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 3-9. 그리스도의 주재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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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찬송
찬송가 32장 만유의 주재
2. 기도
3. 아이스브레이크
지금까지 받은 선물 중에서 가장 최고의 선물은 무엇입니까?
박종은 집사님 -
전승인 집사님 -
신현천 집사님 -
최인 집사님 -
서용석 집사님 -
4. 숙제 점검
1)암송 구절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 독서 과제 -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 (로버트 멍어 저)를 읽고 느낀 점
3) QT (예수님의 주재권)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이 과의 목적]
1.예수님이 우리의 주권자이심을 깨닫는다.
2.바울의 예를 통하여 주님의 주재권을 인정하는 삶이 무엇인지 이해한다.
3.라오디게아교회의 예를 통하여 주재권을 인정하지 않는 신앙 생활이 어떠한지 안다.
4.주재권을 인정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는가를 점검하고 주재권을 인정하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교재81페이지를 같이 읽어 봅시다.
서론 요약
1)예수님의 지배를 받지 않는 영역은 없습니다.
2)자신의 마음과 생활의 전 영역을 그분께 내어 주지 않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3)우리는 전 영역에서 그분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교재 82페이지
1.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주권자가 되시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사야 43장은 왜 여호와께서 우리의 유일한 주권자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절에서, 여호와는 야곱과 이스라엘의 창조자이시며 구속자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야곱과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택함을 받은 백성을 가리키는 두 이름입니다.
성경은 ‘야곱’을 인간의 연약함, 자기 힘으로 살려는 옛사람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사람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사용합니다.
여호와는 야곱과 같은 우리를 부르셔서 이스라엘로 만들어가시는 일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지금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의 피 값으로 구속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소유 입니다.
이사야서는 “내가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값 주고 사서 붙잡고 계신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2절에서, 우리 성도들이 ‘물과 불’같은 고난과 환난의 시간을 지날때에도,
여호와께서 성도들과 함께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구약을 보면, 홍해를 건널때에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고, 광야 40년 생활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였습니다.
신약을 보면, 큰 광풍이 일어날때에도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 위에 계셨습니다.
이는 성도된 우리들의 삶이 결코 고난이나 환난이 면제되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고난과 환난의 시간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 성도들과 함께 하신다고 말합니다.
3)3-4절에서, 여호와의 구원과 여호와의 함께 하심은 궁극적으로 여호와의 주권임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애굽, 앗수르, 바벨론과 같은 세계 열강들까지 도구로 사용하시며
그들의 흥망성쇠를 주권적으로 다스리셨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사랑)으로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여호와의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이스라엘은 한 번도 주님에게 마음을 내어준 적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였습니다.
호세아–고멜 사건은 하나님의 백성이 음녀처럼 세상을 사랑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그의 사랑 때문에 다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사랑할 만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4) 5-7절 : 여호와께서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주님께로 가까이 이끄시는 것이 최종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동서남북, 땅끝에서라도 자기 백성을 다시 모으십니다.
구원의 최종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이끄시는 것입니다.
종합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시고, 고난 속에서 함께하시며, 결국 주님께로 가까이 이끄시는 유일한 주권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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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AD 60–62년경에 자신이 개척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빌립보서의 핵심 주제는 “기쁨”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기뻐하고 있고(빌 1:18),
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복음을 위해 순교할지라도 기뻐하겠다고 고백합니다(빌 2:17).
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바울이 이렇게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어떤 세상적인 환경이나 상황 때문이 아니라,
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며,
그의 삶 자체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그리스도 때문”(빌 1:21)이기 때문입니다.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바울은 자신의 삶의 모든 것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모든 존재가 그분 앞에 무릎 꿇고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을 선포합니다(빌 2:9–11).
예수 그리스도는 낮아지셨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높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과 죽음,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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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36 For from him and through him and to him are all things. To him be glory forever. Amen.
① From Him —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만물의 근원과 시작은 하나님 이십니다.
우주 만물과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② Through Him — “주로 말미암고”
지금도 만물을 유지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단지 시작만 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지켜주시고, 인도하시고,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 숨 쉬는 것, 믿음을 지키는 것조차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 입니다.
③ To Him —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우리의 삶의 끝(목적과 결론)도 하나님이십니다.
만물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 입니다.
우리 인간의 존재 이유도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 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물질과 재능과 인격과 사랑과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 존재의 목적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드러내면서 살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주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 (from him)은,
그 은혜를 베푸는 삶을 통하여 (through him),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to him)을 살아야 합니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1. 적용 질문)
나는 나의 생명과 나의 재능과 나의 물질이 모두 주님의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실제 삶 속에서 내가 ‘주인처럼’ 붙잡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2.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 가운데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인정하였습니까?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1) 본문을 외워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시 적어 봅시다.
2)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핵심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자라온 환경과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이 말은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어떤 사안에 대한 생각과 판단 기준도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있었습니다.
주로 이방인들(먹는 자)은 음식 규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반면 주로 유대인들(먹지 않는 자)은 음식 규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먹는 자들은 먹지 않는 자들을 믿음이 약하다고 무시했고,
먹지 않는 자들은 먹는 자들을 경건하지 않다고 비판했습니다.
결국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무시하고 비판하는 갈등이 로마 교회 안에서 생긴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생각이 다르다고 비판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형제를 실족하게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즉, 나의 자유가 형제를 넘어뜨릴 수 있다면, 자유를 주장하기보다 사랑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가르침의 핵심에 롬 14:7–8이 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도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산다.”
따라서 로마 교회의 갈등은 겉으로는 “누가 옳으냐”의 문제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누가 주인이냐”의 문제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로마 교회의 성도들처럼
내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내 신앙 방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비판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내가 주인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자기 생각으로 형제를 비판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전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3)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①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산다”의 의미 -
내 삶의 목적과 주인은 나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 이십니다.
