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4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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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자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약한자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약한 자는 찬양하라!
서론
시편 146편부터 150편은 보통 “할렐루야 시편” 혹은 , ‘할렐 시’로 불립니다.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마치는 시들이기 때문입니다.
할렐시는 시편 104–106, 111–118, 120–136, 146–150편 등에서(각 시편 시작 부분 또는 마지막 부분에) 사용되었는데, 이들 시편을 ‘할렐시’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에서는 이스라엘 3대 절기, 곧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에는 할렐시가 정기적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할렐루야(Hallelujah) 히브리어로는 ‘할렐루야’(הַלְלוּיָהּ), 헬라어로는 ‘할렐루이아’(Ἁλληλουϊά)로, ‘(너희들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할렐루야의 뜻을 다 아시겠지만, 할렐루야는 3살 꼬마부터, 죽을때까지 사용하고, 시편안에 굉장히 많이 나오는 말이므로, 조금만 더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할렐루야는 문법적으로는 복수 명령형이고, “찬양하라”는 동사와 와 찬양의 대상인 “여호와” 명사가 합쳐진 말입니다.
할렐루(Hallelu) 는 "찬양하라"는 뜻 (동사 "할랄"의 명령형), 야(Yah)는 하나님의 이름인 "야훼(Yahweh)"의 축약형 입니다.
할렐루(Hallelu): "너희는 찬양하라" (동사 파트)
찬양하다의 동사 ‘할랄’에 2인칭 복수명령형 어미 ‘우’가 붙었어서 할렐루 , ‘너희는 찬양하라!’ 는 의미와
여호와의 축약형 ‘야’를 붙여쓴 글짜로, 문법적으로는 “너희들은 여호화를 찬양하라!” 맞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찬양을 명령하는 취임새가 아니라, 일과 상황의 모든 주권과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적인 표현이 ‘할렐루야’ 입니다.
어떤 성도가 자녀가 유명한 대학에 합격했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안믿는 사람은 축하합니다. 고생했습니다. 공을 사람에게 돌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쁜소식에 보통 “할렐루야!” 라고 하며, 합격의 과정과 결과가 주님의 주권과 능력에 있었음을 인정하는 고백을 합니다.
그때 할렐루야는 “당신들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오 ! 주님을 찬양합니다. “, “주님께 영광을, 주님을 찬양합시다!”의 권유와 감탄의 의미를 담고 있을 것입니다. Prasie God! ,
146편에서 150편 다섯편의 시편은 찬양의 범위가 점진적으로 확대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
146편(개인) → 147편(이스라엘 공동체) → 148편(피조 세계) → 149편(승리한 백성) → 150편(모든 호흡이 있는 자)로 찬양의 대상과 범위가 넓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시편 146편의 개인의 시편 고백이면서, 대조의 시편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을 비교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1절은 개인의 영홍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하고,
10절 마지막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하며 끝을 맺고 있습니다.
제자훈련은 언제나 나로부터, 찬양도 언제가 나로부터 입니다.
구조
본론
1절에 자기 자신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자기 영혼과 더불어 여호와를 찬양하자고 권유합니다!
시편 146: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제자훈련의 원리와 동일합니다.
내가 먼저 제자가 되어야하는것 처럼, 진정한 찬양은 내가 먼저 주님을 찬양할떄 진정한 찬양을 할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나의 영혼아, 나의 하나님을 이라고 선포합니다.
남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합니다.
다윗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 바울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 될때, 진정한 찬양을 드릴수가 있습니다. 찬양을 드릴수 있음자체가 복입니다.
이 상가에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을 찾아 보십시오. 일산 동구에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을 찾아 보십시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입은 사람 밖에 찬양할 자가 없습니다.
시편 146: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2절에 살아 있는 동안에, 그리고 평생, 삶이 끝날때까지 나의 하나님을 찬송하겠다고 선포합니다.
찬양은 잠깐의 감정이 아니라, 평생 찬양하겠다는 결단의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찬양할때가 많습니다.
기분이 나쁘면 찬양을 못합니다.
택훈 형제가 3주전인가 주일 11시 에배에 오다가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아쉽게도 가해자였습니다.
그래서 늦었는데, 찬양인도를 했어야 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요?
저도 몇주전에 강화도에서 다이소에서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제가 가해자인데, 마음애 얼마나 무거운지 사고후에 찬양이 안나오더라구요.
찬양은 감정적인 것 보다는, 그 상황을 다스리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에서 나옴을 알수 있습니다.
상황이 어려울때 찬양은 믿음으로 할수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찬양의 대상이 어떤분인지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먼저 하나니과 인생을 비교하며, 인간을 의지핮지 말것을 명령합니다
시편 146: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귀인들은 지도자들, 권력이 있는 사람들, 각자의 처한 환경에서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될수 있고, 노회장님, 총회장님, 학교에서는 선생님, 학장님 , 회사에서는 부장님, 사장님 회장님 등이 될수 있고,
정부에서는 구청장, 시장, 국회의원, 대통령 정도가 될수 있습니다.
