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왕이 아닌 생명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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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미가 1:1-16
제목: 소비의 왕이 아닌 생명의 왕
[서론]
[1] 크리스마스 주일이 오늘인 이유
[2] 크리스마스는 가장 상업화된 시기입니다
-넷플릭스, 집안물건들, 상자들
[3] 소비주의는 우상숭배의 메커니즘과 유사합니다
-우리의 착각, 칼빈, 금송아지 하나님
[4] 이 말씀이 크리스마스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하나님의 형상회복, 누구인지, 누구를 예배해야 하는지
[본론]
[1] 그 시대의 진짜 위기는 ‘죄’였습니다.
-군사력, 외교력이 아닌 죄가 문제, 본질은 우상숭배
[2]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동시에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불륜, 주인이 아닌 부적과 수호신
[3] 하나님은 예배의 ‘모양’보다 삶의 ‘진실’을 보십니다(5절)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예배와 예물은 있지만 삶도 없고 마음도 없고
[4] 우상숭배는 ‘불치병’이자 ‘전염병’입니다(9절)
-왜 불치병, 삶의 전영역에 영향
[5] 우리의 삶 전체를 망가뜨립니다(10-16절)
-자랑삼고 안전하다 여기던 이름들이 수치와 저주의 이름이 됨
-돈, 자녀, SNS, 정치신념
[6] 이런 모든 모습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우상은 좋은 것 뒤에 숨어 가장
[7] 하나님은 우상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3-4절)
-내 마음의 높은 곳은
[8] 하나님의 심판에는 눈물이 있습니다(8절)
-분노 뒤에 애통과 안타까움, 회복을 원하시는 분
[9] 크리스마스-하나님이 진짜 내려오신 날
-죽기 위해 태어나신 예수님, 우상으로부터 구원하신 예수님
[결론]
[1] 예수님을 만나면…
-대학시절,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내가 왜 이 길을 가는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2] 크리스마스는 소비의 절정, 쾌락의 시즌이 아닙니다
-우상에게 돌아서 주님께 돌아가기 위한 날
-소비의 왕이 아닌 생명의 왕에게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는 날
Happy Christmas!
우리 교회는 크리스마스 주일을 미리 보내고, 크리스마스 당일날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오늘이 크리스마스 주일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리는 이 절기가 세상에서는 가장 상업화된 시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켜든 “대박세일”, “지금 구매하세요!”같은 말들이 쏟아집니다.
얼마전 넷플릭스에서 본 다큐멘터리 제목도 바로 그 말이었습니다.
“지금 구매하세요, 쇼핑의 음모”입니다.
이 영상은 말합니다.
기업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소비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냥 갖고 싶게 만들고, 사지 않으면 불안하게 만듭니다.
집안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몇 만개의 물건들이 쌓여 있습니다.
정작 어디에 있는지,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 물건들이 태반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멈추지 못합니다.
집에 가실때 건물 엘리베이터 말고 계단을 이용해 보십시오.
아침 마다 쌓여있는 택배 상자들, 쇼핑 봉지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이러한 시스템은 우리를 가스라이팅합니다.
“네가 소비할 수 있어야 네 존재 가치가 있는거야.”
그런데 이러한 메커니즘이 우상숭배의 메커니즘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언제나 만족을 모르고 끝없이 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우상으로 위로와 격려를 받으려 합니다.
물론 우리는 구약성경을 읽을때 우상숭배가 가장 큰 죄임을 압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돌이나 나무로 된 우상을 섬기지 않으니까 괜찮아.”
정말 그럴까요?
종교개혁자 칼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우상은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이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외쳤습니다.
욕망이 멈추지 않는한, 우상은 계속 만들어집니다.
오늘 말씀 미가서 1장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심각한 우상숭배에 빠져있는지 보여줍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만 그들 마음에 가득한 것은 우상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가만 두지 않으시고 심판하십니다.
우상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회복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상에 속아 진짜 모습을 잃어버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크리스마스는 단지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날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누구를 예배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날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상이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을 다시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론]
먼저 미가서가 쓰여진 배경을 알아보겠습니다.
예언자 미가는 유다왕 요담과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거의 멸망하기 직전이던 상태였습니다.
남유다 역시 나라가 점점 기울어져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 이런 위기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갑자기 나라의 군사력이 약해져서 어려움에 빠진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군사력이나 외교력으로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평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진짜 위기는 죄였고, 그 죄의 본질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들의 우상숭배는 단순히 ‘다른 신’을 믿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것을 더 의지한 것입니다.
