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18 새벽기도회
Notes
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370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기도
사랑의 주님 모두가 잠든 이 고요한 새벽, 저희를 가장 먼저 깨워주시고 주님의 전으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은 아직 어둠 속에 있지만, 저희는 주님의 빛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이새벽 육신의 피곤함을 안고 나왔습니다. 또한 복잡한 생각과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내 힘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하기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시작하고 싶어 이 자리에 왔사오니, 이 시간 우리 모두를 따뜻하게 안아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가 마주할 수많은 만남과 일들 속에서, 저희가 길을 잃지 않도록 이 새벽에 먼저 주님의 지혜를 구합니다. 우리의 빈 마음을 하늘의 평안으로 채워주시고,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며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새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시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예물을 드립니다. 매일 기도의 제단을 쌓으며 드리는 **'일천번제'**와, 삶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감사헌금'**을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예물에 담긴 성도들의 간절한 소원과 믿음을 기억하사, 그 삶과 가정 위에 하늘의 복으로 응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조급함'입니다. 현대인들은 기다리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합니다.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그렇습니다.
보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서 저절로 닫히기까지 5초에서 7초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짧은 시간이 왜 그리도 길게 느껴지는지, 참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닫힘 버튼을 누르곤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식당에서 음식이 내 생각보다 조금만 늦게 나와도 금세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무엇이든 '지금 당장'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오죽하면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다른 말은 몰라도 '빨리빨리'는 꼭 배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상에서 '빠름'은 능력이 됩니다.
반대로 '기다림'은 무능력이나 시간 낭비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7절에서 야고보 사도는 고난 당하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그냥 참는 것도 아니고, '길이' 참으라고 합니다.
오늘 이 새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이 '인내'가 무엇인지, 억울하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믿음으로 버텨낼 수 있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함께 나누겠습니다.
2. 본문의 상황과 원어적 의미 (Context & Exegesis)
2. 본문의 상황과 원어적 의미 (Context & Exegesis)
야고보서 5장 1절에서 6절을 보면, 당시 성도들을 괴롭히던 '부한 자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성실하게 일한 품꾼들의 삯을 주지 않고 착취했습니다. 심지어 법정을 매수해서 죄 없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로인해 힘없는 사람들은 굶주렸고, 억울하게 매를 맞았으며,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내가 잘못해서 나의 잘못으로 고난받을 때는 참아 집니다. 내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내 정당한 권리를 빼앗겼을 때, 그리고 나를 억울하게 만든 사람들이 잘 살 때, 참기 힘든 분노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럴 수 없다며?" 원망하기도 하고 나를 이렇게 억울하게 만든 사람을 당장이라도 찾아가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도 들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 사도는 바로 그때"길이 참으라", “오래 참으라” 말 합니다.
여기서 길이 참으라는 원어를 지역하면 '분노를 멀리 둔다' 혹은 '마음을 길게 가진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싸울 용기가 없어서 겁을 먹고 미리 항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보복할 힘도 있고, 따질 논리도 있고, 화를 낼 정당한 명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더 큰 뜻을 위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 화를 내려는 마음과 나 사이의 거리를 스스로 멀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오래 참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래 참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 7절을 보면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우리가 억울하고 그래서 분하여 화가 나지만 그럼에도 오래 참아야 하는 이유는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심판주가 오시면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지금의 내 상황이 너무나 억울해 분노가 치밀어 올라도, 그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농부의 지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
3. 농부의 지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
그래서 야고보는 '농부의 비유'를 들어 오래참음을 설명합니다.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농사는 전적으로 하늘에 달려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농사력을 보면, 10월과 11월경에 '이른 비'가 내려야 합니다. 건기 동안 딱딱하게 굳어버린 땅을 이른비가 적셔주어야 밭을 갈고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겨울을 지나 3월과 4월경에 '늦은 비'가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곡식의 알곡이 잘 여물어 추수를 할 수 있습니다.
농부는 밭을 갈고,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부지런히 일합니다. 하지만 농부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비를 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농부라도 비는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비는 오직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농부의 기다림은 '게으름'이나 '포기'가 아닙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영역, 다시말해 '결과'와 '때(Timing)'는 철저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인내입니다.
오늘날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가정안에서의 문제, 직장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를 위해 많은 애를 씁니다.
마치 농부가 열매를 맺기 위해 밭을 갈고 거름을 주듯 노력합니다.
