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우리를 잘 아셔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부모가 어디에 있겠느냐, 하늘에 계신 하나님도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저도 아들을 키워보니까 알겠어요. 현재 제 아들은 9개월 차이고 이번 12월 중순이 지나면 10개월에 들어섭니다. 이제 막 기어다니기 시작해서 이른바 말짓을 하고 다닙니다. 여기저기로 기어다니면서 손에 잡히는 것을 다 입에 넣습니다. 최근에 본 가장 기이한 장면은 이랬습니다. 거울에 입을 대고 빨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들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을 살피게 됩니다. 혹시라도 위험한 물건이 손에 들어가서 다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때로는 자신이 쥔 물건을 안 빼기려고 악을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냥 두면 다칠 것이 분명하니 아이의 기분이 상하더라도 일단은 빼앗습니다. 또는 원하는 것을 주지 않기도 합니다.
아마도 하나님도 우리에게 이와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은 즉각 들어주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다윗처럼 열심히 간절히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더 열심히 잘하겠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에는 그것이 해결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령, 로또 1등은 어떻습니까? 종종 농담아서 어떤 분은 로또 1등되면 그 돈으로 여러 선한 일을 하겠다고 하십니다. 심지어 제게도 얼마 떼어줄 것처럼 얘기하기도 합니다. 또 그것이 인생을 더 좋게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 여기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로또 1등 그거 안 될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자료를 조사하면서 보았는데요. 로또 1등 당첨자들의 삶의 대체로 비극을 경험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님들이 이에 관한 여러 실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론에 이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이 가지는 것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기보다 더 불행하게 만든다. 특히나 로또 1등과 같이 한꺼번에 많은 것을 가지게 되면요. 그 자극이 너무 커서 작은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예전에는 감사하던 작은 일이 아무런 감흥도 의미도 주지 못하는 불행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사는 것이 하나도 재미가 없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 아니라면 로또 1등 당첨 안 될 겁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주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면 우리는 이전과 다른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결과에 연연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기도말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결과이든 수용할 수 있고 하나님께 내맡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일은 아닙니다. 아마 모든 것에는 그것이 익숙해지고 더 나아가 영향을 미치는 훈련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다윗에게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가 오랜 기간 양을 치는 목자로 또한 사울을 피해 도망자로 살아가면서 그는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이 길고 힘겨운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기도의 사람으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바라기로는 우리 성도님들 또한 다윗과 같은 기도의 사람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 내 삶에 주어진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하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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