그들은 도울 힘이 있습니다 . 그들이 왜 도울힘이 없습니까? 4절에 죽기 때문입니다
내일 돈 마련한것 줄게요 하고, 다음날 죽을수 있는것이 인간이고,
힘있게 일을 마무리 하려고 하는데, 갑작스런 질병에 걸려서 병원에 눕거나, 사고로 일을 마칠수 없는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의지한다는것은 신속하게 달려간다는 의미입니다 . 나를 도울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달려가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146: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절에 차라리 야곱의 하나님을 도움 삼고, 야곱의 하나님께 자기의 소망을 두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5절에 복이 있다는 시편 1편에 아쉬레이로서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하나님도 아니고, 모세의 하나님도 아니고, 다윗, 솔로몬의 하나님도 아니고, 왜? 야곱의 하나니 일까요?
시편 146: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아브라함음 믿음의 조상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건국의 시초입니다. 다윗은 통일 왕국의 초대왕이고, 솔로몬은 가장 지혜롭고 부강한 왕의 상징입니다.
야곱은 속여서 복을 쟁취한자, 도망자, 말년에는 환도뼈가 부러진자 였습니다.
야곱을 잠시 살펴 보겠습니다.
야곱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사기꾼, 약삭빠른 사람 그러 이미지 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말년 약 50년 정도를 다리저는 장애인으로 살다가 죽은 사람입니다. (97세 환도뼈 부러짐, 애굽 130세 입국, 147세 죽음)
야곱은 후천적 장애인입니다.
야곱은 태어날때부터 2등으로 태어났습니다. 열등한 사람이었습니다. 사회에서 인정도 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남자는 근육과 사냥능력, 싸움실력이 있어야 인정 받았습니다.
오늘날로 학력있고, 실력있고, 가족부양잘하고, 이웃과 권리쟁탈해서 권리 잘 찾아 먹고, 자신의 공동체를 지키는 능력자가 인정받는 시대에,
야곱은 가정에서 엄마 요리를 도우며, 털도 없고, 목소리고 남성답지 못한, 한마디로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70세가 넘도록 장가도 못갔습니다 .
야곱의 하나님은 한 마디로 별볼일 없는 자의 하나님 입니다.
그가 가진 능력은 하나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장자를 축복하신다는것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던 사람이었습니다. 장자권을 팥죽으로 사고, 스프입니다. 실제로는 스프입니다. 국같은 스프.// 장자의 축복도 아빠 이삭을 속여서 받아냅니다. 형에서에게 죽일듯한 분노를 사서 77세 쯤에 삼촌 집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런데! 야곱이 하나님을 부른게 아닙니다.
가장 밑바닥에서, 오늘 죽어도 이상핮지 않을 도망자 야곱에게, 들짐승에게 찢겨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가장 비참할때 다가와 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때 하나니께서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해주시겠다고, 이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모두가 떠나도 항상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삼촌 집에 가서 삼촌한테 월급을 10번이나 사기 당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에게 아롱진 짐승을 몫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11명의 아들을 낳고, 밤에 몰래 도망치는데, 삼촌 라반이 죽이려고 추격을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손하나 까딱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살려 달라고 하기도 전에, 먼저 살려주신 하나닙이십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내가 알지 못할때에도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 이십니다.
형 에서를 만났을때 나이가 95세에서 99세 입니다.
형도 대단합니다. 그 노인이 동생 죽이겠다고 400명을 이끌고, 죽을때까지 쫓는것을 보면여.
그때 야곱이 하나님께 부르짖다가, 장애인이 됩니다. 다리저는 장애인이됩니다
그리고 에서의 마음을 변화히시켜서, 동생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원수의 마음도 사랑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 모든것은 하나님께서 이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너를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신 결과들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6절에 진실하신 하나님 이라고 합니다.
별볼일 없는 자의 하나님
가장 비참할때 다가와 주시는 하나님
항상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내가 알지 못할때에도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
원수의 마음도 사랑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약한자들에게 긍휼으르 베푸시며,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6절부터는 야곱의 하나님을 설명합니다.
시편 146: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약한자들에게 긍휼으르 베푸시며,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시편 146: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그런 자유를 주십니다.
우리 나라 대한 민국은 일본의 압제아래에 갇혔었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독립을 자유를 주었습니까?
인간이 준것 같지만,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라반의 마음을 변화시키신 하나님께서,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셔서 거지같은 대한민국, 아무것도 아닌 조선에 해방을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시편 146: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여호와는 맹인들의 눈을 여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성경에서 맹인들은 육체적인 맹인이 있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감각핮 못한 자들을 맹인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맹인들이 눈뜬 기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을 통해 눈이 떠집니다. 시편 146편 6절에서 9절까지는 예수님이 신약에서 전부다 행하신 사역입니다.
즉, 시편 146편에서 노래하는 야곱의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맹인 바디메오의 눈을 뜨게하사니 예수님,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는데,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비굴한 자는 여기서는 굽어진자인데, 짐을 너무 많이 지면, 목이 굽어지고, 허리가 굽어집니다
경제적인 짐, 압제자들의 짐, 권위자들의 억압,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지어서, 도저히 자기 힘으로 해결할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의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칭의인들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의롭다고 영수증 처리된 사람들입니다.
