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처럼 믿고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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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무엘상 1:9-18(구약 408쪽)
설교제목: 한나처럼 믿고 기도하십시오.
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약 8km 떨어진 곳에 라마다임소빔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라마다임소빔’은 ‘두 개의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이름처럼 해발 약 700m가 넘는 높은 언덕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쉽게 말하면, 산골 마을입니다.
이곳에 경건한 사람인 엘가나가 살고 있습니다. 그는 제사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매년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실로로 갔습니다.
실로에는 언약궤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만들라고 하신 네모난 상자입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 돌판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궤를 통해 모세와 만났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을 만나는 성스러운 물건입니다. 또 그곳에는 모세처럼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대제사장 엘리가 있습니다.
제사 오늘날로치면 예배하기 위해 당시 사람들은 실로로 갔습니다. 엘가나는 매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실로에 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엘가나에게는 두 명의 아내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아내가 둘이라는 것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 여성의 매우 열악한 환경에 있었습니다. 스스로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 했습니다.
결혼 전에는 아버지의 보호를 받습니다. 결혼 후에는 남편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래야 살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성을 부양하도록 여러 아내를 얻는 일이 가능했습니다.
엘가나를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두 명의 아내를 부양할 경제적 능력을 지녔다. 그는 두 명의 여성을 부양할 자비로움을 지녔다.
문제는 엘가나의 두 아내 곧 한나와 브닌나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브닌나는 여러 자식이 있습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습니다. 그것이 늘 문제를 일으킵니다.
브닌난는 자식이 없는 한나를 조롱합니다. 한나는 이것으로 심히 괴로워합니다. 당시 결혼한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 혹은 ‘여자로써 수치스러운 일이다’ 다시 말해, 신앙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존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식을 낳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자식은 재산이자 힘입니다. 농사를 짓는 것에 많은 자식이 있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들은 가문을 잇는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아들은 가문의 중심이고 가문이 계속 이어질 수 있게 하는 필수적인 존재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자식은 불멸을 위한 수단입니다. 자식을 통해 부모의 이야기는 대대로 전해집니다. 이른바 자식이 없어 대가 끊기면 세상에서 소멸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나에게 자녀가 없다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입니다. 브닌나는 남편 엘가나의 사랑을 독차지 하기 위해 한나의 약점인 자식 없을을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다행히도 엘가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아이를 못 낳는 한나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를 더 아껴줍니다. 늘 브닌나로 인해 괴로워하는 한나를 위로합니다.
그러나 한나의 괴로움은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남편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한나는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합니다.
그날도 한나는 실로에서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종의 비천함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옵소서. 아들 하나를 허락해 주옵소서. 그러면 아들을 평생 주님께 바치겠습니다.’
한나가 기도하는 모습을 대제사장 엘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입술은 움직이지만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엘리는 한나가 술에 취한 것이라 생각하고 호통칩니다. ‘언제까지 술에 취해 있을 생각이오’
그러나 사실 엘리는 영적으로 어두워져 깨닫지 못했습니다. 한나는 괴로움 중에 몸부림치고 있음을 말입니다. 한나는 자신이 고통을 이야기하자 엘리는 깨닫고 복을 빌어줍니다.
여기에는 오늘날 우리의 기도와 당시의 기도가 차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대체로 특별한 때가 아니면, 통성으로 기도하기보다는 속으로 기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기도의 모습이 매우 낯선 것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엘리가 이를 보고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하니 말입니다.
과거에는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소리를 내서 읽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기도 역시 소리를 내어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 우리의 기도와 3000년 전 기도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 좋다 혹은 무엇이 옳다고 따질 것은 없지만요.
아주 분명한 것은 엘리가 한나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복을 빌어준 것을 보면요. 어떤 방법으로 기도하느냐 보다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느냐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오늘 성경 말씀 18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저는 이 장면에서 한나가 어떤 마음으로 기도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온전히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맡겼습니다.
그 결과를 우리는 잘 압니다. 정말로 한나의 믿음처럼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이러한 한나의 기도에 관해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교훈을 얻으십니까? 보통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여신다. 불임도 임신이 되게 하신다.’
실제로 제가 이러한 간증을 종종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주지 않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다시 말해, 임신 되는 것도 또한 불임이 되는 것도 우리는 속속들이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뜻입니다. 만약 임신이 되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이라면요. 불임은 모두 기도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시기에 생명을 주시는 것도 주지 않으시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한나에게 벌어진 사건을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저보다 훌륭하신 목사님께서 책에 쓴 이야기인데요. 저에게 한나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에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읽어드립니다.
“이 사건을 단순히 아이를 갖고 싶을 때 인간이 해야 할 의무나 비결을 가르쳐 주는 사건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한나 개인에게는 하나님이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사건이지만, 이 일이 성경에 기록된 이유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구속사적 과정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기적적으로 출생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위한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사무엘은 다윗을 위한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 요한의 사건이 예수님의 사건이듯이, 한나의 사건은 사무엘의 사건이고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사건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이런 겁니다. 한나에게 주신 아들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그것은 달리 보면, 하나님이 한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사랑하셔서 행하신 일입니다.
왜냐하면, 한나가 낳은 아들 사무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게 되고요.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오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한나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의 기도를 통해 얻게 되는 교훈은 한나처럼 기도하면, 임신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괴로움에 응답하시고 더 나아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얻게되는 기도의 교훈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임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믿음이 바탕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결코 나의 불행이 아니라 나의 행복을 향해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한나처럼 근심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의 기도가 한나처럼 믿음의 기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믿음 안에서 기도할 때, 우리는 마음의 짐을 내려 놓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믿음의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가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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