하지만 무엇하나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상황을 역전시키는 '은혜의 비'는 하나님이 내려주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이제 그만 내 힘을 내려놓고, 비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쥐고 있던 주도권을 하나님께 넘겨드릴 때, 우리 안의 조급함과 분노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농부와 같은 묵묵한 기다림과 소망이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4. 공동체를 지키는 힘: 원망하지 말라
4. 공동체를 지키는 힘: 원망하지 말라
그런데 우리가 고난 중에 참고 기다릴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이 길어지면 우리 안에 죄가 자라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을 보면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야고보는 지금 부자들에게 핍박받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자들을 원망하지 말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합니다.
다시말해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끼리, 옆에 있는 형제자매에게 화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종로에서 뺨을 맞으면 종로에서 화를 내야 하는데 전혀 엉뚱한 곳에서 화풀이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밖에서 힘든 일을 당해 마음이 편하지 않을때 종종 그 화풀이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쏟아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가운데 억울함과 분함이 있으면 그 화를 풀어야 할 대상을 찾아 다닙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교우들에게 쏟아냅니다.
또 교회 안에서 원망할 대상을 찾아 내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친 사람에게 모든 것들을 쏟아 붓고 싶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로를 비난합니다.
외부의 공격보다 더 무서운 것이 내부의 분열입니다.
고난 때문에 공동체가 깨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중에 서로를 향한 원망 때문에 공동체가 깨집니다.
'원망'은 곧 '심판'입니다.내가 누군가를 원망하고 비난한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 위에 서서 재판관 노릇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원망의 마음속에는 “내가 하나님이라면 저 사람을 저렇게 두지 않았을 텐데"라는 교만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9절 하반절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보라 심판주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진짜 재판장이 지금 문고리를 잡고 계신다. 네가 재판석에 앉아 있지 말고 빨리 내려와라." 이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계의 갈등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판단하고 내가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지 우리가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5. 결론: 욥의 결말과 예수 그리스도
5. 결론: 욥의 결말과 예수 그리스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힘든 고난의 시간을 통과할 수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야고보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욥'을 예로 듭니다(10-11절).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한 사람 하면 욥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욥기를 읽어보면 욥은 점잖게 참기만 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따지기도 했고, 자기 생일을 저주하기도 했고, 너무 힘들다고 비명을 질렀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욥을 '인내했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욥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욥은 하나님께 매달려 씨름했습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인내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욥은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습니다.
11절을 보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라"
욥은 그 어려운 시간을 주님 앞에서 인내 했습니다.
야고보는 단순히 재산이 이전보다 많아졌다, 자녀가 이전보다 많아졌다는 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그 어려운 상황과 환경가운에 주님 앞에서 인내 한 결과는 “주님은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은 나를 괴롭히는 분이 아니구나. 고난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시는 가장 자비로운 분이시구나."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인내의 열매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욥보다 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참된 농부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가장 큰 고난과 억울함 앞에서도, 길이 참으셨습니다.
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향해 보복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참으신 이유는 바로 우리라는 '열매'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죽음의 침묵을 견디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그토록 오래 참으셨다면, 우리도 주님을 위해, 그리고 주님이 약속하신 그 영광스러운 결말을 위해 오늘 하루를 참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새벽, 우리의 기도가 바뀌길 원합니다.
"하나님, 빨리 이 상황을 없애주세요"라는 기도에서, "하나님, 농부가 비를 기다리듯 주님의 때를 신뢰합니다. 내 안의 억울함과 조급함을 주님께 맡깁니다. 우리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 성령의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인내로 승리하는 오늘 하루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조급한 세상 속에서 성도가 가져야 할 진짜 믿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조급함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내 생각보다 늦어지면 불안해하며 분을 냈습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인생의 농사를 내 힘으로 짓으려 했던 교만을 이 시간 내려놓습니다.
이 새벽, 우리에게 '농부의 믿음'을 주시길 소망합니다.
농부가 하늘을 바라보며 이른비와 늦은비를 기다리듯, 우리도 주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에 묵묵히 충성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고난 중에 우리 입술을 지켜 주옵소서.
밖에서 당한 힘든 일 때문에 가장 가까운 가족과 교우들에게 짜증을 내고 원망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셔서. 이제는 서로를 탓하는 대신,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견디어 내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끝까지 참으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 주셨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음을 기억합니다.
그 사랑을 의지하여 오늘 하루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넉넉히 견디고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가정과 일터와 자녀들 위에 성령의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실 줄 믿사오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