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겸손히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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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 18:9-14(신약 125쪽)
설교제목: 기도는 겸손히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이야기는요. 예수님께 예루살렘을 향하는 중에 사람들에게 주신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에 기도하러 왔습니다. 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바리새파에 속했습니다.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세리입니다.
바리새파가 존경을 받은 까닭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확히는 기원전 140년 지금으로부터 약 2100년 전입니다.
당시 마카비 가문에 의해 하스몬 왕조가 세워졌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독립하여 나라를 세웠음을 뜻합니다. 기원전 586년 바벨론 제국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제국에서 페르시아 제국으로 그리고 헬레니즘 제국으로 오랫동안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그 기간이 무려 180년에 이릅니다.
그러다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이 약 30세쯤 죽고 헬레니즘 제국이 4개로 분열됩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셀레우코스 왕조를 마카비 가문이 물리쳤습니다.
그로 인해 유대인들은 오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오랜 식민생활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나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이 크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헬레니즘 문화는 쉽게 말하면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섞여진 문화를 말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가령, 전통적으로 유대인은 율법을 따라 살았습니다. 할례를 행하는 것,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으로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게 됩니다. 이른바 세속적인 문화의 유입으로 율법준수를 비롯한 신앙생활이 약화 되었습니다.
이에 헬레니즘 문화와는 구별된 삶을 살려는 일련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율법을 준수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는 집단이 생겼습니다.
그들을 히브리어로 페루쉼(פְּרוּשִׁים)이라 부릅니다. 이는 ‘구별된 또는 분리된’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그리스어로 바리사이오스(Φαρισαῖος) 곧 바리새파라 합니다.
바리새파는 이렇게 헬레니즘 문화에서 분리되어 신앙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로부터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힘쓰는 이들입니다.
바리새파의 하나님을 향한 남다른 열심은요. 일찍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무려 약 150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그랬기에 바리새파는 존경받는 사람들로 여겨졌습니다.
반면에 당시 세리는 사람들의 멸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은 또다시 로마제국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가장 강력한 나라였고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 각 식민지로부터 세금을 거두기 위해 세금징수권리를 판매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하도급 업체가 입찰경쟁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세금징수원을 하려는 이는 세금징수금액을 써서 다른 이들과 세금징수권리를 놓고 경쟁합니다.
세금징수권리를 획득한 이는 로마제국의 식민지에서 세금을 징수합니다. 이득을 보기 위해 로마제국에 바치는 세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사람들에게서 받아내야 합니다.
이는 치졸하고 잔인하였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때로 동포들의 압박하고 힘을 써서 빼앗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세리의 세금 징수를 누구도 좋아할리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것은 조국을 배신하는 일입니다. 식민지배를 하는 로마제국을 배불리는 일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에게 이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마치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을 때, 친일파로 일제의 앞잡이 역할을 했던 자들을 보았던 시선과 같습니다. 그들은 사람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다고 여겼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어울리 말아야할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죄인, 창기 그리고 세리였습니다. 다시 말해 세리는 매춘부와 범죄자와 다를 바 없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성경 이야기를 통해 묘한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성경 말씀 14절을 같이 읽습니다.
누가복음 18:14(신약 125쪽)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보다 세리가 더 의롭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상식밖의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철저히 섬기는 사람들로 당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동족에게서 세금을 거두는 것으로 당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세리가 바리새인보다 의롭다가 말씀하시는 것은 당시로써는 비상식적이다 못해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리새인보다 세리를 더 의롭다고 하신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 11~13절을 같이 읽습니다.
누가복음 18:11-13(신약 125쪽)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바리새인은 기도할 때, 자신은 세리와 다른 사람임을 과시하며 기도합니다. 반면에 세리는 차마 부끄러워 하늘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그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할 따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높이는 사람보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을 옳다고 여기십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마치 태양을 맨눈으로 바라보면 눈이 멀어버리듯이 하나님 앞에 우리는 약하고 부족한 존재들일 따름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대단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요. 하나님 보시기에는 도토리 키재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속된 말로 그놈이 그놈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야기 속에 바리새인은 자신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반면에 자기가 본래부터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임을 알고 하나님께 솔직한 모습으로 서 있는 세리가 더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려는 가르침을 무엇일까요? 이 이야기의 시작이 9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자신이 의롭다고 믿고 남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겸손하지 못한 신앙인들에 관해 질책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당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스스로 의롭다여긴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겸손할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보건데 기도에는 겸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부탁을 드리는 일입니다. 내가 어찌 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를 도와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부탁을하는 사람이 겸손한 자세로 나아가지 않으면 그것을 진정성 있다고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는 나를 낮추어 하나님께 겸손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통해 당시의 상식과는 맞지 않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하시지만, 이를 통해 분명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단하고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이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서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기뻐받으시지 않음을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신앙생활을 오래한 분들에게 또는 저와 같은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의 사역자들에게 뼈아픈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열심히 한 신앙생활이 하나님을 높이기보다 자신을 더 높이는 일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은 직분 가령, 목사, 장로, 권사 등등의 직분이 마치 나의 자랑이고 면류관이 되어서 스스로 자신이 훌륭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어쩌면 우리는 ‘죄인 중의 괴수’일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겸손히 서지 못할 때, 그와 같은 직분이나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도의 교훈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겸손한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훌륭함이나 우리의 의로움을 과시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통해 우리의 죄성과 연약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행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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