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사건!

가창교회 중고등부 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4 views
Notes
Transcript

좋은 소식

말씀을 읽기 전에 이야기 하나를 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학교 점심시간에 밥을 다 먹고 친구들이랑 떠들고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이때 누가 갑자기 교실로 뛰어 들어와서 소리칩니다. “대박사건! 대박사건! 야들아 내가 진짜 엄청나게 좋은 소식을 알았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요? 그가 말하는 엄청나게 좋은 소식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엄청나게 좋은 소식은 무엇인가요? (두 명 정도만 얘기해봅시다 - 학생 2, 교사 1)
전도사님이 기억나는 좋은 소식은 첫째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입니다. 자녀가 있는 선생님들은 그때가 기억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빠가 되었다니!’라는 두근거림과,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 등의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였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좋은 소식이죠. 우리의 마음을 만족하게 할 만한 것, 우리를 풍요롭게 할 만한 것, 우리의 기대를 채워주는 것 또는 기대 이상의 것을 얻는다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그것을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했는가? 오늘부터 제가 여러분들에게 설교할 큰 주제가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Good News 즉 좋은 소식이라는 뜻이에요. 여러분, 기독교의 복음, 또는 예수의 복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세요?
누군가에게는 옛날 이야기, 누군가에게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텍스트, 누군가에게는 한 구원자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나의 죄를 대속했다는 (하지만 나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는) 사건 등 다양하게 복음이라는 단어가 다가올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2,000년 전의 이야기가 세월이 지나는 동안 ‘좋은 소식’의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일단 오늘의 본문을 읽어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1 NKRV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Arche tou euangeliou Iesou christou [huiou theou].
자, 여러분 아쉽게도 개역개정 성경은 평이한 문장으로 되어 있어서 헬라어 원어의 느낌을 살리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본문의 원래 의미는 이런 뉘앙스에 더 가깝습니다.
“시작되었다!(대박사건!) 바로 그 좋은 소식이! 그 소식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이다!”
여러분, 그 좋은 소식은 무엇입니까? 마가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이라고 말하는 그 소식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제가 아까 전에 본질을 잃어버렸다고 얘기했던 좋은 소식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보통 이렇게 복음을, 좋은 소식을 설명합니다. a. 모든 사람은 죄 안에 거하고 있습니다. b.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죠. c. 그 덕분에 우리는 모두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답니다!
맞나요? 죄송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의미의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정확한 의미의 복음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러한 설명은 마치 우리가 이 죄 많은 세상에서 탈출하여 하늘로 도망치는 것처럼 복음을 이해하게 합니다.
여러분, 정말로 좋은 소식이 땅을 탈출하여 하늘나라로 가는 것인가요?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정말로 그렇게 말하고 있을까요? 무엇보다 우리가 구원자라고 믿는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지금부터 잘 들으셔야 합니다. 졸린 분들은 일어나서 들으세요. 괜찮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있는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 얘기를 할겁니다. 그만큼 중요한 이야기에요. 자 들어보세요.
“좋은 소식은, 땅에 임할, 하늘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말한 것이 아니에요. 바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자세하게 나누려고 합니다.
자, 그런데 이 좋은 소식, 땅에 임할 하늘에 관한 좋은 소식은 짧은 이야기가 아니에요. 앞에서 말했던 세 분장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2시간 짜리 영화보다 40초 짜리 쇼츠에 더 익숙하잖아요? 아마 반지의 제왕이 요즘 시대에 다시 개봉한다면 3시간짜리 3편의 영화가 아니라, 넷플에 시즌 1, 2, 3으로 나오면서 시즌 하나마다 30분 짜리 에피소드들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나올 것 같아요. 그만큼 요즘은 짧은 호흡, 빠른 전개, 그리고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는 경향의 이야기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경이 말하고 있는 좋은 소식은 아주 긴 호흡의 대하드라마에 더 가깝습니다. 여러분 제가 질문 하나해 보겠습니다.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 나무 아래서 의형제가 되기로 맹세를 했다는 삼국지의 이야기는 ‘도원결의’라는 단어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들은 왜 도원결의를 했나요? 성도 다르고, 고향도 다르고, 나이도 다른 이들이 왜 갑자기 복숭아 나무 아래에서 의형제가 되기로 했는지 아시는 분이 있나요?
또 하나, 우리가 아는 고사성어 중에서 ‘사면초가’라는 것이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는 대충 아시죠? 완전히 포위되가지고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보통 이르는 말이죠. 그런데, 이 고사성어는 어떤 상황에서 나오게 된 말일까요? 동서남북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나오는 것과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아시는 분이 있나요?
이러한 예시들이 알려주는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따라해보세요.
“이야기는, 반드시, 더 큰 이야기 안에 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라는 성경의 전체 이야기 안에서 이것을 읽어야 합니다. 좋은 소식은 설교가 아니에요. 좋은 소식은 그냥 하나의 좋은 가르침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좋은 소식은 이야기에요. “어떤 일이 과거에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어떤 일이 앞으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현재를 사는 우리는 어떻게 이야기를 받아들일지 결정해야 합니다.”
좋은 소식: 누군가에게만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