마치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몰래 다른 여성을 사랑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불륜이고, 아내에 대한 기만이고 모욕입니다.
그럼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계속 착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한 우리는 절대 망하지 않아.”
하나님을 자신들이 따를 주님으로 믿기는 커녕, 마치 자신들을 지켜주는 부적, 수호신쯤으로 여긴 것입니다.
5절입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야곱의 죄 때문이며, 이스라엘 집의 범죄 때문이다. 야곱의 죄가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더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더냐?”
사미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이고, 예루살렘은 남유다의 수도입니다.
가장 많은 예배를 드리던 곳이 가장 많은 죄를 짓고 있는 곳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삶은 바뀌지 않고, 거룩한 의식은 있지만 마음은 우상에게 가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더이상 그들의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9절입니다.
“이것은 사마리아의 상처가 고칠 수 없는 병이 되고, 그 불치병이 유다에까지 전염되고, 기어이 예루살렘에까지, 내 백성의 성문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들의 우상숭배는 이제 불치병이 되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자신들이 병든 줄도 모른채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동시에 그들의 병은 전염병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우상수배는 결국 유다까지 전염시켰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우상숭배가 우리 삶의 전영역을 오염시킨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돈이라는 우상에 빠지게 되면 관계도 망가뜨립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관계를 맺다보니 진실한 관계가 없어집니다.
자녀가 우상이 되면 가정이 왜곡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인생을 걸고, 자녀는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좌절합니다.
SNS가 우상이 되면 자아가 왜곡됩니다.
좋아요 수에 따라 하루 기분이 바뀌고, 결국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상품이 됩니다.
돈, 자녀, 명예, 쾌락, 성공…
우상은 대부분 좋은 것들입니다.
그 자체가 문제되는게 아닙니다.
우상은 이처럼 좋은 것 뒤에 숨어 자신을 가장합니다.
그것은 스물스물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여 우리를 파괴하는 존재가 됩니다.
3-4절입니다.
“주님께서 그 거처에서 나오시어 땅의 높은 곳을 짓밟으시니, 뭇 산이 그 발 밑에서 녹고 평지가 갈라진다. 불 아의 밀초처럼 녹아 내리고, 비탈길로 쏟아져 내리는 급류 같구나.”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직접 하늘 보좌에서 내려오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쌓아올린 높은 곳을 짓밟으십니다.
여기서 ‘높은 곳’이란 우상을 섬기던 제단을 말합니다.
우리 마음의 ‘높은 곳’은 어디인가요?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쾌락이든 심판의 대상이 될수 있습니다.
8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슬퍼하며 통곡하고, 맨발로 벌거벗고 다니며, 여우처럼 구슬피 울며, 타조처럼 목놓아 울 것이니”
예언자 미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면서도 울었습니다.
울지 않는 백성들을 대신해, 깨닫지 못하는 죄인들을 대신해,
그는 여우처럼, 타조처럼 짐승처럼 울부 짖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는 분노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애통과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회복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모든 아기들은 살려고 태어나지만 오직 한 분만은 죽기 위해 태어나셨습니다.
우리가 통곡해야 하는데 예수님이 통곡하십니다.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우상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우상을 뿌리째 뽑고, 우리의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키시기 위해,
하나님이 베들레헴의 작은 마구간으로 강림하신 날이 바로 크리스마스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저는 대학교 시절에 한동안 감정평가사라는 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남들이 다 하니까, 돈 잘 번다고 하니까 아무 고민없이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제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서 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내가 왜 이 길을 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단 한번도 진지하게 묻지 않았던 인생의 질문들을 마음 속 깊이 던져보게 된 것입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무엇을 소유하는지, 어떤 직업을 갖는지, 무엇을 이루는 지가 내 존재를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내 삶의 이유와 방향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수많은 우상들에 물들고 무너진 우리 삶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날 크리스마스는 소비의 절정, 쾌락의 시즌으로 오해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는 “우상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우상숭배를 끝내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 안에서 다시 회복되도록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소비해야 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부르십니다.
크리스마스 주일날 만약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보다 높아진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을 내려놓고 다시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우상으로 무너진 우리의 삶을 회복하시기 위해 소비의 왕이 아닌 생명의 왕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 돌아와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 크리스마스 최고의 예물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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