내가 오늘 살아가는 이유는 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직장과 가정과 교회에 있는 이유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중심이 아니라 주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②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의 의미 -
일차적으로 육체적 생명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그의 육체적 생명을 잃는다고 하여도 그 죽음이 주님을 위하여 죽는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자기 자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자기 자아 또는 자존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앞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꺽지 못하면, 그것은 여전히 자신이 주인이라는 반증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자신의 자존심을 죽일때에, 예수님의 주님되심이 비로서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인은 살아 있는 동안 날마다 자기 중심성을 죽여 예수님을 주로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4)5) 당신에게 있어서 주님이 마음대로 지배하시는 영역과 그렇지 못한 영역이 무엇입니까?
물질의 영역 -
자녀의 영역 -
남편의 영역 -
관계의 영역 -
교재 84페이지
3.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어떤 처지에 두고 있었습니까?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에바브라에 의해서 개척된 교회였습니다 (골 4:13)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하여 라오디게아, 골로새, 히에바볼리에 있는 교회들에게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고
이미 편지한 적이 있습니다.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이제 시간이 흘러서 주후 95년 경이 되었고,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 7 교회를 향하여 편지한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에바브라가 라오디게아에 교회를 개척한 지 약 30년이 넘어갔고,
맨 처음 예수님을 영접한 아버지 세대는 이미 죽고, 자녀들이 교회의 중심 구성원이 되었을 시점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 입니다.
그리하여 라오디게아 교회는 다른 사람들에게 ‘시원한 생수(골로새)’처럼 영적 생명력을 주지도 못했고,
‘뜨거운 온천수(히에라볼리)’처럼 치유와 회복을 주지도 못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도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1) 원인
①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 둠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말은 했지만, 삶의 중심에 모시지 않았습니다.
내가 필요할 때만 주님을 찾고,
내가 필요 없을 때는 예수님과 멀리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주님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주인이 되어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이 진짜 그들의 주인이 되어서 다스린 적은 없습니다.
② 자기 만족과 자기 의지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그들은 실제로 부유한 지역(라오디게아)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
이 지역은 금융, 의학, 모직 산업이 발달하여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육신의 평안함에 빠져, 예수님을 의지 하지 않고 자신 만족 가운데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야,
“가난하다, 앞을 보지 못한다, 옷을 입지 못했다”라고 하면서,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이는 육신의 생활에 안주하지 말고,
영안이 열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과 함께 날마다 믿음으로 걸어가며,
세상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이 주는 걸들로 만족해 버리는 삶은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있었다는 문제를 가지고 이었습니다.
2) 해결 방안
예수님은 그들에게 “삶의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오라” 요구하시고 있습니다.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기는 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어떤 세상의 유혹과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예수님의 주재권을 인정하지 않고,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교회에 걸친 상태로 살고 있었던 사람들 입니다.
이 말씀(계3:14-22)을 듣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의 말씀(뜻)대로 살아가며,
인생의 모든 순간에도 그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믿고
나를 버리고 사는 삶이 성도의 삶입니다.
3-1 적용)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속에 우리들의 모습은 없습니까?
교재 86페이지를 같이 봅시다.
4.빌 브라이트 박사는 예수님의 주재권을 중심으로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을 구별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1)비그리스도인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마음의 왕자에 자기 자신이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가 인생의 주인 이심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 밖에 서 계십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일들의 바른 가치과 의미를 갖지 못하며, 마음의 혼돈이 계속됩니다.
예를 들어, 남한산성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감탄도 하고 위로도 받지만,
그 모든 아름다움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할 존재로서의 자신을 보지 못합니다.
자연은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인도하는 ‘표지판’인데, 그 표지판만 바라보고 만족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연이 주는 위로, 감정, 만족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 버리고, 예수님은 여전히 마음 밖에 계십니다.
2)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예수님을 마음 속에 받아들였지만,
자신이 여전히 주인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왕권을 양도하지 않고 있는 것 입니다.
아마 교회 안에 가장 많은 유형이 아닐까 생각 됩니다.
예를들어, 토요일에 교회 사람들과 함께 남한산성을 오릅니다.
산을 올라가면서, 멋진 풍경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와! 하나님이 정말 아름답게 창조하셨네! 너무 은혜롭다.”
그 순간만 보면 아주 신앙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산하는 길에서 누군가와 의견이 부딪히고,
자기 생각을 관철시키려 하다가 말다툼이 일어납니다.
감정이 상하고, 속으로 불평하고, 상대를 판단하고, 섭섭함이 올라옵니다.
이는 곧 예수님을 인정하긴 하는데,
삶의 주인은 여전히 ‘나’라는 증거입니다.
자연을 보며 하나님을 인정하였지만,
정작 교회 안의 형제를 비판하고 시기하는 모습은
여전히 삶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반증입니다.
머리로는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실제 삶에서는 내가 왕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3)성령에 속한 그리스도인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성령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 들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왕좌(주권)를 예수님께 내어드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 처럼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가 여전히 살아 있고 판단하고 감정을 느끼지만,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예를 들어, 토요일에 교회 사람들과 함께 남한산성을 오릅니다.
정상에서 멋진 풍경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이 참 아름답다”
여기까지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과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순간에서 차이가 나타납니다.
하산하며 누군가와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자기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오해나 서운함이 생길 때,
과거라면 감정이 폭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잠시 마음이 흔들려도 이렇게 반응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논쟁하는 대신에, 양보하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대신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성령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감정이 없고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감정이 흔들릴 때 ‘내가 아닌 주님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4-1) 당신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