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설교 05 - 우리를 대신하신 어린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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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사야 53:4-6
몇 주 동안 우리는 복음을 살폈습니다. 창세기의 약속, 로마서의 칭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 모든 길은 결국 하나의 정점을 향해 올라갑니다. 바로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53장은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무려 700년 전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면, 마치 십자가 바로 밑에서 피 흘리시는 주님을 직접 보고 기록한 것처럼 너무나 생생하고 충격적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사야 53장을 '제5의 복음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십자가가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그 피 묻은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1. 착각과 진실: 그는 누구를 위해 고난받았는가?
1. 착각과 진실: 그는 누구를 위해 고난받았는가?
4절을 보십시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여기에는 두 가지 시선이 대조됩니다.
하나는 '우리의 생각(착각)'입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며 수군거렸습니다. "저 사람, 하나님을 모독하더니 천벌을 받는구나. 뭔가 끔찍한 죄를 지었으니 저런 저주를 받지." 욥의 친구들처럼, 유대인들처럼, 우리는 고난을 죄의 결과로, 인과응보로 해석하는 데 익숙합니다. "하나님께 맞을 짓을 했겠지."
그러나 성경은 '진실'을 선포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예수님이 지신 그 질고와 슬픔은 그분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저의 것이었고, 여러분의 것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병들고, 깨어지고, 슬퍼해야 할 우리 인생의 짐을 그분이 어깨에 짊어지신 것입니다.
2. 대속의 구체성: 찔림, 상함, 징계, 채찍
2. 대속의 구체성: 찔림, 상함, 징계, 채찍
5절은 성경 전체에서 복음의 핵심인 '대속'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한 단어 한 단어가 우리의 심장을 찌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이 박히고, 손과 발에 대못이 박히고, 옆구리에 창이 들어왔습니다. 왜 찔리셨습니까? 우리의 '허물', 즉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선을 넘은 우리의 반역죄 때문입니다. 내가 지은 죄가 송곳이 되어 주님을 찔렀습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상하다'라는 단어는 원어로 '으깨어지다, 박살 나다'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몸과 마음이 철저하게 부서지셨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의 '죄악', 즉 우리 내면의 비뚤어지고 부패한 본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끔찍한 교환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어 전쟁 상태에 있었는데, 예수님이 대신 징벌을 받으심으로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아니, 완전한 평화(Shalom)가 임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를 진노의 눈이 아닌 사랑의 눈으로 보십니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로마 군병의 채찍 끝에는 뼛조각과 납덩이가 달려 있어 살점을 뜯어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끔찍한 상처에서 우리를 치료하는 약이 흘러나왔습니다. 죄로 병든 우리의 영혼이, 찢겨진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상처를 통해 치유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역설적인 능력입니다.
3. 우리의 실존과 하나님의 해결책
3. 우리의 실존과 하나님의 해결책
그렇다면 우리는 원래 어떤 존재였습니까? 6절은 우리의 적나라한 실상을 고발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우리는 양을 순한 동물로 생각하지만, 목동들의 말에 의하면 양은 시력이 나쁘고 고집이 세서 제멋대로 가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일쑤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목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라며, 내 생각대로, 내 욕심대로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그것이 자유인 줄 알았지만, 실상은 멸망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고집불통인 양들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심판하셨습니까? 포기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문장의 주어가 누구입니까? '여호와'이십니다. 십자가 사건은 빌라도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꾸민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도하신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했던 그 예언처럼, 하나님은 친히 당신의 아들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담당시키셨도다"라는 말은, 구약 제사에서 죄인이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어 자기 죄를 옮기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부터 종말까지, 인류의 모든 더러운 죄, 저와 여러분의 숨겨진 죄악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긁어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그 한 분의 어깨 위에 폭포수처럼 쏟아부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무거운 죄 짐에 눌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아들의 절규를 외면하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 사랑입니다.
결론: 나의 죄, 그의 십자가
결론: 나의 죄, 그의 십자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를 바라볼 때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단순히 2천 년 전 한 청년의 억울한 죽음으로 보십니까? 혹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감상적으로 눈물을 흘리십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두 가지를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첫째, 나의 죄의 끔찍함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저토록 처참하게 으깨어 버려야만 용서될 수 있을 만큼, 내 죄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지독한 사랑입니다.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려고, 가장 아끼는 독생자를 희생시키신 그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할 때, '저것은 나의 죄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가 복되다."
오늘 이 시간,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찔림은 나의 허물 때문입니다."
"주님이 상함은 나의 죄악 때문입니다."
"주님이 대신 죽으셔서, 내가 살았습니다."
이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십자가의 보혈은 오늘 여러분의 상처를 씻고, 죄를 씻고, 죄책감을 씻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시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