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는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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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매 맺는 기다림

본문: 야고보서 5장 7-10절

찬송: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임재의 기도

말씀을 통해서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오늘 나눌 말씀을 통해 저희에게 말씀해 주옵소서.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되게 하시고,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이기게 하는 뜨거운 능력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의 문을 열며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우리 삶의 터전 위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우리는 지금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기뻐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기다림'이라는 단어는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으로 느껴질지 모릅니다. 무언가 더디게 이루어질 때 사람들은 초조해하고 불안해합니다. 하지만 흙을 만지고 생명을 키우는 우리에게 기다림은 낯선 일이 아닙니다. 농사라는 것 자체가 씨를 뿌리고 거두기까지, 하늘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기다리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야고보서의 말씀은 바로 이 '농부의 마음'을 통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오늘 본문의 야고보 사도는 고난 받는 흩어진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당시 성도들은 악독한 부자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했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루하루는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야고보는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권면합니다. 이 권면은 단순히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무력하게 참고 버티라는 소극적인 위로가 아닙니다. 여기에는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인내하듯이, 우리 믿음의 삶에도 분명한 수확의 때가 있다는 강력한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네 농사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 영적인 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일상을 통해 주님을 기다리는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해 봅니다.

첫째, 우리는 '때'를 아는 지혜로 부지런히 기다려야 합니다.

