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잊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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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26-38
하나님의 함께 하심 - 은혜를 받은 자(26-30).
마리아는 자신을 비천한 상태(48절)로 표현한다. 마리아는 왜 자신을 비천한 자로 묘사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자신이 권세 있는 자도 아니고(52), 오히려 가난한 신분에 처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53). 저는 오늘날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개근하면 거지라고 하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옛말에 “죽어도 학교 가서 죽어라”고 했는데, 참 세상이 이상합니다. 마리아도 자신의 형편, 비천함을 주변 사람들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48절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여기서 만세가 “모든 세대”를 뜻한다. 마리아는 자신의 비천함을 주변 사람들도 알고 있고, 자신을 향한 시선이 딱하고 안타깝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오늘 예배드리는 친구들 가운데 혹시 나는 학교 출석을 빠진 적이 없다거나 그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면, 여러분 그 일 신경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부모님이 거지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학생이라면 수업을 듣는 게 당연한 일이고 그것을 해내고 있기에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죽을 필요없습니다.
마리아의 비천함은 출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바로 마리아가 살던 동네는 “나사렛”이라고 하는 곳입니다(26절). 요1:46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합니다. 금요일에 진성고 학교 전도를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이 하교 할 때까지 후문에서 선생님 한 분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화를 하던 중, 선생님께서 진성고 겨울 방학은 일주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명문고라서 그렇다더군요. 사람들은 어디 출신인지 중요하게 여깁니다. 명문고를 다니면, 명문고를 나오면. 그것이 아닙니다. 명문고에서만 위대한 사람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나는 그저 그런 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앞으로 평범한 삶을 살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사렛에서 예수가 탄생했던 것처럼,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비천함을 넘어 이스라엘의 비천함으로 빗대고 있습니다. 54절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맞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사실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왜 비참한 상황에 놓였을까요? 말라기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라기-마태복음 사이 기간을 약 400년으로 추정합니다. 이 기간을 암흑기, 중간기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더군다나 정치적 억압까지 있었죠. 하나님의 침묵과 정치적 억압으로 이스라엘은 캄캄한 밤을 지내야 했죠. 마리아에게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어두운 밤, 캄캄한 밤, 칠흑 같은 시간을 지나고 계신 분 있으십니까? 이스라엘처럼, 마리아처럼 무엇인가에 억눌리고, 짓눌려 있으신가요?
그러나 여러분, 오늘 본문 28절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은혜를 받은 자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게 하신다”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 같아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슬퍼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2. 하나님은 약속을 기억하심(31-33)
우리가 가진 성경에서는 나타나진 않지만, 성경에는 약속과 언약을 구분합니다. 이 두 단어의 차이는 역사성과 조건성에 있습니다. 약속은 창세 전 삼위 하나님 간의 약속입니다. 창세 전이라는 점에서 시간이 없고, 삼위 하나님 간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조건성이 없습니다. 여기서 조건성이랑 순종 유무와 그에 따른 상과 벌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불순종 했습니다. 그에 따른 결과가 모든 인류가 죄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그가 순종했다면 영생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 언약은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약속입니다. 방금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과 아담의 약속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보란 듯이 아담이 실패했죠. 하나님과 인간의 약속은 그렇습니다. 인간의 편에서 늘 약속을 깨뜨립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과 인간의 약속, 언약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삼위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에 유지하고 보존이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신 그 약속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54절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바로 기억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마리의 예수 나심 예고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무효화 된 것이 아닙니다! 아직 때가 안 찬 것뿐입니다. 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기억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분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그분의 뜻을 기다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3.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이루어짐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함(34-38)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까”는 마리아의 믿음 없음이 아니라 놀라움의 표현이다.
어떤 전도사님이 물어봅니다. “사람이 바뀌는 것을 믿느냐?”고 말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이 아닙니다. 18살 크리스마스, 교회 나가 그때부터 신앙생활 했습니다. 10년 남짓 제게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의심’ 많던 저를 바꾸셨습니다. “신이 있는 건 맞는 것 같은데, 그게 하나님인 줄은 모르겠습니다.”라고 담임목사님께 얘기했던 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서 버젓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벌써 이 만큼 변화했습니다. 또 얼마나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변화시키실지 솔직히 기대됩니다.
앞으로 10년 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어떤 목회를 하고 있을까? 어릴 적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10년 뒤 나의 모습을 글 혹은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땐 어떤 것을 떠올리고 기록하지만 사실 그것은 ‘막연함’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바라고 기대하지만 그것은 막연함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를 막연함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막연함이 아닙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것이지요. 그 전도사님의 질문에 제 답변은 두 말 할 것 없이 ‘YES’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의심 많던 나도 변화시키셨기 때문에 변화할 수 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에게 강하게 도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이루어집니다. 이 사실을 믿고 믿음의 길을 계속 걸어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눅1:26-38절
하나님의 함께 하심 - 은혜를 받은 자(26-30).
