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3편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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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함께’라는 아름다움
오늘 본문은 다윗이 성전에 예배하러 가는 자들의 모습을 보고 생각하면서 기록한 하나의 노래라고 할 수 있어요.
예배하러 가는 자들의 모습이 너무 선하고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있네요. 그렇다면 우리들의 예배하러 오는 모습을 보고 다윗도 과연 똑같은 표현으로 평가를 할까요?
그걸 생각해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교회에 예배드리러 나올 때 어떤 마음으로 오냐가 중요할 것 같아요.
여기 계신 분들마다 분명히 교회에 나오게 된 목적이 다 있을 거에요. 그리고 그 목적은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면, 교회 안가면 불안하니깐? 습관적으로 나오게 된다거나, 또는 구원받을 수 없으니까, 나랑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반대로 예배 드릴 때 행복하다거나 등 여러 개인적인 이유가 있을 거에요.
더군다나 요즘 시대에는 개인의 인권을 매우 중시하다 보니 개인주의가 파다해요. 그래서 개인을 존중해준다는 측면에서 나만 예배에 잘 참여하고 주일 성수 지키면 신앙생활 잘 하고 있다라고 말을 하기도 해요
또 최근 우리가 코로나를 겪으면서 온라인 예배가 불가피 했었잖아요? 그 때는 시대적인 정황상 어쩔 수 없다고는 한다지만,
요즘에는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는 것으로 신앙생활 하고 있다고 서슴없이 말을 하는 것을 보기도 해요. 내 입맛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는 것이죠.
아무래도 나와 마음이 맞지 않는 다른 지체들과 교제하는 것을 피곤해하거나 부담스럽기 때문에 혼자 신앙생활을 하려는 경향이 매우 크게 나타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러한 모습들은 결코 건강한 신앙생활의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만일 이러한 것들이 신앙생활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굳이 교회 공동체가 존재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러한 모든 것들은 아담의 타락 이후 죄에서 비롯된 모습들이며, 교회 공동체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허락하시고 세우신 거룩한 공동체인데,
이러한 인간의 죄된 생각으로 이 공동체를 훼손하거나 무시한다면 그것만큼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은 없을 것이에요.
여기에 있는 우리 라온 청년부 청년들은 그러한 생각을 가진 청년이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이때 함께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몸이 함께 있는 것만을 의지 하지 않아요. 몸이 함께 있지만,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함께 있는 것을 다윗이 보고 선하고 아름답고 평가하고 있어요.
교회 공동체에 있으면서 마음을 함께 나누고 함께 하려고 하지 않는 모든 것들은, 결국 아름다운 공동체라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교회 공동체는 꼭 항상 함께여야 할까요? 그 이유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해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기 때문
교회 공동체가 항상 함께여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뜻과 목적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신앙 생활은 나 혼자만 잘하면 된다라고 해서 되는게 결코 아니에요.
창세기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이 모든 만물 창조하시고 아담을 지으실 때 하신 말씀이에요.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대요.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 다른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다른 날들은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지만,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후에는 심히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셔요.
왜냐하면 남자와 여자가 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일들을 잘 감당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냈기 때문이에요.
결국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는 것은, 이미 창세때부터 사람이 지음 받은 이유와 목적은 바로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어요.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죄를 짓고,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됨으로써, 사람들은 서로 품고 연합하려기보다는 분리되려는 성향을 보이게 되어요.
그렇기에 혼자 신앙생활을 한다거나, 주일 성수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부합하지 않고, 이러한 모습들을 기뻐하시지 않으세요.
사도 바울도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로마서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고린도전서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예수님을 믿게 하신 것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누군가는 손의 역할 발의 역할 신장 등. 각각의 역할이 너무나도 다르기에 성격도 기능도 달라요.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은,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한 마음으로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말해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혼자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애초에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것이라고 보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교회 공동체는 항상 한 마음으로 함께해야 하는 것이 뜻으로 명령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함께 하는 공동체는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게 되기 때문이에요.
2.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게 됨.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공동체의 특징이 있어요. 바로 그 특징은 전도서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전도서 4:9–10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우리는 완벽하거나 완전한 인간이 아니기에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넘어지고 실수하고 좌절하며 마음이 무너질 수 있어요.
그럴 때 옆에 믿음의 공동체원이 있다면, 그 지체가 다시 신앙을 믿음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옆에서 격려해주고 위로하며 이끌어 주면서 도와줄 수 있어요.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공동체가 함께하는 것이 눈에 보기에 너무 아름답다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에요.
그런데 몸은 함께 있어도, 이렇게 도와주는 믿음의 지체가 없다면, 그만큼 비극적일 수가 없을 것이에요.
공동체에 함께 하지 않고 혼자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만일 여러 삶의 문제로 무너지게 된다면,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믿음이 회복될 수 없고, 오히려 시험이 들어 믿음을 잃거나 교회를 떠날 수 도 있게 되어요.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겠지요.
그 역사는 어떻게 일어나게 되냐면, 사도행전 2:46-47절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쓰며,서로의 어려운 형편들을 다 알고, 서로를 세워주기를 힘쓰며 함께 신앙생활을 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타나요.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를 주목하게 됩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게 돼요.
교회 공동체가 어떤 곳이길래 저럴까 라는 마음으로 교회를 방문하게 되고, 그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결국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돼요.
이 역사만큼 아버지께 영광 올려드리는 것을 없을 것이에요. 그렇기에 교회 공동체는 반드시 항상 함께여야만 합니다.
3. 하나님께서 약속의 복을 주심.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는 교회 공동체에 약속을 주셨어요. 다윗도 오늘 본문에서 그 약속의 내용을 알려주고 있는데요.
바로 영생이라는 복이에요. 영생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는데요. 그 약속은 예수님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분명히 주어졌어요.
마태복음 18:19–20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두 세사람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주님께서 그 자리 가운데 함께하실 것이며,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합심하여 아버지의 뜻을 구하면 반드시 이루게 하신대요.
이 복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서 핏값으로 세우신 교회 공동체에게만 허락된 것이에요. 그렇기에 우리가 이 땅에서 항상 함께하기를 힘쓰다가 결국 마지막에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아가는 그 영생의 복을 반드시 우리가 누리게 될 것이에요.
마무리
사도 바울은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항상 함께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아는 자들이에요.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또는 나랑 관계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관심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모양이던 간에 한 마음으로 합력하기를 힘쓰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자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히브리서 10:24-25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신다고 분명 약속하셨어요. 그 날을 계속 가까워지고 있어요. 죄가 이 세상 가운데 들어오면서 세상 사람들은 모이기를 싫어하고 자신의 욕심대로, 이기적이면서 개인적으로 살아가고자 해요. 이게 세상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이에요.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오직 모이기를 힘써 권하고,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서로를 세워주고 사랑하여 결국 그 모습을 통해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 날 우리 라온 청년부는 어떤 평가를 주님께 받게 될 것인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다윗이 오늘 본문에서 이러한 공동체가 아름답다고 한 것처럼, 다윗이 보이게도 아름답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보시기에 아름답다고 칭찬하실 정도로 공동체를 함께 힘써 세워 결국 아버지께 영광 돌리는 우리 라온 청년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합심기도
이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보단 나의 유익과 만족을 먼저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했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하나님의 뜻대로 세우신 이 공동체를 한 마음으로 사랑하게 해주세요.
우리 공동체를 세상 가운데 아버지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나도록 사용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