함께 본문 7절을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5:7 NKRV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야고보 사도는 7절에서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팔레스타인 땅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입니다. 그래서 그곳 농부들에게 기다림은 생존이 걸린 절박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농부의 기다림은 하늘만 쳐다보고 손을 놓고 있는 게으름이 아닙니다. 농부에게 기다림은 가장 치열한 활동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이 말씀의 의미가 더욱 명확해집니다. 우리는 양력이 아니라 '음력'을 세며 농사를 짓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시계바늘을 보며 바쁘게 살아가지만, 우리는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보며 하늘의 이치에 맞춰 씨를 뿌리고 거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 질서 속에 심어두신 '하나님의 때'를 아는 지혜입니다. 인간의 욕심대로 시간을 앞당기거나 늦추려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절기에 순응하며 묵묵히 땅을 기경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조벼 농사를 생각해 봅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이제 겨우 모판을 만들까 말까 고민할 때, 우리 교회 성도들은 벌써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를 시작합니다. 아직 찬 바람이 채 가시기도 전입니다. 남들이 쉴 때, 남들이 주저할 때, 먼저 장화를 신고 논으로 나가는 그 부지런함이 바로 오늘 본문이 말하는 '길이 참음', 헬라어로 '마크로쒸미아(μακροθυμία)'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길이 참는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열정을 품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긴 호흡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가을의 황금 들판을 미리 눈으로 보기에, 봄의 찬물에 손을 담글 수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 즉 '강림'을 확신하기에 우리는 오늘 남들보다 먼저 사랑하고, 남들보다 먼저 헌신하며, 남들보다 먼저 기도의 자리를 지킵니다. 이것이 다시 오실 주님을 미리 마중 나가는 믿음입니다. 막연히 주님이 오시겠지 생각하며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실 그 결정적인 순간을 확신하며 오늘 내게 맡겨진 사명의 논밭에서 땀 흘리는 것, 이것이 바로 열매 맺는 기다림입니다.
때를 아는 지혜를 가지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우리는 시련 속에서 마음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함께 본문 8절을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5:8 NKRV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본문 8절에서 야고보는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굳건하게 하라'는 말은 흔들리지 않게 지탱한다는 뜻입니다. 왜 마음을 굳건하게 해야 합니까? 기다림의 과정에는 반드시 시련이라는 찬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는 '겨울 시금치'를 통해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따뜻하게 자란 시금치와, 노지에서 해풍을 맞고 눈을 맞으며 자란 시금치는 그 맛과 향이 전혀 다릅니다. 겨울 노지 시금치는 뿌리가 붉고 잎이 두꺼우며, 씹을수록 달큰한 맛이 납니다. 그 이유를 우리는 잘 압니다. 시금치가 얼어 죽지 않으려고, 그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스스로 잎사귀 안에 당분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 속에서 수분이 얼어버리면 죽게 되니, 스스로 몸 안의 전분을 당으로 바꾸어 어는점을 낮추는 것입니다. 추위가 시금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시금치를 가장 시금치답고 맛있는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길에도 인생의 겨울바람이 불어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육체의 질병이 찾아오기도 하며, 경제적인 한파가 몰아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악한 자들이 더 잘되는 것 같은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마음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영혼이 겨울 시금치처럼 단단해지고, 영적인 깊은 맛을 내기 위한 거룩한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는 순간은 때로 감당하기 힘든 위기처럼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위기의 순간이야말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기회입니다. 고난은 우리 영혼의 불순물을 태워 없애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편안할 때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이 고난 중에 빚어집니다. 날카롭던 성격이 둥글어지고, 교만했던 마음이 겸손해지며, 쓴뿌리가 변하여 감사의 단맛을 내게 됩니다. 욥이 겪었던 인내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밤을 통과하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뿌리를 더 깊이 내렸습니다. 시련을 통해 만들어진 그 영혼의 단맛, 그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귀한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속에서 굳건이 견딤으로 영혼의 단맛을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우리는 심판주 앞에서 서로 원망하지 않고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함께 본문 9절을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5:9 NKRV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야고보 사도는 9절에서 원망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왜냐하면 심판주인 우리 주님이 문 밖에서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일상이 고되고 힘들면 사람의 마음이 예민해지기 마련입니다. 몸이 피곤하고 날씨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 짜증이 가장 가까운 이웃이나 가족에게 향합니다. "당신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됐다", "누구네 논에서 물을 잘못 댔다" 하며 서로 탓하고 불평합니다. 본문의 '원망하다'라는 단어는 '신음하다', '투덜거립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난의 압박감 속에서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내가 재판관의 자리에 앉아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지적하곤 합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말합니다. "심판주가 문밖에 서 계신다." 이 말씀은 매우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문고리를 잡고 계십니다. 곧 문을 열고 들어오십니다. 주님이 오시면 모든 억울함은 밝혀질 것이고, 모든 눈물은 닦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굳이 재판관이 되어 형제를 비판하고 정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원망하고 심판하려 할 때, 우리는 문밖에 계신 진짜 심판주의 권한을 침해하는 죄를 짓게 됩니다.
대림절은 심판주이신 주님 앞에 서는 연습을 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심판주는 우리를 정죄하기만 하는 무서운 재판관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으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기에 심판주 앞에 선다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구원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외부의 시련이 힘들다고 해서, 우리 내부가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겨울바람이 셀수록 시금치들이 서로 옹기종기 모여 있듯이, 세상이 어렵고 삶이 고달플수록 우리 성도들은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덮어주어야 합니다. 옆에 있는 형제도 나와 똑같이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원망을 멈추고, 그 입술로 서로를 축복할 때 우리 공동체는 다가올 심판을 면하고 주님의 칭찬을 받는 복된 공동체가 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야고보 사도는 선지자들의 고난과 욥의 인내를 본받으라고 말하며, 주님은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라고 결론 짓습니다. 농부가 흘린 땀은 결코 땅을 배신하지 않듯이, 주님을 향한 우리의 인내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욥처럼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밤을 지날지라도, 우리 인생의 결말은 파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복음의 결론이며, 우리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우리 교회는 하늘의 절기를 아는 지혜로운 농부들의 공동체입니다. 조벼를 심는 그 부지런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예비합니다. 매서운 해풍을 견디며 달콤해지는 겨울 시금치처럼, 우리에게 닥친 시련 속에서도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마음을 굳건하게 합니다.
주님의 강림이 가깝습니다. 이미 문밖에 와 계십니다. 이 대림절, 불평과 원망 대신 감사와 인내로, 게으름 대신 거룩한 땀방울로 우리의 삶을 채워나갑시다. 그리하여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으며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이 땅의 농부들이 귀한 열매를 바라며 인내하듯, 우리도 다시 오실 주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때로는 인생의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어와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 때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찬 서리를 맞으며 더 깊은 단맛을 내는 겨울 시금치처럼, 우리에게 닥친 시련이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단단하고 순전하게 빚어가는 은혜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막연히 앉아서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남들보다 먼저 논으로 나가는 부지런함으로 주님의 때를 예비하기를 원합니다. 힘겨운 고난 중에도 곁에 있는 지체들을 원망하지 않고, 서로의 언 손을 녹여주며 덮어주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문밖에 서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심판주 주님을 기억하며, 오늘 우리가 흘리는 믿음의 땀방울이 주님 앞에 기쁨의 단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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