마리아는 자신을 비천한 상태(48절)로 표현한다. 마리아는 왜 자신을 비천한 자로 묘사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자신이 권세 있는 자도 아니고(52), 오히려 가난한 신분에 처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53). 저는 오늘날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개근하면 거지라고 하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옛말에 “죽어도 학교 가서 죽어라”고 했는데, 참 세상이 이상합니다. 마리아도 자신의 형편, 비천함을 주변 사람들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48절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여기서 만세가 “모든 세대”를 뜻한다. 마리아는 자신의 비천함을 주변 사람들도 알고 있고, 자신을 향한 시선이 딱하고 안타깝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오늘 예배드리는 친구들 가운데 혹시 나는 학교 출석을 빠진 적이 없다거나 그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면, 여러분 그 일 신경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부모님이 거지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학생이라면 수업을 듣는 게 당연한 일이고 그것을 해내고 있기에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죽을 필요없습니다.
마리아의 비천함은 출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바로 마리아가 살던 동네는 “나사렛”이라고 하는 곳입니다(26절). 요1:46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합니다. 금요일에 진성고 학교 전도를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이 하교 할 때까지 후문에서 선생님 한 분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화를 하던 중, 선생님께서 진성고 겨울 방학은 일주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명문고라서 그렇다더군요. 사람들은 어디 출신인지 중요하게 여깁니다. 명문고를 다니면, 명문고를 나오면. 그것이 아닙니다. 명문고에서만 위대한 사람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나는 그저 그런 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앞으로 평범한 삶을 살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사렛에서 예수가 탄생했던 것처럼,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비천함을 넘어 이스라엘의 비천함으로 빗대고 있습니다. 54절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맞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사실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왜 비참한 상황에 놓였을까요? 말라기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라기-마태복음 사이 기간을 약 400년으로 추정합니다. 이 기간을 암흑기, 중간기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더군다나 정치적 억압까지 있었죠. 하나님의 침묵과 정치적 억압으로 이스라엘은 캄캄한 밤을 지내야 했죠. 마리아에게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어두운 밤, 캄캄한 밤, 칠흑 같은 시간을 지나고 계신 분 있으십니까? 이스라엘처럼, 마리아처럼 무엇인가에 억눌리고, 짓눌려 있으신가요?
그러나 여러분, 오늘 본문 28절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은혜를 받은 자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게 하신다”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 같아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슬퍼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2. 하나님은 약속을 기억하심(31-33)
우리가 가진 성경에서는 나타나진 않지만, 성경에는 약속과 언약을 구분합니다. 이 두 단어의 차이는 역사성과 조건성에 있습니다. 약속은 창세 전 삼위 하나님 간의 약속입니다. 창세 전이라는 점에서 시간이 없고, 삼위 하나님 간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조건성이 없습니다. 여기서 조건성이랑 순종 유무와 그에 따른 상과 벌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불순종 했습니다. 그에 따른 결과가 모든 인류가 죄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그가 순종했다면 영생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 언약은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약속입니다. 방금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과 아담의 약속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보란 듯이 아담이 실패했죠. 하나님과 인간의 약속은 그렇습니다. 인간의 편에서 늘 약속을 깨뜨립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과 인간의 약속, 언약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삼위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에 유지하고 보존이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신 그 약속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54절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바로 기억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마리의 예수 나심 예고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무효화 된 것이 아닙니다! 아직 때가 안 찬 것뿐입니다. 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기억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분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그분의 뜻을 기다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3.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이루어짐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함(34-38)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까”는 마리아의 믿음 없음이 아니라 놀라움의 표현이다.
어떤 전도사님이 물어봅니다. “사람이 바뀌는 것을 믿느냐?”고 말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이 아닙니다. 18살 크리스마스, 교회 나가 그때부터 신앙생활 했습니다. 10년 남짓 제게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의심’ 많던 저를 바꾸셨습니다. “신이 있는 건 맞는 것 같은데, 그게 하나님인 줄은 모르겠습니다.”라고 담임목사님께 얘기했던 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서 버젓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벌써 이 만큼 변화했습니다. 또 얼마나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변화시키실지 솔직히 기대됩니다.
앞으로 10년 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어떤 목회를 하고 있을까? 어릴 적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10년 뒤 나의 모습을 글 혹은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땐 어떤 것을 떠올리고 기록하지만 사실 그것은 ‘막연함’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바라고 기대하지만 그것은 막연함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를 막연함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막연함이 아닙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것이지요. 그 전도사님의 질문에 제 답변은 두 말 할 것 없이 ‘YES’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의심 많던 나도 변화시키셨기 때문에 변화할 수 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에게 강하게 도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이루어집니다. 이 사실을 믿고 믿음의 길을 계속 걸어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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