시편 146: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하나님의 통치를 찬양합니다
시편 146: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결론
시편은 b.c 1000년에서 b.c 440년 대략입니다. 500년에 걸쳐 기록된 찬양 모음으로서, 창조부터, 이스라엘의 건국, 이스라엘의 흥망성쇠, 포로의 귀환, 우주적 종말 모든 것을 다 담고 있습니다.
칼빈은 시편을 “영혼의 해부학” 이라고 불렀습니다.
칼빈은 시편 속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슬픔, 두려움, 의심, 희망, 기쁨, 분노 등—모든 감정이 거울처럼 투영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인생을 살며 모든 고통과 기쁨을 겪은 결론이 할렐루야 입니다.
죽을것 같이 고통스러워도 주님이 주권을 가지고 계시고, 능력을 가지고 계시고, 오늘 말씀같이 보호와 인도하십니다
틴데일 구약주석 시편 I–II 시편 146편.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시편 기자는 자신의 연약한 백성을 축복하는 왕인 하나님을 찬양하며 공동체를 이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따라서 심지어 인간 지도자들(귀인들, 3절)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도울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왕)인 예수님은 연약한 자들을 도왔다. 예수님은 억눌린 사람들의 주장을 지지했고, 주린 자들에게 음식을 주었고, 갇힌 자를 자유하게 했으며, 맹인들을 볼 수 있게 했으며, 비굴한 자들을 세웠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자신이 억눌리고 짓밟힌 자들을 돕는 메시아임을 선포하는 방식으로,
기도
나의 하나님으로서 진실한 찬양할수 있기를
야곱의 하나님!
약한 것을 아시고, 경쟁 속에섣도 약자, 살아 남지 못할 자 인것을 아시기에,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중간에 탈락하고, 뒤돌아설수 있기 때문에, 주님이 신실하게 이끄십니다.
야곱의 하나님 이십니다.
22일 월요일에 외고 전도가 잡혔습니다. 생각보다 부장님과 교감님이 기꺼이 허락하셔서, 국제강당까지 허락하셨습니다. 커졌습니다. 우리의 지체들은 많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스케일은 커져서 부담스럽지만, 여신 주님께서 채워주시기를, 영혼들이 와서 거듭나고, 성탄절에도 오고, 교회와 연결되어서 제자훈련도 받을수 있기를 기도해주시고, 우리 지체들도 주님을 위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시간을 내고, 물질을 내어서, 주님께 칭찬도 보너스로 받을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성탄준비, 잃은 양들, 새로운 사람들을 초청할수 있기를위해서,
수련회 디렉터와 준비위원회 구성 되도록,
내년 1월 컨퍼런스를 위해서. 온오프라인 병행으로는 처음 컨퍼런스입니다 지혜주셔서 잘 준비할수 있도록
초청잔치에 오신 분들(김세중, 이제욱, 소서현, 원세연, 이효담, 박정윤, 김연숙님, 지성이 이번주에도 올수 있도록,), 지금까지 교회에 온 참여자들이 구원 받고, 제자 삼는 제자가 되어갈수 있도록,
장기결석자 오경민, 공수현, 신현서 , 김동우, 호찬도 교회로 나올수 있도록, 주님의 제자로 인도해 주시도록,
교회의 부서별(영아,유아,유치,유년,초등,중고등,청년,장년) 균형성장과 캠퍼스, 학원, 직장, 의료, 군, 경찰 선교회의 리더들과 멤버들이 성장하고 번성할 수 있기를
대한민국 정부와 대통령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정치영역에 치열한 인본주의와 신본주의의 싸움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법과 질서가 세워질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심을 따라 법을 세우고, 집행하고, 심판하는 정부 지도자들이 될수 있도록,
이스라엘-이란, 우크라이나-러시아 종전을 위하여, 악한 김정은 정부가 무너지고, 복음으로 통일될 수 있도록,
대한민국과 열방의 복음화를 위하여, (열방의 긴급기도 참 좋은 것 같다.)
각자에게 주시는 마음을 따라 기도하겠습니다.
틴데일 구약주석 시편 I–II 시편 146편.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 시편 146편.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문맥
전체 시편의 마지막 송영(
틴데일 구약주석 시편 I–II 시편 146편.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시편 기자는 자신의 연약한 백성을 축복하는 왕인 하나님을 찬양하며 공동체를 이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따라서 심지어 인간 지도자들(귀인들, 3절)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도울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왕)인 예수님은 연약한 자들을 도왔다. 예수님은 억눌린 사람들의 주장을 지지했고, 주린 자들에게 음식을 주었고, 갇힌 자를 자유하게 했으며, 맹인들을 볼 수 있게 했으며, 비굴한 자들을 세웠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자신이 억눌리고 짓밟힌 자들을 돕는 메시아임을 선포하는 방식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